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소청도의 역사‧문화 산책
가. 100년 이상 불 밝힌 뱃길의 안내자 ― 소청등대
답동포구에서 소청서로를 따라 약 3km 걸으면 소청도 서쪽 해안절벽 끝에 닫는데 이곳에 약 9m 높이의 하얀색 소청등대가 있다. 소청등대는 1908년 1월 인천 팔미도 등대(1903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불을 밝힌 등대이다.
소청도에 등대가 일찍이 설치된 이유는 서해5도 일대는 물론 중국 산둥반도와 만주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곳이 소청도이기 때문이다. 소청도는 대청도를 비롯해 일제 강점기 때 서해안 최대의 어업전진기지로, 대·소청도 앞바다는 일본인들의 독점 어장으로 묶어 놓을 만큼 황금어장이었다고 한다.
대청도 선진포항에 고래잡이 회사인 동양포경 주식회사가 포경사업기지를 만들 정도로 고래잡이 어업이 활발했다고 한다. 고래잡이 포경선들이 산둥반도 인근 해상 까지 출항하여 고래잡이를 했으므로 대·소청도의 위치를 알리는 표식이 필요하여 소청도에 등대를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등대지기가 지키고 있는 등대 가운데 한 곳으로, 여객선이 정박하는 탑동포구에서 이곳 등대까지의 왕복 약 2시간 가량의 트레킹은 소청도의 또다른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로이다. 소청등대의 설치 당시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당시 등대가 서 있는 정원에 몇 개의 돌기둥만이 남아있다.
지금의 소청등대는 2006년에 등대 전시관과 함께 등대를 새로 지은 것이다. 새롭게 단장한 등대는 방문객을 위한 안내소와 전망대를 마련하였는데 전망대에서 소청도 남동해안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대청도, 백령도는 물론 심지어 멀리 북한의 웅진반도를 볼 수 있다.
나. 천주교 도입 선구지를 말해주는 김대건 신부상
예동리 마을 산비탈 아래로 교회 옆에는 작은 성당이 나란히 있으며 그 뒤편 기슭에 갓을 쓴 작은 동상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다. 그렇다면 왜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이곳 소청도에 있는 걸까? 소청도는 인근 백령도, 대청도와 함께 우리나라 기독교(천주교 전래의 역사에 큰 몫을 차지한다.
김대건 신부는 구한말 천주교의 대탄압 속에서도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도입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교세 확장을 위한 노력으로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며 선교사의 입국과 연락을 위한 비밀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1846년 이곳 소청도를 거쳐 백령도 부근을 답사하였는데, 백령도에서 관군에 잡혀 서울로 압송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그런 관계로 백령도는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곳으로, 백령도 진촌리에 있는 백령 성당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 이에 백령도 못지않게 소청도 또한 김대건 신부가 한때 머물렀던 곳으로 그의 동상을 세워 숭고한 종교적 가치를 기리고 있다.
다. 대청도를 능가하는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 군락지
소청도 예동마을 뒤편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는 산비탈 부근에는 대청도에서 자라는 동백나무 군락보다 더 규모가 커 주목받고 있다.
동백 나무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난대식물로서,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군락지와 마찬가지로 이곳 소청도에서도 잘 자란다. 왜냐하면 소청도는 대청도 보다 위도상으로 약간 남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는 수령이 200년 이상 되고 크기도 대청도보다 광범위한 자생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따라서 대청도 동백나무와 함께 소청도 예동마을 동백나무 자생지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