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의 언덕을 걷다

[외대/국어국문(야)/01/김윤선]

  피안의 언덕을 걷다

                                                                                                                     김윤선

 긴 터널을 지나 회갑을 넘으면서 꿈속에서 그리던 수필 문턱에 들어섰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의 업덩어리가 내 몸을 옥죄어 배움이란 그림의 떡이었다.

일제 억압 속에 죽음을 모면하고 목숨을 이어온 아버지는 11년간의 한 많은 세상을 끝내고 돌아가셨다.

밤낮 아버지의 비명을 들으며 7남매를 품어 안고 머리에 무거운 박물을 이고 행상을 하시던

어머니의 가혹한 형벌 앞에 배움이란 나에게는 사치였다.

 눈이 까만 자식들을 배 골리지 않기 위해 밤낮도 모르고 다니시던 어머니 시다.

일곱 살 소녀는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병시중과 동생을 돌봐야 하고 집안 살림까지 살아야 했던 운명 앞에

학교가 가고 싶어 병이 들었다. 늘 동생을 업고 학교 주변을 맴돌았고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며 넋을 잃곤 했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 날 교회에서 떡을 준다기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한 달간 밤에 교회를 다녔다.

난생처음 교회에서 이름을 쓰고 요한복음 3장 16절도 외우며 찬송도 금방 따라 불렀다.

 크리스마스 날 떡과 공책 3권을 선물로 받아 처음 글을 써보고 혼자서 공책 3권을 며칠 만에 다 써버렸다.

 아라비아 숫자를 1~1000까지 한 권을 하루 만에 다 쓰고 오빠 책을 보고 책대로 글자를 다 썼다.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혼자서 글을 터득하면서 책 몇 권도 그냥 다 쓰고 싶었다.

 날이 새면 이웃 또래들이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며 공부가 하고 싶어 가슴이 뛰고 있었다.

 아홉 살 때 입학식 날 동생을 업고 학교 정문 앞으로 갔다.

문 앞에서 멀리 친구들을 보니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줄을 서 있었다.

그 친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 쪽으로 다가 갔다.

 줄을 서 있던 친구들이 모두 입학을 하고 난 다음 기다렸다가 “선생님 나는 학교에 오면 안됩니까?”

 아이가 아이를 업고 불쑥 나타난 딸 같은 아이를 보며 깜짝 놀라시던 선생님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묻고 주소 적었다.

“엄마는 장사를 나가고 아버지는 아파서 누워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참 나에 대한 무엇을 적고 한숨을 쓰시더니 학교에 와도 된다는 정답을 주셨다.

간이 조마조마하던 순간 꿈같은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흥분 상태에 인사를 하고 푸른하늘 새처럼 날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누워있는 아버지께는 비밀로 하고 그 때부터 내 가슴은 요동을 쳤다.

 입학을 하고 처음 학교에 갈 때 온 몸이 떨려오며 하늘로 날아 가는 것 같았다.

 그토록 가고 싶은 학교지만 한 달에 10일 밖에 갈 수 없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아버지와 동생에게 발이 묶여 공부하는 친구들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쩌다 학교에 가는 날은 책보를 치마 밑에 매고 까치 발로 아버지가 잠든 사이에 뛰어나오곤 했다.

 가슴을 조이며 학교에 가면 늘 시험은 백점 아니면 한 두개 틀렸다.

 선생님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고 친구들도 모두가 좋아했다.

 책을 받으면 잠을 잘 때도 안고 자고 책 다섯권을 모두 외워버렸다.

눈을 뜨나 감으나 공부하는 생각 뿐인데 학교를 가다가 말다가 이사를 가고 일 년 또는 한 학기 빠지고

겨우 3년 정도 다녔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다.

초등학교 겨우 졸업 후 공장으로부터 시작하여 국제시장을 거쳐 서울 남대문 평화시장 진시장 자유시장에서

평생 삶을 일구어 살아왔다.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나는 객지 남의 집에서 장사도 하면서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식을 전했다.

친구들의  편지 속엔 늘 칭찬으로 위로를 하였지만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공부하는 생각이 가슴속에 울렁이고 있었다.

 나는 죽기 전에 공부를 하고 싶다. 일기를 쓰면서 맨 앞장엔 “푸쉬킨의 삶”을 적어놓았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음의 날을 참고 견대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그리워 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삶속에서 도사리는 생각들을 일기장에 쓰고 언젠가는 나의 한 맺힌 공부를 할 것이다.

꿈속에서도 동생을 업고 학교에 다니는 꿈을꾸곤 하였다.

시집을 와서도 병든 남편과 아들을 넷을 낳고 양가 부모님을 비롯 약 20여 명의 수레를 끌며

밤낮도 없던 시간에도 일기를 썼다.

밤이면 잠자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부처님께 매달리며 애원을 했다.

처음 자장암 법당에서 철야 정진 절을 시작으로 백년암 삼천배 절을 십 년간 하며

이 가문을 지키게 해 달라고 얼마나 빌었던가 “부처님 이 가문을 지키며 숙제가 끝나면 공부도 하여 꿈을 이루게 해 주세요.”

간절한 나의 기도가 부처님께서 알아 차리시고 빙그레 웃으시며 열심히 하면 된다고 희망과 용기를 주셨다.

오랜 기도 속에 남편의 건강이 회복되니 나는 공부를 시작하였다.

 남들이 잠자는 밤에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를 시작하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였다.

새벽이면 부모님의 밥과 아이들 도시락 등 식당만큼 하는 반찬을 하고 7시면 가게로 달려 간다.

한 살부터 십 칠세까지 아이옷을 대화하듯 정리를 하며 장사를 했다.

30도가 넘는 재래시장은 선풍기의 매캐한 화학 먼지가 코를 찌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손님을 맞이하고 종일 아이들의 종알대는 소리와 함께 많은 대화를 한다.

계절마다 꽃송이 같은 옷들이 눈을 빤히 뜨고 엄마엄마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고사리 손으로 재롱을 부린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품어안고 하루의 일당을 하기 위해 친절로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 한다.

오후 5시 장사를 마칠 시간 저녁밥 챙겨놓고 학교로 달려간다. 발에 발통을 달아 가게로 집으로 학교를 다녔고 잠을 자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쓰러지지 않고 건강하게 공부도 하며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기에 나는 할 수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공부 시작한지 6년만에 꿈에만 그리던 수능을 거쳐 부산 외국어 대학교 국문학과에 합격을 하였다.

대학교 입문을 하고 아들 딸 같은 학생들과 공부를 하면서 앞이 꽉 막히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그 고개를 넘을 때 마다 최선을 다해 갈고 닦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내가 바라던 문단에 등단을 하였다.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입문을 하고보니, 처음 글 밭에 들어 왔을 때 학창시절 백일장에 장원을 했다는

선배들의 자랑이 너무나 부러웠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별천지 사람들처럼 보였다.

학교 캠프스를 유희하는 또래들을 볼 때마다 목울대가 뻣뻣하게 아려 오곤 했다.

나는 다짐을 하고 대학교 졸업 후 8년 만에 대학원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학과 전공으로 석사 졸업을 하였다.

25년간 순풍에 돛을 달고 꿈속의 실크로드를 타고 다녔다. 그러나 나의 글 밭은 화학 먼지가 펄펄 날아다니는

시장바닥이고 천태 만상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인간 시장이다.

 황무지에 엉겅퀴를 걷어내고 옥토를 만들기 위해 흙을 끌어 들여 정열을 쏟아온 글밭이다.

비옥한 땅은 거름을 부어도 물기가 빠지고  엉성한 땅은 부석부석 자양분이 흡수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겐 가당찮은 꿈을 이루어 왔고  오늘도 열심히 갈고 닦고 길을 가고 있다.   

일인 오역의 수레를 끌며 평생 꿈꾸던 공부도 하였고 행복한 글을 쓸 수 있는 이 순간 피안의 언덕위를 걷고 있다.

날로 변화하는 개혁 시대에 상상 할 수 없었던 나의 삶을 황금 물결 같은 길을 만들어 가고 싶다.

목마른 나그네들이 목을 축이며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정자아래 샘물 같은 수필을 쓰고 싶다.

내 언어의 씨앗이 자양분으로 아픈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활력소가 되었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운다.

눈이있어도 앞을 볼수 없는  사람들에게 밝은 등불을 밝혀 주기위해 오늘도 그들과 함께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동안 갈고 닦아온 지식을 평생 글을 몰라 한이 맺힌 자들에게 눈을 뜰수 있도록 길을열어 주고 있다.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들이 책을 읽고  글을 알 때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한다.

그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다. 

저물어 가는 해를 잡고 나는 아직도 꿈을 꾸며 힘든 사람들과 함께 피안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