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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으로 조명(照明)하는「나래」40년
제1부 : 세류가 모여서 장강이 되고 리 강 룡
제2부 : 권 갑 하
Ⅰ. 들어가기
53권의 동인지를 앞에 놓고 나래의 몸짓을 정리하기 위한 먼 행군을 시작하려 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나래 20년사를 간행했던 지난 1985년 어느 날, L시인이 필자에게 “나래는 동인지를 자주 펴냈기 때문에 호수가 많을 뿐이지 창회가 20년이 된 것은 아니다”는 요지로 나에게 말해 온 적이 있었고, 그 자리에 동참했던 자칭 원로라고 자주 말하곤 하던 J시인은 “나래는 아마추어 모임이 아니냐.”고 우리 동인회를 폄하했던 일을 기억한다. 두 사람의 발언에서 공통된 시발점이, 그때 한창 활동이 활발했던 우리 동인회에 대한 경계와 우리의 활동을 애써 안중에 담지 않으려는 폐쇄된 가슴에 있음을 간파하고 씁쓸한 입맛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분들의 머릿속에 박힌 관념은 “내가 항상 최고여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작품은 다 시시하며, 나아가 시조는 시인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지극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결국은 반 시조적인 위험한 병이라고 진단한 일을 기억한다. 사실 가슴을 닫은 배타의 눈으로 볼 때 출발 당시 우리 나래의 자리 매김은 분명히 기성 시인과 아마추어의 섞임,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쨌다는 것인가? 그러한 모임이 이 나라 시조의 발전에 저해되는 일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네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인으로 태어났던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시조는 시인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래야만 시조는 발전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시조가 독자와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때 우리는 시조를 사랑하는 이로서 詩作 능력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이라면 등단을 하지 못했더라도, 그네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럼으로써 시조의 텃밭을 개간하는 한 모퉁이를 담당해 보자는 것이었다.
나래 30년!
창회의 역사가 30년임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다만, 1966년에 창회되어 1968년까지 3년간 동인 활동을 해오던 창회 동인들이, 이후 11년이란 긴 세월 동안 휴면기에 접어들었으니, 정작 문학 활동의 기간만 셈하라 하면 계산이 달라지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동인의 구성이 같고, 동인회의 이름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을 재개하였으니 우리는 문학 활동을 전개한 기간만 이야기할 때와 일반적으로 동인회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를 구별하자는 것이다.
이제,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전국 어느 시조 동인지도 걸은 적이 없는 길, 53집의 굽이굽이를 돌아오는 동안의 細流들을 모아 53집 간행이란 하나의 큰 강을 이루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하려 한다.
Ⅱ. 細流가 모여서 長江이 되고
1. 4인 사화집 <나래> 창간
1980년 2월 1일, 11년간의 긴 휴면 끝에 민병찬, 유재희, 윤신근, 정석주가 4인 사화집을 출간한다.
깃발을 올린다.
순수한 나래의 깃발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올린다.
올려진 깃발은 펄럭일 것인가
비바람 동천 아래서도
펄럭이는 혼을 지녀
꺾이지 않는 나래가 되고저
바람,
그 속에 깃발을 올린다.
- 정석주, 창간 서시「깃발을 올리며」1~2/5 -
국판 26쪽 종서로 편집된 나래 창간호에는 네 사람의 동인이 시 5편씩 합계 20편을 싣고 있다. 그 2쪽에는 지금도 동인지의 권두시로 싣고 있는 서시가 실려 있다. 나래의 영원한 펄럭임을 염원하는 정석주의 육성이 사뭇 감동적으로, 그리고 비장하게 스며 있다. 비바람 동천 아래 새로운 깃발 하나를 올리면서 이 깃발이 과연 영원히 펄럭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비장함이 그렇게 되기를 갈구하는 절규가 전편에 넘치고 있다.
pp 3~8까지는 민병찬의 시조「겨울바다」「고도」「연」「다례일」「설일1」5편이 실려 있다.
바다는 밀며 썰며 해살짓고 있어도
엎드려 그 물살을 견뎌온 겁의 세월
구름과 하늘 마주해 눈이 멀고 귀 멀어
불현듯 이 바다를 떠나가고 싶어서
작은 몸 일으키어 추스리어 보다가
물살이
더욱 거세어
도로 앉아버린 섬
날아간 파랑새는 다시 오지 않으리
절해의 저녁 무렵 머리채를 풀어 놓고
해묵은 둥지 속에다
회억들을 풀어 예다.
- 민병찬,「고도」전문 -
민병찬은 창간호에 작품을 실은 이래 오늘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작품을 써오는 성실파 동인이다. 지금은 知命을 넘기고 사업체를 경영하는 바쁜 가운데서도 작품 활동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그는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시조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 그 때 벌써 고시조 120수를 막히지 않고 줄줄 외워 국어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있거니와, 나래 창간호에 참여하기 전인 1978년 이미 시집『사모곡』을 간행하여 우리에게 그의 詩歷의 일단을 보여준 바 있다.
끊임없이 물결이 해살짓는 창망한 바다 저 멀리, 떠 갈듯, 가라앉을 듯, 흔들리며 서 있는 섬 하나 -고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세 수 간혹 보법이 흔들리는 대로, 절해고도의 생태가, 섬을 향하여 보내고 있는 시인의 따뜻한 눈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pp9~14까지는 유재희 편으로「아침우물가」「물레」「목련」「客愁」「어느 하루」5편이 실려 있다.
지금은 가고 없는 / 그 사람 서성대듯
세월의 앙금처럼 / 추녀 밑에 앉은 모색
이름이 물레뿐인 걸 / 바람에나 불릴까
눈 감아 / 보지 않고 / 귀마저 / 닫았는가
유실된 손때 속에 화롯가의 당신이여
朴哥粉 아쉽다 하던 그 미소를 얻으오.
- 유재희,「물레」전문 -
유재희는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1972년에는 일요신문 공무원 새마을 수기 모집에서 당선되었고, 이미 한국문협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재원이었다. 실려 있는 5편의 작품 가운데 4편은 자유시 내지 동시이고, 시조로서는 ‘물레’ 한 수를 선보이고 있다.
물레, 그것은 오랫동안 이 땅 아낙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물레살 굽이굽이엔 그네들의 숱한 애환이 서리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가고 없는 / 그 사람 서성대듯 / 추녀 밑에 앉은 모색”일수밖에 없음이 물레의 현 주소이다. 세월의 앙금이 켜켜로 앉은 물레를 바라보며 이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 앞에서,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안쓰러워하고 있다. 전에는 수 세대 또는 수십 년씩 걸려야 변화를 실감할 수 있던 일들이 현대에는 조석으로 변하고 있다. 물레와 같이 버려진 옛 물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작자의 ‘물레’는 우리에게 버려진 옛것들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pp15~20까지는 윤신근이「귀향」「아내」「운문산 더덕의 사계」「바람」 「달빛」5편을 선뵈고 있다.
어미 잃은 송아지는 들판을 가로 뛰고
송사리 떼 주둥이에 담겨지는 옛 하늘
마을 앞 여린 냇물은 그제도 그렇다.
무명길쌈 헹구어서
뒷산에 펼쳐 널고
봄 햇살 한 줌 잘라 앞 들판에 심었는가
먼 들판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어난다.
어머니 검은 손에
저승꽃이 한창이다
몇 년을 벼르어서
이제야 찾아온 고향
긴 한숨 숭늉에 담아 불효를 삼킨다.
- 윤신근,「귀향」전문 -
윤신근도 이미 1967년에〈크리스천신문〉에 동화로 입선되었고, 화홍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본 영역은 시보다 산문이어서 요즈음도 가끔씩 산문 쪽에도 눈을 주고 있다.
그는 한약으로 치면 감초와 같은 인간미가 풍기는 시인이다. 결코 꾸며대는 일 없이 생활화된 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좌중을 웃기고, 웃기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군데군데 던져 넣는 재주를 가진 보석 같은 사람이다.
위 작품은 작자가 고향을 찾았을 때의 감회를 적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풍경들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은 대로, 종장 부분의 의미 전달이 불명확한대로, 첫수의 “송사리 떼 주둥이에 담겨지는 옛 하늘 / 봄 햇살 한 줌 잘라 앞 들판에 심었는가”와 같은 감각적인 표현들이 돋보이며, 끝수에서는 불효에 대한 회한이 ‘저승꽃’과 ‘숭늉’이란 소재를 통하여 잘 표현되어 있다. 농촌을 고향으로 하는 이들이 타향에 나가 살다가 귀고(歸故)의 작품을 쓸 때의 감상은 거의가 ‘안온함’과 ‘가슴 아픔’ 일 것이다. 전자는 예보던 고향 산천이 변함없이 맞아 주는데서 오는 느낌일 것이며, 후자의 느낌은, 너도 나도 다 떠나고 난 텅 빈 골목길, 또한 남아 있는 사람도 이제는 곧 북망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며, 거기다 정겨운 이들의 몸에 푸석푸석 피어나는 검버섯을 바라보는 무상감에서일 것이다. 필자도 1,2연에서는 그 ‘안온함’을, 3연에서는 ‘가슴 아픔’을 그리고 있다.
pp21~26까지는 정석주가「휴전선」「들국화」「산비둘기」「허수아비」「조령秋詠」의 다섯 수를 싣고 있다.
갈바람 / 결을 따라 / 펄럭이는 / 영혼을 지녀
나처럼 / 저 혼자서 / 검은 하늘을 이고 섰다
저무는 / 가을 들녘에 / 허허 웃은 / 그 넉살.
침묵을 / 일념으로 / 한 세상을 / 고이 접어
차라리 / 빈 혼의 자리에 / 안온하고픈 / 나의 상념.
- 정석주,「허수아비」전문 -
정석주는 본명이 정환으로 1940년 예천에서 태어났다. 石柱는 그의 필명으로 이후 계속 필명만 사용하였다. 애초 자유시로 시작하여 1978년『자유투고가』란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았고, ‘충무문학’, ‘창조문예’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차츰 우리의 전통 음률에 집착하기 시작하여 1979년 가을에《시조문학》지에 초회 추천을 거쳤고, 그 연말에는〈샘터시조상〉에 가작으로 입선하였으며, 5회의 개인 시화전을 갖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면서, 나래의 회장으로 발분망식 천하를 주유하였다.
작품「허수아비」를 보기로 한다. 가을바람에 펄럭이는 영혼, 그처럼 쓸쓸한 영혼이라면 검은 하늘을 이고 섰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작자는 왜 혼자서 검은 하늘을 이고 섰다고 했을까? 나래 창간호를 내면서 그 앞길을 생각하는 데서 오는 험난함을 예견한 것일까? 이 작품을 쓸 때의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으되, 하여튼 허수아비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첫수의 종장에서는 허무의 빈들에 선 석주 자신의 쓸쓸한 너털웃음을 듣는 듯하다. 둘째 연의 중장 끝구 ‘진솔해 섰다’가 불안한 대로, 안주하고프나 안주하지 못하는 허수아비처럼 쓸쓸한 작자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듣는 듯하다.
2. 제길 찾기
1980년8월 1일, 두 번째 동인지『나래』를 펴낸다. 창간호와 마찬가지로 국판 크기의 허름한 모습이나 내용 면에서는 커다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첫째로 창간호에서는 종서 표기 체제였던 것이 횡서로 바뀐 점이요, 둘째로, 창간호에서는 시조와 자유시가 뒤섞여 다소 성격이 불분명한 점이 있었음에 반하여 2호부터는 집필진 전원이 시조 형식을 선택하였으니, 말하자면 제 길을 찾아 들어선 점이요, 셋째는 책머리에 백수, 월하 두 분 원로의 초대시를 싣고 있는 점이요, 넷째는 필진의 면모를 살펴보면 동인 2인의 작품에다 4인의 참여 동인의 작품을 곁들이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책머리에는 창간호 발행에 대하여 축하를 보낸 방명을 소개하고 있다. 국판 26면의 허름한 동인지 한 권의 창간에 대하여 국내의 문예지, 신문사, 문학회들이 열성적으로 큰 박수를 주었으니 참으로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동인은 정석주, 민병찬 두 사람이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참여 동인으로 최상남, 허민홍, 김경아 김필곤 네 사람이 작품을 선뵈고 있다. 권말 여적에는 4인의 동인 가운데 2인의 작품만 싣게 된 동행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으로 34면을 꾸미고 있다.
정석주는 pp 9~19까지에 걸쳐 ‘연가’, ‘비구니’, ‘우수절’, ‘태종에서’, ‘어느 서점에서」’, ‘봄의 연가’, ‘아네모네 일기’, ‘휴전선에서’, ‘산정유한’, ‘동해시초’ 등 10수를 선보임으로써 석주 특유의 다작의 전조를 보이고 있다. 이 중 연가와 비구니는 시조문학 1979년 가을호와 1980년 여름호에서 ‘산정유한’, ‘동해시초’ 등은 그가 뒤에 쓸 대하 연작시 산하의 출발점으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춘설을 밟고 떠난 가슴 부푼 여정의 끝
솔바람에 묻어나는 속살 푸른 은빛 바다
천리 길 휘인 심상이
정갈하게 풀어지다
어디쯤서 한 올 풀자 오륙도를 치는 물결
갈매기의 젖은 목청
바다 가득 고여지고
경건히 다독인 마음
미칠 곳이 없는 해원(海原)
고물(船尾)로 흩어지는
물보라며, 빛보라니
신라의 칼빛 무늬
풀잎 베듯 썰어낸 바다
태종(太宗)님 호탕하신 웃음
물살마다 빛을 문다
- 정석주,「태종대에서」전문 -
석주는 그 성품이 대하 연작 ‘산하’를 쓰도록 되어 있었다. 달력에 빠끔한 날이 있으면 필자에게도 심심찮게 동행을 요청해왔고, 동행하면 보헤미안이 되어 정처도 없이 떠돌아 다녔다. 1980년대 초의 우리는 흡사 조선말의 김립처럼 東家食西家宿의 날들이 비일비재했다.
각설하고 ‘태종대에서’를 살피기로 한다. /춘설을 밟고 떠난 가슴 부푼 여정의 끝/, 그렇다. 석주 자신의 생활의 고백이다. 이른 봄 어느 때인가 춘설이 자취눈으로 남아 있을 무렵 그 날도 석주는 예의 그 방랑벽이 발동했으리라. 새재 아래 신기리를 뒤로 하고 가슴 부푼 발걸음으로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으리라. 태종대는 반도의 한끝, 더 가고자 해도 뭍으로는 더는 갈 수 없는 ‘여정의 끝’이다. 청솔숲이 드리워진 끝에 쪽빛 바다는 지나새나 달려오고, 달려와서는 부서지는 기가 찬 풍경을 석주는 유달리도 좋아하였다. 그리고는 예외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곤 하였다. 아마 이 작품도 그런 호탕한 기운으로 草稿하였으리라 짐작을 해 본다. 석주의 다작은 상당 부분 우리 산하에 대하 감동이 냉철한 이성을 압도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하려니와 이 책의「휴전선에서」에서 철마와 노을과 잎새와 산새에 대한 해석들을 통해서도 그 일단을 볼 수가 있고 그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pp 21~30까지는 민병찬 편으로「봄비」「나무」「채광」「도야지」「오후의 나무」「육근」「오후」「기도」「도시의 개구리」등 9편을 싣고 있다.
내 지하 갱도를/굴진하는 곡괭이질
만재(滿載)한 신음들을/궤도에 밀어내며
이따금 손에 집히는/반짝이는 원광들
허물어 나갈 것은/나의 암벽뿐이다.
착암 침에 부서지는/찬란한 불꽃으로
암암히 잠긴 밤들을/별 뜨게 하리라
바닥이 나도록은/뚫어나갈 이 작업
패여진 동공으로/마침내는 무너지고
아아- 나의 무덤은/그 자리에 서리라
- 민병찬,「채광」전문 -
민병찬은 문경 출신이다. 향리에서 성장했으므로 아마 채광의 힘든 과정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나 이 작품의 채광은 그러한 실제의 채광이 아니다. 지하 갱도에서의 곡괭이질, 궤도로 밀어내는 만재한 신음들, 그러다가 이따금 손에 집히는 반짝이는 원광들은 그것이 詩作이든, 학문 탐구든, 또는 생활에서 추구하는 어떤 목적이든 상관없다. 인생은 무엇인가 추구하며 사는 동물이기에 가끔씩 성취의 기쁨에 취해 볼일인 것이다. “허물어 나갈 것은 나의 암벽뿐”, 옛말에도 “破山中賊易 破心中賊難”이라 했던가. 사람은 저마다 가장 큰 적을 가슴속에 안고 간다. 그 암벽을 우리는 날카롭게 벼린 착암 침으로 깨어내어야 한다. 가루가 되어 부서지는 찬란한 불꽃으로 어둠에 잠긴 밤하늘 같은 우리의 속마음을 낱낱이 부수는 싸움을 싸워야 한다. 작품을 끝까지 읽으면서 독자에게 전달되는 감동은 필자의 시를 향한 치열한 의식 같은 것이다. “아아- 나의 무덤은 그 자리에 서리라”
p20에서는 최상남의 ‘봄밤’이 보인다. 최상남은 경북 울진땅 월송리 태생이다. 관동팔경이 시작되는 한 폭의 참 잘 그린 산수화 같은 월송리에서 그녀는 시심을 곱게 키웠으리라. 나래에 동행을 시작하면서 그의 시는 빠른 속도로 때를 벗고 반짝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조문학에 추천을 완료하고 시조단에서 촉망받는 여류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쉽게 더워지는 솥은 쉽게 식는다던가. 결혼과 함께 문단에서도 내려서고 말아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허전하게 하고 있다.
산산(山山)이 진달래가/은빛으로 여위는 밤
뉘가 보낸 화신인가/울음 먹은 낙화들은
싸늘한/월면(月面) 가득히/밤을 새자는 얇은 어둠
미나리 파란 입술에/이슬 내려앉는 소리
가슴속에 숨겨 놓은/쌍학수(双鶴繡)는 날아가고
그 실밥/타는 서창(書窓)에/화문필이 울자는 밤
- 최상남,「봄밤」전문 -
습작의 첫 작품으로 보기에는 시조의 운율 갈무리와 시적 표현 방법에 너무 익숙해 있음을 본다. 첫수에서 /산산의 진달래가 은빛으로 여위는 밤/울음 먹은 낙화들/월면 가득한 얇은 어둠/ 등의 시구들과 둘째 수에서 “미나리 파란 입술에 이슬 내려앉는 소리”라는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의 혼용 수법은 뛰어난 표현 능력으로 사고자 한다. 그리고 특히 둘째 수 전편에서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서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아무튼 최상남은 출발하면서 보여준 한 수의 작품에서부터 결코 예사롭지 않는 예감을 갖게 해 준 시인이었다.
빛살로 여민 나절 네 목숨이 피더이다
손끝에 휘감는 삶 부채살로 뽑는 가락
여린살 핏줄에 꽂혀 한 점 불씨 타더이다
하늘 끝이 무너져서 갈증만 남더니만
두루뭉실 여울지는 살아 못다한 말이
한 마당 울음 삭히는 율동으로 젖더이다
한 아름 꽃더미에 통한 마저 취한 숨결
홀로 선 눈길 밖에 뼈를 긁어 귀를 트니
종생에 낱을 풀리듯 목숨의 빛 밝더이다
낱낱이 수를 놓은 이승의 외진 난간
가슴에 잠긴 뜻이 신열로 맺혀 와선
네 넋에 피를 덥히며 시름 훤히 풀더이다
-허민홍,「무가」전문 -
다음은 허민홍의 ‘무가’이다. 아정은 詩眼이 너무 일찍 뜨인 시인이다. 대학에서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곧《시조문학》에 추천을 완료(1981년)하였고, 1983년에는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의 카테고리 안에만 머물기에는 성이 차지 않았던가. 그렇게 난리가 쳐들어오듯이 시의 텃밭을 누비며 자유분방하게 설치(?)더니 이내 또 시업을 멀리하고 지금은 사업에 전념하며 경영자로서의 재질을 발휘하고 있다. 다만 동행의 손을 잡았던 우리들은 그의 너무 이른 절필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작품을 보기로 하자.
어느 굿판에서 본 남녀의 노래와 춤을 읊은 것이다. 필자도 한마당 굿을 보고 나서「무녀」를 쓴 적이 있거니와 사실 무녀의 굿 속에는 시가 들어 있다. 가사도 가락도 그 춤사위도, 접신(接神)의 경지에 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가 시적이다. 습작기의 작가로서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무난히 처리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게 보고자 한다.
첫수 초장과 끝 수 종장에서 각각‘~네’와 ‘~더이다’가 호응되지 않는다는 조그마한 흠을 가진 채로 무녀의 노래와 춤을 잘 떠내고 있다. 특히 둘째 수에서 무녀의 율동이 나오는가를 해석한 혜안과 끝수 초장의 “낱낱이 수를 놓은 이승의 외진 난간”과 같은 절창은 곧 이어 문단에 나온 아정의 소리를 미리 듣는 감동이 있다.
오동잎 떨쳐내고/구멍 내던 동지 바람
문풍지 여한 풀어/여린 숨결 잠재우면
먼 들녘/겨울새 울음/화롯가로 내린다.
어머니 기다림은/토장 속에 닳아가고
창호지 젖은 달빛/아랫목을 식히는데
더운 정/인두로 달아/겨울밤을 다린다.
- 김경아,「질화로의 추억」전문 -
김경아(김경자)의 ‘질화로의 추억’ 전문이다. 김경아는 이후 나래 10호까지 ‘김경자’란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첫선을 보인 질화로는 이미 ‘질화로’가 아니라 반짝이는 도자기이다.
두 수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어느 시골 마을 조용한 초당에 가서 앉게 된다. 밖은 오동잎도 다지고 동지 바람이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있다. 창호지 구멍으로 밀려오는 찬바람이 아니라 “구멍을 내는 바람”으로 주체를 바꾼 표현이 벌써 예사롭지 않다. 둘째 수에서도 초장이 닳아가는 것과 어머니의 마음 졸임의 대비, 창호지에 은은히 비치는 달빛이 종이를 적신다는 과장과, 그 달빛이 아랫목을 식힌다는 과장이 이 시의 분위기에 어색하지 않다. 첫수의 종장을 받아 둘째수의 종장에서도 시적 자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①산사의 밤
초여름 별빛으로 여울 소리 고와지면
아자창 설레이는 죽로차 푸른 향기
산승(山僧)은 바람이 되어 적묵당(寂黙堂)을 쓸고 있다
② 무덤가에서
푸른 하늘 쓰다듬어 휘움해진 산자락에
나직한 새소리로 세월은 잠이 들고
삘기꽃 하얗게 피어 슬픈 사연 흩고 있다.
③ 산메아리
외론 그 가지 끝에 풀빛 바람 서성이고
눈이 먼 아기 쑥새 그리움을 혼자 털다
가슴 빛 파랗게 젖어 돌아 오는 산메아리
- 김필곤,「산정소묘」전문 -
2호의 말미에는 碧波 김필곤이 서 있다. 벽파는 부산 사투리 특유의 톤이 높은 시인이다. 이 무렵의 나래동인들의 대부분의 풍모가 그러했지만 벽파와 벽사(김철진), 아정(허민홍), 강세화, 백암(윤신근), 거기다 석주가 함께 어울리면 그곳이 어디든 그 밤이 하얗도록 시끄러웠다.
특히 벽파는 그 자그마한 체구에 어디로 술이 그렇게나 들어가며, 어디서 힘이 그렇게 나오는지 참 기인이었다. 위「산정소묘」단수 3수는 모두 비슷비슷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둘째 수 ‘무덤가에서’를 보기로 한다. 우선 석줄 시에다 무덤이 있는 호젓한 산자락을 잘 스케치하고 있다. 초․중․종 각 장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인과 관계로 짜고 있어 시가 살아 있다. 푸른 하늘을 쓰다듬어야 산자락은 휘움해지고, 산새 들새 잡새들이 나직이 울어야 그 소리에 세월은 포근히 잠이 들고, 삘기꽃 꽃씨알이 하얗게 흩어져야 슬픈 사연들은(분명하지는 않으나)거기에 실려 흩어진다고 노래하고 있다.
세월과 새소리, 슬픈 사연과 하얀 삘기꽃이 추상:구상, 청각과 시각의 이미지 동원 등 단수 속에서의 반죽이 첫 작품부터 돋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2호에서 ‘참여’란 관형사를 달고 나온 4인의 작품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이네들은 곧장 신춘문예,《시조문학》,《월간문학신인상》등의 관문을 통과하여 자신의 확실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3. 나래 펴기
1980년을 마감하는 섣달 초열흘,『나래시조문학』제 3호를 상재한다. 국판(菊判) 모조 58면의 동인지로 창간호와 2호에 비하여 제법 태깔을 갖춘 모습이다. 권두언은 민병찬 동인이 쓰고, 전라도의 정소파(鄭韶坡), 이정룡(李政龍) 두 원로를 초대하고 있다. 동인의 수도 8명으로 늘어났으며, 이종철, 전향란이 참여 동인으로 작품을 선뵈고 있다. 말하자면 나래를 펴기 시작한 셈이다.
사계(四季)를 미닫이에/문신처럼 새겨 뜨며
새 소리 물소리도/채집하듯 놓인 뜨락
만산(滿山)이 설레는 나절/석류마저 가슴 열고
널 바람 놓아 둔 정/빛살 받아 물이 들고
조부님 어우린 정/노을 속에 사립 열어
오가던 아픈 다리를/멧방석에 앉아 푼다
청여치 나래 끝에/백로(白鷺) 바람 일렁이고
다룸리 메밀꽃에/나귀 방울 울려날 듯
추석장 대목을 꾸며/밤이슬에 젖는 객수(客愁).
- 김경자,「고향집 사랑채는」전문 -
2호부터 참여한 김경자의 여섯 편 작품 가운데서 한 수를 골라 보았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의 한 장 그림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고향집 사랑채」이다. 사계(四季)를 두고 그 앞을 지나치려면 ‘어험’하던 위엄 있는 헛기침 소리와, 거의 동시에 들리던 놋재떨이에 담뱃재 떨어내는 소리, 그 위엄과 사랑을 함께 지니셨던 할아버지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많은 신식 할아버지들은 위엄은 잃어버리고 저급한(?) 사랑만 가지고 손자들과 함께 어울려 그들의 친구가 되고만 있는 것 같다. 이야기가 엇나가는 것 같지만 현대의 잘못된 사회 현실의 적지 않은 부분은 어른이 어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맹목의 사랑, 이기적인 사랑만 베푸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각설하고 김경자의 「사랑채」를 보기로 한다. 그 사랑채의 미닫이에는/사계(四季)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고, 뜨락에는 /새소리 물소리가 채집하듯 놓/여 있다. 그리고 /만산이 설레는 나절/이면, /석류마저 가슴/을 여는 사랑채이다. 2연으로 가면 /정(情)/이란 추상 명사가 초장에서는 빛살을 받아 물이 들어 있고, 중장에서는 사립을 밀기도 한다. 추상 명사의 의인화를 통한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낯설지 않게 구사하고 있다. 다만 2연은 초․중장과 종장의 연결에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종장의 주체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3연으로 가면 /청여치 나래 끝에/백로 바람 일렁이고/라는 가구(佳句)를 뽑아들고 초장을 시작한다. 그러나 중장에서 /달무리가 메밀꽃에/나귀 방울 울려 날 듯/ 이란 앞뒷구의 호응이 되지 않는 구절이 독자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달무리가/는 /달무리진/ 정도로 고쳐 놓아도 좋을 뻔하였다. 이즈음의 김경자의 모습은 시적 장치를 배치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음에 비하여 연결 고리가 튼튼하지 못한 결점을 보이는 점과, /철맞은 울음 삼동(三冬) 한(限)을 다 푼다/산촌 일우(山村一遇,2/2 종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조의 기본 률을 다스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등이 아쉬움으로 나타나고 있다.
갯바람 다독이다 동백은 혼자 붉고
온통 그 아침 안개 깃 사리운 아기 섬들
청해호 갑판에 올라 가슴 가득 안는다
유채꽃 망울 트는 봄은 지금 한창인데
차라리 인생살이 때 묻은 그 옷자락이
다도해 물빛 헹구며 낮달인 양 흐른다.
- 김필곤,「다도해에서」전문 -
벽사(碧沙) 김필곤의「다도해」이다. 동백꽃은 왜 혼자서 붉는가? 억센 갯바람을 다독이다 보니 붉어진 것이란 주관적인 해석이 보편성을 획득하며 자기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음을 보게 된다.
앞의 김경자의 시가 오밀조밀한 집안을 다정다감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이 작품은 시적 공간이 크게 잡혀 있다. /청해호 갑판에 올라/아침 안개 깃 사리운 아기 섬들/을 가슴으로 끌어안는, /다도해 물빛 헹구며 낮달인 양 흐르/는 인생살이의 때 묻은 옷자락을 바라보고 있는 시이다. 스케일이 큰 만큼 읽는 느낌도 시원하다. 하더라도 2연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주제 의식이 좀더 치열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지는 꽃 흐르는 잎 이어지는 선율들이
뜨겁던 심장 깊이 서릿발도 치게 하여
건반을 두드려 대는 뉘 것인가 저 손은
천지에 두런두런 짐을 싸는 소리들
표표히 등을 돌리는 하이얀 나그네들
호올로 광야를 쓰는 뉘 것인가 저 손은
- 민병찬,「겨울 손」1/4,3/4 -
민병찬은 네 수를 각각 /뉘 것인가 저 손은/이란 도치형으로 시를 마치면서 그에 대한 답이 /겨울 손/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일찍이 만해(卍海)가 /알 수 없어요/라는 시에서 /누구의 발자취입니까/누구의 얼굴입니까/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와 같은 여섯 번의 물음이 모두 /알 수 없어요/라는 대답으로 귀결되는 형식을 취했던 것과 상통한다. 작품 속에 놓여 있는 소재들이 지향하는 ‘유기적 전체’(organic whole)가 각 수의 종장 끝과 제목으로 집약되어 있어서 작품이 단단해 보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다만 둘째․넷째 수의 종장 첫 음보는 /천애(天涯) 난간에/, /와서/ 등으로 5음절과 2음절을 취함으로써 시조가 시조이게 하는 큰 특징의 하나인 3음절 황금률을 깨뜨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고시조의 형태를 더듬어 올라가면 3음절을 꼭 헌법으로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3음절을 놓아야 한다고 시론을 편 학자의 글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은연중에 우리 민족의 정서적 호흡이 만들어 낸 틀이 종장 첫음보에는 3음절을 놓도록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러므로 등단의 과정을 밟는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에는 감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종장 첫음보 3음절 고수’의 현상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는 도저히 3음절로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면 파격의 한 현상으로 ‘열어 놓아’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다. 다만 그 인식이 문제일 뿐인 것이다. 이런 잣대를 깎아서 들고 이 작품을 본다면, 둘째․넷째 수의 종장 첫 음보는 과연 3음절로는 대치할 수가 없는 것일까? 하는 문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청룡산 학 숲이 옆으로 비껴서고
弓弓乙乙 낙동강이 재주를 부리며
청아한 선비의 넋을 가린 곳이 예구나
청운의 큰 뜻 심은 三樹木은 늙었어도
푸르른 가지마다 英才 길러 재목 쓰니
그 그늘 발 아래에서 몸 둘 곳 바로 찾으리
- 유재희,「三樹亭」전문 -
유재희가 건축한 정자(亭子)이다. 삼수정(三樹亭)이 어디 있는지 알수는 없으되, 옆으로는 청룡산 학숲이 둘러서고, 앞으로는 유유히 낙동강이 흐르는, 거기서 나라의 동량을 기르던 정자이다. 첫 수의 초․중장이 선경(先景)이고 나머지 끝까지가 후정(後情)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수 중장의 궁궁을을(弓弓乙乙)이란 한자어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떠내는 데 성공하고 있고, 둘째 수에서는 하마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낙락(落落)한 고목이 된 세 그루 나무를 바라보며, 청청한 가지마다 열려 있는 것 같은 거기서 길러진 영재들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나무의 발치에 서면 옷깃을 여미게 된다는 작자의 마음가짐을 읊고 있다. 다만 첫 수 중장 끄트머리의 /재주를 부리며/에서와 같은 서술어의 어미 변화는 재고할 필요가 있고, 둘째 수 중장은 정독해 보면 /푸르른 가지마다/영재 길러 재목 쓰/ㄴ다는 앞뒷구의 내용이 다소 삐걱거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아비요 어쨀라요/참새도 없는 들판
넓은 들 혼자서/외로워서 어쨀라요
서릿발 차가운 들판/별도 없는 밤이면
그들, 참새들도/걱정을 하대요
남루한 그 옷으로/겨울 나기 힘들다고
양지쪽 성긴 울타리에/걱정들ㅇ디 열렸대요
하늘에는 허허로운/구름만 떠 있고
몸담아 지켜 온/바람뿐이 들판
아비요 외롭겠지요/이 겨울 우쨀라요.
- 윤신근「겨울 허수아비」전문 -
시적 화자의 허수아비를 향한 독백의 시이다. 윤신근은 허수아비를 향한 시적 화자의 독백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자 하고 있는 것일까? /아비요 어쨀라요/참새도 없는 들판//남루한 그 옷으로/겨울나기 힘들/텐데, /몸담아 지켜 온/바람뿐인 들판//아비요 외롭겠지요/이 겨울 우쨀라요// 윤신근의 역량으로 시적 기교를 못 쓸 바가 아니로되, /양지쪽 성긴 울타리에/걱정들이 열렸대요/ 정도밖에는 수사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저 순탄하게 겨울 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의 이미지를 그대로 그려 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독자에게 다가오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단순하게 허수아비를 향한 독백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허수아비’에서 ‘허수’라는 접두사(?)를 빼 버렸을 때 ‘아비’가 가져오는 언어의 뉘앙스가 그러하고, 전 편의 행간에 숨겨져 있는 상징이 또한 그러하다. /아비요 어쨀라요/이 겨울 우쨀라요/라는 걱정스런 물음의 행간에는 골 깊은 농민들의 주름살도 보이고, 쭉정이진 곡식단의 쓸쓸함도 보이고, 나아가 휑뎅그렁한 빈 집, 찬 바람이나 나드는 농촌 풍경도 보이는 것이다. symbol의 묘미는 작자의 유유자적과 독자의 다양한 해석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哨兵의 눈빛이 더워/마니산은 붉게 타고
충정이 이는 쪽빛 바다/분노이듯 물결이 일면
지평선 저 건너편의/피빛 울음 귀 에인다
어디까지 내 조국이고/어디부터가 아니란 말인가
壇下에서 弘益을 편/인의 음성 낭랑한데
그 무슨 업보로 하여/견준 칼끝에 살기만 돌아
산빛도 싱그럽고/바다 결도 비단폭일레
半興은 청학춤인데/나머지는 꼭두놀음이여
한 사려 불타는 낙조/더운 눈물로 지운다.
- 정석주, 山河4「강화도에서」전문 -
석주의 /山河/에는 항상 넘쳐흐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강화도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첫 수에서는 단풍든 산과 초병의 눈빛, 쪽빛 바다와 충정, 지평선과 핏빛 울음이 하나로 얽혀 움직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합일의 경지에서 움직일 때 그 자연은 새로운 모습으로 작자의 앞에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할아버지의 음성도 듣게 되고, 동강난 국토의 북쪽에서 외치는 음성도 듣게 되는 것이다.
이쁜이 소꼽쟁기/이슬 젖은 草堂 가에
별을 괴고 달을 괴면/절로 괴는 지난날들
술 익는/고향의 밤에/사무치는 하얀 꿈들
풋대추 이쁜 바람/북두칠성 잠 재우고
반딧불 아니라도/촉촉해진 정감인데
우물 가/빈 항아리에/잠이 들던 그 마음.
- 최상남,「박꽃」전문 -
박꽃! 이 땅에 많고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지지만, 박꽃만큼 청순한, /하얀꿈/을 간직하게 하는 꽃이 또 있을까? 꽃의 크기가 커서인가? 이름다워서인가? 그도 아니면 향기가 좋아서인가? 아니다. 앞에 든 꽃의 속성으로 친다면 박꽃보다 앞자리에 설 꽃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박꽃! 하면 유다른 정감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골 초가지붕 위에서 여름 저녁에 메케한 모깃불 사이로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히 피고 지던, 할머니 무명 치맛빛 그 색깔의 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여기서 아무리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그 꽃에는 /별도 괴고, 달도 괴고, 우리의 지난날들도 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안방 아랫목에 보글보글 술이라도 익는 밤이면 /하얀 꿈/이 사무치는 우리의 꽃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 수에 오면 카메라의 앵글은 /박꽃/에서 약간 방향을 옮긴 듯하다. /박꽃/에서 얻은 상념을 형상화한 것이겠으나, /풋대추, 우물 가, 빈 항아리/ 등의 소재들이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는 제목을 향한 ‘유기적 총체’라는 면에서 볼 때 약간의 거리를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산창에 달이 돋아/가벼이 바람 일면
산굽이 돌아선 곳/구름 층층 쌓이는 탑
핏금진 木魚 한 마리/은빛으로 파닥인다
범종으로 떨린 목청/뻐꾹새도 울음 울고
목탁으로 울린 가락/깨지 못할 임의 바다
보오얀 살결 너머로/품에 넘친 미소여
命의 씨줄 푸는 독경/쌍무지개 달이 뜨고
꽃 안개 눈뜨는 밤/연잎 곁에 와 닿는 정
별빛도 숨결에 닿아/푸름으로 흐른다.
- 허민홍,「석굴암」전문 -
흙과 돌이 다 닳도록 나드는 석굴암 가는 길! 그러나 그 많은 범인(凡人)들 중에 석굴암을 새로 짓는 자는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가? 세월은 흘러 1200년, 여기 ‘아정’ 허민홍이 석굴암을 새로 축조해 놓았다. 첫 수는 상황 제시 연이다. 그러나 단순히 상황만 제시한 데 그친 연은 아니다. /핏금진 목어(木魚) 한 마리/은빛으로 파닥/이는, 허민홍이 만든 상황이 살아서 반짝이고 있다. 둘째 수로 가 보자. 아름답고 조용한 소리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범종 소리, 뻐꾸기 소리, 목탁 소리가 어울어진 /님의 바다/에서, /품에 넘친 미소/에 취해 있는 작자의 모습을 본다. 셋째 수로 가면 이제 시각(視覺)의 잔치가 베풀어 져 있다. /명(命)의 씨줄 푸는 독경/에, 쌍무지개와 달이 뜨고, 꽃 안개가 눈을 뜨고, 연잎이 눈을 뜨고, 하늘에는 푸르게 흐르는 별빛의 숨결이 있다. 말하자면 독자의 청각과 시각을 건드려 “地上의 彼岸化”에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20대 초반에 반짝이던 허민홍이 세속(世俗) 속으로 투신한 뒤 일찌감치 절필(絶筆)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4. 매듭 맺기, 그리고 새 출발
1981년 3월 1일,『나래시조문학』제4호를 상재한다. 국판 90면의 동인지를〈창회 15주년 기념 특집〉으로 발간하고 있다. 특집으로 월하(月河) 리태극 선생님의 축사, 1980년도《시조문학》지 출신 15명의 작품 초대로 꾸미고 있다. 유재희, 허민홍이 자축사(自祝辭)의 변(辯)을 쓰고 있으며, 동인은 3호에 비해 ‘전향란’ 1명이 더하여 9명이 참여하였고, 안중식의 초대 한시(漢詩), 그리고 특기할 것은 참여라는 이름으로 13명이 작품을 선뵈고 있는 점이다. 그들의 문단 행보를 미리 정리하여 분류해 보면 신춘문예의 화려한 등단 과정을 거쳐 문단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은 남궁 영, 권형하, 박영식,《시조문학》이나《월간문학》등의 문예지에 추천 과정이나 신인상 당선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시조단에 중진이 된 강세화, 허성욱, 장정애,신후식, 안중식, 전국 민족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던 최광순, 역시 전국 규모의 백일장이었던 국풍 백일장에서 입선했던 남전희 그리고 지금 예천 문협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두년, 아! 그리고 밤하늘의 유성처럼 잠시 반짝이며 시조의 텃밭을 개간하다 사라진 박명진, 조상연 등의 이름들이 보이고 있다.
동인지 4호를 읽으면서,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넘기면서 한 개의 매듭을 맺고 새 출발을 다짐하는 나래인의 엄숙한 숨결을 들을 수 있었다.
창회15주년을 축하해 준 58개의 문학회와 문예지, 그리고 신문사, 방송국들의 방명이 보이고 있다. 4호의 이야기는 3호에서 언급한 8人의 동인이 모두 참여하였으므로 이들을 개별로 찾아가는 작업은 하지 않기로 하고, 새로 동행의 손길을 주어 급성장하다가 그 만큼 또 쉽게 우리의 곁을 훌쩍 떠나버린 전향란의 작품과 참여 동인 가운데 눈에 뜨이는 몇 수를 논의해 보기로 한다.
(가) 한 눈금도 되지 않는/추상의 몸무게로
돌아보지 않아도/따라다니는 한 사람
공간을/초월해 사는/너와 아의 인연이여
양지쪽 언어들은/그늘로 들어서고
가득한 눈빛을/어둠 속에 감추어도
세월의/지우개로도/지울 수 없는 가슴이여
- 전향란,「그림자」전문 -
(나) 지금쯤은 환생하여/무엇이 되 있을까
흘러간 일월만큼/碑文은 낡아가고
바람도/이 곳쯤에선/나즈막히 흐릅니다
허망한 가슴으로/회억이 밀려오고
悲願을 쪼이다가/눈앞을 흐려 놓는
자잘한/지저귐들도/가슴으로 흐릅니다.
- 전향란,「선인들의 무덤가에서」전문 -
시㈎에서는 /그림자/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한 눈금도 되지 않는 추상의 몸무게/돌아보지 않아도 따라 다니는 한 사람/, 그래서 /공간을 초월해 사는 너와 나의 인연/이 맺어져 있다./양지쪽 언어들/이, /그늘로 들어서고/세월의 지우개로도 지울 수 없는/ 것이 그림자이다. 그림자를 바라본 전향란의 상당한 고민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한 마디로 첫 선을 뵈는 작품 치고는 너무 깔끔한 작품이다.
시㈏는 무덤가에서 거기 묻힌 분에 대한 회억을 쓴 것인데 /흘러간 일월만큼, 비문은 낡아 가고/ 등의 가구(佳句)를 뽑아 들고 있다. 하더라도 이 작품은 몇 군데 걸리는 곳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주제를 대표한다고 볼 만한 제목에서 /선인의/라는 관형어가 꼭 필요한가 하는 점이요, 다음으로는 가장 무겁게 처리해야 할 둘째 수 종장이 과연 위의 내용을 잘 받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회한/과 같은 시어들이 시조 작품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바 이런 것들은 그 근원이 독자로 하여금 수긍할 수 있도록 상황을 제시해 줌이 필요한 것이다.
이 밖에 /전등사를 오르며/와 함께 본 전향란의 첫 모습은 시조의 보법(步法)을 정상적으로 걸으며 아직 군데군데 떫은맛을 지니기도 하였으나 구석구석에서 시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깊이 고민한 흔적을 보인다는 점에서 호감을 사고 있다. 이후 전향란은 필자의 기억이 아슴하여 확실하지는 않으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전국 민족시 백일장에서 입상하여 재질을 빛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끼고 싶은 동인의 한 사람이어서 필자가 구미상업고등학교에 재직할 때 학교 신문 창간호에 전향란의 작품을 초대한 기억이 있다. 아무튼 출가와 함께 바로 절필한 그녀를 생각하면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참여란 이름을 달고 선을 뵌 무려 13명 중 다섯 분의 작품만 한 수씩 골라 보았다. 열세 분 참여 동인의 작품을 대하면서 필자는 잠시 눈을 감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파노라마를 보기로 하였다. 날렵한 체구에 한복 차림, 거기에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애정으로 나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보살피는 꼿꼿한 선비 안중식, 듬직한 체구에 항상 명랑하게 시끌시끌하던 박명진, 조용하면서도 예의바르던 남궁 영, 착실한 크리스천이면서 태권도에 일가견을 가졌던 허성욱, 잠시 만나 이름만 아득한 조상연, 아담한 체구에 만단사설을 펴면서 정신없이 술을 들이켜고는 마침내 원위치 시키려면 애를 먹던 자동 펌프 권형하,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서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자세로 매사에 기지를 발휘하는 의지의 사나히 신후식, 우편배달로 거리를 누비면서도 끊임없이 시상을 정리하던 박영식, 가슴에 불을 지핀 메리놀의 천사 장정애, 강원도 자연만큼이나 순수한 모습으로 그에 걸맞은 순진무구의 실을 자아내던 최광순, 술독에 빠졌다가 들판 가운데로 나가 쌓아놓은 짚더미가 자기 집 안방인 줄 알고 신 벗고 옷 단정히 개어놓고 외박하던, 그러면서도 시작(詩 作 )에서는 한 치의 허술함도 보이지 않던 강세화, 편지 봉투 한 장도 뒤집어서 다시 쓰며 매사에 자기주장이 독특했던 김두년, 어눌한 말솜씨 속에서도 경상도 사나이의 진솔이 돋보이던 남전희,…… 이들 가운데 지금은 신후식과 안중식만 남아 나래를 지키고 있고 다른 이들은 홀로 서기로 한국 시조단에 중진이 된 분도 있고, 시조의 텃밭을 떠나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 모두가 흐르는 물에 떠오는 꽃잎처럼 그리운 이름들이다.
(가) 호밋날로 땅을 쪼아
넋을 심고 되 덮으면
올올이 모시 옮듯
밭이랑에 뿌린 愛慕
잔솔밭/산모롱이로
겨울 낮이 가고 있다.
- 박명진,「파종기」2/2 -
(나) 달빛은 뜰에 앉아
한 생각 깊숙하고
바람은 간간이
오동잎을 떨구는데
귀뚜린/섬돌에 숨어
들창문을 부셔댄다.
- 남궁 영, 가을 밤 1/2 -
(다) 솔내 더 싱그럽고
빛도 여문 꽃봄인데
날이 선 칼바람이
또 한 차례 불어와도
탁 트인/벼랑에 올라
가슴 열고 섰으란다.
- 박영식,「산을 오르며」전문 -
(라) 너 떠나고 그 빈 뜨락
풀씨가 자리잡고
쪼그리고 귀 모으면
부리께로 물괴는 소리
하늘도 적막에 썰려
풀밭으로 무너지다
한참을 달아가도
그저 엉기는 초록
불현듯 바람에 묻혀
되짚어 본 뜨락에는
몇 자국, 우리의 거리가
강물 되어 흐른다.
- 장정애,「강 건너에서」1-2/3 -
(마) 아직은 가슴으로
받아줄 수 없는 사연
햇살로 다진 슬기
부는 바람 실어 가면
소망은 구천을 돌아
하얀 눈꽃 날린다.
- 최광순, 鳶 1/2 -
시㈎를 보기로 한다. 박명진은 아슴한 기억에 농장을 경영했던 것 같다. 이 시도 이른 봄 농장에서 파종을 하면서 그 감회를 적은 것이다. 뿌리는 씨알에 대한 애정이 /넋을 심고 되덮으면/, /밭이랑에 뿌린 애모/ 등에 잘 나타나 있고, /잔솔밭/산모롱이로/겨울 낮이 가고 있다./는 종장 처리도 무난하다. ㈎에서 박명진이 농사일의 풍경화 한 장을 통하여 자연과의 합일(合一) 같은 것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면 시㈏의 남궁 영은 아주 감각적이다. 시㈏에 나와 있는 소재들은 달빛, 바람, 귀뚜리 등이다. 이들 소재를 의인 내지 활유로 처리하여 생동감 있는 /가을밤/을 꾸미고 있다. 첫 수는 순수한 서경인데 둘째 수에 가면 /네 생각 깊숙한 곳에/모닥불을 피워 놓고/와 같이 서정이다. 말하자면 선경 후정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참여로 나온 첫 작품으로는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다음은 시㈐이다. 수식어들을 제(除)하고 보면 “봄인데 가슴을 열고 섰으련다”라는 간단한 문장 하나를 가지고 만든 한 수이다.간단한 한 문장으로 만든 시인만큼 흐름이 순탄하고 내용이 명료하다. 그러나 단수 완결성이라는 면에서 볼 때 허전한 감을 버릴 수는 없는 작품이다. 박영식도 시를 감각적으로 쓰는 시인이다. 이 시도 봄 산에 오르는 신선한 느낌을 “솔내, 싱그럽고, 여문 빛, 꽃봄, 탁 트인” 등의 많은 시어들을 통하여 구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에 전개되는 박영식의 시들을 들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되겠지만 박영식의 시에는 늘 ANIMA의 소리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과 함께 출발하면서 선을 뵌 /누이/라는 작품에서도 시적 화자는 남성이나 그 형성하는 분위기와 작품 전체에 스민 이미지의 표출은 사뭇 ANIMA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어서 출발부터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라)는 /강 건너에서/ 부르는 장정애의 첫 노래이다. 부산 메리놀 병원 백의의 천사로서 바쁜 틈틈이, 가슴에 지핀 불을 시화전으로 시집으로 정신없이 발표하더니 개인적인 피하지 못할 사정으로 나래를 떠난 뒤 이즈음 몇 년간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작품을 보니 문득 청순하던 그녀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너 떠나고 그 빈 뜨락/ 풀씨가 자리 잡고/, 시작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네가 떠난 빈 자리에 자리 잡은 풀씨! 그 풀씨가 자리 잡은 풀밭에 혼자 쪼그리고 앉으면 /하늘도 적막에 썰려/무너지는/허전함에/부리께로 고이는 물소리/를 듣는다는 고백이다. 그 풀밭은 /한참을 달아가도/그저 엉기는 초록/뿐, /다가설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몇 자국 거리/밖에 선 /너/의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시(마)는 최광순의 연(鳶)이다. 얼레로 연줄을 감고 또 풀면서 하늘 멀리 유유히 펄럭이는 연을 보며, 추상 속이기는 하지만 아득한 꿈을 가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아직은 가슴으로 받아 줄 수 없는 사연/, 그렇다. 연이 하늘 멀리 떠 있는 것은 /아직은 받아 줄 수 없는 사연/이 있어 그럴 거다. 초장을 받아서 /햇살로 다진 슬기/를, /부는 바람/이 /실어 날린다/고 첫 수를 맺고 있다. 약간은 추상의 맛을 지닌 채로, 그러나 “태풍 전야의 고요”를 지닌 추상을 보는 것 같아 독자의 눈을 긴장하게 하는 작품이다. 첫 선을 뵌 작품부터 무엇인가 한 건을 터뜨릴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일찍 들어선 그 만큼 일찍 세파 속으로 자리를 옮긴 최광순을 지금도 아까워하는 마음 그지없다.
5.〈나래회보〉, 그 창간에서 종간까지의 의미
1981년 8월 1l일『나래시조』제 5호를 세상에 보낸다. 필자는 동인지 제4호의 평설 제목을“매듭짓기 그리고 새 출발”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동인지 5호를 펼치자 정석주 회장은 辨(3)이라 題한 머리글에서「새로운 항로에 들며」를 주제로 포부를 펼치고 있다. 제4호에서 창회 15주년 기념 특집으로 한 매듭을 짓고 새 출발의 의미를 가지고 상재한 제5호 동인지는 과연 지금까지 4권의 동인지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보이고 있다. 우선 볼륨에서 국판 142면이라는 놀라운 증면을 보인 것이 그러하고, 정완영, 박재삼 두 원로 선생님을 동인회의 고문으로 모신 것이 그러하며, 지금까지 말미에 붙였던 광고를 삭제한 것과, 무엇보다도 32명이란 거대 가족으로 늘어난 동인의 면면이 그러하다.
거뭇한 갱지, 약간의 곰팡내가 풍기는 책을 열고 들어서면 백수 선생님의 ‘방짜론’이 권두를 장식하고 있고, 특집으로 영남시조문학회 정재익 회장, 시조시인협회 전남지부 경철 주간, 부산시조문학회 민홍우 회장, 씨얼문학회 김광수 회장의 작품이 초대되어 동인지의 무게를 더하고 있으며, 이어서 32명의 동인들이 가나다순으로 필자를 향하여 낭랑한 음률을 보내오고 있다. 권말에는 간단하게 그러나 명료하게 몇 줄의 연혁이 정리되어 있다.
또 하나 이 시기에 특기할 것은 월간〈나래회보〉의 간행이다. 지금과는 사회의 모든 여건이 사뭇 달랐던 80년대 초기에 회보로써 전국에 흩어진 동인의 동정을 알리고 작품을 통하여 교유를 괴한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후 회보는 8호까지 발간되면서 동인의 결속에 하나의 촉매제가 되었고, 부산 거주 동인들은 따로 〈나래부산회보〉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이 자리를 통하여 나래 회보의 족적을 언급해 두는 것이 후일에 나래사가 분명하게 되리라 생각하여 호별로 요약 정리하기로 한다.
창간회보를 펼치면 1981년 4월 15일을 발간일로 하여 창간사가 간명하게 나타난다. 발간의 목적과 열성적인 참여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초대시로 이은방 시인의「한촌」이 실렸고 벽사 김필곤의 샘터시조상 당선작「아침」이 산뜻하다.
서낭당 까치소리 부서지는 잿빛 어둠
찬물 속 열 손가락 고운 삶을 씻어내면
아침은, 파란 아침은 눈을 뜨는 환한 불씨
- 김필곤, 당선작「아침」전문 -
이어서 同誌 입선작으로 조상연의「촛불」과 김경자의「새소리」가 실려 있다. 전국에서 응모한 작가 가운데 유독 나래에서 상을 독차지하였음을 볼 수가 있다. 이어 동정과 賞薦 여적 신간안내 원고모집 등의 내용으로 신국판 8면을 채우고 있다. 賞薦의 내용으로는 김필곤, 조상연, 김경자의 샘터시조상 석권, 정석주의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김경자, 허민홍, 권형하의《시조문학》지 천료가 소개되고 있다.
제2호는 1981.5.16 발간으로 역시 석주의 권두언이‘辭說’이란 제목으로 실려 고, 초대작품으로는 김준, 최기현 두 시인의 작품이 보이며, 동인 작품으로서 벽사(김필곤), 석하(권형하), 진실(최상남), 지심(리강룡), 계산(용진호), 낭정(신순애), 벽파(김철진), 정애경, 박필상, 김민정, 김말영, 허성욱, 강세화, 남전희 제씨의 작품이 보인다. 이어 동정, 신간안내, 동인지 발행 축전 소식, 동인주소록 등으로 8면을 꾸미고 있다.
제3호는 1981.6.15에 발행한다. 권두언 자리에는「辭說2」라는 제목으로 김벽사의 사설이 앉아 있다. “종달새는 종달새의 노래가 있고 풀꽃은 풀꽃만의 독특한 향기와 빛깔이 있으니 구태여 황새와 장미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색깔론을 펼치고 있다. 초대작으로는 김교한의 섬진강이 흐르고 신작 모음으로 남전희, 최광순, 허성욱이 있으며, 동인작품으로는 전향란, 김민정, 박명진, 장정애, 리강룡, 박영식, 신후식, 정애경, 김두년, 김말영, 박필상, 김철진, 양선희, 이상섭, 방성운, 김시현, 차정미가 보이며 권말에는 민병찬의 편지 ‘나래에 좀 더 따슨 애정을’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끝줄에는“본 회보는 夏木 최광순 님의 협찬으로 제작하였습니다.”라는 摘記가 있다.
제4호는 1981.7.16 발행이니 월간으로 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두에는 장정애의 편지가 자리 잡고 있고, 초대작으로는 박경용 님의「난」이 은은한 향기를 뿌리고 있다. 동인 특집으로 차정미의 백목련외 3수와, 김시현의 감꽃 외 2수가 보인다. 동인 작품으로는 윤신근, 이상섭, 정애경 그리고 남전희의 국풍 81 시조백일장 차석 입상작품「뿌리」가 실려 있다.
문풍지 떨던 삶도
풀어 보면 한 판 굿을
한 자락 소리에도
눈이 번쩍 뜨인 세월
오천년
이어온 맥박
산이 맑은 두릅 냄새.
북치고 장고 울려
스르르 열린 하늘
여울져 봄이 고운
산하가 다가들면
오월은
물 돋은 미류
푸른 잎을 보겠다.
이어갈 저 몸부림
꽃불 타는 광장에
불러보는 메아리
손이 예쁜 사연들
무지갠
빗장을 뚫고
빗질하는 비둘기.
- 남전희 국풍 81 입상작품「뿌리」전문 -
기타 賞薦과 동정, 신간 안내 등으로 4면을 발행하였다. 賞薦에는 박명진의 초회 추천 소식이 보인다.
회보 5호는 1981.9.1에 6면을 발행한다. 권두에는 회원께 띄우는 글을‘정원사의 마음으로’라는 제목으로 쓴 필자의 글이 보인다.“삶이란 것을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능동적 처신으로 보고, 이 행동의 귀결점을 나래로 하는, 꽃을 피우기 위한 정원사의 마음으로 맑고 고운 샘터의 물을 한 두레, 한 두레씩 퍼서 들고 시가 자라는 우리의 온상 나래를 키울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다음은 계간 현대시조 복간 3호에 실렸던 원형갑의 시론이 초록되어 있고, 초대시로는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산책길에서」3수가 다정하게 다가서고 있다. 동인의 이름은 박명진, 감충효, 김두년, 리강룡, 양선희, 전향란 그리고 신작 모음으로 이상섭, 박필상, 강세화가 보이고, 賞薦, 여담, 신간안내를 거쳐 會告로서 제4회 동인작품전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안내되어 있다.“일시 : 1981년.12.9~11(3일간) 장소 : 부산 <마차>다방” 賞薦에는 김경자의 제33회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 소식과 김필곤의《시조문학》천료 소식이 보인다.
제6호는 1981.10.3에 발간한다. 제6호의 회원에게 띄우는 글은 김벽파가 ‘이 가을에 쓰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 “각자가 ‘빵짜’의 소리를 내되 ‘빵짜’소리가 어우러져서 하아모니를 이루자는 주제의 글이다. 10월의 초대시로는 최승범 시인의「출항」이 힘차게 뱃고동 소리를 울리고 있고, 제4회 동인작품전 안내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참여 동인의 작품을 보면 초대작품으로 백수 선생님의 조국, 박재삼 선생님의 내 사랑은, 동인 작품으로는 감충효「귀향」「추강」 권석하「사모곡2」김두년「축전」김벽파「율」, 김필곤「들에서」「난초」, 남궁영「가을에」,박명진「아버지」, 신후식「하구」, 윤신근「석양의 냇가에서」, 리강룡「낙동강5」, 장정애「마당굿」,「색깔 바꾸기」, 전향란「감자밭에서」, 정석주「태종대에서」, 정애경「성」, 최상남「맨드라미꽃」, 최하목「저문 하늘에 별 하나」, 허민홍 「일출」, 허성욱「범어사에서」,「해운대」등 도합 23수 작품으로 시화전을 열고 있다. 다음으로는 동인 작품이 실려 있다. 전향란 특집과 정애경, 김민정, 감충효, 허성욱, 김시현, 최상남의 얼굴이 보이고, 동인지 5호 발간 축전 소개와 동정, 주소 번경, 후기, 그리고 최하목의「시조가 있는 산문」이 권말을 장식하고 있다.
제7호는 1981.11.1자로 송년호를 6면으로 발간하고 있다. 권두에는 허성욱이 제4회 시화전을 마치고 나서 감회를 적고 있다. 잠시 인용해 본다.
“사흘간의 전시 기간 동안 취중에도 흩어지지 않는 칼날 같은 벽파님의 비판정신과 자기 모두를 헌신한 열혈 시인 벽사님의 열성과 석천님의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지심님의 다정, 난정님의 온화, 대묻지 않은 소연님의 성실, 전투경찰 아정님의 건강. 자몽님의 애수, 세화님의 홍안, 시현님의 다감, 밤을 새워 그리고 쓰고 그리고 쓰기를 마지않은 정애님의 근면과 다재 다능, 그리고 아, 석주님의 붓만 들면 시가 되어 나오는 그 끊임없는 시심이 조합되어 항도에 퍼진 다향, 시향이 지금도 진하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초대시로는 일묵 임영창 선생님의 「산 이야기」가 앉아 있고, 동인의 얼굴로는 최하목, 남궁영, 허성욱, 박필상이 보인다. 신동인의 얼굴로는 강효백, 경규희, 고명진, 김광경, 박수열이 보이고 있다. 동정, 賞薦, 후기가 있고, 회원에 띄우는 글로 허민홍의 편지와 김말영의 ‘진중에서 보내는 글’ 그리고 동인 시화전을 축하해 준 분의 방명이 소개되고 있다. 상천의 내용으로는 차정미의 적벽 예술연 시조 장원, 남전희의 시조문학지 초회 추천, 이상섭의 중앙일보 주최 전국 백일장 입상, 최하목의 민족시 백일장 장원 및 시조문학 천료 소식을 전하고 있다.
1982.2.21 발행의 제8호 신년호는 4면으로 발행되었다. 1면은 1982년 신문문예에 당선된 영광의 두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당선된 남궁 영의「지리산에서」와 중앙일보에 당선된 김경자의「炭山一遇」가 그것이다.
原始로 빠끔한 하늘/반평생이 여기 존다
영원을 쪽빛에 감추고/그 너머 이는 흰구름
한 번은 쥐고 흔들리라던/진초록이여 지평이여.
산 있는 곳 길은 나고/길 있는 곳 사람은 나서
이야기 넝쿨 밟아/비비산은 들어앉고
般若經 돋우는 한 구절/산새들도 숨 고른다.
더덕 순, 고비 순, 바위 꽃/솔바람은 지쳐 눕고
숨어 사는 약초들도/숨소리로 곁에 살아
高山은 적막과 한 갈래/불끈불끈 일어선다.
해종일 올라 봐도/산 마음은 늘 앞서가고
산접동 울음엔/별빛도 묻어 번지는데
도라지 꽃빛은 짙어/혼자 취해 흔들린다.
눈 감기는 해발 칠천 척/山茶 향기 귀 가리면
실구름도 메아리도/이마 끝에 차가웁고
부릅뜬 산마루 저쪽/쫒겨가는 雲海여.
- 남궁 영,「지리산에서」전문 -
둘러 선 푸른 산을/어머니라 이른다면
어렵게 낳아 놓은/또 하나 둥근 목숨
불꽃 필/그루터기가/가을비에 젖고 있다.
참틈 새로 고여 앉은/어둠의 粉가루가
여울 따라 울먹이는/개울물 비늘들도
밤 열차/불빛을 받아/가뭇가뭇 반짝인다.
멀찌기 두고 보아도/새재(鳥嶺)는 숨찬 고개
충절의 魂꽃 같은/산마루별을 기려
뭄 푼지/하루 사이에/되짚고 설 아픔이여.
- 김경자,「炭山一遇」전문 -
동인 작품으로는 이상섭, 리강룡, 방성운, 김광경, 강효백, 양선희, 경규희가 보이고, 특집으로는 박수열이 있다. 이어서 賞薦과 동정, 후기, 신간안내가 있다. 賞薦의 내용으로는 위 두 분 동인의 신춘문예 당선을 비롯하여 박필상님의 시조문학 봄호 초회 추천이 소개되고 있다.
이상 간략히 소개한 바와 같이 월간으로 발행되던〈나래회보〉는 8호로 종간한다. 한편 나래시조문학회 부산지역 회보도 5호까지 발행되었다. 1981.8.31 창간호를 김필곤 발행, 허성욱 편집으로 4면 발간하고, 이어서 동년 12.15p 제2호 4면, 1982.4.15 제3호 4면, 1982.12.21에 제4호 4면, 1983.6.27에 제5호 4면을 발행하는 것으로 종간하고 있다. 이 회보는 그 동안 회원 상호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동인지가 발간되기까지의 공백을 메꾸며 나래인의 결속의 촉매제가 되어 왔다. 그러다가 1980년대를 맞이하면서 인쇄 매체의 발달과 동인 사이의 시력이 강화되면서 차츰 회보의 필요성이 적어짐에 따라 종간하게 되었다.
6. 새 가족 20명의 면모
동인지 5호에 실린 작품의 면모를 살피기로 한다. 가족이 많아졌으므로 창간호에서부터 제4호까지의 정식 동인 또는 참여 동인의 자격으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김필곤, 남궁영, 민병찬, 박명진, 박영식, 윤신근, 장정애, 전향란, 정석주, 최광순, 최상남, 허민홍 제씨에 대하여는 잠시 접어두고 동인의 자격으로 처음 작품을 보인 20명의 첫선을 보기로 한다.
대웅전 추녀 끝에 / 달빛 꿰어 매단 풍경
오가며 걸린 바람 / 고운 결만 골라내어
깊은 산 계곡마다에 마음 귀를 틔운다.
- 감충효「용문사2」1/2 -
감충효는 경남 남해 출신으로 진주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자료에서 시조로 천료하였으며, 동심동인회장과 남해국어연구회의 총무를 맡는 등 활발하게 문학 활동을 펼치다가 이내 우리 시조단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용문사2」에서 보는 바와 같이《교육자료》에서 천료된 기성시인답게 단아한 작품이다. 예로 든 작품은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누구나 생각 없이 지나치며 보는 풍경, 그 풍경에 감충효는 달빛을 꿰어 놓았다./달빛 꿰어 매단 풍경/에서 고즈넉한 산사의 밤과 풍경의 배치가 얼마나 기가 막힌 구조인가? 그 풍경에 오가며 걸린 맑은 산바람, 그 맑은 산바람 중에서도 고운 결만 골라내어 /깊은 산 계곡마다에서/마음 귀를 틔우고 있다/고 읊어내고 있다. 추상물인‘소리’를 감각화한 솜씨와 예로 들지 않았으나 함께 선뵌「용문사1」,「얼레」 등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만큼의 자리를 차지하자면 적지 않은 날과 밤을 고민하며 새웠을 텐데 어쩐 일인지 단명하게 나래의 품을 떠나고 이후 절필의 상태로 들어가 오늘까지 어디에서도 감충효라는 이름을 볼 수 없음이 못내 섭섭하다.
밤새워 어둠을 퍼내고 / 바다를 퍼내고
태평양 건너 긴 항해 끝 / 닻을 떨구면
미명에 찰랑거리는 / 동경만의 물결소리
새벽바람 물결 타고 / 기다리는 아내의 편지
수평선 저 너머 / 떨구고 온 못다 나눈 정
아슴한 그리움 가득 / 가슴 찡한 사연들.
- 강세화 <寄港> 1-2/3
강세화의 작품이다. 앞의 56호에서 잠시 소개한 바 있거니와 강세화는 경남 울산 출신으로 지금도 울산문단에서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4년 약관에 시문학, 대학시집에 우수작으로 입선될 만큼 문학적 재질을 보인 동인이다.
예로 든 작품은 1978년 해외출장 선원으로 취업하여, 그 도정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대양을 건너는 기나긴 항해를 “밤새워 더움을 퍼내고 / 바다를 퍼내”는 작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기나긴 여정에서 받아보는 가족의 편지는 참으로 “가슴 찡한 사연”이 아니겠는가. 함께 선뵈는「꽃」「청상소곡」「낙일초」등에서 보이는 강세화의 모습은 범상함 속에 결코 범상하지 않음의 싹을 보이고 있다. 그는 곧 월간문학과 현대문학에 신인상을 수상하여 자리를 확고히 잡게 된다.
앉아도 맘 닿는 거릴 / 일어서서 팔 벌린 솔
산빛은 일렁이는 파도 / 새소리로 배 띄우고
등걸이 노 저어 가면 / 쪽빛보다 푸른 저 산
- 권형하 「산가일기」3/3 -
石河 권형하의 작품이다. 그는 1981년 봄「들국화」로《시조문학》에 천료되어 등단하면서 문협 문경지부 사무국장을 맡는 등 문단활동을 활발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이어 몇 년 뒤〈매일신문〉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조단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다.〈경북중등문예교육연구회〉에서 총무이사 자리도 맡아 수고하면서 필자와의 인연도 결코 적지 아니하다.
작품을 보기로 한다. 산가에서 바라보는 산의 차림새를 묘사해 낸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앉아도 맘 닿는 거릴 /일어서서 팔 벌린 솔”. 산마다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솔을 이토록 선명하고 아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시적 안목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일단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하늘 향해 팔 벌리고 서 있는 솔숲의 모습을 면밀한 관심으로 보지 않고는 쓸 수없는 가구이다. “산빛은 일렁이는 파도 / 새소리로 배 띄우고”, 그렇다. 산마다 바람이 일면 산은 분명 일렁이는 파도이고, 거기에 우짖는 새소리는 바람이만 물결에 띄운 조각배들임에 틀림없다. 작자의 진면목이 도 한번 되살아나는 부분이다. 다만/등걸이 노 저어 가면.../의 종장은 중장과의 연결이 순탄한지 숙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볕 저어 영근 씨앗 /억새밭에 되 뿌리며
내 어이 하늘 보고 / 찬바람에 등에 대랴
한 천년 흙 파는 농부 내 난 당에 서련다.
- 김두년「나무」전문 -
소적 김두년, 예천에서 출생하여 향토 안동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지금도 예천에서 지역 문단의 활성화를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신토불이의 시인이다.
작품 나무는 시인 자신이 나무가 되어 자신의 자리에 서의 포부를 슨 것으로 보인다. 같이 보인 참배기 가위향수 우정 등에서 보이는 작자의 냄새는 흙냄새 그것이다. 하더라도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은 곳곳에 비걱거리고 있음을 본다. 초장과 종장의 연결, 중장의 첫 구와 둘째 구의 연결이 어긋맞게 서 있음이 그러하다.
밤을 사룬 잎새들이 / 바람결로 타고 내려
푸르름에 눈물짓고 / 정화수에 몸 맡기니
돌연결 아픈 사연들 / 바위틈에 머물렀다
- 김말영「고향천」전문 -
김말영, 강원도 정선에서 대구로 유학한 동인으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 버렸다. 그는 한사대 교내 현상 무에 소설 부문에서 당선되기도 할 정도로 문학에의 재능을 보였다. 그런데, 그의 작품 속에는 연륜이 걸맞지 않게 한자어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함께 보인「강변에 앉아」「결곡」「봄이 오는 소리」등 세편에 나타난 어휘만 잠시 살피더라도 /수간/대월/신월/동천/산하/산상/산근/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우리말로 풀어쓰면 더 좋을 한자어를 열거해 보인 것이다. 위 작품에서도 종장의‘돌연결’이란 시어는 전달이 불분명한 것이다. 여하튼 잠시 시조단에 들어왔다가 채 익기 전에 떠난 그를 아깝게 생각한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의 모서리를
나가도 물러가도 못 하는 시름으로
가녀린 숨소리조차 힘겨워진 이즈음
- 김민정「시름」전문 -
전형적인 서울 아가씨로 갸름하면서 깔끔하던 김민정이었다. 노동청에 잠시 근무하다가 시조라는 병을 얻어〈시조문학지상백일장〉이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은「예송리 해변에서」라는 佳篇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만, 최상남, 전향란과 함께 한국 시조단에 아직도 희소한 존재인 여류의 맥을 이어가나 싶더니만, 결혼과 함께 시조의 밭을 훌훌 떠나버리고 그 삼총사 가운데 그래도 소식이라도 알 수 있는 이는 최상남 뿐이다. 호흡 가누기조차 어렵게 하는 시름이다. 불분명한 채로 시적 재질의 싹만 수줍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수반에 받아 옮겨 / 벽곡에 돌섬 우뚝한 데
香木 숲에 蘭香이 맑고 / 폭포 암벽에 이끼 푸르다
그 아래 갓 쓴 漁翁 / 세우러 낚으며 조은다.
- 김벽파「盆栽吟1」전문 -
1980년대 초반, 나래의 모임은 항상 밤새우기와 시끌시끌한 술자리와 끝없는 에피소드의 연속이었다. 그 판에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할 만했던 두 동인이 벽파와 벽사이었다. 전자는 김철진이요, 후자는 김필곤이다. 여기 벽파는 경북 봉화 출신으로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69년에 이미 〈세금의날기념시나리오및방송문안현상모집〉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1970년대 〈동국대학술상창작분야〉,〈문공부문예창작희곡부분당선〉등의 화려한 경력으로 문단에서 이미 자리를 굳힌 터였다. 넘치는 문학 재질을 감당하지 못하였던가? 그는 시조단에도 들어와서 나래와 합류하였다. 지금도〈동아일보〉사에 근무하고 있는지 연락이 두절되어 알 수는 없으되 아름다운 추억의 인물이다.
구름도 쉬어 넘는 / 서낭당 고바위 고개
남남인 봇짐마다 / 이즈러진 눈물 자국
조그만 손바닥으로 / 혼자 슬피 부르던 노래
- 김시현「보리피리」전문 -
김시현의「보리피리」단수이다. 작자는 나래에 입문하면서 벌서 충주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토월회라는 유머, 꽁트를 주로 쓰는 모임과 KBS 교통 통신원으로도 활동하는 몹시도 바쁜 동인이었다. 지금도 차를 타고 가다 보면 흔히 김 동인의 유머러스한 교통 안내가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 참 다재다능한 동인이다. 김 동인은 생활이 바빴던 만큼 100편의 넘는 연작 향풍을 통하여 보여주는 그의 시의 세계는 상당히 시니컬하다. 여기 첫선을 뵈는 작품들에서도 그런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어릴 적 지어 불던 보리피리에 대한 회상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으나 이 시인의 기억 속에 있는 보리피리는 곳곳에 “쑥국새 그윽한 울음 / 새벽길”을 떠나는 사람이나,「진달래」에서 “알몸으로 크던 자식”이나 「아카시아」에서 “예닐곱 수난절에/ 허깨비로 울던” 사연들의 눈물과 다름없는 눈물이라 생각된다. 이후 김 동인이 눈여겨보고 있는 사람들은 두고 온 고향에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아 있는 이 시대가 외면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그렇게 만든 그 누구에 대한 분노로 점철되어 있다. 오즈음의 시에서도 그 분노의 절이 채 삭지 않고 있는, 참여 시조로 일관하고 있는 시인이다.
오히려 봄 하늘이 / 낮아 뵈는 이승 깊이
저마다 빛 데불고 / 키키로 크는 한낮
잠자리 혼자 날아와 가지 끝에 꿈을 꾼다.
- 남전희,「숲속」1/2 -
남전희의「숲속」두 수 중 둘째 수를 골라 보았다. 남동인은 경북 상주 출생으로 산맥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1981년 실시한 전국 시조백일장 국풍 81에서 차상으로 입상하여 실력을 인정받은 공인이다. 위 작품도 가만히 보면 숲속의 고요로운 정경을 잘 그려내고 있다. /오히려 봄 하늘이// 낮아 뵈도록 깊은 숲속, 시간은 /저마다 빛 데불고/키키로 크는 한낮//이다. 그러다가 둘째 수 종장에 가면 /우루루 쏟아지는 빛 /날개등이 따갑다//로 감각적 표현을 동원하고 있다. 함께 뵌「비둘기」「촛대」「봉선화」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천년을 톱질하는 / 달빛 외진 산자락에
날 푸른 유성들이 알알이 떨고 있고
조그만 우물 속으로 하늘 하나 갈앉는다.
- 박필상,「瞻星臺」전문 -
박필상의「瞻星臺」이다. 박 동인은 나래에 입성하기 전부터 돌섬문학에서 활동 중이었다.인양으로 인해 얼마 동안 붓을 놓은 세월을 제외하면, 그저 소걸음으로 뚜벅뚜벅 성실하게 걸어오는 시인이다. 여기 첨성대는 첫선을 뵈는 작품치고는 너무 완벽한 작품이다./천년을 톱질하는/달빛 외진 산자락/을 초장으로 뽑아들고 있다. 천년 고도의 궁궐이 있던 반월성 발치에 선 첨성대의 자리를 이렇게 읊어낼 수 있는 시의 눈을 그는 진작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 산기슭에 “날 푸른 유성들이/알알이 떨고 있고/조그만/우물 속으로/ 하늘 하나 갈앉는”것을 알 수 있다. 유성들이 얼비치는 우물로 환치된 첨성대, 그 속으로 가라앉는 하늘을 관찰하는 첨성대, 이내 그는 자기 특유의 솜씨로 첨성대를 쌓고 있다.
산단 것 /하나만으로 / 풀잎은 흔들리고
꽃가지 /늘어짐도 /내 맘속 같음이라
화사한 /봄빛이란들 /나를 닮지 않을까
- 방성운「하나님의 뜻」전문 -
방성운은 장충여중에 근무하면서 필자와 年輪도 비슷한 뿐 아니라 문학 활동의 출발도 비슷하며 독자 시절에 신문 잡지에도 자주 어깨를 나란히 들락거렸던 동인이어서 방동인의 이야기를 하자니 새삼 그리움이 앞선다. 선보인「하나님의 뜻」「풍경」「낙수」「고향」 등의 골격이 모두 꽤나 엉성한 편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깊은 사색의 여과를 거쳐 내보인 작품임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산단 것/하나만으로/풀잎은 흔들리고/와 같은 佳句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중․종장의 연결고리가 약간 부실한 것처럼 보임과 고시조 투가 남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 등이 티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곧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방 동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눈여겨 보아줄 이 / 기억에 희미한 이
그 하나 없음에도 / 나는 늘 여기 있소
누군가 / 스칠 것 같은 / 기다림의 미학에
- 신순애,「풀꽃」1/2 -
난정 신순애 선생의 첫 작품이다. 세월의 물살은 속절없어서 하마 난정 시인도 갑년을 맞게 되는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40대 중반의 원숙한 여인으로 ‘누님 같은 꽃’이었다. 모이면 특유의 유우며 감각으로 좌중을 즐겁게 하던 분이었다.
당시에는 새마을 장수대학 무용교수로 활동하면서 한편으로는 동요문학 동인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보여준 <풀꽃>은 주체를 바꾸어 작자가 풀꽃으로 앉은 작품이다. “눈여겨 보아줄 이/ 그 하나 없음에도 / 누군가 / 스칠 것 같은/ 기다림의 미학에”한 자리 앉아서 피고 잔디는 풀꽃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골 따라 난 오솔길 / 울울 창창 적송 박달
거목 앉은 칡넝쿨에 / 포름한 칡꽃 맺고
머루며 / 다래 덩굴 속에 / 난이 먼저 수줍다오.
- 신후식,「산행」2/2 -
신후식의「산행」이다. 신후식처럼 억척스런 사나이는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문경군청에 근무하면서 방송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공무원의 꽃이랄 수 있는 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점촌 부읍장을 거쳐 도청에 근무하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 계명대학교 정책개발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지금도 경북대학교 박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으며, 그 바븐 와중에도 애향심이 지극하여 조령산성을 비롯하여 문경에 관ㄹ한 각종저서가 부지기수이며, 요즈음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100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문경발달사 정리를 탈고 하였다. 그 바쁜 틈에도 시집을 두 권 상재했으니 그야말로 그의 호 담게‘牛村’이다.
첫 선을 보이는 작품들은 대체로 스케치 적이다./골 따라 난 오솔길/울울 창창 적송 박달/거목 앉은 칡넝쿨에/포름한 칡꽃 맺고/다래넝쿨 속에/난이 먼저 수줍다오/에서 약간의 서정을 섞고 있다.
병아리 삐딱삐딱 /서툴은 걸음마에
안쓰런 마음으로 어루는 손길마다
봄볕이 쪼르르 와서 / 아지랑이 아물아물.
- 양선희,「풍경1」전문 -
작품「풍경1」을 보노라면 양선희의 아담한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녀는 1979년에 약년 19세로 세농민 문예상에 시가 2회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한국 여성시 동인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못 먹는 술 들이켜고 못 이겨 펌프질 하던 생각을 하면 당시에 연륜이 찬 사람들의 책임도 없단 말 못하리라. 여하튼「풍경1」을 비롯하여 그녀가 선뵈는 작품들은 아주 감각적이다.“병아리 삐딱삐딱/서툴은 걸음마/봄볕이 쪼르르/꼬닥이는 햇조각”등에서 동심의 세계를 신선한 풍경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저 남강 한 허리를 / 서릿발로 묶어 두고
얼룩진 모랫벌에 / 역사장을 펼쳐보면
낙화암 슬픔에 쌓여 날려버린 꽃다발
한마음 위국충절 / 피가 흐른 강변에서
찢어진 가슴 속에 / 넋을 심고 되덮어도
강심은 / 옛날 그대로 / 떠올리는 촉석루
- 용진호,「촉석루」전문 -
용진호 동인은 나래에 동참하기 전에 이미 시조문학지를 통하여 천료하였고, 호남 쪽에서 시조뿐 아니라 한시연구회에도 참여하여 문학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위 촉석루는 “조선 왕조 실록 25권 선조 26년 6월 29일조”를 참조하였다고 주를 달고 있다. 한학에 조에가 깊은 분인 만큼 위 작품 외에 곳에서도 식장, 취형, 철벽 등의 눈에 선 한문 투가 군데군데 많이 보이고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위 작품은 우리의 눈과 귀에 낯설지 않은 현장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기에 생소하지 않다. 생소하지 않다는 한편으로는 참신성이 문제가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세월은 이어 천년 한 벼랑 흘러가도
한 꿈 작은 가슴 오늘을 사는 목숨
끊일 듯 잇는 아픔에 세월 고이 지킨다.
- 리강룡,「皐蘭」4/4 -
필자의 작품이다.「비 내리는 월송정」「탄생」「고란초」「봉산리에서」등 네 편을 선뵈고 있다. 지금 보면 동인지의 격을 떨어뜨린 주범인 것 같아 식은땀이 난다.
대관령 산마루턱 꽃불 질러 이룬 장관
옷자락 고운 선녀 춤나랠 펼쳤는데
아슴히 솟아오르는 궁궐 꽃마차 한 대 지나간다.
- 이상섭,「노을」1/2 -
이상섭도 필자와 같이 늦깎이 동인이었다. 불혹의 연륜에 들어서야 시의 문을 노크하여, 필자의 기억으로는 경복궁 앞뜰 민족시 백일장에서 차상이던가 차하이던가 입상하여 함께 즐거워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게 반짝이더니 쉽게 달구어진 솥은 쉽게 식는다던가, 욱일승천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시조단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껏 소식을 알 수 없으니, 그의 작품을 대함에 새삼 그리움이 솟구친다. 「노을」「범바윗골 풍경」「칠봉산」「일모에」중, 「노을」첫수를 골라 보았다. 대관령 산마루턱에서 만산한 노을을 바라보며 연상의 나래를 편 작품이다./꽃불/옷자락/고운 선녀/궁궐/꽃마차/ 등을 동원하여 노을의 장관을 읊고 있다. 함께 보인 작품들도 첫 선을 보인 작품으로는 수준급이다.
얼마를 마음해야 네 빛으로 돋아날까
윤이 나는 발자국을 가지마다 거느리고
청아한 바람으로 달려와 잎으로 남는 극락이여.
골마다 묻어나는 향기 높은 해돋이에
한 자락 청산으로 영그는 태고의 몸짓
굽이진 매무새 풀면 깃을 펴는 꽃빈들
- 정애경,「녹음」전문 -
정애경은 경북 선산 출생으로 16세의 약년부터 이화여대, 수도사대, 성균관대 학생 백일장에서 장원 내지 우수상을 수상하고, 전국 규모의 성인 백일장인 민족시 백일장에도 입상한 경력이 있는, 뛰어난 재질을 보인 동인이다. 여기 「녹음」 「장마」「변신제」「소중한 것」네 수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늦봄 또는 초여름의 녹음을 이토록 절실하게 그리고 싱싱하게 써낼 수 있음은 그녀의 탁월한 詩才를 엿보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보석처럼 반짝이던 정애경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곁을, 아니 시조의 밭을 떠나 버렸으니, 또 다른 면에서 佳人薄命을 실감하며 안타까워한다.
생각은 바람 되어 땅 하늘 날며 갈며
돌장승 말이 없는 동구 밖 어둠길에
어머님 명복을 빌며 합장하는 애절한 손
- 차정미,「永訣哀詞」4/5 -
차정미의 작품이다. 그녀는 전남 보성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 가정학과를 졸업하고 두륜문학회에서 동인으로 활동 중에 나래에 동참한 동인이다.「회심가」「사모곡」「영결애사」「산사에서」네 수가 모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이다. 네 수의 시 전편에서 한결같은 사모의 정이 절절하게 넘치고 있다.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산도 정상에 오르면 마침내 밋밋한 모습으로 나타나듯이, 비범을 뛰어넘는 것은 결국 평범이던가. 수식은 별로 없이 그저 잔잔하게 작자의 한을 읊고 있는 작품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한 뙈기 묵정밭을 일구어 심은 동심
풋머리 길섶에 선 질경이 꽃도 고와
외 수박 가득 실으면 흥이 겹던 거룻배
시름은 뱃길 따라 아스라이 멀어지다
떠나던 개밭 머리 사금파리 밟고 서서
달포를 장끼와 울며 생나무로 태운 가슴
- 허성욱,「배․ 상념」1-2/3 -
끝으로 허성욱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경남 김해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대한 태권도협회 공인 5단의 실력을 보유한 얼핏 생각하면 문학과는 먼 거리에 서 있는 체육과 과학을 전공한 동인이었다. 부산 성지공업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특히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시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보인「배․ 상념」은 작자가 어느 나루터에 서서 오가는 나룻배를 보며 지난 날 그 거룻배에 실린 온갖 추억들을 생각하는 작품이다. 잔잔한 물결 위에 뜨는 상념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7. 量的 擴大와 質的 向上
1981년을 마감하면서 33명 동인의 목소리와 정완영, 박재삼 두 고문 선생님의 초대시, 그리고 호남 시조 문학회원의 작품을 특집으로 담아 제6호『나래동인시조』를 발간한다. 發刊記를 보면 1981년 12월 1일, 경일 인쇄소 발간, 신국판 갱지 152면의 볼륨이다. 권두언에서 정석주는「豊盛한 한 해」의 辨을 쓰고 있다. 동인지 4호에서 9명의 동인이 모여 살림을 꾸렸던 것이 5호에는 33명, 6호에는 39명의 동인으로 저변 확대된 것을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量的으로만 확대된 것이 아니라 質的으로도 그 수준이 높아졌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김필곤의 샘터 시조상 장원, 김경자의 같은 상 가작 입상으로 ’81년의 샘터 시조상을 나래에서 독차지하였음과, 國風 ’81에서 남전희의 次上 입상, 제6회 전국 민족시 백일장에서 최광순의 장원, 제1회 중앙 시조 백일장에서 이상섭의 입선, 제33회 월간문학 신인상에 김경자의 당선과,《시조문학》에 허민홍, 권형하, 김경자, 김필곤, 최광순의 천료와, 박명진, 남전희, 강세화, 윤신근, 최상남의 초회 추천과, 신순애의 시조집 『노을에 타던 강』, 그리고 정석주의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등등이 그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80년 한국의 봄, 그때가 정녕 현대 시조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이는 시기였지만 한 동인회에서 한 해에 이만한 성과를 거둔 동인회가 이 땅에 또 있겠는가. 그리고 부산에서 열렸던 제4회 동인 시화전에 관한 보고가 大尾를 장식하고 있다.
제6호에 작품을 실은 33명의 동인 가운데 첫선을 뵈는 강효백, 경규희, 김광경, 박수열 네 동인의 작품에 관하여 蛇足을 달아 보기로 한다.
내 영혼 욕됨을 삭혀/자아 올린 雷神이여
九泉도 먼 햇빛 숨결/한 알 사리로 맺힌다 해도
천지간/그대 목소리/수은처럼 흩어지는
창은 여태도/하늘만한 영토인데
노을로 타는 에밀레/에밀레 종소리여
마음골/설움을 뒤쳐/그대 홀로 가노니
- 강효백,「종소리」전문 -
강효백의 첫 작품이다. 강효백은 필자에게는 기억이 없는 동인이다. 1959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경희대 법대 재학생이란 기록과 동인지 6,7호에 잠시 이름이 보이다가 글자리를 떠나 버렸다. 6-7호에 단지 8편의 작품을 보이고 있지만 그 역량이 만만찮음을 느끼게 한다. 뇌신, 사리, 수은 등으로 형상화한 에밀레 종소리가 「우리 눈에 익숙한 시조의 틀」을 깨고 조금은 탈격의 걸음을 걷는 중에 독자에게 참신성을 가져오고 있다. 이어지는 /산사에서/술집에서/언덕에서/고궁에서/등의 작품들을 통하여 무언가 한 번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을 가지게 한 동인이었는데, 계속하지 못하고 단 두 驛 만 가다가 하차해 버림이 못내 서운하다.
서리 핀 바람결에
까칠하게 튼 살결
뜨락에 싸인 미련
뒹굴던 몸부림에
가을과
겨울 틈에서
망설이다 돌린 발길.
- 경규희,「낙엽」전문 -
다음은 경규희의 모습이 보인다. 慶 선생은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여류이다. 아마 근년엔 갑년을 맞으실 때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40대의 원숙한 여성으로 첫선을 뵈셨으니 상당한 늦깎이 동인이었다.
작품을 보기로 한다. 우글쭈글한 낙엽의 모습, 가을바람에 굴러다니는 낙엽의 모습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낙엽의 모습을 /까칠하게 튼 살결/로 표현한 것이라든지 굴러다니는 낙엽의 모양을 /뜨락에 쌓인 미련/뒹굴던 몸부림/ 또는, /가을과/겨울 틈에서/망설이다/ 발길을 돌린다고 보는 표현이 참신하다. 이렇게 시작하신 慶 시인이 지금은 한국 여류 시조단에 중진이 되어 활동하고 있으니 가슴 뿌듯한 일이다.
물안개
자욱한 강에
내려앉는 고운 햇살
다부쑥
뽀얀 둑길엔
아롱다롱 꽃 무지개
잔물결
노닐다 간 자리에
눈웃음치는 금모래
- 김광경,「강변의 아침」전문 -
김광경의 첫 작품이다. 김광경 동인은 필자와 만난 일이 없다. 동인지에서, 그것도 6호에서만 잠시 보일 뿐, 첫선이 마지막인 시인이다. 불과 4편의 작품을 읽고 무어라 말할 수는 없으나, 김광경은 작품을 상당히 감각적으로 쓴 것 같다. 이 작품에 보이는 제재는 셋이다. 초장의 /햇살/, 중장의 /꽃 무지개/, 종장의 /금모래/가 그것이다. 이 제재들을 처리하는 작자의 솜씨를 보자. 햇살이 강가에 내려앉고, 꽃무지개는 다부쑥 뽀얀 들길에 뜨고, 금모래는 잔물결이 해살짓다 간 자리에 앉아 눈웃음을 친다고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 시는 독자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심어 주기에 효과적이다. 나머지 작품 /낙화암/石手의 노래/봄/ 등에서도 그런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름이 광경인 것처럼, “벌어진 일의 상태와 모양” 즉 ‘情景’을 잘 그려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인으로 보이나, 단 한 번 작품 발표로 끝난 시인에게 무어라 더 주석을 붙일 거리가 없다.
울 너머 설운 길을 덤으로 비워 두고
철부지 소자 홀로 이 방을 지킵니다.
통곡도 빈 방에 두고 어디를 가십니까.
가슴 메인 이 소리 뜨락마저 텅 비고
어머님 땅을 치며 눈물 뚝뚝 흘리시는
뜨거운 가난의 신발 애절히도 닳습니다.
- 박수열,「아버님 흙으로 피다」2-3/ 3 -
박수열은 상당 기간 동안 자리를 같이했던 시인이다. ’81년 당시 마산대학 행정학과에 재학 중 한 동안 동인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작품의 질이 날로 향상되던 중 사정에 의해 절필한 후 소식을 알 수 없다.
6호에서 첫선을 뵌 朴 동인은「귀뚜라미」외에도 적지 않은 작품을 내어 놓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과, 여읜 뒤 텅빈 방을 홀로 지키는 설움을 절절히 읊고 있다. 감정이 격한 시들이 대부분 修辭가 없듯이, 이 작품에도 거의 수사가 없다. 그러나 두 수 모두 가장 무겁게 처리해야 할 종장에서 간결한 수사를 사용함으로써 시를 살려 놓고 있다. 첫선을 보인 작품으로는 무난한 점수를 얻고 있다.
8. 먼 길, 그러나 탄탄하게 걷기
1982년 봄을 맞으면서 제7호『나래시조문학』을 신국판 갱지 132면의 볼륨으로 발간한다. 초대 시론으로 박재삼 고문의「시조의 기본율」이 책머리를 빛내고 있고, 특집으로는 ’81년《시조문학》출신, 신예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실었다. 참가 동인은 28명이다. 제7호에 작품을 실은 동인의 방명을 짚어 나가노라면 두 사람의 새로운 이름이 보이고 있으니 오승희와 유승식이다. 오승희는 ’81년 가을 『시조문학』에 천료된 시인으로 ’80년에 벌써 수필집『생활의 창변』을 상재할 정도로 수필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동백문학』의 편집도 겸하고 있었다. 이후 열심히 살아 온 그녀는 현재는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여 작품 활동은 물론이지만 학문적인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분이다.
그대 떠난 이 겨울 석양/내 마음은 구겨진 휴지
남해 삼백 리에/굽이굽이 맺힌 사연
이 마음 나만 이럴까/그도 나를 생각는가
가슴 속 빈 洞孔을/추억으로나 메울 건가
그리움은 안개로 피어/물굽이 함께 설레이네
새 날엔 바다는 안 볼레/이 밤 더디 새어라.
- 오승희,「보내고 나서」전문 -
마음에 깊이 남은 사람을 보내고 나서의 허탈한 가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첫수를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장 : 시간적 배경 + 화자의 정한
중장 : 공간적 배경 + 화자의 정한
종장 : 화자의 독백
이와 같이 배경과 정한 그리고 독백을 적당히 섞어서 시조를 짤 때 작품은 안정감을 회득하게 된다. 위 시조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고 남해 삼백리에 굽이굽이 맺힌 사연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제는 이별의 정한이다. 둘째수에는 外物에 自我가 移入되어 物我一體의 경지를 열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촌은 유희경과 애절한 이별을 설워하는 내용의 절창을 남긴 부안 명기 梅窓 李桂랑의 작품을 생각하였다. 다만 둘째수 초장의 洞孔이란 단어의 의미 전달이 불투명하다. 瞳孔의 誤記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뜻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단어이다.
해망동 풀꽃들이/야살스레 웃는 길목
수시탑 돛대 너머/갈매기떼 기도 소리
한바탕/하늬바람에/만선의 꿈/부풀고.
흙탕물 가르면서/통통배가 밀려오면
왁자지껄 모여들어/생선 받는 아낙네들.
선창 가/비린내 담아/사라지는/총총걸음.
- 유승식,「군산항에서」전문 -
유승식의 작품이다. 유승식은 1942년 전라북도 장수 출신이다.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시조문학》에 추천완료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지금도 중등학교에 근무하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이다. 작품을 보기로 한다. 두 수가 모두 선경 후정(先景後情)의 구조로 짜여져 있다. 앞의 오승희에 비하여 화자는 제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말하자면 작자는 카메라를 들고 항구의 빌딩 위쯤 올라가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스케치로만 그치지 않고 종장에는 서정을 가미한 선경 후정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제8호『나래시조』는 1982년 6월 1일에 상재한다. 신국판 갱지 136면의 볼륨으로 창간호로부터 8호까지 총 면수를 분수의 분모에다 789면이라 명기하고 있다. 초대시의 자리에는 호남의 원로 시인 정소파 선생의 /시조시인의 긍지와 정신/이란 글이 보이고, 특집으로는 동인의 수상 작품「炭山一遇」(중앙일보, 김경자),「지리산」(조선일보, 남궁 영),「초여름」(샘터 시조상, 장원, 강세화),「보경사에서」(샘터 시조상 입선, 허성욱)가 실려 있고, 참가 동인은 29명이다. 제8호에도 새로 동행의 손을 잡은 4人 의 동인이 있다. 신진식, 이대영, 이창희, 정광영이 그 芳名이다.
입을 열까. 그만 둘까
목까지 차오른 이 念願을
애써 감싸 안으며
天命을 기다리다
불현 듯 허울을 벗고
大地에 앉아 본다.
모를까, 누가 알까
다스려 온 허물 한 알
굵어진 수염 끝엔
여운의 이슬 방울
주야로 어루만지며
진주처럼 품고 산다.
- 신진식,「알밤」전문 -
신진식의 작품이다. 신진식은 당시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팔팔한 청년이었다. 체구는 아담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총기가 넘쳐흐를 듯한 까만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인 시인이었다. 그런 첫인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는 곧 개천절 전국 백일장에 입상하고, 이어서 순탄하게《시조문학》지에 천료되는 저력을 보였다. 그러나 才人은 본래 끈기가 없다던가, 우리처럼 꾸준하게 詩業을 계속하지 못하고 곧 나래를 떠나 버렸다. 입회하는 그날부터 줄곧 선배들의 사랑을 받으며 大成을 기대했던 재목이어서 모두가 허전해 했다. 그렇게 시단을 훌쩍 떠난 뒤 전혀 소식이 없다가 지난해에야 다시 나래의 둥지로 돌아왔다. 그 동안 세상 짠 물도 많이 마셔 보았으니 이제는 더욱 성숙한 작품 세계를 확보했으리라 믿으며 과거의 그 반짝이는 才氣를 하루 속히 되찾아 주기를 기대한다. 작품을 보기로 한다. 첫선을 뵈는 작품부터가 범상치 않음을 감지하게 한다. 소재인 알밤이 화자인 것 같으나 종장에서 보면 화자 관찰자 시점 같기도 한, 알송달송한 視覺으로 알밤의 생태를 여실하게 떠내고 있다. 셋째수는 힘이 약간 빠진 것 같아 들지 않거니와, 함께 선뵌「 바닷가에서」「박」「분꽃」등이 하나같이 상당히 여문 작품들이다.
病苦의 늪에 누워/허우적인 숱한 세월
身熱에 들뜬 채로/三冬 가고 입춘인데
오늘도 약을 달이며/看病 지친 아내여
어머님 가신 뒤로/그 약손 이어받아
아픈 가슴 쓸어 주는/거칠어진 가냘픈 손
올해도 立春大吉에/복을 비는 아내여.
- 이대영,「아내」전문 -
다음은 이대영 선생의 芳名이 보인다. 李 동인은 입회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인지 매호마다 거의 한 번도 거르지 않은 개근 동인이다. 개근 동인으로 친다면 필자의 기억으로는 故 정석주와 민병찬 그리고 이대영 동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李 詩伯은 동인으로 활동을 시작하신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1950년 홍익대 법대 재학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학도 의용군으로 참전하시고, 1964년 육군 중위로 예편하신 뒤 인천시청, 납세 조합, 자동차 회사 등의 직종에서 봉사하시다가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셔서 조용히 삶을 돌아보고 계시는 老 詩伯이다. 첫 작품으로는 /父情/을 비롯한 단수 9수와 예로 든 /아내/를 보이고 있다. 시인의 주변 이야기 소개에서도 밝혔듯이 작품 속에 상당한 연륜이 스며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病苦에 시달리면서, 아내의 간병을 받으면서 그 고마움을 토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돌잔치,백일잔치/두루 다녀 보았지만
손에는 금 가락지/덮고 싸고 다녀와서
도대체 뵈야 말이지/입맞춤해 줄 데가.
저 애들 좀 보소/하늘 가에 바닷가에
노상 벗고 다니면서/꿈맛이나 다 보면서
그 누가 감기 걱정으로/內衣 갖다 입히겠나.
- 이창희,「이중섭의 아이들」전문 -
이창희의 작품이다. 이창희의 작품을 대하면서, 잠시 16년 전 추억의 강가로 되돌아가 본다. 또렷또렷하고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발표하던 청년 전도사. 단아한 몸가짐이 그렇게도 인상적이던 동인이었다. 위 작품은 작가 이중섭의 작품을 보고 쓴 작품이다. 시의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예술 작품을 소재로 詩作에 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의 아이들과 그림 속의 아이들을 비교하는 가운데 오늘의 젊은 부모에게 시사점을 던져주는 교훈시이다. 교훈시이면서도 직설적으로 강요하는 차원을 벗어나 이중섭의 그림에 빗댄 작자의 능력을 높이 사고자 한다. 갑자기 나타나 모이기만 하면 늘 시끌시끌하던 나래의 분위기를 한결 북돋우더니 양은솥처럼 금방 식어 버린 이후 지금까지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계속 목회의 길을 걸었다면 지금쯤은 아마 상당히 원숙한 목회자가 되어 있으리라. 이창희의 이름을 다시 적어 보면서 ‘그리움’이란 단어를 같이 한 번 써 본다.
세상사 생각들을/동그마니 쌓아두고
애간장 하얗게 탔네/파르라니 빛만 남아
한 하늘 精氣를 사루는/넋이여, 어머니.
얼마를 닦은 영혼이면/이리 고운 날빛일까
소금기 포송한 눈물/햇살 속에 반짝인다.
이승의 아프던 살이/나폴나폴 나부낀다.
- 정광영,「나비」전문 -
다음은 정광영이다. 정광영은 寡作家이다. 나래에 몸을 담고 등단의 과정을 거치고, 안동에서 〈오늘〉동인으로 활동을 하고, 안동 문협 지부장을 거치고, 그 바쁜 생활의 江口에서도 나래의 회장직을 맡아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상당한 시의 연륜을 쌓은 그이지만 필자가 대한 정광영의 작품은 그 연륜에 비하여 그리 많지 않다. 지난해부터 시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지만 신중한 그로서는 이 또한 언제 상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는 이와같이 寡作이지만 그의 작품은 내 놓을 때마다 力作의 냄세를 짙게 풍긴다. 첫 작품 /나비/ 또한 걸음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선 기성인의 내음이 스며 있다. 어머니의 유택 가에서 폴폴 나는 나비를 보며 시적 상상의 나래를 편 작품이다. 기성 시인들 가운데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유택을 찾아 보면서/세상사 생각들을/동그마니 쌓아두/었다고 풀어 낼 수 있겠는가. 그 무덤 가에 폴폴 날고 있는 나비를 보며 /이승의 아픈 살들이/나폴나폴 나부낀다./고 쉽게 표현해 낼 수 있겠는가. 나비와 어머니의 유택을 이렇게 참신하게 관계지을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혼자서 충분한 고민과 불면의 밤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나래에 동행의 손을 주는 신중한 모습을 작품 속에서 엿볼 수 있다.
9. 요원의 불길, 서른넷의 목소리.
1982년, 9월 1일,『나래문학』제9호를 상재한다. 신국판 갱지 151면의 동인지이다. 권두언은 생략되어 있고 특집으로「冬靑時調文學會」9명의 작품을 초대하고 있다. 참가 동인은 34명으로 지금까지 동인지 가운데 가장 많은 방명이 보인다. 제9호에서도 처음 만나는 동인들을 볼 수가 있다. 강영아, 김영상, 김인숙, 김정희 정공량 諸氏이다.
전설은/한이 되어/뜨겁게 맥박치는데
하늘 우럴어 치솟는 마음/한 줄기 바람으로 식히면
잡힐 듯 눈앞에 맴도는/거대한 힘이여.
- 강영아,「열녀비」전문 -
강영아는 본 작품 외에도「편지」「사진첩」「소나기」등 3편의 작품을 더 보이고 있다. 열녀비를 보고 그 감회를 읊은 것이나 전체적으로 추상적인 시상 전개와 종장의 /거대한 힘/과 같은 생경한 시어가 거슬린다. 그리고 /소나기/에서, /오랜 목마름 끝에/내리신 단비/와 같은 시조의 기본 步法에서 약간 뒤뚱거리는 모습도 더러 보이고 있다. 姜동인은 이렇게 걸음마를 시작하다가 곧 나래의 품을, 아니 시조의 품을 영영 떠나버렸다.
허허한 벌판길을/나 홀로 걸어간다.
쓰디쓴 온갖 경난/한숨으로 덜어두고
서녘에 타는 노을 따라/허정허정 걸어간다.
아무리 돌아봐도/걷는 이 나 혼자뿐
눈물인지 웃음인지 긍부의 어름에 서서
가야 할 머나 먼 길을/나이테로 가늠한다.
- 김영상,「길」전문 -
김영상 동인은 1982년에 입회하신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보내시지는 않았지만 거의 걸르지는 않으시는 동인이다. 그동안에 등단의 과정을 거치시고, 교직에서 정년으로 물러나시고, 한 때는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와 동인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 지금도 여전하신 작품 활동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동인이시다. 나래에 입회하시던 1982년, 그 무렵만 해도 벌써 知天命의 연륜이셨으니, 작품 속에서도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고 있다. 예로 든 /길/ 외에도,「찔레꽃」「어느 범종소리」「산촌야음」등의 세 편을 보이고 있는 바, 장년의 연륜 답게 반짝이는 才氣나 뛰어난 詩的 가치를 매김할 수는 없어도, 나무랄 때 없는 무난한 작품을 선뵈면서 시조를 시작하고 있다. /길/이란 이 작품 속에서의 길은 유형적인 형이하학의 /길/이 아니라, 무형적인 형이상학의 인생길이다. 知 命 의 문턱애 서서 /서녘에 타는 노을 따라/허정허정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戊寅年 새해를 맞으면서 金동인의 健寧하심과 하시는 일들이 형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꽃샘이 흘기고 간/유년의 창가에 서면
시방은 안개뿐인/가시밭 그 산울림이
유월 땡볕 속에서/보리단술 되었어라.
세월이 야금이며/허물어 간 기억 속에
별떨기 빛떨기로/열두 폭 바람을 털고
한 마리 붙박이 나비/꽃별되어 앉았구려.
- 김인숙,「옛정」전문 -
김인숙 동인이 나래에서 동행한지도 어언 16년이다. 맑고 청순하던 그 蛾眉가 이제 가을 화단에 피어난 한 송이 黃菊처럼 원숙한 여인으로, 한 사람의 중견 시조시인으로 우리들 삶의 길에 香을 치며 살고 있다. 그 동안 생활의 뒤안길을 돌아오면서 상당한 아픔을 삭인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는데 근년에는 그녀의 안색이 한결 밝아진 것을 보며 매우 다행하게 생각하며 또한 기뻐하는 바이다. 진주는 아픔의 상처에서 비로소 잉태된다는 진리가 김 동인에게 꼭 적합한 말일 것 같다. 김 동인도 이제 그 동안의 구슬들을 한 데 묶어서 작품집을 준비하고 있는 줄로 안다. 그의 문학과 인생의 편린을 지켜본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못내 기다려지는 시집이다.
위에 보인 /옛정/이란 작품은 처음 시작하는 작품으로는 매우 성숙한 모습이다. /옛정/이란 추상적인 소재를 /오뉴월 땡볕 속의 보리단술/과, /꽃별 되어 앉은 한 마리 붙박이 나비/라는 구상물로 형상화하기란, 하루 이틀의 문한 수업으로 이룰 수사 없다고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작자의 /옛정/은, /꽃샘바람이 흘기고 간 유년의 창가에/ 있었던 정이고, /허물어져 간 기억 속에/ 간직되었다가 수시로 돌아보는 정이다. 어렸을 때의 일들은 당시에는 참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지나고 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늘 돌아가고 싶은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기 마련이다. 이 그림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이것을 하나의 Focus에 맞추어 적당한 구도 위에 배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여기에 함께 선뵈는 /아침/像Ⅰ,Ⅱ/등 3편 역시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나래 30년」을 집필하면서, 한 분 한 분의 출발기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필자도 역시 김인숙 동인이 이 작품에서 쓰고 있는 /옛정/처럼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추억에 잠겨 잠시 붓을 놓고 생각에 잠겨 본다. 꽃같은 이름들을 한 분씩 들어 가면서 /때로는 보리단술/ 같은, 때로는 /한 마리 나비 같은/ 그 모습들을 그리워한다.
그날의 더운 피를/흙속에 다 묻으랴,
눈비 흐른 돌비 위에/고국 하늘 그리는 넋
오늘은/평화로 빚은/꽃 한 다발 드립니다.
- 김정희,「유엔 묘지에서」2/2 -
김정희는 두어 번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불편한 몸으로도 한 동안 열심히 참석하다가 어느 날부터 우리의 곁을 소리 없이 떠난 이후 시조단에서도 사라진 것 같다.
위에 든 /유엔묘지에서/ 외에 /행상/여인 일기/아버님 회갑에 드리는 글/ 등 3편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생선 함지 앞에 놓고 외쳐대는 목소리사/여자가 어떻게 하리/어머니니까 하고말고/그녀의 집안에선/아이들의 웃음소리/ 등의 직설적 표현들로 일관하고 있어 작품의 격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두 수 중 한 수를 취한 이유는 차라리 예로 든 둘째 수만으로 끝내는 것이 나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산광역시의 한 켠 바닷가, 산 설고 물 설은 이역만리까지 자유 수호라는 이름의 깃발 하나 들고 달려와, 이 땅 어느 계곡에서 이름 없이 산화한 그들의 도열 앞에 서면 누군들 감회가 없겠는가. 필자도 유엔 묘지를 찾았다가 拙詩 한 수를 읊었던 적이 있다.
실바람 흐른 물에/세월은 비껴가고
綠水로 짙은 청산/하염없이 베고 누워
말없이/혼자도 깊어/발부리에 채이던 날.
가슴에 닿았다가/홀연히 접어들고
애당초 서린 한은/뱃길에 뛰어들어
아스레/사라진 꿈이/이 밤 다시 고와라.
미소를 새겨두는/마음 안 작은 여울
오늘도 고인 아픔/포롬히 씻어가고
속으로/한 겹씩 재는/젊은 날의 꿈앓이.
- 정공량,「心想」전문 -
정공량은 지금 경기도 光明市에서 학원을 경영하며 경기도 문인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 나라 중견 시조신이다. 어언 16년이 흘렀으니 그 동안 흐른 세월의 강 또한 결코 짧지 아니하지만, 정공량 자신의 변화 또한 적지 아니하다. 얼마 전 보내온 그의 시집과 광명 문협 기관지 「光明」등을 통하여 그의 성실한 足迹을 살필 수가 있다. 예로 보인 /心想/외에 첫선을 뵈고 있는 /저녁 강마을/생명선/생명의 빛으로/등의 작품들이 한결같이 녹녹치 아니하다. 위의 /心想/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실바람 흐르는 물에 세월은 비껴가고/라는 시상을 여는 솜씨부터가 예사롭지 아니하다./바람/물/세월/이란 세 가지 소재의 공통점인 흐른다는 속성의 대비도 그러하거니와 /실바람/이 물에 떠 흐르고 거기 세월이 비껴간다고 구도를 잡기는 결코 쉬운 표현이 아닌 것이다. 나아가 /미소를 새겨 두는/마음 안 작은 여울/을 설정하고 거기에 /고인 아픔/을 씻어 가며/젊은 날의 꿈앓이/를 /한 겹씩 재/며 마음속의 상을 갈무리하고 있는 작품으로 읽힌다.
10. 賞․薦의 기록, 參與의 기록
1982년을 마감하면서 동인지의 誌齡을 두 자리로 올려 놓게 된다. 창회 16년을 맞아『나래동인時調』10호를 발간한 것이다. 月河 선생님의 축사가 책머리를 빛내고 있고, 초대 동인회 특집으로 지금 부산 시조시인협회의 전신인 「부산시조문학회」의 작품을 올려놓고 있다. 동인 특집으로는 윤신근, 허성욱, 강세화, 리강룡, 차정미, 박수열, 김인숙 諸氏의 散筆이 있다. 참여 동인은 무려 37명으로 지금까지의 동인지 가운데 가장 많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賞․薦의 報告 또한 화려하다.
골골에 햇살을 푸는
산새들의 고운 목청에
온갖 풀 나무들도
이슬을 털며 바로 앉고
산토끼 늦잠에 깨여
귀를 쫑긋 세울테지
- 민병덕,「새 아침마다」3/3 -
미안하지만, 민병덕은 ’82년 동행을 시작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동인이다. 좀처럼 모임에 나타나지 않아 그 모습이 아슴아슴하지만 순박한 농민의 모습으로 몹시도 섬약한 체구의 상주인(尙州人)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 작품 외에도 「귀뚜라미」「가을비」「농민 찬가」등 4편을 보이고 있는 바 꾀나 서투른 걸음마를 하고 있다. 그러나 민병덕은 일단 나래에 동행을 시작하자 줄기차게 노력하여 ’87년이었던가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선된 이후에는 또 오늘까지 기나긴 침묵의 세월 저 켠에 앉아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선보이는 작품은 작자가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면서 얻은 작품인 것 같다. 풀어지는 햇살과 산새의 고운 목청을 인과관계로 맞춘 솜씨가 어색하지 않으며, 이슬을 털고 바로 앉는 푸나무의 모습이 사실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시오 리 밖 내 영토를
감고 도는 물무늬에
기억의 모퉁이를
외발로 서성이면
등뒤로 다가와서는
돌아앉는 물소리.
- 류윤희,「外地에서」全文 -
류윤희는 서울 진명여고와 한성대학을 졸업한 강원도 횡성의 재원이다. 芳年에 벌써, 이룩해 놓은 문학적 업적이 너무도 화려하다. ’77년에 학원 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특선, 같은 해 서울 문예 백일장 산문 부문에서 장원, ’79년에는 같은 백일장 시부에서 차상, 같은 해에 한국학술변론연구회 주최 전국 남녀 학생 글짓기 대회 고등부에서 우수상, 그리고 ’78~’81년까지 전국 민족시 백일장에 연 4회에 걸쳐 차상 1회, 차하 2회, 입선 1회의 실력을 보였다. 아마추어 문단 경력이 말해 주듯이 예로 든 작품들 또한 범상치 않다. /시오리 밖 내 영토/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15년쯤 전 작자의 기억 속의 한 장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 속에 깊이 간직된 한 장의 추억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지금 작자는 그 영토의 모퉁이에 외발로 서성이고 있다. 끊임없이 잔물결로 와서 발목에 부딪는 물무늬, 등뒤로 왔다가는 문득 썰어져 가는 물결처럼, 돌아가는 기억의 물소리를 조용히 떠내고 있는 한 폭의 작은 그림이다. 카메라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 촬영자는 /외지/에 서 있고, 피사체는 추억의 한 모퉁이에 서 있다. 추상화, 관념화하기 쉬운 상황을 구체물을 통하여 선명하게 떠올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후 류윤희는 21호까지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하다가 홀연히 나래와 시조단을 떠난 뒤 지금은 소식을 알 수가 없다. 20대 방년에 衆人의 촉망을 한몸에 받던 그녀의 재질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깝기 그지없다.
소슬한 청솔 바람
이슬 먹은 무덤 가에
아침 햇살 금빛 얼레로
곱게 단장한 해바라기
「亡者여 외로워 마세요」
하늘 한 장 열고 있다.
- 림혜미,「亡者의 무덤가에서」全文 -
림혜미 시인은 1948년 평양 교원대학교를 졸업하시고, ’77년 전국 주부 백일장 시부에 입상하신, 지금은 古稀를 맞으신 참 인텔리이시다. 그렇게 지성파이시면서도 그 情의 깊이를 감히 잴 수 없는 다정 다감, 그리고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이시다. 1982년 제10호 동인지에서 동행의 손길을 주신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편치 앟으신 가운데서도 나래에 대한 지성에는 우리들 후진으로 하여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신다. 지나온 16년 동안 옆에서 뵈어 온 林선생님의 모습은 삶 그 자체가 바로 詩였다. 아니, 오히려 삶 그 자체를 충분히 시로 다 표현하시지 못하신다. 林선생님께 드린 拙詩 한 수로 감히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筆을 대신하고자 한다.
목련꽃속살같은머리칼을올리시며조금은기우셔도늘화안하신동안(童顔)으로다슨손잡아주시던선생님안녕하신지요.
자시(子時)에도숨이가쁜달구벌젊은밤의환상의숲물을잣는네온불현란한손난간문여미며문득선생님생각합니다.
과천땅을씨년스레젖은여울그곁에서위하여잔을채우고그래도자꾸쓸쓸해할때이윽히저녁놀같은웃음웃으시더니.
잠과못섞이는황홀한어둠앞에생손아려터지듯아픈밤을새신다더니동안도얼마나깊은밤의동굴을가시는지요.
버려야하는것도가지고가야하는밤이오고또오는섭섭한이여로라면차라리버리는시(詩)를위하여심지돋우십시오.
어느뉘풀지못할이승밖이지척인걸당사실헝클어진타래같은세사(世事)들도훠얼훨가을하늘에꽃씨처럼뿌리셔요.
다음은 허철주(許喆周)이다. 사실 필자는 그를 전연 알지 못한다. 동인지 제 10호에「河口에서」외「밤마다」「유년 일기」두 편을 실렸을 뿐 주소도 얼굴도 전혀 알지 못한다. 이제 그를 영입했던 石柱도 故人이 되고 말았으니 물어 볼 길 또한 묘연하다.「河口에서」한 수를 인용하면서 그의 편린을 정리해 둔다.
여린 듯한 고운 물결/학살처럼 번지던 강
문문한 가슴으로/내리붓는 살바람은
冥冥한/흐느낌되어/뒤척이며 흐른다.
엊그제 내린 비에/거친 호흡 몰아치며
밤을 샌 한 마리 물새/둔치로 나닐면서
애저녁/흐린 江心에/소나기로 내려 앉다.
- 허철주,「河口에서」全文 -
첫수의 중장과 종장을 형용사로 시작하고 있는 점과, /학살, 둔치, 나닐다, 애저녁/ 등의 시어들이 제자리에 앉지 못해 불편하게 보이고 있는 점 등 전체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며 연약한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운을 떼다가 그는 어디론지 영 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