서울 지역에 계신 김인호, 오안근 두 분께서 요청하셔서 2022년 7월 5일에 <원주인문학 답사>(제3회)를 진행했습니다.
오늘 답사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 '최시형 피체지' : 이곳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이 원주에 머무시게 된 역사적 배경, 해월 최시형 선생이 원주에서 피체되신(잡혀가신) 과정과 그 의미, 해월 최시형 선생이 원주에 남기신 영향 등을 함께 생각해 보았다. 이곳에서는 '동학문화해설사' 임찬경의 해설로 진행되었다.
임찬경 동학문화해설사는 '최시형 피체지'를 죽음과 관련된 공간이 아닌, 또 다른 생명의 공간으로 재해석해주었다. 다음과 같이.
1898년 4월 5일 해월신사 최시형은 원주의 송골에서 피체(披剃)되셨다. 피체되시면 죽음은 당연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6월 2일에 교형(絞刑)으로 순도(殉道)하셨다. 그러나 피체가 죽음으로 연결되었다고 해서, 피체지가 바로 죽음과 관련된 장소로만 기억될 필요는 없다.
성인(聖人)의 죽음은 그저 단순한 죽음이 아니며, 순도(殉道)로써 “(그 추구하는 것 등을) 크게 살리는” 일종의 의례(儀禮)이다. 4월 5일은 동학을 세우신 최제우의 '득도(得道) 기념일'인데, 그를 위해 몰려들었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마치 기다리셨던 것처럼 관병(官兵)에게 피체되셨던 것도 이미 예정된 순도(殉道)의 길을 가신 것이다. 최시형 선생이 피체되며 가셨던 그 길은 바로 “크게 살리는” 생명의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최시형 피체지>는 피체에 이은 죽음으로 기억되는 공간이 아닌, 피체로 인해 “더 크게 살리는” 생명의 공간으로 기억되어 마땅하다. - 임찬경의 <보고서> 인용
2) 무위당 장일순 묘소 :
3) 원주의 '셍명협동교육관'
4) 임찬경의 역사연구실에서 '원주인문학과 원주 그리고 원주사람' ppt 자료 보기
5) 무위당기념관
6) 원주 민주화 성지 '원동성당'
7) 박경리 문학공원
(작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