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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는가
우리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없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의 모든 생각과 마음과 입술을 주의 성령으로 온전히 주장하셔서 하나님 하시고 싶으신 말씀만
주의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선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러분은 혹시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도대체 왜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과 나의 실제 삶은 너무나도 다른 것일까?
지금 이 시간 솔직하게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이란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생동감 넘치는 동행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것을 믿는다면 이제는 아무런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전능자가 실제로 나와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시는데 걱정하고 염려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감사,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강이 차고 넘쳐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겠죠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감사와 평강이 넘쳐나기는 커녕 염려와 걱정이 넘쳐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은 혹시 오늘도 걱정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일생에 단 한 달이라도 또는 단 한 주라도 아무런 걱정이나 염려 없이 살아온 날이 과연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요? 분명히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이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닮아가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우리의 삶속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흩날려져야 될 것이고 더 예수님을 닮아가야 될 것이겠죠 이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이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의 삶을 정말로 잘 알고 있는 주위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와 당신은 정말 예수님을 쏙 빼닮았네요.
이 질문 앞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실 분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야 되는 부분이 정말로 많은데, 그래도 예수님을 정말 쏙 빼닮아야 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그때에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품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기는 커녕 원수를 갚고 싶어 해요.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는 커녕 평생을 사랑하기로 약속한 내 배우자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주위 사람들을 험담하고 비난하고 속으로 욕하면서 살아왔습니까?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미워하고,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끝까지 용서하기를 거부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나요?
예수님과 나의 삶이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 드시지 않습니까? 분명히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이란 주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고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기는 커녕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일주일이 또 훅 지나가 버리지는
안 왔나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과 도대체 왜 우리의 실제의 삶은 이렇게도 다른 것일까요?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생활을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수많은 성도들의 삶에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저자인 스티븐 코비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때 비로소 우리는 능력 있게 전진해 나갈 수 있으며, 주님과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겠죠.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우리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 과연 무엇인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골로새서 2장은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아주 간단 명료하게 우리에게 잘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마치 신앙생활을 한 나무에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를 하고 있죠.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려 그 안에서 행하며 그 안에서 뿌리를 박아 굳건히 세워지고 감사라는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곧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죠?
신앙생활의 출발, 신앙생활의 첫 단추 그리스도 예수를 무엇으로 주로 받아들이는 것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 출발이자 첫 단추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세요? 그저 교리적인 동의입니까
지적인 지식입니까? 아니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시작조차 할 수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 안에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뿌리를 내려야 되기
그래서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반드시 예수님을 누구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 너무나 잘 알고 계시죠?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가 바울과 신라 앞에서 벌벌 떨면서 선생님이요 내가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할 때 바울이 그에게 뭐라고 답을 하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주 예수를 믿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이 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만나야 되는데 그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우리의 삶의 주님 되신다는 것이죠.
로마서 10장 9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에 관해서 너무나도 유명한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빠짐없이 인용하는 구절이죠.
그 내용이 기억나십니까? 내가 만일 내 입술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내 마음에 믿으면 내가 구원을 받으리니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을 때 반드시 고백해야 되는 내용이 있는데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을 해야 된다고요?
주님으로서 빌립보서 2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어야 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우리에게 정확하게 설명해 주시고 계시죠.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까지 복종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설명합니까?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죠.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이라고 주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십자가를 지신 이유, 우리의 주인 되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삶에 회복될 때 그곳에 참된 구원이 임하기 때문이죠.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서도 너희가 마음의 그리스도를 무엇으로 모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로 삼아
너희의 마음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믿는 자들에게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우리가 주님으로 모실 때 그곳에서부터 참된 신앙생활이 출발하게 됨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곳에 참된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모시는 순간부터 비로소 참된 신앙생활이 출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생일 때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되는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드리는 것이죠.
어쩌면 지금 이 메시지를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 갑자기 다리 힘이 쫙
풀리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과연 무엇일까라고 했더니 그 답이 너무 황당하리만큼 기초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인데 이 상식과도 같은 이야기를 실제로 적용하지 아니하는 비상식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기본기에요.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 되신다라는 것을 모르시는 분 혹시 단 한 명이라도 계신가요? 아무도 없을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신앙생활의 기초 중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게 비극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교리적으로 동의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나의 삶의 모든 소유권,
모든 주제권, 모든 결정권을 주인 되신 예수님께 양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결단을 내리셨습니까? 어떻게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실제로 나의 삶의 예수님이 주인이신지 아닌지 저는 하나의 아주 간단한 질문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동안 여러분이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 가장 실망했던 적,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던 적이 언제였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하나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울 때 있죠 심지어는 하나님께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여러분의 경우에는
언제였습니까? 사람마다 답은 다르겠죠 그러나 이 답의 본질은 누구나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 하나님께 실망할 때, 심지어는 하나님께 화를 낼 때 그때는
하나님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시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죠 하나님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꼭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더니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가 강구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즉각즉각 다 들어주시던가요? 여러분의 경험에는 어떠했습니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살아 역사하십니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다만 항상 하나님께서 꼭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역사하시는 거는 아니에요.
사실은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부르셔도 하나님께서 침묵만을 지키실 때가 너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는 화가 납니다.
그때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살아계신 것 맞아라고 우리는 외치게 되죠.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셔야 되는 분이라면 만일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다 주셔야만 하는 분이라면 정말로 그분이 우리의 삶의 주인 맞습니까? 그런 분은 주인이 아니죠.
우리는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면서도 사실은 예수님을 행복 도우미 취급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우리가 무엇인가 간절히 원할 때만 어쩌다 한 번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는 일상생활 가운데 끊임없이 예수님을 우리의 행복 도우미 취급하면서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을 보면 그것이 확연하게 드러나요.
저와 여러분의 기도의 내용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어떤 내용이죠? 그러시지 않을 분이 분명히 이 자리에 있을 거예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성도들의 기도는 이런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참 많은 경우에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저 이거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것도 주시옵소서. 제가 원하는 것 제가 좋아하는 거 제가 필요한 것은 abcdefgeo니 다 채워주시옵소서.
물론 우리가 세계 선교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있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또 예수님을 닮아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때도 있겠죠.
그러나 정말로 솔직하게 답해 보세요.
세계 복음화와 세계 선교가 정말로 여러분 일생일 때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 맞습니까?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장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장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세계 복음화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서 하늘에서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그게 나의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 맞나요? 그런 분이 계실 수도 있겠지만 그리 많지는 않겠죠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 가장 지속적으로, 가장 끈질기게, 가장 자주 하는 기도는 결국엔 나와 내 가족이 그리고 나와 친한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움 받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 제목이 주시옵소서라는 내용으로 가득 찰 수밖에는 없겠죠
그것이 우리의 현 주소 아닌가요? 그런 구도 안에서 정말로 예수님이 주인 맞습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이오 절대자 되시는 분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우리의 매일매일의 기도가 항상 주시옵소서만으로 가득 찰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권자, 절대자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기도의 내용 자체가 달라져요.
자꾸 내 말을 하려고 하지 않고 주인 되신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겠죠.
기도를 통해서 계속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죠
기도의 목적이 달라져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설득시키려 하기보다는 기도를 통해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설득당하려고 노력하겠죠.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성경 공부 시간에 테스트를 친다면 아무도
페일 하지 않고 다 정답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나의 삶에서 나의 삶의 모든 소유권, 주제권, 결정권을 주인 되신 예수님께 넘겨드린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래서 신앙생활의 가장 큰 비극은 교회 생활을 10년, 30년, 60년 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인생의 주인이 바뀌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는 교회를 안 다니다가 이제는 교회를 다니는 것뿐 실질적으로 인격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 합니다.
나의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께 나의 삶의 모든 소유권을 다 양도한다는 것 이것이 말로 하기에는 참 쉬운데 실제로 실천하기는 물론 너무나 어렵습니다.
저의 삶에서
예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기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풀 타임으로 일하고 풀타임으로 공부하고 또 사역까지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 제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의 두 눈꺼풀에 쇳덩이를 달아놓은 것처럼
두 눈이 완전히 감겨버렸어요. 2초 이상 눈을 뜨고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내가 너무 과로했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좀 일찍 퇴근을 해서 아주 푹 잤어요.
숙면을 취하고 그다음 날 일어났는데도 2주가 지나도록 이 컨디션이 계속 지속되는 겁니다.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모든 실험을 다 해봤는데
병명조차 알지 못해요. 그러나 여러 가지 정밀 검사를 해본 결과 며칠 후에 이제 결과가 나왔는데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저를 앉혀두고 다음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김우준 씨, 당신의 병명은 중증근육무력증입니다.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병이니까 빨리 신경과 의사를 찾아가 보세요.
저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근데 신경과 전문에는 미국에서는 너무나 비쌌기 때문에 도저히 제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서 한국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한국 고대병원에 입원을 해서 이틀에 걸쳐서 다시 한 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정밀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검사가 다 끝나고
결과가 나왔을 때 신경과 전문의가 저를 앉혀 듣고 했던 말을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김우준 씨, 당신의 병명은 중증근육무력증입니다.
중증이라는 단어가 붙을 정도로 굉장히 심각한 병입니다.
근육무력증이란 문자 그대로 온몸에 있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병입니다.
이미 눈과 얼굴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고, 이제 그 마비 증상은 온몸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손과 발을, 다리와 팔을 마비시켜서 당신이 식물인간으로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셔야만 됩니다.
그리고 당신의 경우에는 중증이기 때문에 앞으로 6개월 이내로
전신마비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셔야 되는데, 만일에 이 마비 증상이 허파로 퍼지게 된다면 구급차가 오기도 전에 질식사로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이것은 불치병입니다.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강력한 약을 투입하여서 그 마비 증상이 퍼지는 속도를 조금 늦출 수는 있겠으나 아무리 시간을 많이 벌어들인다 해도 1년 내로 전신마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해봐야 되니 오늘 당장 입원하세요.
저는 제가 들은 이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 앞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제가 병실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을 깨고 제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솔직히 말을 하자면 하나님께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왜 저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십니까?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을 이렇게 비참하게 끝내버릴 것이었다면 왜 처음부터 저를 사역자로 부르셨습니까? 저는 이제부터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뛰고 또 뛰어야 되지 않겠?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임받기는커녕 식물인간이 되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평생을 병상에 누워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짐 받게 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지금 제 생명을 가져가세요.
차라리 제가 오늘 죽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성경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나게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과연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욥기 1장 21절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
저는 그 순간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 되신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전까지만 해도 저는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제 몸만큼은 저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 팔과 다리가 저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제가 당연히 누려야 되는 권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치병을 선고받고 보니 그날 저는 평생 처음으로 뼈저리게 깨달은 거예요.
그동안 제가 누렸던 그 모든 것, 저의 몸, 손과 발, 코 끝에 있는 생기까지도 저의 것이 아니며 단 한 번도 저의 것이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에요.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잠시 잠깐 저에게 맡겨주신 것뿐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저를 다시 찾아오셔서 저에게 맡겨주신 그 모든 것을 다시 찾아가시겠다면 다시 찾아가는 겁니다.
청지기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주인이 주인의 것을 주인의 뜻대로 하겠다는데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날 병실에 다시 무릎 꿇고 앉아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의 주인이신데 그동안 제가 주인 행세를 하면서 살았네요.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팍 터졌습니다.
계속해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감사 기도가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수십 년 동안 제가 저의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동안 저희의 다리로 제가 직접 걸어서 교회에 갈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배 시간에 저의 손을 들어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로 인해서 감사하고, 이 세상에는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입원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도 참 많이 있는데, 저는 병원에 입원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여러분의 두 다리로 내가 직접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다라는 사실에 감격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내가 나의 손으로 수저를 잡고 내가 직접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지금 오늘 이 아름다운 예배당에 여러분이 직접 걸어서 오실 수 있다라는 사실에 하나님께 감사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이건 당연한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주어진 특권입니다.
모든 게 감사의 조건이었어요. 감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마칠 무렵에
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제가 사실 의도치도 않았던 고백이 제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그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6개월 후에 제가 식물인간이 된다면, 그래서 제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평생을 병상에 누워 지내야 된다면, 그때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지도 않았고 의도하지도 않았던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결단코 아니라, 사실 저의 믿음은 너무나 형편없었지만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사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 고백을 이끌어내주신 겁니다.
그런데 그 고백과 함께 저의 평생 처음으로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요.
저의 생명, 저의 몸, 저의 삶의 모든 소유권을 주인 되시는 예수님 발 앞에 다 내려놓고 보니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정말 평강이 물밑듯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어요.
참 신기하죠? 우리는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라는 메시지를 들으면 참 많은 경우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왠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나의 삶의 모든 소유권을 양도해 드리면 이제부터 나는 모든 자유를 박탈당하고 하나님께서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만 골라 시킬 것만 같아서
고생길이 훤할 것 같아서 예수님의 주인 되심에 대한 메시지를 듣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굉장히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 되신다는 것은 일생 일대 최고의 소식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이 곧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인 되시면 우리의 삶의 소유권과 결정권이 그분께로 넘어가 버리면
그때부터 우리는 정말로 자유할 수 있거든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요? 그 지긋지긋한 걱정, 근심, 염려, 불안감으로부터 우리는 자유케 됩니다.
이제는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나의 삶을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에
그때 비로써 우리는 참된 평강을 참된 기쁨을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 되신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주님께 모든 소유권을 양도하고 나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어요.
아니 이제 앞으로 식물인간이 된다는데도 앞으로 중증근육무력증으로 손가락 하나 못 움직인다는데도 걱정할 게 없는데 이젠 뭘 더 걱정하겠습니까?
걱정할 이유가 없어요.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이것이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참된 평강이로구나.
물론 그 이전에도 마음이 편안했을 때는 정말 많았죠.
그러나
세상이 주는 편안한 마음은 절대적으로 상황에 의해서 좌우가 됩니다.
상황이 좋으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요.
반대로 상황이 나빠지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걱정하고 근심하고 염려하며 평생을 불안해하면서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아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은 상황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상황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여전히 환자였고 그 병을 치유받은 것도 아니고 저는 영원히 지금 병실에 앉아 있습니다.
여전히 그런데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아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그렇다면 왜 나는 이런 참된 평강을 이제서야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것일까?
이유가 너무 간단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저의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은 했어요.
교리적으로는 다 동의했습니다. 신학교에서 테스트 보면 항상 패스했어요.
그렇지만 실제로 저는 저의 삶에서 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보니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제가 다 결정해버렸어요.
내가 가고 싶은 대학교는 여기 내가 취직하고 싶어 하는 직장은 이곳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은 여기 그리고 나는 적어도 이 정도의 연봉을 받고 나의 생활 수준은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돼 제가 다 결정해버렸어요.
기도하는 무늬는 띄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결정은 제가 다 내려버렸습니다.
그러면 제가 가장 간절히 기도했을 때가 언제였을까요?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임의로 마음대로 제가 결정해버린 제 인생의 여러 목적지들을 향해 달려나가다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때는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몰라요.
하나님 냉큼 달려오셔서 이 장애물을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고난이 하루속히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기도는 열심히 하고 많이 했기 때문에 기도 많이 하는 청년이라고 칭찬은 다 받았습니다.
누가 봐도 저는 꽤 괜찮은 그리스도인이었을 겁니다.
무늬는 그랬죠. 그러나 실제 내용은
저의 삶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보면 예수님을 저는 주님으로 모시고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저의 행복 도우미 취급했을 뿐이에요.
나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해 주셔야 되는 분 물론 이론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건 이론이고요 실제 저의 삶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저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셔야 되는 분 취급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항상 걱정하고 염려하며 불안할 수밖에는 없었겠죠.
제가 주인 행세를 하면서 제가 제 인생을 책 책임져야 되거든요.
제가 이뤄내야 되거든요. 또 때로는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을까 봐 항상 불안했거든요.
저 학교에 합격하지 못할까 봐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지 못할까 봐
내가 혹시라도 가난해질까 봐 항상 불안했어요.
그런데 저의 인생 처음으로 모든 소유권 결정권, 주재권을 다 양도하고 보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겁니다.
너무 편안했어요. 그리고 너무 기뻤어요.
저는 기도를 마치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에 치유를 해주신다면 저는 건강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에 따라 저를 고쳐주시지 않는다면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거기에도 선한 뜻이 있음을 믿어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따라 저를 고쳐주시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이제 저의 삶에 남은 기간은 6개월입니다.
이 6개월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이 동일한 질문을 여러분에게도 드리고 싶습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 이제 딱 6개월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이와 비슷한 질문 많이 해보셨죠? 나의 삶에 단 한 달만이 남아있다면 딱 일주일밖에는 나의 삶이 남아있지 않다면 오늘이 나의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 책이나 여러 가지 강연을 통해서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때마다 아마 머리가 복잡하셨을 거예요.
저도 예전에는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딱 6개월밖에 없으면 일주일 또는 하루밖에 삶이 남아있지 않다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여기도 가보고 싶고 마지막으로 이 음식도 먹어보고 싶고 만나야 될 사람도 너무 많았거든요.
근데 그거는 제가 주인 행세를 할 때 머리가 복잡했고요.
저의 삶의 주도권을 온전히 주님께 양도하고 보니까 하나도 복잡하지 않았어요.
너무 간단했어요.
왜냐하면 이제는 예전에 머리가 복잡했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거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거든요.
근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거는 상관이 없어요.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제 6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니까 너무 단순했어요.
앞으로 6개월 동안 전도해야 되겠구나 영혼 구원 하나님의 마음이 묻어 있는 그곳에 나의 마음이 있어야 되겠구나.
저는 6개월이 지나 식물인간이 돼도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마음으로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이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은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답이 너무나도 명확했어요. 복음을 전파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저는 그날부터 링겔을 끌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파했어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언제 식물이 인간이 될지도 그 정확한 시기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 오늘은 전도해야 되겠구나 오늘은 사명 붙들고 살아야 되겠구나.
그런데 하나님 주신 사명 붙들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다 보니
너무 행복했어요. 그때 제가 수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때가 저의 일생을 통틀어서 가장 행복했던 때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장담컨데 그때 고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모든 환자들 중에 제가 가장 행복했을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마비 증상이 멈추더니 점점 풀리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이 넘은 시점에서 저희 전문의가, 저희 주치의가 저를 불렀어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김우준 씨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마비 증상은 거의 다 풀려버렸습니다.
이것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설명할 길이 있다면 어쩌면 어쩌면 말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반복적으로 전했던 예수님이라는 분이 정말로 살아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식물인간이 될 거라는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제 두 다리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무엇인가가 이거는 내 거야라고 나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어지면 저는 그날 그대로 그 병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제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 없는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다시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 정말로 예수님이 맞습니까? 혹시 그런 결단을 하시지 않은 분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오늘이 그 결단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삶의 소유권을 온전히 주인 되신 예수님께 양도해 드리고, 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행복을, 참된 자유를, 참된 평강을 누리시면서 주님 안에서 가장 지혜롭게, 가장 행복하게, 가장 신나게, 가장 영광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의 주인 되셔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감사하고 찬양하며 콧노래 부르며 순종하여 따라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