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1. 24
KBO 상벌위원회는 최근 수 년 간 부쩍 언론에 자주 이름이 등장했다. 야구 인기가 높아지고 선수들의 몸값이 치솟은 것과 비례해 선수들의 일탈 행위나 품위 손상 행위에 대한 철퇴도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야구를 잘 하면 엄청난 몸값을 받는 스타 선수가 될 수 있지만,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야구 내·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들이 많다는 것을 선수들도 점점 깨달아 가는 분위기다. ‘상’으로 쌓아 올린 명예가 언제든 ‘벌’로 인해 무너질 수 있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이어진 ‘징계 릴레이’
특히 지난해에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이유로 상벌위원회가 여러 차례 소집됐다. 시즌 개막 전인 2월부터 전 한화 소속 안승민과 김병승이 불법 인터넷 도박 혐의로 3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김병승은 이미 팀을 떠난 뒤였고, 안승민은 시즌이 끝난 뒤 결국 방출됐다. 3월에는 넥센 소속이던 외국인 투수 에스밀로저스가 경기 도중 친정팀 한화 선수들을 조롱하는 듯한 행동을 해 경고 조치를 받았다.
4월에는 당시 두산에서 뛰던 포수 양의지가 볼 판정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일부러 투수의 연습 투구를 잡지 않았다가 심판이 다칠 뻔 한 상황이 벌어져 상벌위원회에 회부됐다. 이른바 ‘볼 패싱’ 사건으로 불린 이 해프닝으로 인해 양의지는 벌금 300만원과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80시간 징계를 소화해야 했다. 같은 달 한화 이용규도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욕설을 하다 퇴장당해 경고 조치를 받았다. 또 광주에서 KIA와 원정 경기를 치르던 LG가 더그아웃에 상대팀 구종별 사인을 분석한 종이를 공개적으로 붙여 놓았다가 구단, 단장, 감독, 코치가 모두 징계를 받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구단 사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5월에는 히어로즈 박동원과 조상우가 성폭행 혐의에 연루돼 ‘참가활동정지’ 조치를 당했고, 전 삼성 소속 안지만은 법원에서 불법 도박공간개설 혐의로 최종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서 1년 유기실격 제재를 받았다. 타인에게 도박 자금을 위한 통장을 빌려줬던 한화 윤호솔도 징계 대상이 됐다. 6월에는 히어로즈 구단이 과거 선수 트레이드 과정에서 KBO에 신고한 내역보다 많은 ‘뒷돈’을 주고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제재금 5000만 원 징계가 떨어졌다.
이뿐 아니다. 10월에는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가 회삿돈을 횡령하고 비자금으로 사용한 혐의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아 KBO 리그에서 영구 실격됐다. 이미 2월 프로야구 관련 업무에 한해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던 이 전 대표는 더 이상 히어로즈 운영에 관여할 수 없게 됐다. 승부조작에 연루된 전 히어로즈 문우람 역시 군 전역 후인 10월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KBO 리그 영구실격 처분을 받았다.
이 외에도 KIA 남재현은 여자친구 성추행 논란에 휘말려 30경기 출장 정지 제재를 당했고, SK 김성현은 히어로즈와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상대 외국인 선수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제스처를 취했다가 경고 조치됐다.
▲ 김성현, 샌즈 향해 손가락 욕… 결국 벤치 클리어링 / 스포츠동아
심지어 이제는 현재의 잘못에만 철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즌 후 트레이드로 이적한 KT 강민국은 NC 소속 당시인 2014년 음주운전에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올해 정규시즌 30경기 출장정지 제재를 받았다. 또 이 사실을 KBO에 보고하지 않고 자체 징계로 처리한 NC 구단에도 벌금 1000만 원을 물렸다.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세간에 드러나지 않았을 과거사다.
이 사건 후 히어로즈 임지열이 2016년 음주운전 적발로 벌금을 냈던 사실을 구단에 자진 신고했고, 강민국과 마찬가지로 3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게 됐다. 히어로즈 이택근은 2015년 팀 후배 문우람을 꾸짖으면서 야구 배트를 사용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올해 정규시즌 36경기에 출장할 수 없게 됐다. 선수단 관리를 소홀히 하고 이 사안을 KBO에 알리지 않은 구단도 엄중 경고를 피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내용도, 수위도 종잡을 수 없이 다양한 징계 릴레이였다.
▲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관빌딩에서 특별조사위원회 상벌위원회 심의가 열리고 있다. / 고성준 기자
#KBO 상벌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1990년 5월 출범한 상벌위원회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추세다. 야구 규약에는 상벌위원회의 구성 목적에 대해 ‘프로야구 발전과 명예를 위해 현저하게 공헌을 하거나 KBO 정관, KBO 규약, KBO 리그 규정, 야구규칙 등을 위배해 KBO 및 KBO 리그의 품위를 손상시킨 구단 및 개인에 대해 적절한 상벌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상벌위원회는 총재가 위촉하는 야구 관계 인사로 구성된다. 전직 감독이나 경기 감독관, 야구 해설위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임기는 1년이지만 중임도 가능하고, 대신 활동 보수가 따로 지급되지 않는 명예직이다. 과반수가 출석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고, 출석 위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의결된다. 위원장은 KBO 사무총장이 맡는다.
상벌위원회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 5일 이내에 위원들을 소집해 의결한다. 대부분 상벌위원회의 자체적인 심사로 진행되지만, 참고인 진술이 필요할 경우 관련 당사자들의 참석을 요구할 수 있다. 스스로 정확한 상황을 소명하기 위해 출석을 자청하는 선수도 있다. 제소나 몰수경기에 대한 판정, 감독·코치·선수·심판위원·기록위원의 표창과 제재, 기타 총재가 위임하는 사항 등이 주요 안건이다. KBO 규약과 리그 규정에 명시된 벌칙 내규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사실 상벌위원회는 상보다 벌을 결정하기 위해 더 자주 소집된다. 가장 엄격하게 징계하는 잘못은 바로 ‘승부 조작’이다. 야구 규약에도 가장 먼저 ‘경기에서 고의적인 방법으로 패배를 유도하거나 승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는 행위’를 첫 번째 프로야구 유해 행위로 언급하고 있다. 감독, 코치, 선수, 심판위원, 구단 임직원 등에게 모두 적용되는 내용이다. 경기의 승패 여부와 관계없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경기 내용이나 결과를 고의적으로 조작하는 행위, 경기에 대해 내기나 도박을 하는 행위도 당연히 금지된다. 자신이 직접 출장하거나 관여하는 경기가 아니라해도 마찬가지다.
또 경기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받거나 요구 혹은 약속하는 행위, 그리고 이런 내용을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약속하는 행위도 안 된다. 2012년에는 당시 LG 소속이던 투수 박현준과 김성현이 경기 조작에 가담해 고의로 볼넷을 내줬다가 ‘영구 실격’이라는 최고 수위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의 문우람과 2017년 전 NC 투수 이태양도 이 철퇴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
▲ 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 연합뉴스
국민체육진흥법에 위배되는 불법 스포츠 도박도 빼놓을 수 없다. 불법 스포츠 도박 운영 및 이용, 시스템 및 사이트 설계·제작·유통·홍보 및 구매 중개 알선, 경기 관련 정보 제공이 모두 금지 사항에 해당된다. 스포츠토토와 같은 체육진흥투표권 발행 대상 경기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의 연계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승부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없어져야 한다는 뜻에서다.
앞서 언급된 부정행위들을 권유받은 감독, 코치, 선수들은 모두 즉시 소속 구단을 통해 KBO에 보고하고 진상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규약에 정해져 있는 의무다. 과거에는 구단들이 선수들의 잘못을 일단 숨기는 데 급급했지만, 최근에는 유해 행위를 신고하지 않은 구단 자체에 대한 징계 수위도 높아지면서 경각심이 커졌다. 심판위원이나 구단 관계자들도 예외는 없다. 만약 승부 조작이나 불법 스포츠 도박과 관련된 일에 구단 임직원이 개입하거나 구단의 명백한 잘못이 드러난다면 구단에 1억 원 이상의 제재금이 부과되고, 더 나아가 구단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될 경우에는 KBO리그에서 해당 팀이 아예 제명될 수도 있다. 실제로 행동에 옮긴 감독, 코치, 선수, 심판위원은 모두 최대 영구 실격 처분을 받을 수 있다.
# 점점 더 중요해지는 품위 유지의 가치
승부 조작과 같은 엄청난 스캔들보다 선수들의 피부에 더 와 닿을 만한 금지 조항은 ‘품의 손상 행위’에 대한 제재다. 야구선수들의 인기와 명성이 높아질수록 경기 외적인 비도덕적 행동과 사회적 물의에 대한 제재의 범위가 넓어지고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일단 향정신성 의약품과 대마를 비롯한 마약류에 연루된 사실이 확인되면, 영구 실격이나 직무 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다행히 현역 시절 마약 문제로 문제를 일으킨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1983년 삼미에서 30승을 올렸던 재일교포 투수 장명부가 은퇴 이후인 1991년 마약사범으로 구속돼 KBO에서 영구 제명됐고, 일본으로 추방된 적이 있다.
병역 비리, 인종 차별, 폭행, 가정폭력, 성폭력을 비롯한 반사회적 사건에 연루됐을 때도 수위나 강도에 따라 실격이나 직무정지, 참가활동 정지, 출장 정지, 제재금 부과 등 다양한 제재가 뒤따른다. 정수근은 롯데 시절이던 2004년 7월 부산 해운대에서 시민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다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고, 2008년 7월에는 만취 상태로 부산의 한 아파트 경비원과 경찰관을 폭행해 무기한 실격 처분을 받았다. 11개월 뒤 소속팀 롯데의 징계 해제 요청이 받아들여져 선수로 복귀했지만, 2009년 9월에 다시 한 번 해운대의 한 호프집에서 술에 취해 소동을 피웠다. 롯데는 정수근을 퇴출했고, KBO도 한 선수에게 두 번째 무기한 실격 징계를 내렸다.
▲ 롯데 자이언츠 시절의 정수근 / 연합뉴스
2010년 이후 가장 자주 발생했던 사건은 다름 아닌 음주운전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적발된 선수가 부쩍 늘면서 KBO의 징계 수위도 점점 강화됐다. 솜방망이 징계로 끝나던 과거와는 다르다. 2015년 LG 정찬헌은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 접촉 사고를 낸 뒤 시즌 75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잔여 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013년에는 당시 넥센 소속이던 SK 신현철과 KIA 김민우가 각각 4개월과 3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물론 KBO 리그에서도 ‘자수’는 정상참작이 된다. 당사자가 자진해서 규약 위반을 구단이나 총재에게 신고하면 징계가 감면된다.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나 소속 구단 이외의 인물이 총재에게 신고 또는 제보하면 최대 1억 원까지 포상금을 주는 ‘신고’ 조항도 존재한다.
이 외에도 한 구단에 소속된 임직원, 감독, 코치, 선수는 또 다른 구단에서 같은 일을 겸직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다. 명의를 불문하고 소속구단 외의 다른 구단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도 눈에 띈다. 구단 소속이 아닌 KBO 임직원은 KBO 구단들의 어떤 주식도 소유할 수 없다. 또 리그 관계자들끼리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것도 금지돼 있다. 구단이 소속 임직원, 감독, 코치, 선수에게 복리후생 목적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것만 유일하게 허용된다. 만약 소속구단 주식을 소유하거나 금전 거래를 한 뒤 팀을 옮기게 되면 이적일부터 60일 이내에 원래 소유했던 전 소속구단 주식을 처분하고 금전 관계를 청산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만약 주식 처분과 채무 환급이 기간 내에 이뤄지지 않으면 KBO리그 경기에 출장할 수 없고, 발각되면 제재를 받는다.
금지 약물 복용도 이미 한 차례 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던 규약 위반 사항이다. 이 부분은 상벌위원회가 아닌 반도핑위원회 소관이다. 징계 수위가 이미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처음으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는 ▲생식호르몬 물질일 때 10경기 ▲흥분제 물질일 때 20경기 ▲경기력 향상 물질일 때 30경기 출장이 각각 금지된다. 선수 본인에게 귀책 사유가 명백할 때는 출장 정지 기간 동안 1일 연봉의 300분의 1을 삭감한다. 또 도핑테스트에서 2회 적발되면 50경기 출장 정지가 부과되고, 3회 위반 시에는 영구 제명이라는 철퇴를 맞는다. KBO 리그에서 명예로운 선수로 은퇴하기 위해서는 조심해야 할 일들이 이렇게 많다.
배영은 /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3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