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9일 경남지회종원님 일두 정여창고택을 찿아서
- 개평마을
함양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마을은 '좌안동 우함양' 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를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 한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동정씨와 풍천노씨 그리고 초계정씨 3개의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하였다. 개평마을은 일두 고택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을 비롯한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일두 선생의 명상의 장소였던 개평리 소나무군락지도기념물 제254호 등 조상의 의식주와 생활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 번역 효송(曉松) 이창형 교수 >
이 시는 정여창 선생이 무오사화 (戊午士禍)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가던 도중, 안령(鞍嶺)고갯 마루에서 바람
불치를 기다리며 읊은 것으로 선생의 절의(節義)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일두(-臺) 정여창(鄭汝昌, 1450~1504년) 선생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서 김굉필(金宏弼), 김일손(金孫) 등과 함께 점필재( 齋)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학했다. 사림파의 대표적인 학자로 일찍이
지리산에 들어가 5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1490년(성종 21)
효행과 학식으로 천거되어 소격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같은 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예문관 검열,
세자 시강원설서, 안음(安陰, 함양) 현감 등을 역임했다.
저서는 무오사화 때 소각되어 대부분이 없어지고, 후학 정구(鄭述)
가 엮은 <문헌공실기 文獻公實記>에 일부가 실려 있으며, 후세에 유문
엮어 만든 <일두유집 - 蟲遺集>이 전한다.
무오사화에 연루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鞍嶺待風(안령대풍) 一壺 鄭汝昌(정여창)
待風風不至(대 풍풍부지)
바람 불기를 기다리나 바람은 붙지 않고
浮雲敵靑天(부운폐청천)
뜬 구름만 푸른 하늘을 가로막고 있구나
何日涼跳發 (하일량표발)
언제쯤에 시원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와서
掃却羣陰更見天(소각군음갱견천)
온갖 음기 날려 보내고 푸른 하늘 다시 보려나
안령 고개에서 바람 불기를 기다리며 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