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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에 대한 환상
"한때, 나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 매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각각 다른 세 위격이 세 보좌에 앉아있는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환상을 통하여 아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엑스타시 중에, 나는 사도 바울이 올라갔었다는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영체로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을 보았다. 셋째 하늘에 올라갈 때마다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중앙에 계신데, 그 모습은 도저히 말로 형용하거나 묘사할 수가 없다.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지만 전혀 눈부시지 않고 너무나 감미로워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바라볼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자애롭고 거룩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 내가 그분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마치 우리 사이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랜 그 어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느꼈으며, 그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나 마치 '나는 너를 창조 한 바로 그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며 나의 오래 전 사랑이 되살아났다. 이전에 나는 바로 그분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천국에 갔을 때, 나는 주위를 둘
러보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죠?" 그러자 사람들이 나에게 대답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에,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볼 수가 없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계시죠.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지상에서나 천국에서나 우리는 오직 그분 안에서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서 강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말하자면 더운 날씨에 물이 나무에 생기를 북돋워 주듯, 그것은 빛나며, 평화를 주며 성도와 천사들 사이를 흘러가면서 어디에서나 생기를 회복시켜주는 물결이었다. 나는 이것이 성령임을 깨닫게 되었다”
천상천하 어디에도 십자가와 같은 것은 없다
"천상천하 어디에도 십자가와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였다.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은 그의 모든 자녀들이 무겁지만 감미로운 십자가의 짐을 지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오직 이것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지상의 삶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기에 십자가를 질 기회를 우리는 두 번 다시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이 기쁘게 십자가를 져야할 때이다. 이 감미로운 짐을 질 기회가 우리에겐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나의 선택을 청빈과 단순함으로 일하는 것이다. 대주교의 자리를 준다 해도 나는 사양 할 것이다” -44쪽
평화를 추구하며 1830-1900
1889년 9월 3일 인도 북부의 파티알라주 람푸르에서 부유한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선다는 호사스런 생활 속에서 성장하였다. 어릴 때의 안락한 가정생활에 대한 회상은 종종 그의 연설 속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의 안이한 생활이 영적인 불안으로 인하여 무익한 것이 되어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성자의 생활에 따르는 고난과 더불어 내적인 기쁨과 평화가 솟아나는 행복을 맛보았다. 그의 부모님은 시크교도였으나, 그 종교 사상과 생활습관 면에서 볼 때에 예배처를 자주 방문하며 경전을 읽고 시크교와 힌두교의 모든 긴밀히 사귀는 등 거의 힌두교도인 것처럼 보였다. 선다 싱은 영어나 그의 모국어로 말할 때의 그 독특한 어부로 이 시기의 생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시크교도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다."
그의 독특한 종교적 성향을 육성하고 지도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그의 어머니였다. 그가 어머니에 관하여 말할 때마다 그의 얼굴이 사랑으로 밝게 빛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고귀한 사상이 자녀에게 미칠 수 있는 감화력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어느 목사가 선다싱에게 "만일 당신이 신학 교육을 받는다면, 당신의 감화력은 더욱 효과적이 될 것입니다"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선다 싱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교를 다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목사가 놀라서 그러냐고 묻자, 그는 “어머니의 가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어머니에 대해 말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만일 천국에서 나의 어머니를 뵙지 못한다면, 나는 하나님께 간청하여 그분과 함께 있을수 있도록 지옥으로 보내달라고 할 것이오" 그의 어머 나는 그가 성장하여 좇아야 할 이상으로서 사두의 삶을 끊임없이 제시하면서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버리고 태고부터 인도 종교에서 추구해온 홀로 영원하며 영원토록 만족을 주는 내적 평화를 얻도록 힘쓸 것을 당부하였다. 어머니는 그가 열네 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 상실감으로 인하여 그는 그 후 이 년간을 더욱 뜨겁게 구도에 매진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머니가 그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이 평화를 얻고자 하는 갈망은 더욱 강해져만 갔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에게 지시해 준 방법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일곱 살에 힌두교 경전 중에서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바가바드기타]를 거의 암송했으며, 열 여섯살 때에는 시크교의 경전인 「그란트」 와 회교의 경전인 「코란」 을 읽었으며, 힌두교 경전인 「우파니샤드」도 어느 정도 읽었다. 이것은 인도인들이 앵글로-색슨족보다 상당히 조숙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익하기만 하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길을 보여주는 경전을 가르칠 수 있는 사제나 성자들에게 그를 데려가곤 하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힌두교 성자의 지도를 받으며 요가를 수련하였다. 요가는 수련의 한 방법으로 힌두교도들 사이에 서 높은 평가되고 있는데, 황홀경으로 몰입되는 정신집중을 통하여 지고의 정신과 일치를 이루고, 그 결과 평화와 조명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마을에 있는 장로교 미션스쿨을 다니며 처음으로 성서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상 전래의 종교를 완전히 파괴하며, 시크의 혈관에 흐르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모욕하는 것이었기에 혐오감을 줄 따름이었다.
기독교로 회심하여 성자가 되다 (1904~1912)
1904년 12월 18일에 일어난 선다싱의 회심 이야기는 칸디kandy에서 행한 그의 강연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다.
"대체로 전도자와 기독교인들이 나에게 찾아오곤 했으나, 나는 그들에게 저항하며 그들을 핍박하였다. 어느 마을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마을 사람들이 기독교 전도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서를 찢고 불태워 버리곤 하였는데, 아버지의 면전에서 나는 성서와 다른 기독교서적들을 난도질하여 석유를 붓고 태워버리기도 하였다. 나는 이것이 거짓종교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박멸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하였다. 나는 우리 민족의 종교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 종교의 의례와 규율을 모두 수행했는데도 나에게는 만족이나 평화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자살을 생각하였다. 성서를 불태운지 삼일 후에 나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목욕을 하고 기도하였다.
'오 신이시여~ 만일 당신이 계신다면 나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자살하겠습니다.' 내 생각은 만족을 얻지 못하면 5시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위에 머리를 얹고 자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다면 내세에서나 그것을 얻을 생각이었다. 나는 계속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으나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또 다시 평화를 얻길 바라며 30분을 더 기도하였다. 새벽 4시 30분 나는 이전엔 결코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것을 보았다.
내가 기도하고 있는 방 안에서 나는 거대한 빛을 보았다. 나는 불이 났는가하여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때 이것은 어쩌면 신이 나에게 주시는 응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며 빛 속을 바라보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보였다. 그것은 영광과 사랑의 모습이었다. 만일 그것이 힌두교의 화신이었다면, 나는 그 앞에 굴복하여 엎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며칠 전에 내가 모욕했던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나는 이런 환상이 내 상상력에서는 나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힌두스탄어로 말씀하시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언제까지 네가 나를 핍박하겠느냐? 나는 너를 구원하러 왔다. 너는 올바른 길을 알고자 기도하면서 왜 그 길을 취하지 않느냐?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지 않고 살아계시며, 이 분이 바로 그분이심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그분 아래 엎드리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이 놀라운 평화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내가 그처럼 원하던 기쁨 바로 그것이었으며, 천국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일어났을 때 환상은 사라졌지만 그 평화와 기쁨은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가내가 기독교인이 된 것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가서 자거라 네가 성서를 불태운 것이 바로 엊그제이지 않느냐 그런데 이제는 또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나는 ‘그래요, 나는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알았고 그를 따르기로 결심했어요. 오늘부터 나는 그의 제자로서 그를 섬기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환상이 단지 꿈이었거나 아니면 상상의 결과가 아니었겠는가, 혹은, 그것은 선다 자신의 자기최면으로서 힌두교의 요기들이 황홀경에 빠졌을 때 체험하는 환상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분명히 그에게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선다싱은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기도를 시작하기 전, 겨울인데도 새벽에 냉수 목욕을 하였으므로 꿈을 꾼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은 전혀 예기치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그 환상의 결과가 그토록 혁명적이었고 지속적이었다는 사실에 그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때 그의 영혼 속으로 물밀듯이 밀려든 그 평화가 지난 14년간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으며, 특별히 시련과 박해를 받을때에는 더욱 더 깊어지기만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그가 추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 순간부터 어떤 새로운 외부의 힘이 그의 삶에 들어왔으며,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신 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는 당시만 해도 바울의 회심 사건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설사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시점에서는 절대적으로 기억에 의해 좌우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회심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성경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또 언제나 강조하려고 한다. 그는 그 후로 자신이 엑스타시 상태에 있을 때 체험한 그리스도의 환상과 그의 말씀을 우리에게 말할 때 그리스도를 육체의 눈으로 직접 보고 그 말씀을 ”두 귀로“ 직접 들은 회심 때의 환상과 그가 영적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그 이후의 환상들을 분방하고 단호하게 구별하여 말하였다.
치유 능력에 대하여
우리는 그에게 영적 치유를 해 본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게 하기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질 수 없는 십자가이다. 실론에서 어느 기독교인 신자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는데 의사들은 그에게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와서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나는'이 손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의 못 박히신 손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었다. 마침내 나는 승낙하고 병원으로 가서 그를 위해 기도한 다음 그의 머리에 내 손을 얹었다. 삼일 후, 내가 설교하던 한 모임에서 나는 그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뒷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그 아이를 치유한 것은 내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기도에 응답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강조해도 끝내 사람들은 내가 기적을 행하는 사람인 양 우러러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영적 치유가 미신을 조장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내가 전해야만 하는 복음에서 벗어나 미혹케 하는 것이기에 두 번 다시 사용해선 안되겠다는 것을 알았다."
성육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말씀이 육신 속에 들어오셨다” 이것을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의 형체를 지녀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내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는 이 교리를 비판했습니다. 성육신을 믿는데 지성적으로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가끔씩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보고자하는 거대한 욕구를 발견한다. 인간에게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우리는 자신이 예배하는 분을 눈으로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무한하신 분이시다. 나는 우상숭배자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왜 이러한 우상들에게 예배를 드립니까?"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므로 이 우상들은 단지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는데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런 상징 통하여 우리는 무엇인가를 예배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이 사랑하는 존재와 대화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를 보고 싶어 하지만 문제는 그가 무한하신 분이어서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도 무한한 존재가 된다면, 그때에는 우리가 그 무한하신 하나님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우리의 창조주시오, 아버지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분을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친히 볼 수 있도록 인간의 유한적인 형체를 입은 이유이다.
단념과 적극적인 봉사
선다 싱은 수도원에서 은둔생활을 한 중세의 신비가들이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으며 세상을 위해서는 아무런 유익한 일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질문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중한 영적 조언을 제공해 온 「그리스도를 본받아」 의 저자는 수도승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누리는 천국생활에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다 싱의 개인적인 생활은 압도적으로 적극적인 바쁘고 피곤한 봉사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기도와 명상, 적극적인 봉사나 그 외 다른 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 주일간의 기간이 주어진다 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에게 묻자 그는 그의 독특한 어투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일주일 동안 물만 마시거나 밥만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는 밥과 물 모두가 필요하다." 그는 몇 주간씩을 히말라야에서 지내는데, 그동안 그가 기도와 명상으로만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오류이다. 그가 온전히 순수한 명상으로 지내는 날들은 아주 드물다. 그는 히말라야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에서 복음을 전하며 시간이 있을 때마다 명상을 한다.
그가 믿는 기독교의 실질적인 특징은 그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극히 문자적인 인용하며 가끔 이야기하곤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 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심한 눈보라 속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던 선다싱은 혼자서 산을 넘길 두려워하는 한 티베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추위가 너무 심해서 이미 무사히 목적지에 닿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같이 산길을 가다가 그들은 눈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져 길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선다 싱은 동행하는 티베트인에게 그 사람을 마을로 데려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그는 혼자서도 살아 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며 서둘러 혼자 가버렸다. 선다 싱은 비탈을 내려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사람 업고 가까스로 다시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선다 싱은 그를 업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었다. 얼마쯤가자 앞서 갔던 사람이 길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선다 싱이 그를 불러도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몸이 차갑게 굳은 채로 얼어 죽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선다 싱은 사람을 어깨에 메고 오는 도중에 몸이 더워져 있었고 또 그의 체온과 물의 마찰로 인하여 의식을 잃고 있었던 사람의 몸도 점차 따뜻해져 마침내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마을에 도착 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는 쉽지만, 그를 위하여 살기는 어렵다. 죽는데는 한두 시간이면 되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매일 죽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생활을 여러 해 계속해오는 동안 사람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별한 은총을 얻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항상 천국에 있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면 이미 그곳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상에 남아있는 한 일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힌두교의 단념사상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내용이다. 내가 '산야시'라 불리길 원치 않는 것도 그 말이 '단념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악하게 보고 세상을 단념한다.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 선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모두 성부 하나님의 것으로 또한 나의 재산이기도 한 것이다. 만일 내가 이 세상을 단념한다면 그것은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내게 지어준 선물을 단념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을 단념하지 않고 다만 그 안에 있는 악을 단념할 뿐이다."
세상은 역경과 유혹으로 가득차 있지만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 산맥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곳이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지체하고 있으면 곧 잠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가기 전에 언제나 그 약효를 중화시켜주는 다른 약초의 냄새를 맡는다. 그런 주위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꽃들이 독초인 줄 알았으나, 사람들의 말로는 그 냄새를 맡고 열이틀이 지나도 죽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꽃들이 실제로 독초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그 꽃들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으면서 쌓인 허기와 갈증 때문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있는 좋은 것들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로 인하여 영적인 허기와 갈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영적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꽃들의 옆을 지날 때 잠들지 않게 해주는 냄새의 약초처럼, 기도의 약은 세상의 유혹 가운데서 사람들을 지켜준다."
선다 싱은 말한다.
"부와 지위를 얻고자 하면 고상한 삶에서 이탈하기 쉽다.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 선교회에 기부금을 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다. 그래서 붓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가끔은 왕들도 산야시- 포기하는 삶의 단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일컬어 산야신(Sannyasin:유행승), 또는 산야시(Sannaysi)라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가 되곤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이 그 자체로 악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라, 적절히 사용되지 않아서 나쁜 결과가 생기는 것일 뿐이다. 비록 그들의 이론이 잘못되었을지라도, 나는 세상을 단념한 그런 왕들을 존경한다. 일단 그 지위와 부를 다 누려보고나서 세상의 것들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닫게 되자 그 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었던 그들의 용기를 나는 존경한다.
※ 참고 : 사두 선다싱 / B. H. 스트리터, A.J아파사미 공저 / 황선국 옮김
★ 사두 선다싱에 대한 음성유튜브 있어서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어느 목사가 선다싱에게
"만일 당신이 신학 교육을 받는다면, 당신의 감화력은 더욱 효과적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 했을 때
선다 싱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교를 다녔습니다"라고 대답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 생각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선다 싱이 말한 것처럼
"어머니의 가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학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