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기생뎐> 작가 이현수 인터뷰
“100년 전 기방의 모습, 발품 팔아 재현했다”
그는 얼마 전 책장 선반이 휘도록 모아두었던 기생에 관한 자료들을 모두 버렸다. 주섬주섬 모으기 시작한 게 어림잡아 8년에서 10년은 된 물건들이었다. 지난 9월 소설 <신기생뎐>(문학동네 펴냄)을 내고 예상치 못한 언론과 독자의 관심에 흥이 나긴 했으나 거의 6개월간 한줄도 못 썼더니 지난 2년 집필 기간의 피로감까지 모두 함께 몰려오는 듯했다.
“나에게는 하나의 산(山)이었고 작가로서의 통과의례였어요. 오래 붙들었으니까 빨리 잊어야죠.”
‘이건 내 거다’ 싶었단다. 되레 어떻게 그 많은 작가 중 단 한 사람도 기생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이상했단다. 예기(藝妓)는 최첨단 영감으로 무장한 문화예술 집단이었으며, 현재 우리나라 문화예술이란 이들에게 탕감 받은 지 불과 얼마 안 된 채무자인데 말이다.
황진이, 논개와 같은 명기(名妓), 의기(義妓)의 이미지로, 대략적인 색채와 색감으로 두루뭉술 묘사되어온 기생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신기생뎐>의 ‘신’이란, ‘새로운’ 기생이 아니고 기생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인 셈.
하나 이러한 방향으로 그를 이끌 자료들이 별로 없었다. 국립고궁 박물관장 남편 덕에 각종 풍속, 기생 옷에 관한 자료들에 접근하기 쉬웠지만, 정작 있는 자료들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지식층들의 활자화된 글들이 과연 천민으로, 관의 노비로 밑바닥 펄을 긁으며 시대를 관통해온 기생을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하여, 그가 의지했던 것이 같은 천민 출신 화가 신윤복, 김홍도의 기생에 관한 풍속화였다. 소설 속 과거 기방을 회상하는 장면이 그렇게 씌어졌다. 배경 ‘부용각’이라는 가상의 기방 역시 삼청각을 비롯, 그가 발품 팔아 다녔던 각종 기방들의 처마 끝과 대청마루의 실사들이 퍼즐처럼 합쳐져 완성된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처럼 그는 “상상이 아닌 짐작으로” 기생의 실체를 살려내기 위한 근거들을 쫓았고, 그러면서 기생에게 있어 ‘기방’이라는 새로운 핵심어를 발견하게 됐다.
“수백 년간 유교사회에서 남성 없이 여성공동체를 유지해온 곳이었죠. 복잡하고 까다로운 문화가 많았어요. 기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하지 않고는 기생을 얘기할 수 없어요. 기생 미스 민이 화초머리 올리는 기방에서의 의식을 복원하지 않았으면 훨씬 빨리 쓸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그가 ‘그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써내려갈 수 없었을지 모른다. 아주 우연히 동네 정자에서 할머니들에게 기방 음식 얘기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그의 소설에서 ‘부엌어멈 타박네’의 원형이 된 이 할머니를 그는 한여름 땡볕 아래 식은땀 나도록 쫓아다니며 두 시간 꼬박 얘기를 들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아슴아슴하던 기방 풍경에 그릇 부딪는 소리를 내는 음식이 일상을 채우면서 생동감 있는 기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호박전은 꽃 기생 속적삼이라고 알면 돼. 밀가루가 스친 듯 만 듯, 호박에 속살이 환히 비치는 옷을 입혀야 되야.” - <부엌어멈> 15쪽
이렇게 고운 문체를 얻기까지 돌고 돌아 얻은 생생한 재료가 <신기생뎐>이 하나의 소설로서도, 문화사로서도 가치 있는 이유를 이루었다. 하물며, 이 이야기는 전통을 고수하면서 소멸의 끝자락을 붙들고 버티는 오늘날 기방의 얘기다.
“100년 전 사람들이 여기 같이 살고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늙은 것, 늙은 사람에 관심이 없죠. 이들은 70∼80년 전에 태어났고, 이들이 열살 적에 만난 여든 먹은 사람들은 우리에겐 거의 200년 전 사람들이에요. 왜정시대를 어제처럼 얘기하는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그가 그린 기생은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풍속도로 떼밀려 들어가는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상상도, 짐작도 아닌, 21세기 어느 도시 구석의 잊혀진 실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