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교수님의 강의를 여러가지 듣고 있지만
갑자기 미심쩍은 부분이 생겨서 청운스님의 생각도 한번 듣고 싶어 질문을 올립니다.
이중표교수님의 강좌는 확실히 연기와 무아, 그리고 중도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있고 생생하게 전해주고 그 이해를 돕는데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저도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연기와 무아에 대한 통찰에 정말 엄청난 새로운 시각이 열렸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삼세양중인과설을 아비달마의 한계로 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좀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아직 이중표교수님의 강의내용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닿질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삼세양중인과설을 바탕으로 한
불교의 윤회관은 여러가지 한계와 불완전한 규명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업이라고 하는 관점을 통해
인간들의 윤리의식을 고취시키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육도라고 하는 관점도 아비달마의 견해라고 비판하시지만
부처님의 견해가 오로지 인간 현생의 관점으로만 접근하게 되면
물론 괴로움은 사라질 수 있겠으나 중생계를 바라보는 시점이 매우 축소되고
너무 인간중심적인 관점으로만 편협하게 적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윤리에 대한 취약성을 자체로 메우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청운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이중표교수님의 강의를 많이 들으셨을테니
위의 제 의견에 관한 청운스님의 관점은 어떠신지
의견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첫댓글 이중표교수님은 부처님의 중도의 관점에서 상견과 단견의 기준으로 보자면 삼세양중인과를 바탕으로 둔 윤회라는 것도 상견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비판을 하지만 이것과 관련하여 비슷한 질문에 대해 김성철교수님께서는 억세풀에 불길이 옮겨가는 것으로 비유를 들어 자아의 개념을 벗어난 업의 윤회에 대해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즉 멀리서보면 억세풀의 불길이 하나의 덩어리로 집합하여 불이 옮겨가지만 실제로 불은 가까이서 살피면 연소작용만 있을 뿐 불이라 할만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억세밭에 불길은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타오르는 현상은 존재합니다. 업도 이와 같아서 그것이 실제로 내 자아에 기인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나라고 하기엔 실체가 없는 것이고, 그렇다고 그 일어나는 현상을 부인할 수도 없는 것과 같이 업의 윤회도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봐야한다라는 설명입니다. 물론 이것은 부처님께서 직접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견해라는 차원에서 읽어봐야 하는 것일 뿐, 결국 그 확인은 스스로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대목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니 만큼 승려로써 반드시 한번쯤은 짚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이것이 이중표교수님의 말씀과 같다면 승가에서 벌어지는 천도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밖에는 안됩니다. 이중표교수님은 그래도 죽은자의 삶을 기린다는 차원에서 천도재는 반드시 지내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남은 생존한 자들을 위한 위안거리만 되는 것일뿐 (물론 그것이 중요하다면 중요하다하겠지만) 영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보면 무의미한 짓일뿐입니다. 또한 이것과 관련하여 이중표교수님은 티벳의 보리도 차제에서 죽음과 윤회를 하사도에서 강조하는 것은 괴로움으로 벗어나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하나의 방편으로써 기능하며 따라서 티벳은 그 교학의 마지막에 중관학을 집어넣음으로써 그것으로부터도 결국 벗어나는 과정을 설계해두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중표교수님의 이런 관점은 부처님의 무기설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침묵을 해석하는 방식을 중도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이런 의도로 부처님께서 침묵하신것 아니냐는 이중표교수님의 해석인데, 결국 해석이란 그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하나의 견해라는 차원에서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지금 막 읽어 보았습니다. 너무나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신듯하여 전화 드렸습니다. 처음엔 저도 책도 다 사고 강의 정말 파일받아 다 보고 하다가 어느 순간 안보게 되더라고요. 또 불교를 전혀 모르는 어느 젊음 사람이 불교란 무엇인지 물어보는대 그 젊은친구 에게 철학적 무아공 연기법만 주구장장 이야기 하는데 아이고.. 참 그 젊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뭐랄가 딱 철학 학자..느낌이지 어떤 종교적이거나 삼매경험이나 영적경험이 없는 학자가 하는 한계랄가요. 그러니 부처님 말씀의 전체를 아우르는 견해는 구축이 안되죠. 도원 스님께서 어느 지점에서 한계를 느끼실거라 ㅋㅋ 살짝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구체적으로 질문하시니.. ㅎㅎ 교학적으론 저도 뭐가 맞다 틀리다 제 학문이 깊지 않아 말씀은 못드려요.
저는 단지 느낌적으로 부처님에 대한 믿음 신심 신앙 같은 느낌이 안들면 어느 순간 안보게 되요. 물론 지적인 도움은 받지만.. 부처님의 자비심 영역은 못 느끼는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
영가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의 경험에서 말씀드리면.. 반야. 탐진치.. 등등 나를 초점으로 수행하여 결국 무아라는 깨달음만.. 즉 시선을 내 쪽으로만 보면 끝나는 것이로 이해하면 딱 이중표 교수님 깉은 견해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그 수준에서만 참 합리적이것 같다고 생각했던 말만.. 주구 장장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내 고통은 그것으로 만 끝나는것이 아니라는 경험적 고통에서.. 결국 연기적으로 더 깊에 밖에 존재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경험.. 삼매던 기도던.. 해본 사람.. 저도 인정할수 밖에 없는 천도재하고 특정 고통이 해결되는 경험을 한 후론... 대승경전과... 영가 등등을 인정하고 아.. 더 공부 해야 할 부분을 조금 알게 됐습니다.
이영표 교수님은 아직 살만하신가 봅니다 ㅋㅋ 고통이 아직 덜 나왔나? ㅋㅋ 암튼 고통의 경험이.. 더 깊은 공부를 하게 하는듯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문자언어밖에 소통할 수단이 달리 없기에 문자나 언어를 통해 불법을 공부하고 있지만 단순히 문자나 언어에 매이면 그 깊은 뜻까지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김성철 교수님이나 이중표교수님이나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의 언어라는 개념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 언어적 오류가 결국 우리의 인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고 타당한 지적같습니다. 용수스님의 중론도 결국 그 언어를 통한 인식의 불완전성으로부터 파생된 대립하는 양극단의 개념을 통해 인간은 사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도의 진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결국 깨달음이라는 것으로 향하는 바른 출발점은 언어를 뛰어넘은 사유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버려야 할 것이겠지만 제대로 버리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해야 겠습니다.
아 또 떠오른 생각이.. 이중표 교수는 부처님을 마치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신것이고 그것만 불교인양 말하는듯 합니다. 그래서 반야, 공, 연기법은 과학적 사실 진실 진리로 규정하고 다른 가르침은 부처님 말씀이 아닌듯 말하는 듯합니다. 저는 부처님 말씀이 사실이냐도 중요하지만 부처님은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는 효능의 말씀으로 이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연기 공 반야를 진실의 관점보다는 아집을 끊는 약.. 효능의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 즉 번뇌가 치료된다면 저는 그 가르침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부처님 모든 가르침을 볼때 무엇이 진실이냐를 찾는 철학적 관점과 약으로 보고 부처님말씀이 어떤 효능이 있나 하는 관점이 있는듯 합니다.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무리 듣고 배워도 쓸모가 없다면 버려야겠지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불교를 공부하는 것인데 괴로움이 더 피어오른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했거나 스스로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감사합니다.
말씀들이 고차원적이라 어디 삐집고 들어 갈 틈이 없슴니다.
그냥 부처님 말씀대로 그냥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설 한거 밖에 없는거 아닌가요?
그냥 보이는거 그냥 그러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님들 말씀도 그냥 존재하고 있는 연, 그로 인한 과 , 원래 있는 그대로의 논리, 발견한 그대로 의 느낌을 전하는거 같슴니다.
다 사바에 인과에 의해 있는거 그대로..
해탈 안해본 사람들이 있어야 해탈 하였는지 알 수 있는기고~
부처님께선 당신이 해탈 하셨다는것도 지금도 모르고 계실검니다.
아니면 여느 마찬가지로 그냥 범부의 죽음과 같을런지도 그건 아무도 몰라요.
다들 아직 가 본적없는 길 없는 길이니깐요.
세상 모든 사람이 불성이 깃들여 있는 그런 존재이고,
단지 그걸 깨닫게 하시려 설법하신건가 싶슴니다.
공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딱 기본만 충실하면 됨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모든 이론이 기본에서 모두 유추 됨니다.
모든기 이 안에 답이 있고 모두 해결 됨니다.
그림도 마찬가지 쟎아요.
딱 한필에서 나오는 붓의 터치 하나에서 모든기 나오쟈나요 ?ㅎㅎ
부처님 법 역시 그러 할거예요.
요즘 계속 느낌니다.
다른 점은
공학은 유한하고
부처님 법은 무한 합니다.
확실히 알았슴니다.
삼보에 귀의 합니다
효담 합장
고매하고 품격 있는 말 한마디에도 지옥이 있고
육두문자 처럼 무식한 말에도 진리가 있었어요.
살다보니 못 보던 이런것들도 보이던데....ㅎㅎ
삼보에 귀의 합니다
아주 훌륭하신 통찰입니다. 저도 방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다고 합니다. 천국은 저 위 하늘 허공에 있는것이냐고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면 새가 먼저들어갈 것이고 물속에 있다면 물고기가 먼저들어갈 것이다. 천국은 아주 가까이 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한생각 바꾸면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이고 극락이지 따로 구할 것이 없다는 말씀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실제로 그 어느 곳에 지옥이건 극락이 있다하더라도 지금 내 생각을 바꾸지 못하면 그 자리가 지옥이고 또 극락이 됩니다. 제 생각에 극락과 지옥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시작되는 곳 같습니다. 그것이 죽어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그러니 성인들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하루하루 반성적으로 자기성찰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듯 싶습니다.
삼보에 귀의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 이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