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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원앙오진회
안으로 들여선 것은 다섯 사람이었다. 그들은 어선방 부엌으로 걸어와서 아궁이를 빙 둘러섰다.
한 사람이 높은 소리로 말했다.
"됐네, 이제 폐하의 아침 식사를 장만해야겠어!"
나머지 네 사람은 구석에 조용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거드름을 피우며 의자에 주저앉는 사람이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였다.
홍칠과 구양봉은 들보 위에서 이 모든 것을 똑똑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으면서 느릿느릿 손을 씻은 다음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손톱을 다 깎은 뒤에는 요모조모로 살펴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여인처럼 부엌 아궁이께로 다가섰다.
그런데 웬 영문일까? 방금까지도 아낙네같이 느릿느릿하던 사람이 아궁이 앞에 다가서니 손놀림이 번개같이 빨라지는 것이었다.
한 손에 국자를 쥐고 다른 손에 요릿감을 쥐더니 곧 번개같이 손을 놀리는데, 순식간에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확 풍기면서 기름 끓는 소리가 났다. 홍칠과 구양봉은 배불리 먹고 난 뒤였지만 다시 식욕이 동했다.
'냄새만도 이렇게 향기로우니 먹어 보면 너무 맛있어서 둘 중에 하나가 죽어도 모를 거야!'
요리를 마치자 그 사람은 국자를 놓고 물러 나왔는데, 그 오만하던 기상은 간 곳이 없고 방금 전에 자기 시중을 들어 주던 사람처럼 구석에 공손히 서 있었다. 그는 시종처럼 묵묵히 서서, 다른 사람이 아침 요리를 만들기를 기다렸다.
방금 물을 들고 그를 시중하던 사람이 부엌 아궁이로 나섰는데, 그는 더욱 의기양양하여 남이 시중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조심조심 나서더니 역시 아까처럼 물을 길어 오고 수건을 받쳐 주며 조심조심 시중을 들었다. 이 사람은 손에 국자를 쥐자마자 부리나케 휘젓기 시작했는데, 국자에서 불길이 날름거리며 올라오더니 어느덧 눈썹까지 솟는 것이었다.
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뚫어지게 불을 들여다보고 서 있다가 요리가 끓자 손으로 여러 가지 양념들을 집어 요리에 뿌렸다. 그 사람은 요리를 이리저리 휘젓더니 국자를 맞은편에 던져 버렸다.
구양봉은 크게 놀라서 생각했다.
'저렇게 마구 던지면 애써 만든 요리가 상 위에 흩어져 버릴 텐데.'
맞은편을 향하여 날아가던 국자는 떨어질 때가 되자 갑자기 속도가 늦어지면서 조용히 상 위에 떨어졌는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자태가 얼마나 기묘하고 멋있는지, 또 요리사가 얼마나 힘을 알맞게 사용했던지, 어두운 구석에 숨어 그것을 지켜 보던 홍칠과 구양붕은 혀를 차며 감탄했다.
홍칠은 그 사람의 재주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뜻으로 구양봉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구양봉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이만한 재주를 갖자면 내공이 매우 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 사람은 무예가 범상치 않은 것 같았다.
이때 세 번째 사람이 나섰는데 그는 더욱 득의양양하여 다른 네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손만 앞으로 내밀어 남이 손을 씻어 주고 손톱을 깎아 주도록 한 다음 다시 손을 내밀어 수건으로 깨끗이 닦게 했다. 또 한 사람이 다가와 그에게 곰방대를 건네주고 불을 붙여 주자 그는 몇 모금 들이마시고 나서 국자를 손에 쥐었다. 이 사람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국자에 기름 대신 물을 조금 담은 후 거기에다 여러 가지 양념을 넣었다. 그가 무얼 넣는지 아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이면서 이것저것 집어넣는데, 눈앞에서 갖가지 양념이 이리저리 날아가고 날아오더니 곧 가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겼다.
이 사람은 요리를 끝마치자 접시를 홱 던졌는데 공교롭게도 접시가 홍칠과 구양봉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이번엔 영락없이 발각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접시는 홱 돌아서 날아가더니 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고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다른 네 사람이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네 번째 사람이 걸어 나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
"내 생각엔 우리 다섯 사람이 여전히 승부를 내지 못한 것 같소. 봄날 난초와 가을 국화가 승부를 가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오. 우린 아무래도 비긴 것 같소."
그러자 남은 네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안 되오. 안 돼!"
모두들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그도 솜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더욱 오만하고 냉랭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모두가 원하고 있으니 그럼 물을 길어다가 내 발을 잘 씻도록 하게."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종종 누가 가장 뛰어난 음식을 만드는지 내기를 했다. 매번 시합할 때마다 골머리를 짜면서 새 요리들을 강구하느라 애썼지만 한결같이 솜씨가 뛰어나 누구도 적수를 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 요리를 두고 벌어진 내기를 놓고 보아도 벌써 세 사람이나 나와 솜씨를 보였지만 역시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그들의 규칙에 의하면 요리하는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을 마음껏 부릴 권력을 가지게 되지만, 반드시 뛰어난 재주를 보여 주어야 했다. 만일 재주가 신통치 않으면 스스로 조심하여 너무 우쭐거리지 말아야 했다. 이리하여 그들 모두 국자를 잡은 사람에게 공경스런 태도를 취하다가도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눈이 이마빡에 올라가 붙은 듯이 행동했다. 하지만 처사에 있어서 정도가 있어야지 너무 과분하게 처사하면 경을 치게 되었다.
시합에서 지는 사람은 경성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그가 내기에서 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황궁에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되며 강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발을 씻을 물을 떠오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비방을 갖고 있다는 일종의 시위였다.
네 사람 모두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물을 길어 와 그가 앉아서 발 씻는 것을 시중 들었다.
이 사람은 아주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하느님은 뜻있는 자를 버리지 않아! 내가 매일 고서 뭉치들을 이리저리 뒤적인 게 헛수고였겠나? 어제 나는 비방을 찾아냈다네. 내가 보기에 그 비방은 진나라 시황제의 비방 같아. 그것을 먹으면 백발이 검게 되고 노인이 젊어지며 심지어는 신선이 되어 영원히 늙지 않을 수도 있네."
이 사람의 말을 듣고 네 사람 모두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내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무엇을 찾아냈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참말로 시황제의 비방이란 말이오?"
네 번째 사람은 동료들이 믿지 않자 냉소하며 대꾸했다.
"당신들은 내가 큰소리만 탕탕 친다고 생각할 테지? 그럼 어디 한번 구경하라구."
그는 양말을 신고 아궁이로 다가가더니 가마를 들어다 부뚜막에 놓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모두들 보게나. 이 묘수인주가 뚱딴지 같은 걸 만든다고는 생각 말게."
그리하여 모두들 그의 동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요리법이라는 것은 아주 신비하여 눈 깜짝할 새의 동작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 데다가 시황제의 비방을 모르면 장수의 비결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물건을 한 가지씩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예로부터 특이한 것일수록 평범하다고 했는데, 아주 평범한 재료를 가지고도 맛좋은 요리를 한 상 차릴 수 있네. 누가 이런 오묘한 요리를 알 수 있겠나! 자네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나의 비방을 구경하게."
나머지 사람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요리의 대가들이었지만 공손히 서서 가르침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묘수인주는 손에 쥔 물건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했는데 어둠 속에서 그것을 들은 홍칠이와 구양봉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한결같이 독이 든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탉의 맹독성을 띤 화산 골짜기의 흡혈충, 백두산 꼭대기의 새우, 그리고 천산의 녹초(鹿草)……, 이 모든 것을 육류에 붙여 놓으면 작은 구더기가 생겨나지. 보게나, 이 하얗고 투명한 구더기가 얼마나 훌륭한 요리감인가?"
여러 사람들이 조심스레 살펴보니 그 작은 구더기란 것은 너무나 평범하여 흡혈충, 새우, 녹초에서 자랐다는 벌레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몸이 아주 투명하다는 것뿐이었다.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구더기를 끓는 물 속에 집어넣었다가 잠시 후에 꺼냈다.
이것을 다시 식초물에 집어넣으며 묘수인주가 입을 열었다.
"모두들 맛을 좀 보게나!"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규칙에 의하면 만든 사람이 먼저 맛을 보아야 했다. 만일 변이라도 당하면 후회할 여지도 없게 되니까.
묘수인주는 아무 말 없이 은수저로 구더기가 든 국물을 떠 마셨다. 그는 그 국물을 마시자마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머리를 떨기 시작하더니 이어 손을 떠는 것이 마치 학질에 걸린 사람 같았다. 사람들은 그가 곧 죽을 것 같아 급히 소리쳤다.
"묘수 형, 해독제를 갖다 줄까요?"
그런데 그가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지그시 감고 더없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의 몸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지만 심신이 더없이 가뿐한 모양이었다. 그는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인생살이 실로 어렵거늘
술잔 기울이며 생각해 되네
잔걱정 많으면 머리 희어지고
처첩이 많으면 시앗 싸움 끝없네
가산이 많으면 후회만 생기고
자식이 많으면 손 털고 나앉는다네
인생살이 실로 쉽지 않아
술 취하여 한 생을 즐겨 보세
빼앗고 빼앗기는 것은 헛되니
세상사 장기판처럼 환히 보인다네.
홍칠과 구양봉은 물론 나머지 네 사람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묘수인주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이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이 둥둥 떠가는 모양이구먼……."
이윽고 네 사람이 숟가락을 쥐고 그 국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도 똑같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두 눈을 감는 것이었다. 끝없이 부들부들 떠는 꼴을 보니 모두 미쳐 버린 것만 같았다.
다섯 사람 모두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담고 매우 기분이 좋은 듯이 앉거나 기대거나 엎드려 즐기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자 국을 만든 묘수인주가 제일 먼저 깨어났다.
그는 묵묵히 나머지 사람들을 둘러보았는데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잠시 후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깨어나더니 네 사람이 다 묘수인주에게 찬탄을 보냈다.
"형의 비방은 과연 대단하오! 이 요리의 이름이 대체 무엇이오?"
묘수인주는 도량이 너그러운 사람처럼 허허 웃으며 대꾸했다.
"형제 여러분, 모두 애를 많이 했구려. 사실은 나도 우연히 비방을 찾아낸 것뿐이지 대단할 건 없소."
한 사람이 또 물었다.
"묘 형, 이 요리 이름이 뭐요?"
묘수인주가 한탄조로 말했다.
"참 불행한 일이야! 이토록 훌륭한 요리 이름이 흑발탕이라지 뭔가. 자네들 보기에도 이 훌륭한 요리에 그 이름이 당키나 한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하자 묘수인주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난 자네들과 의논하여 요리 이름을 다시 지어 주기로 작심했네. 어초오금탕(魚草五禽湯)이라 하면 어떨까?"
사람들 모두 이름이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 이름은 부르기도 안 좋고 귀에 거슬린다는 것이었다.
묘수인주가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들이 이름을 지어 보게!"
한 사람이 삼금탕(三禽辯)이라고 짓고 나서 진주삼금탕이라고 불러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어희오주(魚 五珠)라 부르면 더욱 좋다고 했다.
"그건 안 되오. 폐하께서는 언제나 재료를 물으시니 무슨 재료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 드려야 하는데, 이 요리를 다섯 가지 독약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잖소?"
다섯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좋은 이름을 만들기만 하면 폐하께 말씀드리기도 쉬울 것이오. 사전에 이름을 잘 생각해 둬야지 그렇지 않고 어전에서 어물거리다가 폐하께서 알아차리시는 날이면 큰일 난단 말이오. 우리 모두 이 요리의 이름을 잘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은 저마다 뒤질세라 이름을 짓다가 결국은 그 요리의 이름을 원앙오진회(鴛鴦五珍謄)라고 지었다.
홍칠과 구양봉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원앙오진회라, 참 훌륭한 이름이군!'
송나라 때 황궁의 요리사들은 역대의 요리사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어려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옛말에도 임금을 모시는 것이 호랑이를 모시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폐하가 성을 내시지는 않는가, 어떤 때에 즐거워하시는가, 또 어떤 음식을 즐기시는가 하는 것들을 일일이 파악하고 비위를 맞추어야 했으며, 폐하의 기분이 갑자기 나빠지면 목이 떨어질 위험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요리사들은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 서로를 감싸 주고 역성을 들어주었다.
요리 문제에선 서로 경쟁이 심하지만 일단 곤란이 닥치면 서로 돌봐 주었다.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폐하께서 이 원앙오진회를 마시면 우리처럼 한바탕 떨어야 하니 아무래도 그게 좋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 다섯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폐하께서 그것을 마시고 우리처럼 몸을 떠시고 추상같이 화를 내지 않으실까?
우리가 폐하를 독살하려 했다고 오해하시진 않을까?
물론 폐하의 음식을 맛보는 태감이 있긴 하지만, 그 태감이 몸을 떠는 것을 보고 우리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노릇인가?
모두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폐하께 이 요리의 좋은 점을 말씀드리면 폐하께서도 좋아하실 것이오. 폐하의 음식을 먼저 맛보는 태감이 그것을 맛보지 못하도록 어선방의 총관에게 이 일을 잘 설명해야겠소. 어떻소?"
네 사람 모두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찬성했다.
어선방의 총관에게 원앙오진회의 맛을 보여 주면 그도 기꺼이 폐하께 이 일을 말씀드릴 테니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다섯 사람 모두 희색이 만면하여 총관에게 이 일을 알리러 갔다.
홍칠과 구양봉은 군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나도 저 원앙오진회를 마셔 봤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는데!'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밖으로 나갔고 그 훌륭한 요리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홍칠과 구양봉은 그들의 손에서 국물을 빼앗아 마셔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구양봉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으나 식탐이 유난스러운 홍칠은 그 욕구를 참아낼 수가 없었다. 생전 먹어 보지 못한 기막힌 요리를 눈앞에서 놓치는 찰나였다. 그는 기둥에서 뛰어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감추었다. 구양봉마저 그가 어디에 숨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섯 사람이 뜰을 걸어가고 있는데 별안간 묘수인주가 비명을 지르더니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원앙오진회가 담긴 식함을 든 그는 일행에서 몇 발자국 뒤떨어져 걸으면서 한창 황제에게 상을 받는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손이 아파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그 바람에 그가 들고 있던 식함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앞서가던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그 식함을 받으려고 덮치다가 서로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식함은 당장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식함을 잽싸게 받아 쥐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원앙오진회를 담은 식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섯 사람은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을 마주볼 뿐, 누가 식함을 채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땅바닥에 국물 한 방울 흘린 흔적조차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다섯 사람 누구의 손에도 식함이 들려 있지 않았다.
묘수인주는 차디찬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흐흐……. 나 묘수인주는 자네들과 막역지간이네. 황제께서 좋아하시면 자네들에게도 이득이 많아. 미안하지만 어서 내놓게. 내가 화내기 전에.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편치 못할 걸세."
묘수인주의 말엔 위협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그는 화가 잔뜩 났으나 고함치지 않고 그저 차디차게 말할 뿐이었다. 네 사람이 자기와 동료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동료들도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원앙오진회가 없어져서 황제께서 그 국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묘수인주가 헛고생을 한 셈이 아닌가? 동료들은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
"묘 형, 그까짓 일로 너무 속 썩이지 마시오. 기껏해야 국 한 그릇 아니오? 내일 또 맛있게 만들어 황제께 올리면 그만 아니오."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셋도 그 말이 옳다고 떠들었다.
그러나 묘수인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내가 갖은 애를 다 써서 만든 것이오. 그 재료를 장만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시오? 도린어(倒鱗魚 ; 물고기의 일종)도 그렇지만 천산에서 나는 녹초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웠는 줄 아시오? 고생고생하여 겨우 그것밖에 못 얻었는데 또 어디 가서 얻는단 말이오."
그 말에 나머지 네 사람의 얼굴에 놀란 빛이 흘렀다.
묘수인주가 그 희귀한 재료를 장만하느라 무진 애를 쓴 것은 황제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상을 타려는 욕심에서 그리 한 것인데 하늘이 돕지 않아 헛고생만 하지 않았는가!
한편 묘수인주의 뇌리에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손이 뜨끔하더니 누군가 그 국그릇을 채 갔던 것이다.
'필시 이들 중에 고수가 있어. 소리도 없이 감쪽같이 그 국그릇을 가져갔거든. 내가 오늘 크게 당했어. 내가 이 녀석들을 잘못 보았군.'
그러나 묘수인주는 그 말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제기랄, 다 내 탓이오. 내 운수가 사나워 이렇게 되었지. 난 여러분들이 가져갔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자, 여기서 웅성거릴 것 없이 모두들 나갑시다."
네 사람은 묘수인주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묘수인주는 여전히 그들을 의심하고 있었지만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누가 원앙오진회를 가지고 나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네 사람 다 켕기는 것이 없었다.
"그럽시다. 묘수 형 말대로 모두 나갑시다."
그들은 쾌활하게 말하고는 우르르 몰려 나갔다.
주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구양봉은 돌아온 홍칠과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들보 위에 너무 오래 쪼그리고 앉아 있어서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그들은 아래로 내려와 허리를 폈다. 그러다가 구양봉은 홍칠의 손에 커다란 식함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뭐요?"
구양봉의 물음에 홍칠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소리치지 마. 이게 바로 저 녀석들이 찾던 원앙오진회라는 거야."
그 식함이 홍칠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 구양봉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건 왜?"
구양봉의 물음에 홍칠은 히죽 웃었다.
"내가 먹어 봐서 알지만 묘수인주가 만든 요리는 정말 별미라네. 자네는 먹어 보지 못했으니 그 맛을 모를 거야. 계집을 얻으려면 오월 계집을 얻고, 사나이를 얻으려면 비단옷 입은 사나이를 얻고, 요리를 먹으려면 묘수인주가 만든 요리를 먹고, 남과 싸우려면 홍칠이를 불러 와라! 자넨 이런 말을 못 들었지?"
구양봉은 그 말에 웃었다. 그 말은 홍칠이가 만들어 낸 우스갯소리지만 어쨌든 묘수인주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 말은 그만하고 어서 맛이나 보자구."
"나도 함께 먹자구요?"
"왜, 이 좋은 걸 안 먹으려나? 먹기 싫으면 그만둬. 음식도 먹을 줄 모르는 딱한 사람 같으니. 자넨 무슨 재미로 사나?"
"그럼 나도 먹겠소."
구양봉도 달려들어 맛을 보았다.
원앙오진회는 참으로 별미였다. 매끌매끌하면서도 시원하고, 고기 같으면서도 야채 같고, 입에 들어가면 박하처럼 싸하니 녹아 버리는 것이었다. 목으로 넘기면 마치 부드러운 미인의 손이 내장을 골고루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아 얼마나 시원하고 야릇한지 몰랐다.
그러면서 몸이 약간 떨렸는데 그 떨림이 또한 아주 상쾌했다.
도대체 어째서 상쾌한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온몸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홍칠과 구양봉은 기분이 좋아서 서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몸과 마음이 너무 황홀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야 진정이 되자 홍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이렇게 기막힌 음식은 처음이지?"
"언제 이런 걸 먹어 봤겠습니까? 이렇게 맛있는 건 생전 처음이죠. 그런데 이 음식 이름이 뭐죠?"
"아까 못 들었나? 원앙오진회라고 하잖아. 이건 다섯 가지 독이 든 물건으로 끓인 국이야."
"그런데 어떻게 끓인 걸까? 나도 이런 국을 끓일 줄 알면 좋겠는데. 매일 이런 국만 먹고 살면 한이 없겠어요."
"그러려면 저 묘수인주를 시켜야 하는데 자네에게 그런 재주가 있나? 저 묘수인주는 임안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인데 오기가 대단하거든. 황제를 시중 들라면 몰라도 자네 같은 걸 시중 들라고 하면 그는 화가 나서 죽어 버릴 거야."
그때 구양봉은 갑자기 졸음이 오는 것을 느꼈다.
"홍칠공님, 홍칠공님은 졸리지 않습니까?"
홍칠은 눈이 게슴츠레해지는 구양봉을 보고 깔깔 웃었다.
"잠이 온다구? 자기만 해 봐, 자네를 버리고 갈 테니까. 황제한테 붙잡혀도 나를 원망하지 말라구."
홍칠이 농담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술이 짧은 구양봉은 어쩐지 으스스했다.
"아무리 담이 크다 한들 이런 데서 잠잘 수야 있겠소? 그러다가 어선방의 주자들에게 들키면 나를 잡아 국을 끓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참 좋겠다. 자네 고기로 국을 끓이면 맛이 좋을 거야. 난 아직 인육탕은 못 먹어 봤거든. 분명히 별미일 거야."
구양봉은 농담인 줄 알면서도 정말 자기 고기로 인육탕을 만들어 묘수인주 같은 사람들이 맛을 보면서 할 말들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 머리칼이 쭈뼛쭈뼛 일어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몰려오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구양봉은 옆으로 덜컥 쓰러지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구양봉, 구양봉! 일어나! 자다가는 죽는다."
그러나 구양봉은 곯아떨어져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런데 구양봉을 흔들어 대던 홍칠이도 정신이 아찔하면서 머리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 야단났네.'
홍칠이는 가슴이 섬칫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디선가 차디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에 홍칠이는 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홍칠이 앞에 다섯 명이 다가섰다. 황제의 어선방에서 일하는 다섯 고수들 즉, 묘수인주 묘 나으리, 천도만과(千刀萬過) 과 나으리, 유소화작(油燒火炸) 허 나으리, 백수십권(百手十拳) 우 나으리, 일지칭(一枝秤) 평 나으리 등이었다.
이들은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심복들이었다. 이들이 없으면 황제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을 테니 황제 노릇도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 이 다섯 나으리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황중의 대신들보다도 세도가 당당했다.
"감히 황궁 안으로 기어들다니? 네 놈들은 대체 뭐하는 것들이냐?"
구양봉파 홍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칠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누구냐구요? 저희는 홍안루(鴻雁樓)의 요리사들입니다. 어르신들의 요리 솜씨를 몰래 배워 가려고 이렇게 황궁까지 들어왔습니다. 사실 출중한 요리 솜씨가 없으면 강호에서 살아가기가 어렵거든요. 어르신들 솜씨만 배워 가면 평생 걱정이 없겠는데 말입니다."
홍칠이의 말은 지극히 간곡했다. 다섯 사람은 그 말을 믿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만약 이들이 진짜 홍안루에서 온 요리사들이라면 요리 솜씨를 배우려고 황궁에 잠입했다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
강호에서는 누구든 자기만의 뛰어난 재주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으며, 요리사들도 특기가 있어야 했다. 홍안루 요리사라면 나름대로 빼어난 솜씨가 있겠지만, 더 배우려면 이 황궁의 어선방을 빼놓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황궁에 잠입할 용기를 낼 수도 있었겠지. 다섯 명의 나으리들은 홍칠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잠시 말이 없었다.
불안했던 구양봉도 태연자약한 홍칠을 보고 용기를 좀 찾았다.
'이 거지를 따라 황궁으로 들어온 것부터 황당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홍칠이한테 얕잡아 보여선 안 되지.'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뭐지?"
"홍안루에 있는 소(蘇)씨 성 가진 거렁뱅이, 소씨 거렁뱅이입니다."
소씨 거렁뱅이는 강호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거렁뱅이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홍안루 주인의 마음에 들어 굉장한 대우를 받으면서 그곳 주자로 일하게 되었다. 이 소문이 한때 강호에 자자했으므로 황궁의 다섯 주자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홍칠은 자기가 소씨 거렁뱅이라고 말을 해놓고 보니 이 다섯 주자들이 소씨 거렁뱅이를 알고 있지나 않은지 슬그머니 근심이 되었다. 그런 눈치만 보이면 재빨리 내빼야 했다.
구양봉이 짐이 되겠지만 짐이 되더라도 데리고 달아나야 했다. 여기서 혼자 죽게 할 순 없었다.
"그래, 네가 정말 소씨 거렁뱅이냐?"
묘수인주가 따져 물었다.
홍칠은 이를 사려 물었다.
'이왕지사 이렇게 된 일, 끝까지 버티는 게 상수다.'
"참, 내가 소씨 거렁뱅이가 아니면 대체 누가 소씨 거렁뱅이겠소?"
그 말을 곧이 들었는지 다섯 주자는 서로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왕 황궁에 들어왔으니 우리한테 솜씨를 좀 보여 주시지. 요리 솜씨가 제법이라면 살려 보낼 수도 있다."
묘수인주의 말에 홍칠은 가슴이 철렁했다. 거리에서라면 이깟 다섯 주자쯤 손쉽게 해치우련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들이 맞붙으면 그 소리를 듣고 궁내 대도시위들이 무리로 달려올 게 뻔한 일이었고, 그러면 그와 구양봉은 해를 입기 십상이었다.
"잠깐 내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저희에게 무슨 솜씨가 있다고 이러십니까? 따지고 보면 우린 동업자들이니 앞으로 친하게들 지냅시다. 오늘 이렇게 몰래 들어온 것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러면서 홍칠은 구양봉에게 어서 내빼자고 눈짓을 하고 자기부터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다섯 주자들이 얼른 앞을 막아섰다.
"이봐, 이왕 왔으니 우리에게 솜씨 한번 보여 줘야지."
묘수인주의 말이었다.
"왜 이러시오? 이 어선방 안에서 붙어 보자는 겁니까? 정말 해 보고 싶으면 밖에 나가 해 봅시다. 내가 겁이 나서 이러는 줄 아시오?"
묘수인주는 홍칠의 말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여기 들어올 재간이 있으면 나갈 재간도 있을 테니 어디 그 솜씨를 한번 부려 봐라. 그래야 여기까지 기어든 보람이 있지."
그는 말을 마치자 손을 번뜩하더니 무엇인가를 집어 던졌다.
특수한 시력이 없는 구양봉은 번개같이 날아오는 그것이 몰래 던지는 흉기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요리를 볶는 데 쓰는 국자였다. 구양봉은 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국자를 피할 재간이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홍칠이가 그 국자를 손에 척 받아 쥐었다.
"그래, 기어코 해 보자는 거요?"
"듣자니 소씨 거렁뱅이가 '강산이개(江山易改)'를 잘 만든다더군. 수고스럽지만 그 요리 맛 좀 보자."
다섯 주자 중 누군가 말했다.
홍칠과 구양봉은 그제야 그들이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요리 솜씨를 보려는 의도임을 알았다. 하지만 구양봉은 그게 더 걱정이었다. 싸움을 하면 홍칠이 얼마간 막아내겠지만 황제의 요리사 앞에서 요리 솜씨를 보이다니, 이건 싸움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다섯 주자들은 홍칠을 지켜 보며 이 소씨 거렁뱅이라는 자가 요리 솜씨를 발휘하기를 기다렸다. 홍칠은 하는 수 없이 국자를 들고 느릿느릿 부뚜막으로 다가갔다. 그는 부뚜막 위의 물건들은 보지도 않고 국자를 탕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수건."
홍칠이 수건을 찾자 다섯 주자 중 하나가 수건을 척 펼쳐 들더니 그것을 물에 헹구어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에 작 펴서 돌렸다. 한 순간 젖은 수건이 공중에서 날면서 수많은 물방울이 천장에 뿌려졌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한 방울도 튀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 젖지도 마르지도 않은 적당한 수건이 되자 그 사람은 그것을 거두어 홍칠에게 던져 주었다.
"자, 수건 갑니다."
홍칠은 손을 뻗어 그 수건을 턱 잡더니 다시 던졌다. 수건은 공중에서 뱅그르르 돌며 이쪽에 있는 여러 사람에게 날아오더니 도로 그에게 날아갔다.
이것이 아주 어려운 재주라는 것을 알고 다섯 주자들은 그에게 갈채를 보냈다. 과연 듣던 대로 소씨 거렁뱅이 솜씨였다.
수건 던지는 솜씨만 봐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연기와 불에 그슬려야 하는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은 손이 기름 범벅이라 수건을 잘 받아 쥐지도 못했고 비틀어 짜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소씨 거렁뱅이의 솜씨는 얼마나 멋들어지는가!
수건을 쥐거나 짤 필요도 없이 공중에 던져 돌리면서 얼굴과 손을 갖다 대면 된다. 정말 편리한 방법이었다.
그제야 다섯 주자들이 비로소 이 소씨 거렁뱅이를 믿는 성싶었다. 국자를 던지는 그들의 솜씨와 마찬가지로 소씨 거렁뱅이의 수건 던지는 솜씨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섯 주자의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천하에 이름이 높은 소씨 거렁뱅이의 요리 솜씨를 보지 않고는 속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홍칠의 수건 던지는 솜씨에 다섯 주자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자 구양봉은 또 새로운 근심이 생겼다.
글쎄, 수건 던지는 솜씨는 멋들어졌지만 이제 국자를 쥐고는 어떻게 할 셈인지 난감한 일이었다.
"이것 참, 아무래도 한번 해 봐야겠군. 그렇지 않으면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 같으니……."
홍칠은 다섯 주자한테 억지로 몰려 하는 수 없이 솜씨를 보인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이렇게 된 것이 은근히 기쁘다는 기색도 담겨 있었다.
홍칠이는 요리감을 한줌 척 쥐고 말했다.
"그럼 주제넘지만 이름 높은 다섯 나으리들 앞에서 잔재주를 피워 보겠습니다."
그는 요릿감들을 솥에 넣어 날쌔게 요리를 볶아 대기 시작했다. 불이 이글이글 타는 부뚜막에서 국자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홍칠은 삽시간에 요리 한 가지를 볶아 냈다.
홍칠은 아까 다섯 주자가 하던 것처럼 국자를 다섯 주자들에게 던져 빙그르르 들게 했다.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풍겨 왔으나, 다섯 사람은 그 요리의 과정을 일일이 볼 수가 없었다.
홍칠은 다시 탁자 위로 국자를 던져 국자 안의 요리가 접시에 딱 알맞게 부어지게끔 재주를 부렸다. 그런데 그 솜씨가 묘수인주의 솜씨보다 더 정확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다섯 명은 부지중에 환성을 질렀다.
묘수인주는 홍칠이 만든 요리를 맛보더니 그를 뚫어지게 보았다. 구양봉은 가슴이 철렁해서 생각했다.
'저 묘수인주의 눈빛으로 보아 아무래도 요리 맛이 틀린 것 같은데……. 홍칠이가 홍안루의 소씨 거렁뱅이가 아니라고 저렇게 쏘아보는 거야.'
그런데 묘수인주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 맛 참 좋다!"
세상에! 저 묘수인주가 봉사란 말인가?
홍칠이 솜씨와 소씨 거렁뱅이의 솜씨를 가려 내지 못하다니. 구양봉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네 사람도 그 요리를 입에 넣고 약 먹듯 씹어 삼켰다. 한 사람은 씹다가 손바닥에 뱉어 내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자네가 만든 요리는 강산이개가 틀림없어. 확실히 소씨 거렁뱅이 솜씨군. 그런데 자네가 진짜 소씨 거렁뱅이인가?"
묘수인주가 느닷없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좋아. 이제 그만 가 보게."
그 말을 들은 구양봉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어쩌면 홍칠이가 진짜 소씨 거렁뱅이인지도 모르지. 홍칠이라는 이름이 가명이고.
에라, 이름이 무슨 상관이냐. 가짜고 진짜고 간에 황궁을 벗어나게 되었으면 그만이지.
둘은 바삐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들이 문가에 다다랐을 때 뒤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게 섰거라!"
할 수 없이 둘은 우뚝 섰다. 구양봉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발 무슨 변이 없어야 하는데……. 묘수인주의 생각이 변했다면 야단이다.
"소씨 거렁뱅이가 홍안루 사람인 것도 사실이고 네가 만든 강산이개 요리도 틀림이 없다만, 너는 소씨 거렁뱅이가 아니다."
구양봉은 무엇으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그런데 홍칠은 태연하게 몸을 돌리며 물었다.
"내가 소씨 거렁뱅이가 아닌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