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 아담의 죄가 전인류에 유전되었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크게 두가지로 분류했는데, 원죄와 자범죄입니다. 원죄는 앞에서 말했고, 자범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짓는 죄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롬5:14절 이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롬5:14절 이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all! ebasileusen o qanato" apo;!Ada;mmecri Mwsevw" kai epi tou" mh;amarthvsanta" epi tw.'oJmoiwmati th" parabasew" !Adam, o" estin tupo" tou'mellonto".
* (원어 직역) 오히려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에게도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가능성 있는 자(혹은 기다리는 자)의 표본이다.
◆여기서
tupo" tou'mellonto"
tupo" tou'mellonto"
의 뜻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1)'소망하는 자의 표본' 2)'가능성 있는 자의 표본'이다.
여기서
mellw
여기서
mellw
(3195)은 '기대하다, 기다리다, 가능성이 있다'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서
mellonto"
mellonto"
는 현재능동태분사이므로 '오실 자'로 해석할 수 없고, '기다리는 자', 혹은 '가능성 있는 자'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아담은 '오실 자' 곧 그리스도 예수의 표본이 될 수 없다. 아담은 사망으로 가는 자의 모델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생을 소유하신 자의 모델이 되신다. 단지 아담은 범죄 할 가능성이 있는 자의 본보기가 될 뿐이요, 또한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의 모델일 뿐이다.
'아담의 범죄와 동일한 것으로 죄 짓지 아니한 사람에게도 사망이 왕노릇하였으니'란 말씀은 죄 짓지 아니한 사람도 죄가 유전되어 아담 때문에 사망에 이른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앞 뒤 문맥을 보면 '아담과 같은 죄는 아니지만 다른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으니'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단어에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오실 자'란 원어(투 멜론토스)의 뜻은 '가능성 있는(3195) 자'란 말입니다. 즉 오실자라는 말은 예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는 그의 후손들 역시 범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쉽게 말하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들도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사망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는 종류나 경중에 관계 없다는 말입니다. 즉 아담은 아담이 지은 죄로, 후손은 후손이 지은 죄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겔18:2, 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겔18:2절에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라고 했고,
겔18:20절에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죄의 유전아라는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죄의 전파성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입니다.
태에서부터 보고 듣는 것이 죄악된 것이기 때문에 아담이 유혹을 받아 범죄한 것처럼 인생들도 은연중에 조상들의 죄악된 삶을 통해서 배우고 또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들 속에서 어찌 죄 없는 의인이 나올 수 있겠는가하는 의미에서 칼빈은 물사다리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칼빈의 기독교강요 참조).
그러므로 어떤 죄든지 다른 분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시고, 왜 사탄을 존재케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했느냐고 책임전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운명론적으로 창조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기계로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주시고 한 인격자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어떤 죄도 누구 때문이 아니라 다 나때문입니다.
죄의 책임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나 조상들에게 돌리려는 어리석움이 있는한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사죄의 은총에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죄는 전적으로 내 탓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고 의의 반열에 세움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담의 죄의 전파성때문에 많은 사람이 범죄하여 사망에 이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므로 많은 사람이 의와 생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5:21). 그러므로 복음전파에 힘쓸 것을 우리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유전을 다시 한번 고려해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 줄로 압니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아담은 '오실 자' 곧 그리스도 예수의 표본이 될 수 없다. 아담은 사망으로 가는 자의 모델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영생을 소유하신 자의 모델이 되신다. 단지 아담은 범죄 할 가능성이 있는 자의 본보기가 될 뿐이요, 또한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의 모델일 뿐이다.
'아담의 범죄와 동일한 것으로 죄 짓지 아니한 사람에게도 사망이 왕노릇하였으니'란 말씀은 죄 짓지 아니한 사람도 죄가 유전되어 아담 때문에 사망에 이른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생각했습니다.
앞 뒤 문맥을 보면 '아담과 같은 죄는 아니지만 다른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으니'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단어에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오실 자'란 원어(투 멜론토스)의 뜻은 '가능성 있는(3195) 자'란 말입니다. 즉 오실자라는 말은 예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는 그의 후손들 역시 범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쉽게 말하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들도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사망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에 이르는 죄는 종류나 경중에 관계 없다는 말입니다. 즉 아담은 아담이 지은 죄로, 후손은 후손이 지은 죄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겔18:2, 20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겔18:2절에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라고 했고,
겔18:20절에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죄의 유전아라는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죄의 전파성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입니다.
태에서부터 보고 듣는 것이 죄악된 것이기 때문에 아담이 유혹을 받아 범죄한 것처럼 인생들도 은연중에 조상들의 죄악된 삶을 통해서 배우고 또한 사탄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들 속에서 어찌 죄 없는 의인이 나올 수 있겠는가하는 의미에서 칼빈은 물사다리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칼빈의 기독교강요 참조).
그러므로 어떤 죄든지 다른 분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시고, 왜 사탄을 존재케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했느냐고 책임전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운명론적으로 창조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기계로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주시고 한 인격자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어떤 죄도 누구 때문이 아니라 다 나때문입니다.
죄의 책임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나 조상들에게 돌리려는 어리석움이 있는한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사죄의 은총에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죄는 전적으로 내 탓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받고 의의 반열에 세움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담의 죄의 전파성때문에 많은 사람이 범죄하여 사망에 이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므로 많은 사람이 의와 생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5:21). 그러므로 복음전파에 힘쓸 것을 우리에게 지상명령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유전을 다시 한번 고려해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 줄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