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시산책4
She Walks In Beauty / George Gordon Lord Byron(1788~1824)
1
She walks in beauty, like the night
Of cloudless climes and starry skies;
And all that's best of dark and bright
Meet in her aspect and her eyes:
Thus mellowed to that tender light
Which heaven to gaudy day denies.
2
One shade the more, one ray the less,
Had half impaired the nameless grace
Which waves in every raven tress,
or softly lightens o;er her face;
Where thoughts serenely sweet express
How pure, how dear their dwelling place.
3
And on that cheek, and o;er that brow,
So soft, so calm, yet eloquent,
The smiles that win, the tints that glow,
But tell of days in goodness spent,
A mind at peace with all below,
A heart whose love is innocent!
*impair; 해치다. 손상시키다. raven; 검고 윤나는
tress; 삼단 같은 머리 serenely; 맑게, 차분하게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1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별이 빛나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밤하늘처럼;
어둠과 밝음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모두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 깃들어:
번쩍이는 한낮에는 볼 수 없는
부드러운 빛으로 녹아든다.
2
그늘이 하나 더 많거나, 광선이 하나 모자랐더라면,
까만 머리카락마다 물결치며
또는 그녀의 얼굴위에 부드럽게 빛나는,
그 말할 수 없는 우아함을 반이나 해쳤으리라
그녀의 얼굴에는 맑고 부드러운 생각들이 나타나
그 보금자리가 얼마나 순수하며, 사랑스러운가를 말해준다.
3
그리고 매우 상냥하고, 조용하지만, 모든 걸 말해주는,
저 뺨과, 이마 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미소, 빛나는 얼굴빛은,
착하게 지냈던 날들,
지상의 모든 것들과 함께하는 평온한 마음,
순진무구한 사랑을 지닌 가슴을 말해 준다!
런던에서 태어난 Byron은 반항정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주색으로 악명높은 귀족의 자손이었다. 아버지 "Mad Jack" Byron 은 짜증 잘 내고 안정되지 못한 여자와 결혼한 보잘 것 없는 모험가였다.
그의 출생과 지위, 교육이 모두 그를 세상과 적대하게 만들었다. 미남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절름발이여서 평생 이 불행에 괴로워했고 어머니를 미워했다. Harrow를 거쳐 케임브리지의 Trinity College 를 다녔다. 1809년 스페인, 폴투갈, 그리스, 터키 등지를 방문, 1812년 이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여행시 “차일드 해롤드의 순례여행”(Childe Harold's Pilgrimage) 을 발표하여 그 시대의 묘사적 여행 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을 만족시켰고 그는 일약 대시인이 되었다. 그의 유명한 말 “잠을 깨어보니 유명해진 자신을 발견했다.(awoke to find myself famous.) 는 이때 한 말이다.
1816년 아내 Anne Isabella Milbank 의 장난으로 사교계에서 매장되었고 이혼하고 영국을 떠나 주로 이탈리아에서 헤매었다.
1823년 당시 터어키와 싸우는 그리스 독립전쟁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1824년 1월 미솔롱기(Missolonghi)에서 그리스 지도자들 간에 일어난 불화를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4월 19일 부활절 기간 중에 환멸을 느끼면서 류우머티즘 열에 걸려 죽었다.
그는 운문으로 "해적"(The Corsair), "라라“ (Lara)와 같은 주로 중동을 다룬 작품을 썼고 그의 추방 시대에 ”맨프리드“(Manfred), ”카인“(Cain) 같은 무운 시 비극을 대 여섯 편 썼다. 만년에 쓴 ”돈 주안“(Don Juan)은 일종의 운문으로 쓴 피카레스크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영여로 쓰인 최대의 풍자시의 하나다.
Byron의 풍자는 영어로 쓰인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적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그들의 약점을 폭로하고 그들의 단점을 조롱하고 그들의 미덕을 욕했다. 그의 약점은 마음내키는대로 모든 것에 덤벼드는 것이다. 그의 위트, 능란한 솜씨, 재능과 힘은 “최후의 심판의 환상”(The Vision of Judgment)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Byron은 개성이 강한 시인으로 그에게는 자아에 대한 진실성과 강한 힘이 있다. 그의 시는 폭포와 같이 힘차고 화산과 같이 열렬하였다. 그는 모든 사회제도와 관습에 대한 반항아였다. 그러므로 그를 가리켜 악마파(Satanic School)의 대표적 시인이라고 한다. 방종하고 과격하고 인내성과 침착성이 없는 반면 자기에게 충실하였고 남에게 한없이 관대하였다.
그는 피압박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전부를 바친 영웅이었다. 그는 프랑스, 독일 낭만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Goethe는 그를 가리켜 유럽의 큰 인물(European Phenomenon) 이라고 하였다.
그는 흠 많은 금강석이었다. 추고하지 않고 성급히 시를 썼다.
위에 올린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도 1814년 어느날 무도회에서 스팽글을 단 검은 상복을 입은 Robert John Wilmot 부인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감명받아 그 다음날 아침 쓴 시라 한다.
Byron은 로맨틱한 인물이지만 Pope의 작품을 굉장히 찬미했고 그의 고전형식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동시대작가들을 고전주의기준으로 평가했다.
흠 없는 시도 쓰지 못하고 가치 없는 것도 쓰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평가 되어야 한다. 교훈, 철학이 없고 생각하게 하는 시인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시인 이었다 자기가 조성한 환경, 사건 속에 들어가 현실같이 몸소 체험하여 real하게 느끼게 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Sentimental하고 통일성이 결핍되어있다. 가끔 미완성으로 끝나지만 새로운 imagery, 신선한 재료, 힘찬 표현을 한다. 자유, 정의에 대한 그의 외침은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