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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의 새벽 일출은 두 눈이 부셨다. 천지가 개벽하여 창세기 시원(始原)의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
동쪽 하늘이 희뿌윰해 지더니, 어느새 세상의 광명을 밝히는 아침 해가 떠오른다.
두 눈이 부셨다. 새벽 일출은 천지가 창세기 시원(始原)의 빛을 품어내는 듯했다. 그 장엄하게 떠오른 빛은 영겁의 세월을 쉼 없이 달려온 태초 생명의 그 빛이었다. 뭉실뭉실 피어오른 새하얀 새벽 구름이 지상 최고의 형이상학적 융단을 펼치며, 그 무량억겁의 생명의 빛을 맞아들였다. 자연이 잉태하는 장엄한 감동이었다. 정화수 떠놓고 지신심(至信心)으로 빌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밤하늘의 달이 낳았다면, 어둠을 뚫고 찬란히 솟구치는 저 해는 인간의 생명과 삶을 낳지 않았을까 싶다. 무릇 인간의 마음은 달이 낳았고, 그 뼈와 살은 저 해가 낳았으리라. 어쩌면 우리 육신의 탄생도 해(太陽)와 달(月)이란 두 모태에서 잉태되어 물(水)과 흙(土)이란 탯줄을 타고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상에 부린 모든 생명은 그 생(生)의 명(命)을 다 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멸의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밤 산장의 별들과 함께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벌써 새벽 3시였다.
몸이 가볍지 않았다. 산장 내 함께 묵었던 국적을 알 수 없었던 산꾼들의 잠자리는 벌써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바깥세상은 아직 천지가 어둠의 장막에 묻혀 있고, 검푸른 하늘엔 치자꽃처럼 희고 고운 별들이 점점이 빛을 뿌리며, 그 축연의 밤을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저 별은 세상의 중심에 있고, 핍진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삶의 중심에서 그 명운을 점지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 깨끗하고 따스한 빛을 지상으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산장 밖엔 시린 듯 차고 맑은 신선한 새벽바람이 치렁치렁 감겨온다. 이곳 신 7합목(2,700m)산장에서 겐마미네봉(劍峯 3,776m)까지는 고도로 1,076m를 올라가야 한다. 그 도상 거리는 5km다. 우리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이 성판악(750m)에서 백록담(1,950m)까지의 도상거리가 9.6km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가파르게 옥죄는 경사도다. 여기에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는 점이 산꾼들에게 가장 큰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일 것이다. 출발 전, 내 역시 뜨거운 열애를 시작한 것도 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곳 후지산의 등반 루트는 4곳이 있다. 야마나시현의 요시다(河口湖) 루트, 시즈오카현의 스바시리(須走口) 루트, 고덴바(御殿場) 루트, 그리고 내가 발을 딛고 선, 후지노미아(Fujinomiya, 富土宮) 루트다, 각 루트별 이정표를 4색으로 구분 표시하고 있는데, 이번 등반 루트의 이정표의 색깔은 청색이다. 이 후지산은 혼슈[本州] 중부 야마나시현[山梨縣]과 시즈오카현[靜岡縣]의 북동부에 걸쳐 있으며, 후지노미야시(市)의 중심인 본궁(本宮)에 후지산을 신(神)으로 삼는 센겐신사(浅間神社)가 있는데, 이 신사는 일본 전역에 약 1300개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 후지산은 일본인들의 혼(魂)이 깃든 신(神)의 성소였다.
* 검은 화산잔석들이 끝도 없이 발끝에 무너져내리는 산길의 새벽 어둠을 걷어내며 신 8 합목(3,250m)을 향하고 있다.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 다운을 꺼내 입고, 신 8 합목(3,250m)을 향해 출발한다.
손전등 불빛으로 검은 어둠을 걷어낸다. 검은 화산잔석들이 끝도 없이 발끝에 무너져내리는 가파른 경사길, 코가 땅에 닿을 듯하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입안의 타액들이 하얗게 굳어진다. 마침내 구강이 바싹바싹 마르고, 목구멍이 타들어 오면서, 폐를 앓는 환자처럼 숨 소리가 거칠어진다. 이곳이 산소가 희박한 고산이란 것을 긴장한 내 몸의 기능들이 민감하게 그 반응을 나타내는 듯했다. 출발 전, 국내 후지산 발대식에서 고산 전문 산악인 장병호 대표로 소개된 이가 고산병 예방법을 또박또박 언급했다.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고, 국내 산처럼 오르면 순간적으로 오는 고산증에 무너지므로, 천천히 걸음을 걷되, 충분한 호흡을 확보해야 한다." 했다. 그이의 말을 듣고 가만히 돌아보니, 내가 기존 3,000m 급의 고산지대에서 허물어진 것도, 국내 산을 타듯 거침없이 행보하던 몸에 밴 습성 탓이 아닌가 싶었다. 그 이의 말은 정통한 듯 후지산 등반을 훨씬 수월하게 이끌어 주었다. 발대식에서 처음 만났던, 그이의 첫 인상은, 송구한 표현이나, 몸은 삭정이처럼 깡마른 체구에 광대뼈가 유독 불거진 상태였으며, 노르끼리한 얼굴은 우황 든 환자처럼 다가왔다. 툭 치면 한쪽이 허물어 질듯한 몸이어서, 저 상태의 몸으로 어떻게 4,000m나 되는 고산을 오를 수 있단 말인가, 불안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그는 히말라야 그 죽음의 8,000m급 봉오리들을 몇 차례나 돌아 나온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윽고 마(魔)의 3,000m를 넘는다.
다행히 고산증은 나를 비켜가고 있었다. 출발 전, 고산 등반의 수칙과 그간 격정적인 불길 속을 가로질러 온 내 뜨거웠던 앨애가 통하고 있었다. 이윽고 신 8합목 산장, 3,,250m에 도착한다. 일부 대원들은 이곳에서 얼굴에 핏기를 잃고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들에게 하나하나 기념사진을 남기며 조심하여 하산할 것을 당부했다. 지금 나는 내 생에 지상 최고의 고도에 발을 딛고 있으며, 이후 9합목을 거처 정상까지의 발걸음들은 난생처음의 경험들이며, 내 등반사 미지의 장을 여는 셈이다. 생수가 필요해서 그곳 산장에 들렸다. 까무짭짭한 젊은 사내에게 “I'll take a bottle of mineral water.” 하니, "500 엔", 짧은 토막 영어를 뱉었다. 이 가격은 우리 돈으로 치면 생수 한 병에 5,000원인 셈이다. 숨 막히는 가파른 산 높이 만큼이나 높은 가격이란 것을 나는 미리 알고 있었으나 여기까지 와서 기꺼이 그 돈을 쓰고 싶었다. 그늘 한 점 없는 고통의 산길에 한숨 돌릴 공간을 주는 산장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가 아닐까 해서였다. 몇몇 대원들은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으나, 나는 시장끼가 전혀 없어서, 집에서 가져온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서 배낭을 여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고산의 기압을 처음 맞닥트린 초코파이는 경끼를 했는지 실신해 있었다. 복부가 터질듯 팽팽이 부풀어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신 9합목을 향해 자리를 일어서는데, 갑자기 뒤통수가 송곳에 찔린 듯 통증이 왔다.
그러나 견딜 만했다. 옆에 있던 어느 대원이 자신도 먹었다는 타이래놀 한 알을 건네기에 그 약을 받았다, 아마 내 태어나고 이 알약은 처음인 듯했다. 문득 국내 발대식 자리에서 어느 여성대원이의 말이 떠올랐다. "고산증 예방약으로 비아그라를 먹으면 좋다 하는데,.." 라는 질문이었다. 여성분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순간의 분위기가 묘했다. 아마 그 분도 고산병에 상당한 중압감을 받고 있는 듯했다. 산악인 그이는 그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신약 타이레놀 정도는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그 즉답을 피해갔다. 다음날 출근해서 관련 근거를 찾아보니, 영국의 의약 전문지 번역본엔 고산 등반 시 비아그라를 복용할 경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라고, 발표돼 있었다.
* 신(神)이 새로 변하여 내려와 산다는 신성지역의 경계가 되는 되는 도리이(鳥居, torii)가 정갈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신 98목으로 드는 산길은 비탈은 더 가팔라지고 노폭은 더 좁아진다.
길은 대부분 용암이 불규칙하게 굳어 있어 관절에 무리가 올 정도로 걷기가 아주 불편할 정도였다. 이제 수목한계선에 이른듯 초록빛의 풀마저 사라지고 산비탈은 온통 검고 붉은 화산석 뿐이어서 삭막하기 그지 없었다. 이마를 드니. 좌측 상단 절벽 위로 도리이(鳥居, torii)가 아침 햇살을 정갈하게 받고 있었다. 저 도리이는 우리나라 불교 전각의 일주문이나 불이문처럼 속계(俗界)와 선계(仙界)를 구분 짓는 경계의 문에 해당한다. 일본에서는 신사나 신궁 앞에 주로 세운다, 그러므로 이곳 후지노마아 루트 8합목 이후의 고도는 신(神)이 내려와 사는 영역으로 풀이된다. 도리이에 조거(鳥居)라고 쓴 것은, 조신(神鳥)과 관계가 매우 깊다 하므로, 도리이의 경계를 넘어서면 신이 새로 변하여 내려와 사는 신성의 지역이 되는 곳이므로, 고결하고 거룩한 공간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 이 이방인은 이국땅 신(神)이 강림하여 머무는 개연성의 세계에 발을 딛는 것이리라.
* 삭막하기 그지 없는 등반길에 요코(yoko)와 미스에(Misue)를 만났다. 꽃잎같은 두 젊은 영혼의 앞날에 축원을 띄웠다.
도리이를 통과하는 길섶에 후지산 그 삭막한 땅에 피어난 두 송이 들꽃을 만난다.
요코(yoko)와 미스에(Misue)다. 젊은이들이 피곤하였던가. 길옆 모퉁이를 비켜 야외덮개로 몸을 돌돌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을 담고 싶어, 익스큐즈 미, 했더니, 만면에 꽃잎을 문 듯 "하이, 예스, 예스"한다. "May I take a pictures of you?"했더니, "예스, 예스" 하면서, 금방 쪼그려 앉아 브이자를 그리며, 하얀 치아로 마냥 해맑게 웃는다. 꽃잎처럼 간드러지는 그녀들의 목소리는 천상 일본 여인네의 그것이었다. 봄볕에 화르르 흩날리는 꽃잎 같았다고 할까. 상큼한 산나물 같다고 할까. 그 상큼하게 간드러지는 살가운 애교에 넘어가질 않을 이가 있을까 싶었다. 빈 들판에서 한평생 구도의 길을 가는 이끼 낀 근엄한 석인도 눈을 껌뻑이며 빙그레 웃을 것 같았다. 20대 초반으로 여겼는데, 둘 다 27세라 한다. 그녀들은 밤 새워 산행을 하고 하산하는 길이노라고 했다. May be do you have a nice boyfriend? 했더니, 대뜸 넘어갈 듯 깔깔깔 웃는다. 남자 친구는 없다라고, 고백 아닌 실토를 서슴없이 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실없는 사람처럼 빙그레 웃었다. 그럼 그렇지. 멋진 남자 친구가 있다면 이 험한 산길을 걸음이라도 하였겠는가. 그들의 꽃잎처럼 간드러지는 상큼한 목소리는, 바다 건너온 지친 이방인의 발길에 싱싱한 생기를 돌게 한다.
그들과 안녕! 인사를 나누고, 길을 돌아서며 내 마음 한자락에 축원을 띄운다. "순박한 젊은 영혼들이여, 오늘의 이 힘든 고통의 시간들이 부디 그대들의 앞날에 싱싱하고 싱그러운 한줄기 축복의 바람이 되길……. 꿈에도 그리는 눈부시게 근사한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그대와 나란히 꿈 꾸며 가는 생의 물결에 꽃가루 같은 축북이 늘 함께하길……. 세상살이에 웬만큼 숙성된 머리가 희끗한 이방인 하나가 바람처럼 스치며, 그대들의 앞날에 진심어린 축원 띄우나니. 순박한 영혼의 젊은이들이여!, 아름다운 영혼들이여! 안녕, 안녕, 안녕……."
끝없이 이어지는 지그재 경사 길에 발밑에 화산사(沙)와 화산잔석들이 쉼 없이 허물어진다. 허물어짐이 깊으면 발걸음이 아래로 미끌린다. 한 발 한 발 내 딛을 때마다 흉부를 압박하듯 숨이 가빠오는 고산의 등반길은 참으로 만만치 않다.
* 해발 고도 3.600m 지점; 한 차례 등반 고비가 오면서, 문득 저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어느덧 신9합목(3,460m) 만년설 산장에 이른다.
높은 고도로 인해 산소 농도가 점점 더 희박해지는 듯했다. 몆 발자국 내딛지 않아 흉부 압박의 강도가 더하고 숨이 더 가팔라지면서 심장 박동은 그만큼 더 빨라졌다. 한 무리씩 무리지어 오던 대원들 간의 대열도 가중되는 피로감으로 인하여 한도 없이 길게 늘어져 통제 불가능 상태로 되어가는 듯했다. 이곳 9합목 산장에 이르니 국내의 내놓으라 하던 몇몇 산꾼들도 당일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고산증이 온 그들 대분분은 하나 같이 얼굴에 핏기를 잃고 창백해 있었다. 정상을 돌아 하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표정들 또한 심상치 않았다. 지칠대로 지쳐 보였고 더러는 검은 화산 가루를 뒤집어 쓴 듯 알굴은 땀으로 번질거렸다.
정상까지 남은 고도는 310m. 후지산 산정 입구의 도리이가 푸른 하늘 아래 까마득하게 걸려 있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뽑듯 사력을 다 뽑았다. 그러나 정상을 불과 100 여미터 남겨둔, 고도 3,600m 지점에 이르러 한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호흡이 멎을 듯 가슴이 갑갑하면서 식은 땀이 맺혀 발을 내딛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처음 맞닥트린 고비였다. 우선 겨울 다운을 벗어버리고, 차가운 바람기를 막아 줄 얊은 바람막이로 갈아 입었다. 그런 뒤 돌팍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며 호흡을 가다듬었으나, 쉬 진정이 되질 않았다.
그 고통스럽고 힘든 고산길에, 갑자기 저 하늘나라에 계실 어머님이 떠올랐다. 문득 어머님 생각에 목이 메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평생 한이 서린, 서럽고 서럽게 살다 가신 내 어머님이셨다. 안쓰럽고 가엽게만 살다 가신 생각에 목이 메이고 메여, 고개를 떨구니 흐르는 내 눈물이 이국땅 검은 용암 위에 서럽게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스물하나 꽃가마 타고 오신 가냘픈 여인네 단잠 깬 어느 날, 지아비 밤하늘 운석처럼 가버린 세월은 홀로 남겨진 여인네에겐 참으로 모질고 혹독한 세월이었다. 그 뒤안길에 가랑가랑 지병 깊은 맏아들 그 품에 묻고 가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세월에, 가슴에 내리는 하얀 겨울눈을 밟고 가는 서럽고 서러운 날, 등 돌려 궂은 눈물 들썩이던 여인네의 가냘픈 어깨를 보는, 어린 내 눈에 맺히던 눈물방울이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다. 미망인 한 세월 시린 몽환의 탑 위에 세상 모르는 이 외아들 초롱꽃처럼 올려놓고, 우리 용표! 우리 아들! 선학이 원무를 그리듯 한평생 꽃이 피라 빌고 비셨던 어머님이셨다. 저 하늘길로 떠나시던 날, 나는 이 세상이 하도 서럽고 서러워 울고 또 울었다. 벌써 세상 떠나신 지 열다섯 해를 건넸건만, 아직도 날 떠나지 못한 채, 내 삶의 고비 고비마다 홀연히 나타나 말없이 지켜보곤 하신다. 오늘날 이 자리에 서게 한 것도 어찌 보면 8할이 돌아가신 어머님의 지극한 지심의 덕분이다. 한평생 뼈를 삭히며 사신 어머니의 그 서러운 삶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날 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으리오. 내 목숨 건너, 사멸을 넘고 넘을지라도, 영원토록 절절히 그리운 내 어머님이 아니겠는가.
이윽고 눈물을 거두고, 몸을 일으키니 몸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고산의 한줄기 바람이 몸을 훑고 간다. 힘을 내라고, 지친 내 등을 민다. 나는 다시 산정 향해 마지막 힘을 뽑는다. 신 9합목 이후의 양쪽 길섶의 풍경들이 속속 눈에 든다. 입가에 허연 거품 물고 축 늘어진 아가씨에게 물을 먹이며 사지를 주무르는 이들도 있었고, 기진맥진한 듯 검붉은 바위를 끌어안고 혼몽한 열애를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더러는 세상을 놓아버린 듯 하늘을 보고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언어가 다르고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의식주가 다른, 알지 못하는 산객들과 내가 동일한 고산 길 위에서 하늘 향한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이국땅 하늘 아래 바람처럼 스쳐가는 산객들이여! 오늘의 그 고통도 훗날 돌아보면 흐르는 생의 물결 위에 두고두고 그리웁게 회자될 빛나는 은빛 물결이 될 터, 부디 아무 탈 없이 무사하시길…….
* 후지산 산정에 선다. 그곳엔 부토궁이 있었으며 일본기가 나부끼고 이었다. 그곳에 발을 딛고 서니, 후지산 등반을 위하여 한여름 폭양을 녹였던 그 뜨거웠던 내 열애의 시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드디어 후지산 정상이다
좌측 단층 건물에 정상부토관(頂上富士館)의 글씨체가 선명하고, 산정의 정면엔 이곳이 신(神)이 사는 신성한 공간임을 알리는 도리이가 세워져있다, 그 뒤쪽엔 후지산 신(神)을 모시는, 후지산 센켄타이샤 오쿠미아 시네(천간대사오궁 신사(淺間大社奧宮 神社)가 눈에 든다. 우측으론 바람에 펄럭이는 일장기가 보이고 그 앞에 센켄타이 오쿠미아(淺間大社奧宮 神社)의 글씨체가 사각 목기둥에 음각으로 세겨져 서 있다. 이곳 정상에 서니, 한여름 폭양을 녹였던 그 뜨거웠던 내 열애의 시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내가 경험한 모든 산은 인간에게 고통의 한계를 요구했다. 그것도 한 치의 물러섬도,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비정하게 요구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그렇다는 것을 저 태산이 묵음으로 전하는 묵시의 가르침일까.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사 모든 일이 그런 고통의 한계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생의 종착지까지 겪어야 할 필연의 노정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기실 한평생 노정의 길 위에 고통과 인내 없이 그 무엇을 손에 쥘 수 있으랴. 그런 댓가도 없이 그 무엇을 취한 것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추하고 비열한 짓이 될 터이다.
문득, 어느 노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그저 인내(忍耐) 하나 배우러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철학자는 이 대목에서 "배우러 온다가 아니고 배우러 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한한 한 인간이 생과 삶의 이치를 말함에 있어 노철학자다운 깊은 사고가 우러나는 대목이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것 같은 노찰학자의 범상한 말 한마디가 내겐, 큰 산을 허무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랬었다. 세상은 벌통을 꼬챙이로 들쑤시신 듯 구석구석 독이 오른 듯 사납게 윙윙거리며, 이 세상의 축이 허물어질 듯 귀우뚱거린다. 노철학자 말 한마디는 그런 이 시대를 질타하는 심오한 가치를 품고 있을진데, 허나, 그 심오한 가치들이, 어지러운 시대의 물결 위를 떠도는 뿌리 없는 부초로 치부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나 신속하게 명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더 많은 부(富)와 더 많은 명예(名譽)와 더 높은 지위와 더 윤기나는 대접을 받기 위해, 삶의 끝없는 노예가 되어, 오염된 진흙탕 속에서 아비규환으로 사는 것은 아닐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휴화산인 후지산 분화구는 참혹했다. 어느 날 하얀 환각처럼 내게 다가와, 홀딱 반하게 만들어 놓았던 그 신비롭던 풍광의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다.
이 후지산의 분화구가 매우 궁금했다.
이곳 센켄타이샤 신사 뒤쪽으로 걸음한다. 아직 휴화산인 이 분화구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엄청난 융단폭격을 맞은 듯 험상한 바윗덩어리와 화산재가 뒤섞여 삭막함을 넘어 참혹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일본 열도를 재앙으로 송두리째 뒤흔들었을 거대한 버섯구름과 검은 재와 붉은 용암을 피처럼 토했을 당시의 모습들이 스쳐간다. 내가 인천공항을 떠나올 때 품고 왔던, 하얀 환각처럼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원뿔형의 하얀 설원의 봉우리는 그 어디메도 없었다. 유려하게 흘러내리던 하얀 설원의 환상은 환각 같은 꿈이었다. 지금 눈 앞엔 검붉은 화산석들이 널브러진 현실은 삭막함을 넘어 차라리 참혹한 형벌처럼 다가왔다. 그 참담한 현실 앞에 내 마음도 참변이 일어났다. 어느 날 환각처럼 내게 다가와,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며, 홀딱 반하게 만들어 놓았던 그 신비롭던 풍광의 참혹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싶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가끔 느끼는 바이건만, 내겐 아직도 너무나 순박한 순둥이 같은 단면이 숨 쉬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그런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의 이런 순박한 단면이 생의 굽이치는 물결 위에서, 때론 치명적인 독이 될 때도 있었으며, 때론 눈부신 보석이 될 때도 있었는 듯하다.
해발 3,776m의 고도엔 정갈한 햇살이 눈이 시리도록 쏟아져 내린다. 이 지점이 이승과 저승이 맞닿은 생의 종착지가 아니겠는가. 삶과 죽음의 별리의 경계선이 될 터. 이 경계선엔 어지러운 세상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별천지 같은 세상이 사방에서 펼쳐진다. 티 없이 맑은 푸른 하늘이며, 태평양의 더 넓은 푸른 바다를 건너온 싱싱한 미역 줄기같은 바람 줄기며, 발아래 몽환처럼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이며 그 아래 까마득하게 펼쳐지는 초록빛 융단들과 해탈승처럼 무욕(無慾)으로 웃고 있는 저기 저 처연한 봉우리들. 어지러운 세속의 시간을 초월한 저 넉넉한 억겁의 군상들, 어쩌면 우리 사는 속계를 벗어버리면 그곳이 바로 신선의 성소가 아닐까 싶었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돌아서려니 또 아쉬움이 남는다. 여정길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터벅터벅 지친 발길을 돌린다. 저기 저 산은 내게 있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우울할 때나, 쓸쓸할 때나. 적막할 때나, 괴로울 때나, 울고 싶을 때나, 고달플 때나, 세상에 길을 잃고 방황할 때나, 내가 세상에 뜨겁게 분노할 때나, 그 형형하게 다가오는 시간이 깊을수록,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늘 온화한 미소와 따뜻한 품으로 나를 보듬어 주었다. 지친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 쓸어주며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나를 한없이 위로하고 달래주었다. 이 세상 그 누가 저만하였던가. 저 산은 내 삶에 있어서 둘도 없는 친구요, 또 다른 내 삶의 길이었다.
이제 다시 여장을 꾸려 미지의 길을 나서리라. 잠시 흔들리며 접어두었던 꿈을 향해 그 길을 다시 나서리라, 단 한 번뿐인 이생의 길목을 돌아 백옥 같은 하얀 나래를 펴고, 바람으로 산을 넘으며, 그곳으로 가리라. 적광(寂光)으로 빛나는 그 숨 막히는 거대한 신(神)의 세계에 들어서, 나는 이 불가해(不可解)한 유한한 생과 삶을 서리서리 펼치며, 목 놓아 울리라.
일본 열도 후지산 등반 길에서2. _ 2018.08.11._ 북을 정용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