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김참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파란시선 0004 / B6 / 125쪽 / 2016년 5월 31일 발간 /
정가 10,000원 / ISBN 979-11-956331-4-2 / 바코드 9791195633142
신간 소개
꿈보다 몽환적이고 음악보다 유려한 시집
김참 시인의 네 번째 신작 시집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이 2016년 5월 31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김참 시인은 1973년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하였으며, 1995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이, 저서로 <현대시와 이상향>이 있으며,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김참 시인은 등단 이후 지금까지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휘어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여러 매혹적인 미로들을 제시해 왔다. 이번에 펴낸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또한 시집에 실린 「백일몽」 연작들이 증거하듯이 분명 꿈의 세계다. 그런데 “백일몽이란 일종의 자각몽이다. 그것은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는 잠이고, 꿈을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각성 상태다. 그것은 수면이면서 불면이다.”(이현승 시인의 추천사) 즉 꿈을 꾸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의 세계가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이다. 그런데 김참 시인은 그러한 백일몽으로부터 완전히 깨어나길 원하거나 그 반대로 더더욱 꿈속으로 침잠하길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김참 시인은 꿈의 영역과 현실 세계를 미려하게 뒤섞는다.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은 꿈이지만 꿈이라기엔 명백히 현실적이고 현실이라기엔 그 맥락 자체가 현실로부터 살짝 이탈되어 있는 기이하게 아름다운 착종의 시들로 가득하다. 어떤 문장은 꿈의 영역에서 불쑥 떠오르고 어떤 문장은 지극히 사실적인 장면을 그저 툭 던지고 있어서, 어떤 문장은 꿈을 배반하고 어떤 문장은 현실을 이반한다. 그리고 그리하여 꿈의 영역도 아니고 현실 세계도 아닌 오로지 그 스스로의 아우라와 리듬으로 복원된 단어들이 자신의 입을 열어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추천사
백일몽이란 일종의 자각몽이다. 그것은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는 잠이고, 꿈을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각성 상태다. 그것은 수면이면서 불면이다. 김참의 이번 시집은 잠들지 못함의 음악성, 잠들지 못함의 연쇄를 리드미컬하게 보여 준다. 온통 파란색 주조음으로. 이 파랑은 어슴푸레함의 색이고, 밤이 낮으로, 낮이 밤으로 건너가는 색이다. 이 푸름은 저녁과 새벽의 빛이면서, 그 빛 아래의 모든 것들을 바로 그 색으로 물들인다. 물든다는 것은 매우 이지적이고 섬세한 슬픔이다. 익숙한 사물의 오래된 내력들이 어슴푸레한 색조로 태어날 때 우리는 문득 자기 삶이 이상하다고 자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된다.
운 나쁜 꿈을 꾸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이 삶은 지극히 반복적이며, 시의 화자는 무언가(가령 버스나 열차)를 기다리지만 그것들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심지어는 애당초 올 계획조차 없었던 것 같다. 화자의 긴박함에 대해 세상은 늘 어떤 뜬금없는 대답으로 응사하기 일쑤이며, 그렇게 어긋나고 불확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이 세계에는 중력이 희박하다. 그래서 화자는 자꾸만 어떤 공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꿈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의 차이가 이 ‘중력’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공간들은 허물어지고, 정황들은 부유하며, 마침내 중력이 사라진 이 공간에서 가장 분명한 주체는 음악이다. 함부로 흘러들며 경계가 없다.
이것은 음악현상학이라고나 해야 할 자각몽의 세계, 숨이 멎을 것 같은 사후 세계다. 보았던 풍경은 본 적 있는 풍경이 되고, 눈에 잡힐 것 같은 풍경으로 변모하는 사이에 거기에는 이상하고 야릇한, 분명함이 휘발되면서 만들어 놓은 어떤 흔적이 남는다. 이 희미한 흔적은 아마도 음악이 남긴 지문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음악이야말로 이 세계의 불모성과 판타지를 두루 아우르는 한 형식이 아닐 것인가. 작은 슬픔의 기미 위에서 오래.
―이현승(시인)
저 푸른 대지 위 하늘을 새들이 맘껏 유영하는 곳, 거기서 울려 나온 “귀에 익은 소리”를 듣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 만나게 되는 곳, “집들은 사라지고 돌담과 대문만 남아 있”는 곳에서 “냇가를 따라 옛집을 찾아”가는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현실일까? 꿈일까? “마을의 다른 집들처럼 옛집도 사라지고 없지만 마당 한쪽엔 눈에 익은 꽃나무가 있”는 곳은 현실의 공간도 꿈의 장소도 아니다. 그가 찾아낸, 그가 당도한, 그가 이 세계에서, 꿈의 파란을 찾아 나선, 저 “활짝 열린 대문” 너머는, 차라리 현실과 꿈이 분리하기를 멈춘 장소, 그러니까 현실과 꿈의 경계가 취하되는 곳이자 작위적인 구분들이 붕괴의 수순 속에서 새롭게 재편되는 곳이다. 그곳은 현실이라 여겼던 영토로 꿈이 밀려오고 꿈이라 생각했던 대지로 현실이 제 촉수를 뻗어 대는 장소, 밤과 낮이 초점을 흐리고, 시간이 물리적인 시침의 뒤로 물러나는 시계(時計), 시선이 높낮이의 척도를 상실하거나 기준 자체를 철회해야만 하는 낯선 곳일 것이다. 다시 묻는다. 이곳은 현실인가? 꿈인가? 이상향인가? 어느 곳도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꿈과 현실의 전복이나 도치, 그 역치나 환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아닐 것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그가 우리를 초대한 이 세계는, ‘꿈의 파란’, 저 형용사 ‘파란’이 제 존재 가능성을 수시로 타진하는 현실 속의 ‘파란’이라는 것이다.
―조재룡(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김참
1973년 경남 삼천포 출생.
1995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 등단.
시집으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 <미로여행> <그림자들>이, 저서로 <현대시와 이상향>이 있음.
현대시동인상 수상.
시인의 말
상자 속엔 그림책이 들어 있었다
그림책을 펴자 강과 골목과 집과
소가 누워 있는 풀밭이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풍경이었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새털구름
열대야 ― 13
파란 강 ― 14
도마뱀 ― 15
중앙동 ― 16
바다를 건너는 호랑이들 ― 18
흐르는 음악 ― 19
백일몽, 섬 ― 20
폭우 ― 21
해오라기들 ― 22
백일몽, 이중주 ― 23
백일몽, 플라멩코 ― 24
백일몽, 미로 ― 25
백일몽, 장례식 ― 26
백일몽, 길 ― 28
집으로 가는 길 ― 30
백일몽, 문 ― 32
제2부 뭉게구름
여름밤의 낯선 풍경 ― 35
정오 ― 36
오후 네 시 ― 37
자정 ― 38
포도밭 ― 39
계단에서 ― 40
오늘의 날씨 ― 41
뭉게구름 ― 42
백일몽, 첼로 ― 43
백일몽, 섬 ― 44
검은 소와 잉어가 있는 늪 ― 45
서커스 ― 46
검은 집 ― 47
소리들 ― 48
그림자 마을 ― 50
초록 임부복의 여자 ― 52
제3부 양떼구름
이탈리아 소녀 ― 55
소름 ― 56
바람의 성분 ― 57
녹는다 ― 58
여자와 이야기하는 남자 ― 60
할머니와 담배 ― 62
동어반복과 중언부언의 날들 ― 64
검객 ― 66
불시착 ― 67
외눈박이와 코 없는 사람 ― 68
두렁허리 ― 69
공원묘지 ― 70
곰팡이 ― 71
몽환의 세계 ― 72
빵집을 비추는 볼록거울 ― 74
우물이 있던 시절 ― 75
제4부 먹장구름
암연(暗然) ― 79
백일몽, 파문 ― 80
백일몽, 무인도 ― 81
자장가 ― 82
물고기를 만나다 ― 83
여름이 오기 전에 ― 84
조우 ― 85
여름이 가기 전에 ― 86
죽림동의 여름 ― 87
안개 마을 ― 88
아침 ― 89
꽃나무 ― 90
탕가니카 ― 91
봄비 ― 92
스웨터 파는 상점과 파란 의자가 있는 빵집 ― 93
그림 ― 94
해설
조재룡 꿈의 파란 ― 96
시집 속의 시 세 편
중앙동
회색 가로수 늘어선 거리 곳곳에 그들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음악 흐르는 길거리 찻집에도 앉아 있었다. 투명한 잔에 담긴 푸른 차를 마시며 창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회색 도넛 같은 연기를 연거푸 뿜어 댔다. 검은 양복과 검은 구두 파란 넥타이 차림을 한 그들의 얼굴은 잿빛이거나 검은빛이었다. 회색 가로수에 단단한 열매가 매달린 거리의 낡은 건물들 사이로 바닷바람 불어와 길거리 의자에 앉아 있는 그들의 피곤한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환한 한낮이었다. 하늘 높이 흰 구름 몇 점 떠 있는 환한 한낮. 이따금 검은 새가 가로수에 내려앉아 그들의 검은 양복과 검은 구두 그들의 파란 넥타이와 검은 얼굴을 훑어보다 도로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회색 가로수 늘어선 정류소에 버스가 도착했다. 노란 꽃무늬 원피스 입은 여자가 내렸다. 회색 가로수 늘어선 풍경 속으로 한낮의 환한 햇살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길거리 찻집 주인이 오래된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리자 벽에 걸린 낡은 스피커에서 트럼펫 소리 흘러나왔다. 찻집 천정 거미줄에서 쉬던 회색 거미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거미의 집도 조금씩 흔들렸다. 폭풍이 지나간 구도심, 회색 가로수와 낡은 건물 즐비한 거리. 오래된 음악 흐르는 길거리 찻집과 찻집 건너 인쇄소와 인쇄소 옆 제본소와 제본소 옆 분식점과 분식점 옆 세탁소 지나 느릿느릿 걷는 노란 원피스의 여자를 지켜보는 회색 눈동자들. 그들의 메마른 입이 뿜어낸 담배 연기가 공중에 흩어졌다가 소용돌이 문양을 만들며 하늘에 뜬 구름을 향해 올라가는 밝고 환한 한낮. 큰길 너머 보이는 바다에서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이 트럼펫 소리의 둥근 파동과 찻집 주인의 잦은 기침 소리를 싣고 잿빛 거리로 나서는 낯선 손님들의 등을 떠밀며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
백일몽, 미로
막다른 골목과 뚫린 골목들이 끝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부리 긴 잿빛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현기증 때문에 골목에 잠깐 서 있었다 긴 골목이 보이는 대문 안에는 검은 항아리들 가득했고 항아리 옆엔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항아리를 밟고 옥상에 올라가 나는 아주 긴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낯선 사람들이 골목 중간중간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골목과 이어진 작은 창문 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골목 옆 작은 방에서 아이들은 노란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엄마들이 부르는 자장가가 노란 달 둥둥 떠다니는 어둡고 좁은 골목을 휘감고 도는 길을 따라 나는 걸었다 초록 대문 열고 나온 여자가 파란 대문 열고 나온 남자와 입맞춤을 하는 골목 끝에 정류장이 보였다 막다른 골목들과 뚫린 골목들이 나선형으로 둘러싼 좁은 길 따라 버스가 떠나자 정류장은 사라지고 마른 잎 뒹구는 막다른 골목만 남았다 내 방 뒷문과 이어진 긴 골목은 내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길과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
두렁허리
안개 낀 연못에 연꽃 피는 아침. 달팽이들 연잎 갉아먹고 통통하게 살 오른다. 검은 치마 흰 저고리 차림의 처녀들 꼬불꼬불 좁은 길 따라 연못을 지나가면 진흙탕에서 기어 나온 두렁허리들 물뱀처럼 연못을 돌아다니며 불규칙적인 파문을 만든다. 두렁허리들 수면에 대가리 내밀고 숨을 쉬면 연잎에 붙어 있던 청개구리 부들부들 떨고 연꽃 그늘에서 놀던 붕어들 놀라 흩어진다. 바람이 분다. 연잎이 흔들리고 안개가 흩어진다. 느티나무 그늘 짙은 논에서 마을 사람들이 삽으로 검은 흙을 떠낸다.
미꾸라지와 장어 새끼들 파닥파닥 튄다. 삽날에 주황색 두렁허리 잘려 나가고 빨간 피 논두렁에 번진다. 피 냄새 맡은 두렁허리들 논두렁 뚫고 기어 나와 수로를 돌아다닌다. 구렁이처럼 살찐 두렁허리 한 마리 논두렁 지나 미나리꽝으로 기어간다. 연꽃 필 무렵이면 두렁허리들 진흙 속에 아무도 몰래 알을 낳는다. 미나리꽝 옆에서 마을 사람들 어탕을 끓인다. 풋고추와 무 미나리 파 들을 가마솥에 잘라 넣고 콧노래 부른다. 미나리꽝 옆에 걸린 가마솥 안에서 두렁허리 일가들 몸 비틀며 익어 간다. ***
❚펴낸곳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07552)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대로59길 80-12, K&C빌딩 3층(등촌동) Tel 02-3665-8689 Fax 02-3665-8690 Internet-Fax 070-8867-8690 E-mail bookparan20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