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나라의 국법의 규정
타국에서 노예살이를 하는 노나라 백성이 있을 때 그 백성의 몸값을 지불하고 본국으로 데려오면, 그 사람이 지불한 몸값을 나라에서 환급해 주고 더불어 상금도 내린다.라는 규정이 있다.
아래의 내용을 읽고, 공자가 기뻐한 제자는 누구이며, 질타한 제자는 누구인지를 한 번 살펴볼까요?
첫 번째, 제자인 자공이 타국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노나라 백성을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때 자공은 나라에서 주는 몸값과 상금을 모두 거절했다.
두 번째, 제자인 자로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감사의 뜻으로 자로에게 소 한 마리를 선물해서 받았다.
공자의 판단
첫 번째 사례인 경우, “자공이 실수했구나! 성인의 행동은 백성들의 풍속을 바꿀 수 있고, 성인의 가르침은 천하 만백성에게 두루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한 사람의 도덕 품행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노나라에는 부자가 적고 가난한 사람이 많다. 상금을 받는다는 게 자신의 품행에 무슨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자공은 몸값과 상금을 받지 않았으니, 앞으로 사람들은 노예살이를 하는 노나라 백성을 구해 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질타했다.
두 번째, 제자인 자로(子路)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고 소 한 마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자가 매우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앞으로 노나라에는 물에 빠진 이를 구해주는 사람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중국 명나라의 관리 였던 원료범(袁了凡, 1533~1606)이 자공과 자로의 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몸값과 상금을 거절한 자공이 소를 선물 받은 자로 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자로를 칭찬하고 자공을 야단쳤다. 한 사람의 선행이란 당장의 선함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추후 발생할 폐해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하고, 한 시기만 생각해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먼 훗날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하며, 당사자 한 사람만 생각해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을 다 고려해서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들은 수 백년 전의 일이다. 현대 사회와는 시대적 환경이 너무나 다르고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 환경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공자가 제자의 행위에 대해 칭찬과 질타를 한 점은 그 시대 환경과 상황에 맞는 조치였다. 즉 백성을 구하고, 나라의 이익을 위한 최상의 조치였다고 본다. 공자는 백성과 나라의 이익을 위해 善을 증장시키는 일을 장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을 증장시키는 일을 하는 종교단체나 여타 단체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제자들의 행동은 백성들의 풍속을 바꿀 수 있고, 성인의 가르침은 천하 만백성에게 두루 미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의 귀감이 되고, 나라에 이익이 되는 행동을 장려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본다면, 나라의 지도자 혹은 리더가 사회에 모범이 되고 국가에 이익이 되는 행동을 솔선수범으로 옮길 때 국민들이 귀감이 되어 지도자나 리더들을 신뢰하고 따르게 된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부인하고,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을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선동하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자들이 판을 치게 해서는 안된다. 법을 새로 제정하고 그 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아랫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맨 윗 사람부터 법을 적용해야 그 법이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고전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맞는 말이라고 판단된다. 법을 새로 만들었을 때 윗사람은 그대로 놔두고 가지치기만 한다면 실효성이 없는 죽은 법이 되고 만다. 나라의 정치 상황이 올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혼란 스러울 때는 국민들이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롭지 못하면, 현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선동하는 데로 끌려가게 되고 결국 나라의 정치 상황은 더욱더 혼란한 상황을 부추겨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평범한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 미치지 못하고,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치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 수준의 패거리 정치를 일삼고 있다. 국민들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지혜의 눈으로 헤아려 선전•선동하거나 표퓰리즘 政治 (populism:일반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정치 체제)를 하는 것을 그대로 믿거가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지혜의 눈이 없으면, 사물을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을 갖추지 못하게 되어 소신 없이 남의 말에 끌려다니게 된다. 이것을 명확히 가려내는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민이 지혜로워야 현명한 사람을 뽑을 수 있고, 나라가 한 단계 성숙하고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최하위 수준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앞장서서 바로 잡아 나가야 하고 국민들 스스로가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하고 내로남불을 일삼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한 행동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모든 책임을 짊어 질 수 있어야 하고, 나라의 장래를 늘 고민하고 걱정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君舟民水(군주민수)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공자가 노나라 임금(애공)에게 한 말이다. 공자는 노나라 임금인 애공에게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말했다. 백성은 지도자나 선출직을 뽑아 그 자리에 않게 할 수도 있고, 물러나게 할 수 있다. 그러니 평소에 이들이 하는 언행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헤아리는 감시자 역할을 철저히 해야한다. 그래서 국민에 뜻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자질이 부족한 행위를 하는 자들은 올바른 주권 행사로 엄히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권을 올바로 행사할 때에 나라가 정의롭고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