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態르포
過去와 只今, 離婚 窓口에 비친 夫婦 風俗圖
慰藉料는 필요 없다 제발 離婚만…!
60년대까지만 해도 남편이 酒癖이 심하거나 暴行을 일삼아도 特別히 심하지 않은 이상 離婚하는 夫婦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世態가 변한 지금은 夫婦사이에 性格 차이만 생겨도 당장 離婚이다. 이젠 각기 다른 魅力을 지닌 女子를 여러 명 거느릴 수 있었던 韓國 男子의 幸福한(?) 歲月은 다 흘러가 버렸나?
어찌할까요
여자들은 어디까지나 여필종부였다.
죽으나 사나 한 번 시집가면 그 집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남자들은 적어도 여자 문제에 관해 거의 제약을 받지 않았으니 참 행복한(?)편이었다.
여유가 있는 웬만한 남자들은 여러 명의 첩을 거느릴 수 있었으며 부인과의 이혼은 남자가 절대적인 권한을 쥐고 있었다. 당시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
지방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 모 여인은 같은 지방의 남자교사와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박 여인은 결혼 후 남편이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혼자서 자식 둘을 기르면서 열심히 살았다.
제대 후 그리운 남편과 진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으나 남편은 날마다 장기출장이 아니면 외박으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적었고 막상 집에 들어오는 날도 박 여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서울로 장기출장을 떠난 남편이 하도 소식이 없어 서울에 사는 남편의 친척집을 찾아 나셨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남편을 만난 박 여인은 눈물로 하소연했다. 그러자 남편은
“군에 있을 때 친구의 소개로 만나 하룻밤을 보냈을 뿐인데 죽자 살기로 달라붙어서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식은 올리지만 혼인신고는 당신과 할 것이니 걱정 말고 집에 가 있어요.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함이 없소.”
박 여인은 그래도 남편을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올 기별이 없어 혹시나 하는 의구심으로 호적을 열람해 보니 남편은 그 여자와 이미 혼인신고가 되어 있었다. 뒤늦게 가정법률 상담소를 찾은 박 여인은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남편이 뉘우치고 돌아오면 용서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박 여인 뿐 아니라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의 심성은 대부분이 이러했다.
당시 모 잡지사의 ‘남편이 만일 외도를 한다면?’이란 설문조사에서도 대부분의 주부들은 조용히 자기 반성을 하겠다. 눈치채지 못하게 서비스를 강화하여 마음을 돌리겠다. 약간 뾰루퉁한 척 하며 남편의 관심을 사겠다. 퇴근 시간에 회사로 모시러 가겠다. 등 대부분 전통적인 부덕을 바탕으로 한 대응책을 말했었다.
離婚 事例들
그러나 요즘 여성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옛날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그 관계를 유지할 경우에나 법에 호소했지만 요즘은 주벽이 심하거나, 폭행을 하거나 성격차이가 심해도 서슴없이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지난봄에 결혼한 용산구 남영동에 사는 박성철(가명․29)씨의 이야기.
아내는 27세이며 1년간 열애 끝에 결혼한 이들 두 사람은 신혼 초에는 별다른 불화 없이 서로 믿고 지내며 비교적 충실한 생활을 해왔었다.
그러나 문제는 박씨에게 있었다. 세운상가에서 전자제품 대리점을 하는 박씨는 지난여름 어느 날 친구의 보증을 잘못서 한밑천 날리고는 술을 마시고 들어와 “너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재수가 없으니 되는 일이 없단 말야!”라며 아내를 구타했다. 그러나 다음날 술이 깨서는 전혀 기억을 못했다.
이런 일어 서 너 번 반복이 되었고 마침내 이를 참지 못한 박씨의 아내는 이혼소송을 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박씨는 이혼만은 하지 말자고 애걸복걸을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번에는 성격차이로 이혼한 사람의 이야기.
온양에 사는 오진택(가명․28)씨와 의정부에 사는 최부선(가명․26)씨는 지난가을 계룡산에서 만난 사이다. 오씨를 처음 본 최씨는 그 남자다움에 혹해서 만난지 4개월 만인 금년 1월 29일 민속의 날에 결혼을 했다. 그러나 막상 생활을 같이 해보니 오씨의 남자다움이란 그의 독선과 아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예컨대 밥상을 차려오면 오씨 스스로가 짜증을 내며 간을 새로 보았고 대화를 해도 최씨는 무조건 무식하다는 소리만을 들었다. 부부동반으로 오씨의 친구들과 만나 최씨가 농담이라도 하면 오씨는 눈을 부라리고는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모르는 것이 없는 투의 오씨의 방약무인한 태도에 질린 최씨는 결국 결혼 한 달 만인 지난 2월에 이혼소송을 내고 말았다.
慰藉料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이러한 사례들은 여자도 옛날과는 달리 남편의 못마땅한 점은 가차없이 꼬집어 주고 대등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결과라고 분석된다.
또 여자가 남자와의 지위 동등의 외침은 “위자료 같은 건 필요 없다”며 오로지 이혼만을 바라는 경향이 여자 측에서 늘어나고 있고 재판정의 풍경에서도 전에는 여자 측과 남자 측이 아이(특히 아들일 경우)를 서로 맡으려고 싸웠는데 요즘은 서로 안 맡으려고 싸우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른 바 부부는 무촌(無寸),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등을 돌리면 남남이 된다. 남녀 평등이 강조되고 핵가족시대의 바람이 불면서 무촌의 부부 사이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記事 끝.
1985년 12월 호 月刊 歷史와 實話 2페이지 朴勝基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