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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시와 산책저자한정원출판시간의흐름 | 2020.6.30.페이지수176 | 사이즈 125*206mm판매가서적 14,400원
책소개
시를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럼, 산책을 한다는 건? 그건 어쩌면 고요한 하강과, 존재의 밑바닥에 고이는 그늘을 외면하지 않는 묵묵함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그건 결국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여기에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하는 초록색 신호일 수도 있다.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시와 산책』은 작가 한정원이 시를 읽고, 산책을 하고, 과연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들을 담아낸 맑고 단정한 산문집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작가의 첫 책이다. 놀라운 이유는 이 책이 너무나 좋아서.
작가가 쓴 스물일곱 개의 짧은 산문에는 그녀가 거쳐온 삶의 표정들이, ‘시’와 ‘산책’을 통해 느꼈던 생활의 빗금들이 캄캄한 침묵 속에서도 의연히 걸어가는 말줄임표처럼 놓여 있다. 한없이 느리게도 보이고, 더없이 끈질기게도 보이고, 지극히 무연하게도 보이는 문장들로 그녀는 ‘시’와 ‘산책’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완성한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우리는 그녀가 평생 시를 쓰고, 읽고, 보듬고, 도닥이면서도 결국 혼자 꽁꽁 얼려두고 숨겨만 두었던 마음속의 아주 깊은 곳으로 첨벙 뛰어들어, 그녀의 조용한 방관 아래에서 페소아와, 월러스 스티븐즈와, 로베르트 발저와, 파울 첼란과, 세사르 바예호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울라브 하우게와, 에밀리 디킨슨과, 안나 마흐마토바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포루그 파로흐자드와, 실비아 플라스와, 가네코 미스즈를 만나고야 만다. 그녀와 함께, 그녀가 사랑했던 시인들과 함께, 그녀가 종종 입 밖으로 소리 내던 시어들과 함께, 천천히 너르게 산책을 떠난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겨울의 마음이 되었다가, 봄의 소리가 되었다가, 여름의 발자국이 되었다가, 가을의 고양이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시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산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를 쓰다듬으며 서로에게 묻기도 한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한정원
저자 : 한정원
태어나 성장하고 일하며 대략 열 개의 도시를 거쳤다. 사람과 공간을 여의는 것이 이력이 됐다. 대학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단편영화를 세 편 연출했고 여러 편에서 연기를 했다. 구석의 무명인들에게 관심이 많다. 수도자로 살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지금은 나이든 고양이와 조용히 살고 있다. 읽고 걷는 나날을 모아『시와 산책』을 썼다. 책을 덮고 나면, 아름다운 시들만이 발자국처럼 남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나를 뺀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온 우주보다 더 큰
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
산책이 시가 될 때
행복을 믿으세요?
11월의 푸가
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
과일이 둥근 것은
여름을 닮은 사랑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영원 속의 하루
바다에서 바다까지
아무것도 몰라요
잘 걷고 잘 넘어져요
국경을 넘는 일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
꿈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네
저녁이 왔을 뿐
하나의 창문이면 충분하다
회색의 힘
진실은 차츰 눈부셔야 해
고양이는 꽃 속에
언덕 서너 개 구름 한 점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그녀는 아름답게 걸어요(부치지 않은 편지)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책 속으로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믿음을 넓히는 일이다. _추운 계절의 시작을 믿어보자(15쪽)
행복은 그녀나 나에게 있지 않고 그녀와 나 사이에, 얽힌 우리의 손 위에 가만히 내려와 있었다. _행복을 믿으세요?(32쪽)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매 순간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방향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른다. _행복을 믿으세요?(34쪽)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_과일이 둥근 것은(41쪽)
위층 노부부의 말다툼이나 코 고는 소리는 이제 안 들리면 허전하고, 아래층 신혼부부의 소리가 뜸해지면 그들의 애정전선이 괜히 걱정스럽다. 그들 중간에 끼어 있는 나도 무슨 소리를 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식으로 나도 여기 살고 있다고 알리고 싶은 밤에, 나는 소리 내어 시를 읽는다. _슬퍼하고 기침하는 존재(47쪽)
돈이 들어오면 나는 단짝 친구에게 생맥주를 사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그녀는 모딜리아니 그림 속 여인들처럼 얼굴과 목이 길었다. 우리는 성격도 취향도 쓰는 시도 달랐지만, 사시사철 싱숭생숭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통했다. 봄도 타고 여름도 타고 가을도 타고 겨울도 타는, 조용하지만 이상한 영혼들. _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109쪽)
얼마나 많은 불운이 우리를 숨어 기다리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책으로 겪는 불행만으로 몸을 떨었던 스무 살의 우리. 정말 모든 것들은 하룻밤 사이에 왔다. 어둡고 차가운 것일수록 더 빠르게. 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인의 불행은 우리 것이 되기도 했다. _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은 올 수 있다(105쪽)
가끔은 정말 궁금해져서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이 낯설지 않나요? 당신이 잘 보이나요? _저녁이 왔을 뿐(122쪽)
나는 시와 저녁이 잘 어울리는 반려라고 느낀다. 모호함과 모호함, 낯설음과 낯설음, 휘발과 휘발의 만남. _저녁이 왔을 뿐(124쪽)
나의 산책 준비는 길고양이들의 사료 봉지와 물통을 배낭 속에 챙기는 것부터이다. 내가 운영하는 고양이 식당은 그야말로 성황이다. 비슷한 시간에 식당을 여는 편인데, 나는 시계를 보고 나가는 것이지만 고양이들은 어떻게 재깍재깍 오는 건지 신기하다. _고양이는 꽃 속에(147쪽)
산책의 마지막 기쁨은 돌아가는 길을 얼마나 순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산책자이면서 수집자이다. 아니, 수집보다는 ‘줍줍’이라는 사전에 없는 낱말이 더 어울리겠다. (걷다가) 줍(고) (걷다가 또) 줍(고). _언덕 서너 개 구름 한 점(155~15...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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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당신은 당신이 낯설지 않나요? 당신이 잘 보이나요?” _본문 중에서
우리는 자신으로 살기 위해 누구처럼 살지 말자고 서로에게 다짐도 한다. 그녀의 문장으로 웅장해진 가슴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워 제법 힘껏 펴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감추기도 하면서도, 결국은 그녀의 문장들로 점점 거대하고 성대해지는 우리의 세계를 목격하는 기쁨을 누린다.
아주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처럼『시와 산책』의 문장들은 몇 번을 곱씹으며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야 우리에게 와 곁을 내어준다. 어느 날은 우리를 젊어지게도 하고, 어느 날은 우리를 늙어가게도 하면서. 그러니, 바로 지금이, 우리가 ‘시’와 ‘산책’을 할 바로 그 순간이다.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시인의 불행은 우리 것이 되기도 했다.” _본문 중에서
『시와 산책』은 조용하지만 이상한 책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귀해지는 책이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책 속의 문장들은 어느 시절엔가 우리가 사랑해서 꾹꾹 눌러 적었던 시어들처럼 속속 머릿속에 자리해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한때는 시인이었다는 걸 기억해내게 하고, 시를 쓰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들을 떠올리게 하고, 사라진 지 오래인 순정 위에 새로운 덧정을 새기고 싶게 한다. 상상은 도망이 아니라, 믿음을 넓히는 일이라는 걸, 행복은 그녀나 나에게 있지 않고 그녀와 나 사이에, 얽힌 우리의 손 위에 가만히 내려와 있다는 걸, 우리는 그녀의 문장을 읽으며 잠잠하게 인정한다.
“나는 무명인입니다.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_에밀리 디킨슨,「무명인」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이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택한 사람의 문장이라는 믿음 아래 단단히 서서, 우리는 짓궂게도 이 무명의 작가가 결코 유명의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써오느라, 이렇게 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그녀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이상하고, 이제라도 그녀의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다행이라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 제발, 나만 알게 되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 ‘말들의 흐름’
열 권의 책으로 하는 끝말잇기 놀이입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낱말을 제시하면, 다음 사람은 앞사람의 두번째 낱말을 이어받은 뒤, 또 다른 낱말을 새로 제시합니다. 하나의 낱말을 두 작가가 공유할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쓰여지지 않은 문학으로서 책과 책 사이에 존재하며, 오직 이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잠재합니다.1. 커피와 담배 / 정은 2. 담배와 영화 / 금정연 3. 영화와 시 / 정지돈 4. 시와 산책 / 한정원 5. 산책과 연애 / 유진목 6. 연애와 술 / 김괜저 7. 술과 농담 / 이장욱, 이주란, 김나영, 조해진, 한유주 8. 농담과 그림자 / 김민영 9. 그림자와 새벽 / 윤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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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무명의 작가가 결코 유명의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써오느라, 이렇게 늦게 우리 앞에 도착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그녀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저 이상하고, 이제라도 그녀의 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다행이라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 제발, 나만 알게 되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이 책을 읽은 제 마음이 여기 그대로 있네요.^^*)
몇 해 전에 놀라면서 읽었던 책이네요. 아, 반가워요. ^^;;
제가 좀 아플 때였던 것 같은데, 저 표지도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
@문우 네 그러시군요ㆍ추천받았던 책이었는데 전에 읽어왔던 전문 수필이랑 비교가 많이 됐어요ㆍ색다르면서 글은 이렇게 진정성이 있어야 독자를 감동하게 하는구나 ~라는ᆢ
강화 입성을 축하드립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