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젖꽃판' 책 표지(왼쪽), 김덕남 시인 |
- 30여년 고독했던 삶 절절히 묻어나
- 애틋한 사랑·염원의 詩 정신 돋보여
어머니 뱃속에서 옹알이하던 1950년. 전쟁이 났고 아버지는 딸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 길은 마지막 길이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현충원에 누웠다. 전쟁통에 남편 잃고 홀로 딸 하나 키우던 어머니도 딸의 나이 서른에 아버지 찾아간다며 훌쩍 떠났다. 이후 딸의 유일한 위안은 시를 읽고 쓰는 것이었다.
이 짧지 않았던 세월. 누구나 수천 가지 사연이 없겠는가마는 여류 시조시인 김덕남(63)에게 외로운 생은 막막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는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으로 등단한 김 시인이 그동안 써온 시조 79편을 추려 첫 시집 '젖꽃판'(동학사)을 펴냈다. 시인에게 첫 시집은 첫 아이를 얻은 기쁨만큼이나 소중하지만, 김 시인에게는 유독 사랑스럽고 귀한 옥동자로 다가온다. 서문을 겸한 '여는 시'부터 예사롭지 않은 삶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더듬으며 절룩인 길 삭이고 우려내어/얼룩도 꽃잎인 양 양손으로 받쳐 들고/생각도 소금이 되라 무명 옷깃 여미다'. 그리고 시인은 서울 동작구 현충로 국립현충원에 함께 잠드신 아버지 어머니께 이 첫 번째 시집을 올린다고 했다.
표제시이기도 한 작품 '젖꽃판'은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날의 절절한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병풍을 밀쳐놓고 홑이불 걷어 내자/어머니 머뭇머뭇 내생을 가고 있다/아직도 못 내린 짐 있어 반눈 뜨고 나를 본다// 남루를 벗겨 내고 골고루 닦는 몸에/이생이 지고 있다 달무리 피고 있다/젖꽃판, 갈비뼈 위에 낙화인을 찍고 있다//…'.
시조시인이자 평론가인 임종찬 부산대 명예교수는 "시조가 서정 위주로 흐르면 감칠맛이 없고, 의미에 중심을 두면 정서가 약해진다. 김덕남은 이 양자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시조를 한 차원 높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삶의 현실과 서정의 공간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이룩한 사랑과 염원이 돋보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고독했던 삶을 살았기에 김 시인의 작품들 속에는 유독 가족애와 조국애, 자연애가 많이 배어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의 아픔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고, 부조리한 현실을 냉정하게 비판하면서 올곧은 시인으로서 자기 수행의 시를 펼쳐 보인다.
작중 화자를 대나무로 비유한 '대竹의 기원'에 유독 눈길이 간다. '나 죽어 한 필부의 젓대로나 태어나리/노래로 한세상을 달래어 살다가도/그리움 지는 달밤엔 가슴으로 울리라//그 다음 생 또 있다면 빗자루로 태어나리/티끌 먼지 쓸어내어 이 세상을 맑히다가/해지면 거꾸로 서서 면벽수행 하리라//화살이나 죽창은 내 뜻이 아닌 것을/속 비워 어깨 서로 기대며 다독이다/생애에 단 한 번 꽃으로 경전 피워 보리라'.
ⓒ국제신문(ww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