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손가락 / 사빈 하창락
나쁜 습관은 쉽게 받아들인다. 담배도 그중의 하나다. 나이가 들어 손이 갔지만 끊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낯익은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혹시’ 하면서 아들의 방문을 살짝 들여다본다. 어지러운 책상 위에 전자담배가 놓여 있다. 언제부턴가 방에서 풍겨오는 특유의 내음으로 눈치는 챘지만 보는 건 처음이다. 결국 아들도 담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굴복한 모양새다. 부전자전이라고 하지만 이런 건 닮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젊은 시절과 근래 있었던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군사정권이 활개를 치던 시대였다. 군화 발자국이 상아탑을 짓밟자, 캠퍼스엔 낭만이 사라졌다. 자유는 철조망에 걸려 너덜거리며 존재감을 잃어갔다. 청바지 대신 교련복을 입어야 했다. 머리를 짧게 자른 체, 이름도 생소한 ‘병영집체훈련’에 동원되었다. 십여 일간 똑같은 옷에 똑같은 행동으로 기계처럼 살았다. 패트릭 헨리가 지하에서 통곡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공허한 외침은 군가 소리에 묻혀 허공으로 사라졌다.
구레나룻에서 떨어진 땀방울이 군복을 물들이자 짧은 휴식이 주어졌다. 제한된 공간의 억제된 자유다. “한 대 피울래.” 친구가 건네주는 가녀린 담배를 무심코 잡았다. 뜨거운 불이 코끝에서 너울거리자, 나도 모르게 들숨을 삼켰다. 입속에 고이는 알싸한 연기가 몽롱함을 선사했다. 달콤하진 않았지만 싫지도 않았다. 지친 영혼은 거미줄에 옭매여 힘든 휴식을 취했다. 일과를 마치자, 허전한 마음이 불안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매점으로 향했다. 군용담배 ‘화랑’이 내 손에 쥐어졌다. 첫 만남은 그렇게 맺어졌다.
담배를 품자, 허전한 공허감이 소리 없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힘들 때만 손이 갔지만,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입에 물었다. 가끔 담배가 떨어질 때면 불안과 초조가 몰려왔다. 살아오면서 헤어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금단현상이 발목을 잡았다.
세월이 담배 연기와 함께 바람처럼 흘러갔다. 젊은 청년도 오십 후반의 중년이 되었다. 서서히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다. 부업을 시작했다. 시작은 순조로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민만 쌓여갔다. 하루 한 갑이면 족하던 담배가 두 갑으로 늘어났다.
조그마한 구멍도 방치하면 큰 둑이 무너지는 법이다. 한 개비 두 개비 피우던 담배가 몸을 갉아 먹었다. 정서적 불안을 없애준다고 자신을 달랬지만, 대가 또한 만만치 않았다. 담배 연기가 미로를 드나들자 받아주는 폐도 점점 지쳐갔다. 마침내 한쪽이 이상징후(異常徵候)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치는 일이 잦아졌다. 가끔 구토가 나고 선혈이 손바닥을 물들였다. 그 와중에도 ‘별일 아니겠지.’라며 애써 자신을 달랬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시월 어느 날, ‘왼쪽 폐에 결절이 의심되므로 2차 검진을 받으세요.’라는 반갑지 않은 편지가 날아왔다. 한동안 멍한 돌부처가 되었다. 잡고 있던 펜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시곗바늘이 한참을 돌고서야 놓았던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큰아이에게 통지서를 카톡으로 보냈다. 금방 답이 날아왔다. ‘내일 입원 준비해서 병원으로 오세요.’
파란 하늘과 하얀 가운, 세상은 온통 싱그러웠다. 내 몸도 저들처럼 깨끗했으면 좋으련만 그건 바람일 뿐이었다. 암세포를 찾는 정밀검사가 시작되었다. MRI의 굉음이 고막을 강타하였다. 굉음의 저편에는 두 눈을 부릅뜬 아버지가 호통치고 계셨다. ‘담배 하나 못 끊어 몸을 이렇게 망가뜨렸느냐.’ 조직검사가 시작되었다. 반쯤 마취된 상태에서 흡연이 잉태한 독버섯을 찾아 폐의 구석구석을 뒤졌다. 마지막 검사 때는 주사를 맞고 외로운 독방에 갇혔다. 고독한 참회의 시간이었다. 문을 나서며 하얀 독방의 빈 벽에 이렇게 적었다. ‘이젠 오랜 친구를 떠나보내자.’
늦가을 보슬비가 유리창을 적신다. 그 위에 누군가가 슬픈 소식 전한다. 어젯밤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왜 하필 이 시기에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가. 뿌옇게 덮인 유리창을 훔치자, 가족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가 보인다. ‘살아서 저곳으로 다시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마음은 바빠지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두 손을 모았다. ‘아버지 살려 주십시오. 불효자식 엎드려 빕니다.’
이동용 침대의 바퀴 소리만 들린다. 세상을 보는 것이 두렵지만, 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 될 수도 있기에 살며시 눈을 떴다. 수술 대기실이란 푯말이 보인다. 침대가 마치 저승길로 가는 상여(喪輿) 같다. 장송곡도 없이 기계처럼 굴러간다. 멈추었으면 좋으련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반갑지 않은 문이 입을 연다. 몸은 두려움에 떨었지만, 영혼은 절규하며 외친다. ‘이 문을 열고 살아 나온다면, 남은 인생 너를 위해 살 것이다.’ 맹세가 끝나자 긴 잠이 의식을 거두었다.
누군가가 몸을 흔들면서 말한다. ‘환자님. 제 목소리 들리면 눈을 깜빡여 보세요.’ 눈을 가늘게 움츠렸다. 의식이 깨어나면서 눈앞이 밝아온다.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건가. 기쁜 소식이 귓전을 두드린다. ‘수술 잘 되었습니다.’ 손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고마운 마음에 큰절이라도 드리고 싶었건만 빈손만이 인사를 대신한다. 누군가가 허공에서 춤추는 손을 따뜻하게 잡으며 속삭인다. ‘고생했어요.’ 근 삼십 년을 들었건만 여전히 반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살았구나!’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친 몸과 마음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환자 수기 발표’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은혜에 보답하고자 기꺼이 응했다. 일주일 동안 준비한 원고를 연단 위에 놓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세상이 온통 축복으로 가득했다. 말문을 열기 전에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린다. 끝없이 흘러내렸지만 닦지 않았다. 울먹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날 내가 한 유일한 말이다. 누군가가 건네준 하얀 손수건을 흥건히 적시고야, 눈물샘이 멈추었다. 선생님이 다시 부탁의 말씀을 잇는다. ‘금연 홍보대사를 맡아 주십시오.’ 고마움에 보답하자면 열 번도 더 맡아야 한다. 하지만 아픈 손가락이 발목을 잡는다. 자식의 흡연도 말리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금연을 권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짬을 낼 수 있을지.’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필요한 책을 찾아서 천천히 아들 방을 나오는데 애꿎은 담배가 또다시 눈에 밟힌다. <끝>
첫댓글 ■ 작가의 변
이 글은 2021년 3월, 수필과 지성에서 처음 공부하던 시기에 쓴 글이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여 오늘 새롭게 탄생하였다. 마치 38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고 다시 태어났듯이.
10월 유신이란 이름 아래 자유는 구속당하고, 강요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병영집체훈련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왕성하게 일하던 50대 중반에, 마침내 탈이 나고야 말았다. 몸에 이상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그러나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받아들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동시대를 살던 유명한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그 시기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급해졌다. 모든 걸 던지고 수술대 위로 올랐다.
5년의 세월이 흐르고, 완치의 판정을 받던 날. 세상은 온통 내 것이었다. 여백의 남은 세월, 이제부턴 너를 위해 살 것이다.
다시 2년이 시간이 지났다.
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쩌면 인생은 약속의 기록이다.
먼 훗날, 인생의 종착점에서, 이 글을 다시 읽어볼 것이다.
2023. 10. 12.
고요가 긷든 새벽, 사빈 하 창 락 씀.
https://blog.naver.com/hahcr
수상 소감
감사합니다.
아직 익지 않는 깍두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과분한 상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장호병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좋은 글을 쓰는 훌륭한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 11. 03.
사빈 하창락 드림.
공감이 가는 대단한 작품
감사합니다.
대상을 받아도 손색없는 작품이네요.
응원합니다.
이장희 올림
감사합니다
선생님,
많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수상 다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천천히 나아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