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학문명 시대의 가정의례
- 성균관이 제시한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보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발표한 ‘차례상 표준화 방안’은 우리 사회가 늦었지만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과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한 제안이다. 그동안 차례 상을 준비하는 부담이 커서 ‘명절증후군’이란 용어까지 유행 하고 성차별, 세대갈등 논란까지 벌어져온 점에서 보면 성균관의 표준 차례 상 제시는 만시지탄의 느낌마저 든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도 지적했지만 유교적 형태의 제사 의식은 고려 말 신흥사대부가 등장하고 조선이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조선 초기 왕가나 사대부 집안이 주로 지냈던 의식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민심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회 전반으로 전파됐고 초기에는 딸, 아들 구분 없이 제사를 지내고 경비도 분담했으나 조선 후기 중국의 가부장적 주자가례가 들어오면서 남성이 제사를 주관했고 이 명분으로 재산도 장자 중심으로 상속돼 왔다. 결론은 이 같은 주자가례도 시대변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1969년 정부는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해 조부모까지만 제사를 지내라고 권장했었다. 이 준칙 대로라면 기제사나 명절차례 대상도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며 차례는 매년 명절(설날 및 추석) 아침에 주손의 가정에서 지내고 제수는 평상시의 간소한 반상음식으로 자연스럽게 차리면 된다. 성묘의 경우도 각자의 편의대로 하며 제수도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하도록 명시돼 있다
이번 성균관 표준안에 따르면 차례 상에는 9가지 정도의 음식을 올리면 되고 기본적인 음식은 송편, 나물, 구이, 김치, 과일, 술 등이다. 여기에 가짓수를 늘린다면 육류와 생선, 떡도 올릴 수 있다. 특히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은 차례 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제물을 놓는 자리 역시 가족들이 결정하면 된다고 위원회는 밝혔다. 예법을 다룬 문헌에 ‘홍동백서’ 또는 ‘조율이시’라는 표현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사당이 없는 일반 가정에서는 지방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으나 그 대신 사진을 두는 것도 괜찮고 성묘 시기는 차례 이전이나 이후나 상관이 없다.
이 준칙 제정당시의 규제 사항을 보면 청첩장과 부고장 발송 금지, 화환 진열 금지, 만장(輓章)과 상여의 사용 금지, 부모 및 조부모 외에는 제사 금지, 굴건제복(屈巾祭服)의 착용 금지, 기본적으로 가까운 친척만 부를 수 있고 설혹 찾아와도 답례품 제공 금지는 물론이고 술과 음식 제공 금지 등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바람직한 권고사항이었다. 이대로만 지켜졌다면 호화 결혼식, 장례문화도 크게 바뀌었겠지만 지나친 규제라는 반발에 부디 쳐 흐지부지 돼 유감이다.
성현 말씀에 군자도 종시속한다고 오늘날과 같은 첨단 과학시대에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제사상을 차리는 것은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분명 조상이 바라는 바도 아닐 것이다. 호화혼례나 장례문화도 시대에 역행하는 구시대 풍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굳이 조상 모든분에게 제사를 올리고 싶다면 한분 한분 각각 모시기보다 한식이나 다른 어느 편리한 날을 택해 합동으로 예의를 갖추는 집안도 있어 참고할 만하다는 생각이든다. 이제 우리나라 대표 명절인 추석이나 설 명절 차례나 제사 성묘풍경, 더 나아가 지나친 호화 의식은 선진 첨단과학시대의 의식답게 달라지고 최대한 간소화돼야 할 줄 안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제사를 없애는 집안이 부쩍 늘어났다지만 이 기회에 제사나 명절 차례문화도 주변을 의식하지 말고 과감히 혁파해 나가야 할것이다. 지난해 5월 여성가족부가 전국 1만여 가구를 상대로 조사해 발표한 '제4차 가족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6%가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 한다'고 대답했다. 비록 우리의 미풍양속인 조상숭배 전통이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복잡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풍습은 고쳐 나가는 것이 현명한 생활문화가 아닐까. 때마침 추석명절을 맞이하며 수 십 가지의 제수를 장만해 차례를 올려온 많은 가정의 입장에서 이 성균관 차례 상 표준화방안이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정착돼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나친 제사음식 장만은 시대에 뒤떨어진 비과학적 낭비적 풍습이라는 공감대가 우리 사회에 확산될 때 성균관의 차례상표준화 방안도 생활 속에 정착되리라 믿는다.(정운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