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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시내 산에서의 율법과 사랑
출 19:1~20:21, 32:1~35, 34:1~29
기억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당신의 특별한 백성으로 부르셨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다. 당신께서 자진하여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와의 한 언약 관계, 즉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순종하는 백성이 되는 그러한 관계에 들어가신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지만 단지 그림의 한부분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사랑의 율법을 통하여 당신의 사랑이 우리에게 도달될 수 있고, 우리가 실패하는 때에도 당신의 그 사랑이 우리를 그 특별한 언약 관계로 회복시켜 준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개관: 출 19:1~20:21, 32:1~35, 34:1~29
19:1~ 20:21, 언약이 맺어짐 | 32:1~29, 언약이 깨어짐 | 32:30~ 35, 34:1~29, 언약이 회복됨 |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 민족을 택하심(19:1~6) 순종을 약속함(19:7,8)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준비함(19:9~15)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심(19:16~25) 십계명(20:1~21) | 용서 받을수 없는 배도 (32:1~6). 모세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 (32:7~14) 죄의 무서운 결과(32:15~29). |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30~35). 깨어진 율법이 다시 주어짐 (34:1~29). |
서론
이 주일에 배우게 될 성경절들은 극적인 사건과 감정들의 장폭을 오르내린다. 이 성경절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당신의 귀한 보배로”(출 19:5 흠정역) 선택하실 때 구름과 불 가운데서 나타내시고,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실 때 우리 가운데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두려운 모습을 본다. 그 후 얼마 되지도 않아,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고 그것을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치욕스런 배도에 깊이 빠지는 장면을 또 보게 되며 끝으로 우리는 모세가 자아 희생적 사랑의 극치에 오르는 것을 본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사건들은 우리 생애의 역사를 예시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당신의 “특별한 보화”로 선택하셨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의 자비로우신 선택에 사랑의 순종으로 응답할 것을 명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과 순종을 약속드렸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 약속을 이행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 중보자께서 우리 죄의 짐을 대신 져 주셔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제의하셨다. 설사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 자신을 희생시키는 결과가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당신의 율법을 우리 마음에 새로 기록하심으로써 그 깨어진 율법을 다시 맞추셨다.
언약이 맺어짐(출 19:1~20:21)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 민족을 택하심(19:1~6)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상 만민 중에서 당신의 특별한 언약의 민족으로 택하셨는가?(신 7:6~8; 창 12:1~3, 15:1~6, 17:1~8 비교)
답:
출애굽기 19장 5, 6절은 구약의 최고 가치의 선언이요 오경의 중심 주제로 불려 왔다. “특별한 보화”로 번역된 말은 공동체나 공동 재산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개인이 가진 사적 재산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에 내포된 사상은 귀한 보물로서의 소유물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엄숙하고도 놀라운 책임이요 숙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혈통적 우수성 때문에 택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주적 은혜에 기초하여 선택하신 것이다. 그들이 그런 은혜를 누릴 자격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관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시키기로 결심하셨다.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그 당시 존재했던 다른 나라들에 관해 무엇을 암시해 주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었다면.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버리셨는가?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실패를 고려해볼 때, 다른 나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가치가 더 적었었는가?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던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약속이 주어졌는가?(벧전 2:9,10).
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선민으로 택하신 것이 전적으로 은혜이긴 하지만, 어떤 조건하에서 그 관계가 계속될 수 있었는가?(출 19:5).
답: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우리의 신분은 불순종하면 끊어지고 회개하면 다시 연결되는 율법 주의적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에 기초된 관계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그 관계가 현실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참고>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거하시는지 그렇지 못한지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 품성은 일시적 선행이나 일시적 악행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인 말과 행동의 경향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135,137).
순종을 약속함(출 19:7,8)
(생각해 봅시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모든 것들을 다 지키겠다고 약속했어야 했는가?
대제사장 법정에서의 베드로의 경우처럼, 시내 산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도 약속만으로는 충분치 못함을 보여 준다. 죄를 저항하는 데 있어서 자기 확신은 금물이다. 우리는 예수의 힘에 끊임없이 의지하지 않고서는 그런 약속을 지킬 수 없다(빌 4:13; 요 15:5 참조). 언약의 조건들은 정식으로 충족되었다. 모세는 백성들의 대답을 하나님께 가져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백성들에게 보이시고 당신의 율법을 선포하심으로써 자신의 동의를 그들 앞에서 확증해 보이셨다.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준비함(출 19:9~15)
<참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말씀하시는 기회를 그 율법의 탁월한 성격을 감안하여 매우 장엄한 광경이 되게 하고자 하셨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관련된 것들은 모두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아야 하였다”(부조와 선지자 상권, 396).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위하여 무슨 특별한 준비를 하였으며, 어떤 금지 사항이 주어졌는가?(출 19:10,15).
모세는 백성들을 “성결케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틀림없이 이것은 의식적 정결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도와 금식과 자복을 통해 죄로부터 정결케 되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몸을 깨끗이 해야 하였고 옷도 빨아야 하였다.
그들은 이 기간에는 성적 관계를 피해야 하였다. 이것은 물론 의식적 정결과 관련된 것인 듯하나, 이때는 영적 준비에 온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산에 가까이 하면 안 되었다.
(생각해 봅시다) 율법을 주시기에 앞서 백성들과 시내 산을 정결케 하신 일로 보아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심(출 19:16~25)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친히 나타나셨을 때 백성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는가?(신 4:11~15).
답:
굉장한 우뢰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중에 시내 산에 강림하셨다. 수행하는 천사들이 그분을 호위하면서 산꼭대기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하고 어두운 구름으로부터 번쩍이는 불꽃처럼 나타났다. 하나님의 음성이 두렵고 떨리는 인상적인 분위기 속에 들려 왔다. 빽빽한 구름에 가려진 채 그분은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시었다. 땅이 흔들리고, 산에서는 연기가 나고, 이곳저곳의 산 정상에서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팔이 울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딱 멈추고 정적이 흘렀다. 운집한 회중은 쥐 죽은 듯이 꼼짝 않고서 있었다. 이 고요함 속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말하였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자신을 인상적으로 나타내신 데 대해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신 5:23~28)
답:
십계명(출 20:1~21)
십계명 속에 간직된 원칙들은 영원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분의 품성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반포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십계명 서문은 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출 20:1,2).
죄가 있다는 말은 그보다 먼저 율법이 존재했었다는 얘기다. 만약 율법이 없다면 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죄는 율법에 의해 정의된다. 시내 산에서 정식으로 율법이 주어진 것은 영원부터 확립되어 있던 대원칙의 재천명이었다. 두 가지 위대한 영적 진리가 율법 준수 속에 포함되어 있다.
(1) 우리는 율법을 준수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다.
(2) 구원받은 자는,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그들의 신분을 상기시켜주는 그분의 말씀에 뒤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님께서 요약적으로 제시해 주시는 열 가지 위대한 범세계적 원칙들을 들었다. 처음 네 가지는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요약한 것이고, 나중 여섯 가지는 그들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정해 놓은 것이다. 이 열 가지 훈령은 삶의 세세한 상황을 다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 경험에 두루 적용되는 폭넓은 원칙들로 작성되어 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신 분은 신성의 제 몇 위이셨는가?(고전 10:1~4; 사 54:5; 약 4:12). 이 사실은 예수께서 사람으로 지상에 오셨을 때의 그의 사업의 일면에 어떤 빛을 던져주는가?
답:
<참고> “돌비에 새겨진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분은 그분(그리스도)이셨다”(부조와 선지자 상권, 484).
우리는 성경에서 단지 두 번 예수께서 친히 무엇인가를 쓰신 기록을 발견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한 여인을 그분께 끌고 왔을 때(요 8:1~11), 그분은 그들의 죄를 성전 뜰의 흙먼지로 뒤덮인 석판 위에 친히 손가락으로 쓰셨다. 그전에도 그는 시내 산에서 친히 그의 손가락으로 돌비에 당신의 율법을 기록 하였었다. 율법은 돌에, 죄는 흙먼지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십계명을 돌에 기록하심으로써 우리로그 영속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셨다고 말한다. 한편 우리가 순종치 못할 때도 낙심하지 않도록, 율법을 대적한 우리의 죄의 기록을 쉬 지워지는 흙에 남기셨다. 이것은 우리를 용서해 주고자 하시는 그분의 열의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친히 당신의 손가락으로 돌에 새겨 넣으신 사실은 죄에 대한 그분의 변함없는 태도를 증거 한다. 그분은 죄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처리해 버리지 않으신다. 그분의 율법에서 이탈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에 대한 심각한 반역이다. 율법의 시여자로 하여금 친히 인성을 쓰시고 한 인간으로서 율법 아래 사시게 만든 것은 율법의 이 중요한 불변의 성질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들을 흙에 기록하실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친히 죽으심으로 돌에 기록하신 율법을 존중하셨기 때문이다.
무엇이 메시야의 사명 중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했었는가?(사 42:21)
답:
랍비들은 이것을 유대 전통이 십계명에서 끌어낸 13등급의 규정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만든 이 규칙들이 당신의 율법의 참 의미를 모호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배척하셨다. 그분은 견딜 수 없는 짐으로 바라보게 하는 인간 전통의 무더기 속에서 그 율법을 구출하시고, 그것의 신령한 특성들과 원대한 원리들을 제시하심으로써 그 율법을 존대(尊大)케 하셨다.
<참고> “시내 산에서 우뢰와 불꽃 가운데 율법을 반포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삼키는 불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산꼭대기에 머물고, 여호와의 그 임재에 온 산이 진동하였다. 이스라엘 대군은 땅에 부복한 채, 두려운 마음으로 율법의 거룩한 교훈을 들었다. 축복의 산에서 있었던 장면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새들의 노래 소리 만 들릴 뿐 온 천지가 고요한 여름 하늘 아래서, 예수께서는 하늘 왕국의 원칙들을 설명하셨다. 그러나 이날 사랑의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그분은 시내 산에서 선포된 율법의 원칙들을 설명하고 계신 것이었다”(산상보훈, 107).
(알아봅시다) 다음 본문을 읽고 예수께서 각 계명으로부터 보다 깊은 영적 교훈을 끌어내심으로써 존대케 하신 그 계명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보라.
마 5:21~26
마 5:27~32
마 5:33~37
마 6:19~34
바울은 그리스도와 율법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했는가?
답:
(알아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의 율법이셨다.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의 표현이었다. 성경이 말한 율법의 모든 속성들은 예수님의 특성과도 일치된다. 그 예로 다음의 여러 쌍의 성경절을 보라.
시 19:7 과 히 2:10, 5:9
시 19:9, 119:172 과 요일 2:1
시 119:89 과 요일 5:11
롬 7:12과 행 4:2; 요 10:11,13
하나님의 율법의 기초는 무엇인가?(마 22:35-40; 롬 13:8~10)
답:
언약이 깨어짐(출 32:1~29)
용서받을 수 없는 배도(출 32:1~6)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눈으로 목격하고 그분의 언약의 백성 됨을 동의하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자 풀이 꺾이고 믿음을 잃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가시적인 것에 얼마나 많이 의존해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아론과 백성들은 자신들의 배도의 죄를 가리기 위해 무엇을 시도하였는가?(출 32:4,5)
답:
<참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황소 아피스를 숭배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 마음에 ‘송아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는 아마도 참 하나님에 대한 물질적 표현이었지 어떤 이방 신을 나타내려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 여러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을 느낀 아론은 ‘절일’을 선포함으로써 이 배도에 자신도 함께 빠져 들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축제일이 ‘여호와의 절일’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우상 숭배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으로서의 이 타협의 정신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이때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그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염병에 걸리게 만든 많은 우상 숭배의 동기가 되었다”(본교 성경 주석 1권, 665).
모세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출 32:7~14)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한 대명사를 흥미 있게 살펴보라.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7절)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하나님께 대답하면서 그는 이스라엘에 대해 언급하기를, 주께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11절)이라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임을 주장하였다.
<참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간구할 때, 모세는 그가 이제까지의 인도하심 하에 여러 가지로 애써 온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인해 그의 수줍음은 없어졌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의 이기심 없는 기도를 들어주셨다”(부조와 선지자 상권, 419).
(생각해 봅시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고자 하셨다면 모세가 정말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까? 모세가 그들을 중재하고자 한 것 못지않게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열망하신 것이 아닌가?
죄의 무서운 결과(출 32:15~29)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의 결과를 여실히 그려 보이기 위해모세가 한 일은 무엇인가?(출 32:19).
답:
깨어진 돌비는 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랑의 관계를 깨뜨린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죄를 지을 때 우리는 그저 하늘 법령집에 기록된 법하나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뜨리는 것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그 배도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모세는 송아지숭배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을 자기 곁으로 불러 모았다. 모든 레위 족속이 하나님께 충성되이 남은 것이 발견되었다. 죄를 지었으나 회개한 자들도 부름을 받았다. 주로 잡족들로 구성된 거대한 그룹이 끝까지 반항을 고집하였다. 암은 회중으로부터 제거되어야 했기 때문에 레위 인들은 이 그룹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언약이 회복됨(출 32:30~35, 34:1~29)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0~35)
이 구절은 겟세마네와 갈바리 다음가는 자아 희생적 사랑의 극치이다. 예수처럼 모세는 둘째 사망을 기꺼이 당하고자 하였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보여 준 놀라운 사랑은 예수께서 겟세마네와 갈바리에서 최대로 나타내셨던 그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사랑이다.
깨어진 율법이 다시 주어짐(출 34:1~29)
하나님께서는 속죄가 이루어지고 언약이 회복되었음을 무엇으로 상징하셨는가?(출 34:1,27).
답: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그 율법이 궁극적으로 어디에 기록되도록 의도하셨는가?(시 40:8; 렘 31:31~34; 히 10:16,17).
답:
보충학습: 부조와 선지자 상권의 제27장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39~412쪽)을 공부하라.
요약
이스라엘의 경험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생활 모습을 본다. 어두움으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부르심을 받았으면서도 우리는 죄에 빠지고 그분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 통회하는 중에 우리는 우리를 살리시고자 모세처럼 기꺼이 둘째 사망을 당하고자 하시는 한 중보자를 보게 된다. 우리가 속죄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전처럼 대해 주신다. 율법이 우리 마음속에 기록되고 관계가 회복된다.
적용
나는 율법을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억압하는 것으로 보는가?
나는 모세와 예수에 의해 보인 특별한 사랑을 이해하는가?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와 똑같은 사랑을 나타내고자 노력하는가?
나는 주 예수와 언약 관계에 있으며 그분의 은혜로 그에게 순종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