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천(車泉)과 배처녀
고려 중엽.
화순읍에 배(裵)씨 성을 가진 아전이 살고 있었다.
배씨는 관인인지라 나름대로의 세력도 가지고 있었고 가산도 넉넉했으나 슬하에 자식이라고는 늦게 본 딸 하나가 있었다.
당연히 배씨 내외는 금지옥엽인 딸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고 딸을 보는 재미로 살고 있었다.
이 딸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아전 배씨가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라 온 집안이 근심으로 가득했고 어머니와 배처녀는 눈물로 지내면서도 효성이 지극했던 딸이라 하루도 빠짐없이 옥을 찾아 뒷바라지를 했고 아버지를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먼동이 트이자 차전이란 우물로 물을 길러 갔다. 물동이를 내려놓고 바가지를 들어 물을 뜨려 할 때 손을 주춤했다. 샘 안에 오이가 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겨울에 웬 오이가 있지?”
당시로선 오이가 겨울철에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여름철이라면 누가 빠트렸겠지 하며 넘어갈 일이었지만....
배처녀는 이를 건져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아도 싱싱한 오이가 분명했다. 오이 냄새를 맡자 오이가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순식간에 물 뜨는 것도 잊고 오이 하나를 다 먹었다. 겨울철 이른 새벽에 먹는 오이 맛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암튼 배처녀는 물을 길어 와서 조반을 해서 아버지 면회를 갔다.
그런데 두어 달 쯤 지났을까? 배처녀는 임신을 했다. 처녀가 임신을 했다? 배처녀는 감히 어머니에게도 말을 못하고 혼자 불러오는 배를 안고 고민만 했다. 차라리 어던 양반집 자제에게나 혹여 상것에게라도 겁탈을 당해 일이 났다면 당사자에게라도 하소연을 하련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그 때 샘에 있던 오이 하나밖에 먹은 일이 없건만...
이런 이야기를 누가 믿어준단 말인가.
‘차라리 죽어버릴까?’
여타 잡생각이 다 드는 가운데 더 이상 불러오는 배를 숨길 수 없게 된 배처녀는 어느 날 저녁 어머니 앞에 공손하게 앉았다.
“어머님.. 저기...”
그러나 차마 임신 얘기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저 눈물만이 흘렀다.
“아니. 아가야. 왜 이러는 겨? 워디 아픈디라도 있는 겨?”
남편이 감옥에 가 있는 지금 딸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자 어머니는 더 찹찹하고 힘없는 소리로 물어왔다.
“아니어라. 어머니... 지가 아이를 가진 것 같아서라.....”
“뭐! 뭐라고? 대체 시방 무슨 소리다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뒤로 나동그라지며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대체 그 아이가 누구 씨라더냐? 바른대로 말해 보거라.”
정신을 차린 어머니가 맥 빠진 소리로 물어오자 배처녀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허 참. 살다가 해괴한 소릴 다 듣는구나. 니 말대로라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구먼.. 앞으로는 외출을 삼가고 별당에만 있어야 쓰겠구먼.”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어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모녀간의 비밀로만 하고 시간이 흘러 배쳐녀는 옥동자를 낳았다. 이 무렵 아전도 무고로 누명을 벗자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있으니 처음엔 아비가 옥에 가 있는 동안 행실이 난잡해 낳은 아이가 아닌가 하여 심하게 힐책을 했으나 모든 사실을 바로 아뢰자 더 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아이가 이젠 눈을 뜨고 손을 꼼지락거리고 사람을 알아 볼 정도 되자 아전은 아이를 읍내에서 삼마장 정도 떨어진 정자나무 밑에 몰래 버리게 하였다.
쌍놈도 아니고 양반의 처자가 아이를 낳았다면 처녀의 인생은 물론이고 가문 자체가 비웃음거리가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앞날을 생각하고 남의 이목이 두려워 늦은 밤에 아이를 갖다 버렸으나 모성애가 어찌 칼로 물 베기이던가. 배쳐녀 어머니가 마음이 편치않아 잠을 못 이루고 있는데 배처녀야 오죽하랴.
눈물과 한숨으로 잠을 못 이룬 배처녀는 밥이 되자 아이가 더 없이 궁금해 등불을 밝히고 이이를 버린 숲 속 정자로 가보았다. 그랬더니 학 한 마리가 아이를 품고 있지 않은가. 배처녀는 신기하고 고마워 얼마를 그렇게 지켜보다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도 가 보았는데 도 마찬가지로 아이를 학이 품고 있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배처녀는 어머니에게 이 말을 했고 어머니는 남편 아전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참 이상한 일이구려. 내 한 번 가보리다.”
이리하여 배 아전은 아이를 버린 숲 정자로 가보았고 말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기에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불렀다.
“허허. 찬 신기하게도 이녁의 말처럼 아일 학이 품고 있습디다. 범상한 아이가 아닌 것 같소. 날 때도 그러더니....”
“맞아요. 그러니 도로 데려와 길러야 할 것 같아요. 버려도 새가 와 보호하고 있다면 보통 귀인이 아닐 텐데 이대로 두면 천벌을 받을 거예요.”
“그렇게 합시다. 울고만 있는 저 아이도 그렇고... 흠. 그럼 내일 당신이 일찍 동주 친척집에 갔다가 처남댁을 대동하고 오다 아이를 데려오면 좋겠구려 ”
“어머나, 참 좋은 생각이세요. 그러면 길에서 주운 아이로 해서 기르면 되겠군요.”
이리하여 배씨 부인은 이튿날 친척집을 다녀오다 구실을 붙여 동행한 동생 부인에게 잠시 쉬어가자고 정자 쪽으로 이끌었다. 동생 댁도 그리 바쁜 것 같지가 않아서 정자 쪽으로 따라가자니
“동생. 저 숲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하고 뜬금없이 물어왔다. 동생 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 말을 하려는데 배씨 부인이 얼른 가로채며
“언능 가보세. 누가 이런 숲에 어린아이를 버렸나보네. 몹쓸 것들 같으니라고..”
숲 속에 가보니 과연 학 한 마리가 어린 아이를 품고 있다가 일행을 보고는 날아가는 지라 부인이 아이를 집어 앉고는 한 마디 했다.
“하늘도 무심치 않구먼. 우리가 대를 이을 아이가 없는 걸 알고 하늘이 점지해 주시나 보네.”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 아이가 참 귀엽기도 하구요.”
이러면서 아이를 안고 집으로 왔다. 아울러 동생 댁이 아이를 주어 온 아이라 열심히 소문을 내주어서 이 소문이 인근에 쫙 퍼졌고 비로소 딸이 다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얼마나 총명한지 세살이 되자 글을 읽기 시작했고 열 살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중이 찾아왔다. 그리고 책을 읽는 아이를 보더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또한 애석한 일이로다. 아미타불!”
하고는 혀를 차는 것이었다. 이에 배씨부부는
“무슨 말씀이오이까? 우리 아일 보고 애석하다니오?”
하고 얹잖아 하자 중은 염불만 외더니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소승은 보조국사이온데 부처님의 계시에 의해 이리로 행각을 나섰나 봅니다. 아미타불! ...소승이 보아하니 저 아이의 출생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한데 이대로 기르신다면 열 다섯을 넘기기 어려울 거외다. 아마타불!”
배씨 부부는 이 말을 듣고 석연치 않은 중이라고 여겨 정중하게 물었다.
“어찌하면 아이가 제 명을 살 수 있겠는지요?”
“아미타불! 저 아이를 소승에게 맡겨주시지요. 그리하면 절에 데려가 공부시켜 큰 재목으로 키우겠습니다.”
배씨 부부는 얼른 대답치 못하고 중에게 하룻밤 유하게 하고는 배씨 처녀를 불러 아이의 문제에 의논을 거듭했고 아이를 중에게 맡기자는 결론을 맺었다.
그 길로 중은 아이를 데리고 갔고 이 아이는 보조국사의 지도 아래 도통을 한 진각국사가 되었다.
진각국사가 절에 든 지 얼마 안 되어 배씨 부부는 세상을 떴고 오이를 먹고 진각국사를 잉태한 배처녀는 처녀 그대로 공규를 지키다 세상을 떠났다.
배처녀가 오이를 건졌다는 이 차전은 지금도 남아 물이 맑고 차가워 마을 사람과 나그네에 더 없이 훌륭한 식수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어린 아이 때의 진각국사를 학이 보호했다는 숲 속의 정자도 근자까지 있다가 걸인들이 불을 내는 바람에 소실되어 그 자취만 있고 보조국사와 진각국사의 화상 또한 화순 만년산장의 성주암에 보존되어 있다가 80여 년 전에 유실되었다 한다.
이상 끝. 06년 5월 1일 아침이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