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17일
트럼프의 ‘이익동맹’을 ‘韓美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야 진짜 국익
여권이 내년 총선 겨냥 反美로 지지층 결집 나서면 한·미동맹 급격 위기 국면 치달을 것
트럼프의 볼턴 경질은 단순히 對北유화책 아냐… 북핵·재선 동시에 고려한 전략적 접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며칠 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고 물었다. 그는 그러면서 “볼턴은 북한과 협상하면서 ‘리비아 모델’을 사용하려고 했고, 나는 그 후 김정은이 (이를 비판적으로) 말한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질 사유가 북한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과연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보좌관 경질을 강경파 배제를 통한 대북 유화 제스처로 볼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 한·미 동맹은 어떤 모습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동맹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여길까.
◇ 트럼프의 볼턴 경질, 북 압박에 밀린 게 아닌 전략적 선택
문재인 정부 내 이른바 자주파는 볼턴 경질을 대북 강경파를 배제하고 대북 유화책으로 나가려 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제2차 미·북 정상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하노이 담판 결렬’ 사건에 대해 미국 내 야당인 민주당조차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점을 상기해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전 보좌관을 북한과의 정상 외교를 좌초시키려는 비생산적 인물로 본 건 아닐 거라는 게 상식적인 분석이다. 미국 내 기류에 정통한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장에 볼턴 같은 인물이 없었다면 미국이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의미를 북에 각인시킬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분명한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을 경질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최근까지 미·북 실무협상 준비단계에서 나타난 이견 때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내년 초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선 재선 캠페인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올해 안에는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몇 달 내에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원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볼턴 전 보좌관이 근본적인 해법을 고집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요구와 압박에 밀려 볼턴을 경질했을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 내 자주파의 해석은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아전인수적이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려 할 때 미국 조야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재선 가도에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핵 문제에 대해 볼턴 식 ‘이념적’ 접근을 피하면서도 단순한 대북 유화 제스처를 넘어 ‘전략적’ 접근 방식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하는 등 한반도 정세가 격랑에 휩싸이면서 국익과 동맹의 현주소 및 그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30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 뉴시스
◇ 트럼프, 중국 눈치 보는 동맹 싫어해… 한국과 대북정책 긴밀 협의 안 해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짜는 데 동맹국인 한국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북정책은 동맹국인 한국과의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기보다 미국과 북한 간의 양자 사안인 것으로 보인다.
동맹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국제정치학에서 동맹을 결정하는 요인은 힘(power), 위협(threat), 이익(interest)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힘이 센 적(敵)을 상대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힘을 합쳐 견제하는 세력균형 동맹관을 가진 지도자가 아니다. 반면 특정 국가가 가하는 위협 인식을 공유하는 국가들끼리 뭉쳐서 대처해 나가자는 생각은 있다. 중국이 전후(戰後) 미국 주도로 형성된 국제질서에 위협을 가하려는 것에 대해 함께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보는 인식이 이에 속한다. 이게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좌고우면하는 동맹국들을 ‘싫어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은 중국만큼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2017년 4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가진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얘기를 했다”고 했다. 북한 문제를 대중국 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을 ‘적당히’ 중국으로부터 떼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공한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확실한 동맹관 토대는 국가이익이다. 그의 동맹관은 철저히 이익의 대차대조표에 입각하고 있다. 이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서로 비용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한·미 동맹은 6·25전쟁 직후 북한 등 공산 진영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탄생했다. 한국은 미국의 힘을 빌려 북한을 억제해왔다. 한국은 이런 동맹이 있었기에 과도한 국방비를 쓰지 않으면서 경제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고, 궁극적으로 민주화 과정에서 초래된 혼란을 감수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일궈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적 수단이 동맹이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으로서도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이익이 걸려 있어 동맹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새로운 동맹의 모습, 즉 비용과 역할을 분담하는 진정한 ‘이익동맹’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하면서도 범세계적 차원에서 미국과 함께 외교·경제적으로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동맹(strategic alliance)’을 발전시키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 文 정부, ‘동맹이 국익에 배치’ 판단… 반미로 가면 동맹의 위기
문재인 정부는 전략동맹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청와대는 지난 8월 29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미국이 부정적 반응을 내놓자 “동맹 관계라 해도 국익 앞에 그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입장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할 당시 ‘국익을 외교정책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고 한 정부 원칙이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지소미아는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연결고리이자 한·미·일 3각 안보를 위한 협력 기제이다. 이런 의미를 갖는 지소미아의 종료를 미국이 우려한다고 해서 이를 한국의 국익과 배치된다고 간주하는 건 여간 심각한 사태가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익과 한·미 동맹이 배치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향후 한반도 정세와 한·미 동맹은 어떻게 진행될까.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상황에 따라 심한 유동성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첫째, 제3차 미·북 정상회담 실무협상이 재개되고 미·북 관계나 남북 관계에 훈풍이 분다면 외견상 동맹은 순항할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면서 북한의 ‘영변+α’와 대북제재 해제 맞교환 제안을 거부할 경우 (북한을 의식한 한국 정부의 태도로) 동맹의 경색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둘째, 지소미아 종료 시점인 11월 23일 이전까지 한·일 간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동맹은 국익이란 이름으로 심판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셋째, 국내 정치적 변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이 반일에 이어 반미까지 내세워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려 하면 동맹은 급격히 위기 양상을 보이며 태풍의 눈으로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김성한 /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전 외교부 차관
문화일보
■ 세줄 요약
볼턴 경질 배경 : 북한의 요구와 압박에 밀려 볼턴을 경질했을 것이라는 문재인 정부 내 자주파의 해석은 편의적이고 아전인수적. 트럼프는 볼턴 식 ‘이념적’ 접근을 피하면서도 단순한 대북 유화 제스처를 넘어 ‘전략적’ 접근 방식을 택한 것.
트럼프의 동맹관 : 철저히 이익의 대차대조표에 입각해 있음.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위협을 가하려는 것에 대해 함께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 이게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좌고우면하는 동맹국들을 ‘싫어하는’ 이유.
文 정부의 국익과 동맹 : 문재인 정부는 전략동맹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듯. 지소미아 종료는 국익과 동맹이 배치된다고 선언한 것. 내년 총선 앞두고 정부 여당이 반일에 이어 반미까지 내세워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면 동맹은 급격히 해체 양상을 보일 것.
■ 용어 해설
하노이 회담 : 하노이 회담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진 두 번째 정상회담이다. 하노이 회담은 2018년 6월 12일 미·북 간 첫 정상회담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린 지 8개월여 만에 성사된 것이다. 당초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 조치를 담은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서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소미아 : 지소미아(GSOMIA)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이르는 말로 두 나라 군사기밀을 직접 공유하기 위해 2016년 11월 체결했다. 체결 전까지 양국은 미국을 거쳐 정보를 공유했지만 이후에는 이 협정을 근거로 북한 동향 등에 대한 정보를 직접 교환해 왔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동북아 전력’의 핵심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