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복사꽃 피는 집
겨울이든 여름이든 밤낮으로 꽃피우죠
흑백이 싫증나면 꽃분홍을 피울까요?
버튼을 살짝 눌러요, 무지개도 피니까
눈 질끈 감으면 짝퉁도 명품처럼
물오른 웃음까지 반반씩 섞을까요?
서점은 흘러간 노래 복사본이 대세죠
잃어버린 시간쯤은 카페서 찾으시길
비포든 에이포든 말씀만 내리세요
대학로 유리문마다 복사꽃이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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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동백
모시적삼 쪽찐 머리
물동이 이고 온다
찰랑찰랑 넘친 물을
한 손으로 흩뿌리며
똬리 끈
살짝 문 당신
앞섶자락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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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청춘
휘리릭 바람처럼 푸른 패를 돌려봐
수직으로 낚아채는 매 발톱을 숨긴 채
불구덩 깊이 파놓고 뛰어들길 기다렸어
온갖 스팩 내밀어도 구직 문턱 넘지 못해
시선은 적의 손끝 고개는 빳빳하게
판돈을 긁어모은다, 짜릿한 손맛으로
잃어도 헤헤 웃는 그 자를 조심하게
딴 건 푼돈이야, 잡힌 건 발목이지
개평도 다 뜯긴 청춘 낙엽으로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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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
모국어 잠꼬대로 밤마다 별을 찾다
보도블록 틈서리에 뿌리를 내렸구나
노랗게 고개 내밀고 심봤다 외치고픈
난전에 주저앉아 후루룩 때우는 끼니
이방의 시선쯤은 웃음으로 받아친다
“향긋한 봄맛 사세요, 달래 냉이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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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맞이꽃
- 소록도 단종대斷種臺를 보며
멧비둘기 애끓어도 꽃길은 말이 없다
눈썹이 지워지니 뿌리조차 돌아선 길
꽃대궁 높이 올려서 달을 맞고 싶었는데
끌려온 수술대 위 손발이 묶였구나
생잡이 칼날 아래 하얗게 질린 동공
달 한쪽 잘려나가네
꽃스물이 찢기네
가랑이 사이에선 핏물보다 진한 눈물
홈통을 타고 내려 섬 하나가 다 젖는다
달맞이 낮달맞이꽃 저 혼자서 여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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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밥
퀭한 눈
이밥 한술
떠먹이고 싶다더니
눈에 밟힌
마른버짐
바스락 부서질 듯
저 멀리
예성강 찾아
밀물 타는
꼬꼬밥*
* 꼬꼬밥(‘쌀밥’의 북한 말)을 북한 아이들에게 먹이려 탈북민들이 쌀이 든 페트병을 물때에 맞춰 서해에서 예성강 하구로 띄워보냄.(2016. 12. 2.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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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뿔 주걱
이국의 주방에서 물소가 울고 있다
이맛전 맞부비던 종족을 생각하나
뿔 하나 세우기 위해 지평선을 내닫던
뜨거운 태양 아래 새끼를 키워내듯
간절하면 나아가고 그리우면 눈을 감는
바람길 열어간 전설
뿔과 뿔로 전했지
종일토록 매달린 채 적막을 지켜내다
저릿하게 젖이 돌던 초원을 떠올리나
서둘러 가슴을 연다
따끈한 밥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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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를 맞고 싶다
눈동냥 귀동냥에 함부로 내뱉은 말
홀씨 되어 날아가다 내 몸에 파종된다
오라로 날 묶어버린 골방 속의 시간들
풍경은 제 몸 때려 절간을 깨우는데
눈앞이 흐리다고 눈곱만 탓했구나
저 깊은 묵언 속에서 울음을 퍼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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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매 불매야
다음 생엔 엄마와 나 바꾸어 태어날래*
퉁퉁 분 젖을 물려 엉덩이 토닥이면
머루알 반짝이는 눈
방긋방긋 웃어라
처녀 공출 피하려 열여섯에 족두리 쓴
볼 붉은 사랑 한 줌 포화 속 타버렸네
앞섶의 눈물받이엔 고드름이 열리던
하르르 떠는 꽃잎 봄날 앞에 마주앉아
당신의 겨드랑이 내 손으로 받쳐들고
불매야 불매~ 불매야**
아장아장 걸어라
* 추사가 유배지에서 아내의 부음을 받고 쓴 시「配所輓妻喪」의 ‘來世夫妻易地爲’(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를 변용
** 아기를 어르는 경상도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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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
하루치 흘린 땀을 닦아내는 노을녘
흙 묻은 발을 씻다 문득, 널 바라본다
세상에! 곰팡이꽃 피워 여기 살아있었네
시간에 갇힌 채로 생살을 파고들어도
한결 같은 보폭으로 널 끌고 다녔다니
구두코 반짝이던 게 멍에인 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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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through King or the Looking)
그대들도 알겠지만 나라님은 따로 없지
손가락 끝을 따라 입과 입이 낳는 거지
꼬리가 꼬리를 물어 빙빙 도는 꼬리들
벌집 하나 쑤신다고 뇌관이 터지겠냐?
궁금하고 아리송해도 달이 지고 해는 뜨지
눈 맞아 잉태해놓고 뒷집 개는 왜 족치누
억측과 구설이야 개구리 우는 한철
표적 없이 발사해도 소발에 쥐는 잡지
발 빼기 분주한 늪 속 부메랑이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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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중
못 잊어 뒤척이다 돌아누워 흐느끼는,
사랑이란 그런 거다 떨리며 타오르는,
연비한 손 마디마디
쏟아내는 생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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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해봐라
야야, 말 쫌 해봐라 소 잡아 문 귀신도 아이고
지발 내 좀 살리도고, 내가 살믄 얼매나 살끼고
아 딸린 여자면 어떻고 몬 생기면 어떻노
짚신도 짝이 있는데 이노무 팔자 와이렇노
새각단 칠칠이 봐라, 월남샥시 데불고와서
깨소금 뽂는다 안카더나 토꽤이 같은 자슥 낳고
내사 마 저승 가도 할 말이 없는 기라
꼬재이 같은 너가부지 가만 있겄나, 으이
속 터져 몬 살겄데이 이래가 우찌 죽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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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이콩나물국밥
데인 속 또 데이는 펄펄 끓던 그 여름날
꽃나이도 서러운데 통점은 왜 덧나나
사는 일 매운 연기라 시루 잡고 눈물 참던
옹배기 얼큰한 정 칼칼하게 우려낸다
살짝 데친 콩나물을 아사삭 씹어보다
식탁에 써 보는 글자, 엄마 이름 ‘임·끝·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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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
고단한 별빛 하나 발 뻗을 곳 찾아간다
풍경도 잠이 드는 산사의 초가 여관
끌탕의 등짐을 풀면 부은 발이 서럽다
왜바람에 깨진 시간 촘촘히 꿰맞추며
눈길 헤쳐 허위허위 가풀막을 오르는 밤
베갯잇 적시는 불면 명치끝이 쓰리다
온몸을 싸고도는 적막의 무두질로
아픈 생 어루만져 별빛을 다독이다
포근한 가슴을 풀어 얼은 몸을 녹인다
* 나혜석은 수덕사 일엽스님을 찾아가 수덕여관에서 5년을 머물며 승려가 되기를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중, 일엽을 찾아온 일엽의 어린 아들에게 어미의 정을 대신 나눠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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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따이한
신은 죽었다고 한 남자가 말했어요
어미를 데려가고 아비는 도망가도
태양은 뜨겁게 돌고 달빛은 서늘했죠
종기로 자라나는 내가 나를 보았어요
도려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한세상 날아보려는 나를 덮지 말아요
얼음 밑 봄물처럼 흐르는 따이한의 피
그 피를 용서하면 죽은 신 살아날까
내 안을 흐르는 당신, 어디쯤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