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 “태초에”
연구 범위: 창 1장
기억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6, 9).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한 유명한 과학자는, “어떤 독특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해부학적으로 특이한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지느러미가 육지 생물의 다리로 변형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성경, 특히 창세기의 처음 두 장은 우리의 기원에 관하여 전혀 다른 기사를 제공해 준다. 즉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 많으시고 친절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시고 엿새 동안의 창조 과정을 통하여 지구상에 생명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대의 진화론 학설은 성경의 창조 기사에 대하여 아주 노골적인 반대 입장에 서고 있다. 만약 하나가 맞는다면 다른 하나는 틀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유신론적 진화(theistic evolution)나 기나긴 진화의 과정과 하나님의 창조사역, 곧 지구상의 생명체들과 특히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통합하려고 시도하는 어떠한 이론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는다. 이번 주에 공부하겠지만 세상의 창조, 특히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것도 우연에 맡겨두지 않으셨다. 기원에 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함께 살펴보자.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우연히 다리로 변하여 된 것이 아니라,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음을 직접 확인해 보자.
“태초에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 창세기 1:1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담겨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신조들이 흘러나온다. 우리의 어떤 기본적인 가르침도 이 구절에 표현된 개념을 벗어나게 되면 이치에 맞지 않게 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창조의 사실 대신에 어떤 자연적인 힘에 의해 우연히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되고 진화되었다고 설명하는 거짓된 과학에 의해 휩쓸려 가버린 때에는 이 구절이 더욱 타당성을 갖게 되었다. 성경은 맨 첫 구절부터 그러한 진화의 개념을 철저히 부정한다.
다음 구절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출 20:11; 욥 38:4; 요 1:1~3; 골 1:15~20; 히 1:2; 계 14:6~7)
답:
창세기 1장의 나머지 부분에도 창조의 과정 그 자체보다는 천연계를 만드신 창조주께 초점이 맞춰져 있다. 31절로 되어 있는 이 장에서 하나님이란 단어가 32번이나 나오는 것은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이 아주 많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세기의 첫 장은 창조에 있어서 어떠한 우연도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해 준다. 종종 창조와 신들 사이의 전쟁을 연결시키는 고대의 다신주의와는 달리, 창세기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최고의 창조주로 묘사한다.
1절에서 ‘창조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 바라(bara)는 성경에서 오직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묘사할 때에만 사용된다. 인간의 활동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일반적인 활동을 표현할 때에는 보편적으로 아사(asah)라는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을 만드는 창조의 사역을 행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 인간은 다만 그 창조된 범위 안에서 활동할 수 있고 무언가를 실행(아사)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을 창조(바라)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교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 간결하고 힘 있는 구절은 성경 모든 교리의 뿌리이며, 성경적 신앙의 기초이다.
창조
창세기 1:1에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할 때, 그 ‘하늘’에는 온 우주가 포함되는 것으로 믿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같은 장에 나오는 ‘하늘’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비교해 보면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늘’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십시오(특히 20절). 문맥을 고려해 볼 때 창세기 1장의 ‘하늘’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답:
창조가 시작될 때 지구의 상태는 어떠하였습니까?(2절)
답: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는 구절은 모양과 형태가 없고 빛도 없는 환경, 그리고 식물과 동물이 전혀 없는 상태, 즉 간단히 말해서, 생명체가 없는 하나의 구체(球體)를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힘 있는 말씀으로써 창조하셨다(3,6,9,11,14,20,24절; 비교 시 33:6~9). 혹은 그분께서 지구에 생명체를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존재하게 하셨던 물질을 사용하여 창조하셨다. 창세기의 이 구절들을 읽어보면 무(無)에서의 창조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창조하시기 위해 당신께서 존재하게 하지 않으신 어떤 선재(先在) 물질에도 의존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지구를 만드시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하셨든지 간에, 그것은 그분이 이미 과거에 무(無)에서 창조를 해 놓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을 읽고 이 구절의 핵심을 요약해 보십시오. 이 구절은 창세기의 첫 절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답:
교훈: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실 때, 그것은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에 있었으며, 모양도 형태도 없고, 빛도 없는 하나의 구체에 불과하였다.
창조의 날들
창조 이야기에서, 지구 창조의 과정이 묘사된 시간적 구조(time frame)보다 더 많은 공격을 받은 부분도 없을 것이다. 성경을 높이는 대부분의 기독교계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의 기간을 성경에 명백히 기록된 대로 하루가 24시간인 문자적 6일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본질적으로 성경의 입장과 가르침을 완전히 부정하는 진화론 사상이 심지어 기독교 공동체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한번은 예수께서 당신의 재림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말씀하셨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그분께서 재림하실 때에 창조에 관한 성경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1장을 읽되, 창조가 묘사된 시간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어 읽으십시오. 이 장에서 그것이 문자적인 기간을 의미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어떤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상징적인 시간이 아니라 실제적인 시간이라는 어떤 증거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까?(예, 출 20:8~11)
답:
창세기 1:4~5을 주의깊이 읽어 보라. 이 두 절을 단순히 읽어만 보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빛과 어두움, 즉 ‘낮’과 ‘밤’으로 이루어진 그런 하루를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낮과 밤, 이 두 요소가 ‘첫째 날’을 이루었다고 본문은 말한다. 이 구절은 우리가 ‘하루’라고 말하는 24시간의 창조를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사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일정한 히브리어의 표현으로 끝맺는다. 하루 24시간의 창조를 분명하게 구분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동일한 표현 방식이 이장의 창조의 다른 날들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 셋째 날 … 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 만들고”(출 20:11)라고 하신 때와 같이, 성경의 처음 몇 절에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엿새 동안의 창조를 명시하셨다.
교훈: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의 엿새는 오늘날과 동일한 하루가 24시간인 문자적인 엿새임을 성경은 말한다. 창조의 하루하루는 상징이 아닌 실제적인 날들이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창세기의 창조 기사가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에 대해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한다. 지구와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단순한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2장까지 포함하여 겨우 56절만 할애되었을 뿐이다. 자전거 사용설명서의 고장수리에 대한 설명도 이보다는 더 길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많은 부분이 생략된 것이 분명하다. 창조의 섭리를 배울 수 있는 영원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숙고할 만한 충분한 정보도 주어져 있다.
창세기 1장을 다시 읽되, 이번에는 사건의 순서에 초점을 두고 읽으십시오. 어떤 패턴이 나타납니까? 이 특정한 방식은 지구상의 생명체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서 어떤 도움을 줍니까?
답:
창세기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였다(창 1:2)는 말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공허’를 제하시고 우리의 지구에 모양을 갖추는 일을 계속하셨다. 연속되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처음에는 어두움이 있었고 그 다음에 빛이 있었다. 이로써 낮과 밤의 경계가 생긴 것이다. 그 다음으로 대기권, 즉 ‘하늘’이라 불리는 ‘궁창’이 있었다. 물은 이미 지구가 창조될 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이것도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그 마른 땅 위에 “각종 씨 맺는”(11~12절) 채소와 풀과 나무가 있게 하셨다. 이어서 해와 달이 나타나고, 눈에 보이는 별들이 드러나게 하셨다(여기 이러한 과정에서 별들을 만드신 것이 왜 이런 방식으로 묘사되었는지는 우리가 하늘에 가서 답을 얻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제 자리에 놓이게 하신 다음에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땅 위를 날고 기고 움직이는 모든 피조물들과, 생육하고 번성하여야 할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이끌어 내실 수 있으셨다. 따라서 우리의 유한한 지식으로 판단하더라도, 여호와께서는 매우 논리적인 절차와 방식을 따라 이 땅에 생명체를 창조하신 것으로 보인다.
교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과정은 매우 논리적인 절차와 방식을 따른 것이다. 먼저 모양과 형태를 갖추신 다음 거기에 각종 생물들로 채우셨다.
인간의 창조
동물들의 창조와 아담의 창조를 비교해 보십시오. 비슷한 점이 무엇입니까?(참조 창 1:24 2:7,19)
답:
차이점은 무엇입니까?(창 1:26, 27 2:7)
답:
동물의 창조와 아담의 창조에 비해서 하와의 창조는 어떠하였습니까?(창 2:21~24)
답:
어제 언급했듯이, 창조에 관한 내용 중 성경에 계시되지 않은 것도 많다. 그러나 창조 이야기에는 인간의 특별한 위치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계시가 주어져 있다(창세기 1:27에는 ‘사람’이라는 통칭 아래 남자와 여자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는 인간의 의미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두 성(性)이 포함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은 완전하게 제 위치에 놓으신 후에야 아담(히브리어로 ‘아담’은 ‘땅’이라는 단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을 창조하셨고, 그를 지으신 후에야 하와를 창조하셨다. 인간과 짐승 사이의 약간의 유사점이 있긴 하지만, 성경은 이들 사이의 분명한 구별을 두고 있다. 또한 창세기는 다른 모든 것들의 창조에서처럼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도 우연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반복되는 표현이나(하나님이 보시니, 하나님이 가라사대 등), 반복되는 시간의 틀(“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리고 남자(창 2:7)와 여자(21-24절)를 창조하심으로 그 절정을 이루는 창조의 조직적인 진행 절차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우연에 맡겨 두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교훈: 사람도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다르다. 창조사역에 있어서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부조와 선지자, 44~45; 교육, 15~18; 재림교 성경 주석 1권, 167~182.
“아담이 창조주의 손으로 지음을 받았을 때 그의 육체와 지능과 영성(靈性)은 하나님을 매우 닮아 있었다. … 사람이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완전히 창조주의 형상을 나타내어 그분의 영광을 보다 충분히 반영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하신 바였다”(교육, 1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우주의 가장 작은 구조 단위는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 등의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진 원자라고 우리 대부분은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이론에 의하면, 이 미립자들은 실제로 진동하는 아주 가는 실(絲)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이 실의 크기를 양성자에 비교하는 것은, 양성자를 태양계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비록 그것은 단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존재하게 하셨다는 가르침에 비추어서 이 진동하는 실의 개념(실의 진동이 달라지면 다른 미립자가 됨)을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기 1:28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땅을 ‘다스리라’고 하신 가르침을 토의해 보십시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책임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어떻게 그 책임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세상이 초자연적으로 시작되었음을 가르칩니다. 이 개념은 세상이 초자연적으로 끝날 것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반원들끼리 천연계로 소풍을 나가 창조의 경이를 탐구할 계획을 세우면 어떻겠습니까? 가능하다면 아직 예수님과 구원의 놀라운 계획을 알지 못하는 몇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창조 솜씨에 관해 각자가 배우고 느낀 점을 나누면 어떨까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 동안 꼭 실천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