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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경연장]
우리 마을은 부도심 중 한가운데에 있다.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자 황금알을 낳는다는 상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게가 벌집처럼 빼곡하다. 경기가 바닥인 요즘엔 빈 가게가 한 집 건너 한 집 꼴이다.
젊은 날, 나에게도 박봉을 받쳐 줄 가게 하나를 마련하고자 아버지가 애지중지하시던 송아지까지 팔아 보탰다. 간절했던 꿈은 건설업체의 부도로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 일막일장으로 한바탕 봄꿈은 허망하게 끝났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라는 냉엄한 가르침만 빈손에 받아들고 물러섰던 적이 있다.
기발하고 별난 상호商號가 눈에 들어온다. 가게 이름에는 주인의 간절한 소망이 녹아 있다. 가게에 내 건 상호는 고객을 불러 모으는 흡인력을 발휘한다. 사람도 이름에 집착하듯 가게 이름도 허투루 짓지 않는다. 이름에 명운이 있다는 강한 믿음 때문일까.
요즘 신세대 창업자들은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고 파격적인 상호로 승부를 걸기도 한다. 상호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는 가게 주인의 경영 이념이 스미어 있어 흥미롭다.
물어보지 않아도 식당 메뉴가 훤한 ‘조개 까는 세상’이나 ‘꽃게 품은 닭’이 있는가 하면, ‘이 집이 그 집이가?’처럼 이미 유명세를 선점하고 있음을 은근히 자랑하는 떡볶이집도 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제철에는 장사진을 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훔쳐서라도 먹고 싶은 충동을 풍자한 ‘막창 도둑’은 얼마나 단도직입적인가. 뿐만아니라 무엇을 파는지 궁금증을 더하게 하는 ‘대한상회’나 ‘청춘 파는 상회’ 등 퀴즈 같은 상호도 있다.
그뿐인가. 서민 밀착형도 있다. 비싸지 않으니 주저 말고 오라는 ‘서민통닭’이 있고, 맛 자랑이라면 으뜸이니 망설이지 말라는 ‘국가대표, 고기가 맛있는 집’도 떡하니 버티고 있다.
‘폰값 똥값’ 은 휴대폰 가게 상호다. 너무 비천한 표현에 미안했던지 ‘똥糞’을 화투의 오동(桐)짝으로 살짝 면피시켜 고객의 거부감을 달랜다.
노이즈 효과랄까 역발상 상호도 등장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맛없는 국수집’이다. 국수 한 그릇에 2천 원으로 저가공세에 불을 붙였다. 얼큰하고 구수한 토종 국수 맛에 값도 싸다. 그 옛날 고향 마당 한쪽 양은솥에서 건져낸 어머니의 손맛 어린 그 국수 맛이 아닌가. 가성비價性比 좋은 이 집 국수가 장수할 것으로 믿었는데 일 년도 못 버티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렇듯 상호는 단어형, 서술형을 가리지 않고 도발적으로 세대교체 중이다.
어느 네거리 코너에 자리한 타이어 판매점에 붙은 부제副題를 보자.
‘부모님 차에 타이어를 바꾸어 드리는 정성’을 강조하는 효도 마케팅이다. 이도 어느 날 슬로건만 벽면에 을씨년스러운 흔적을 남긴 채 가게는 행방불명이다. 붐비던 정황을 보아서는 그 자리에 붙박아 영원할 것 같았는데… 무정하다.
어릴 적, 어머니는 ‘이것 사이소’라는 말이 목구멍에 올라오지 않는다 하셨다. 나도 숫기 없기는 어머니와 판박이다. 물건을 파는데 필요한 능청과 뻔뻔스러움, 배짱 같은 끼를 나는 전혀 지니지 못했다. 그래서 사뭇 월급쟁이로 살아왔다.
요즘 청년 실업으로 아우성이다. 구직하다 안 되면 자영업에 뛰어든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치는 비정상을 경고한다. 가공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생명줄인데 말이다. 고용해 줄 기업이 없으니 손쉽게 접근하는 것이 음식 장사다. 너도나도 장사에 쓰나미 처럼 몰리다 보니 ‘커피 공화국’, ‘치킨공화국’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폐업과 창업이 반복되는 와중에 리모델링 업계만 호황을 누릴 판이어서 씁쓸하다.
우리 부부는 식성이 너무 다르다. 아내는 기름기가 많거나 튀긴 음식을 싫어한다. 나는 아내와 정반대다. 내가 즐기는 중국요리 집 식탁에 아내와 동석할 일은 거의 없다. 간혹 아내의 출타를 틈타서 홀로 식도락을 즐길 뿐. 이따금 외식 때면 아내의 취향대로 콩나물국밥이나 이른바 약선요리집 정도를 찾곤 한다.
한번은 아내가 즐기는 콩나물 해장국을 먹었는데 카드 결제 시 5천 원짜리를 현금 할인으로 3천 5백 원을 치르니 두 그릇에 7천 원이다. 한 그릇 값으로 배를 불렸으니 지갑은 잘 지켰지만 매출이 보잘것없어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도처에 상가 공급이 넘쳐나 임대가 어렵고, 버거운 임차료에다 높은 인건비, 그리고 턱없이 낮은 매출에 수익 내기도 힘 든다.
아서라, 남 탓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제 절의 부처는 제가 위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아름다운 상호경연이 끊이지 않도록 적지만 조용히, 끊임없이 응원하리라.
(2020)
●독후감 모음
2005년에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하고 난 뒤 수필에 괘심을 두어 2011년 수필에 등단하여 10여 년 간 모아 온 수필,에세이가 숫적으로는 빈약하기에 그리 자랑할 것이 못되었다. 하지만 나이는 떠날 날이 가까워져 더는 미룰 수 없어 2022.4.20일 '상호경연장'으로 묶어 세상에 펴냈다. 선우미디어. 13000원. 교보문고, 예스24 외에 배포된 모양이다.
친지들의 격려가 sns를 타고 전해왔다. 두차례 읽었다는 소리, 가족 친지들과 돌려읽기를 했다는 전언은 내 가슴을 뛰게했다.
SNS의 댓글 몇 구절을 소개한다.
○«상호 경연장》을 잘 받았습니다.
표지로 신록 직전의 계곡 풍경을 제목과 함께 디자인한 것이 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을 일별해보니 눈에 익은 글제목도 보여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우선 책이름으로 쓴 [상호 경연장]부터 읽어 보면서 생각만 가지면 글감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다양한 주제로 엮은 45편의 주옥같은 글을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지은이의 내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책만들기,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 용기와 집념에 찬사를 드립니다.
고맙기는 한데 귀한 책을 그냥 받아서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표지 다음 장에 주고받는 사람을 표시해놓은 것이 특이하군요. <사범13회. 권오신>
○師友 尹公의 .에세이 商號競演場.을 받아 읽고 감탄했습니다.수필가 곽홍렬선생의 表辭 그대로 .맑고 고운 성정이 드러나는 정갈하고 담박한 글.에 공감합니다.敬意와 讚辭를 보냅니다.題號의 작품,상호경연장,은 사물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老年期의 수필가들이 빠져들기 쉬운 신세타령이나 한탄. 넋두리,등등 군더더기같은 것을 늘어놓는 진부함이 排除된 것이 깔끔하고 맛갈스러움이라고하겠습니다.문장도 중언 부언을 피해 간단명료하게 短文으로 돼있어 읽는이들에게 호흡의 부담을 주지 않아 좋았습니다.소재선정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뛰어난 文脈구성.이웃하는 모든 것에 대한 따뜻한 視線은 작가 소호의 文學空間이 크게 擴張되는 계기가 될것으로 確信합니다.心祝一念.於釜 鈍友 金 瑩 謹書
○ 참으로 귀한 선물을 받았다.
소호, 윤상홍 동기의 첫 에세이 집<상호 경연장> 出刊을 축하한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읽고 또 읽고 있다. 하나하나의 작품에서 특별한 삶의 깊은 철학과 남다른 生活意志를 읽을 수 있어서 큰 울림을 느낀다.
--소호, 한국 수필문단에 <큰별> 뜨다!. 작가의 강점을 살려 좋은 에세이를 많이 써주기를---
-시인 정하나.22.5.15-
○ 윤선생의 삶이 녹아있는 아름다운 편린들이 나에게도 날아왔습니다.
고이 두고두고 펼쳐보겠습니다. 수고 많이...고맙고 감사. <미상>
○ 보내주신 에세이집
<상호경연장> 감사히 받았습니다.
글도 한군데 모아 놓지 않으면
완성품이 되지 못하지요.
표지도 산뜻하고
부피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습니다.
독자들이 선생님의 글을
마음껏 찾아 읽게 되었군요.
첫 수필집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2022. 5. 11.
<에세이21> 산영재 드림(발행인 이정림)
○ 선생님의 수필집 상호경연장을 받고 한 자리에서 7편을 읽었습니다.
곁에 두고 다 읽을 것입니다.
순하고 바르고 맑은 정신으로 쓴 글들이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 어릴때의 생활 환경과 너무나 닮아서 감동은 더 큰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살아 온 길은 그리 헛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이대 올림(시인. 사범10회)-
○ 상호 경연장 !
(윤상홍 수필가의 엣세이를 읽고)
요즈음 市場 점포들의 浮沈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잘 그려 낸 엣세이!
'상호경연장'이라는 제목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 글이 실려 있는 80페이지를 찾아 읽어 나갔다. 점점 결말에 대한 초조감 같은 느낌을 가지고 끝까지 읽는 도중, 늦게사 그 제목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앗차! 그 게 간판의 이름이나, 어떤 볼거리에 대한 경연장'이 아니었구나 하는 걸ㅡ.
그리곤 그제사,
오늘날의 현실에 딱 맞는 商街의 간판들에 대한 제목을 현실에 딱 맞도록, 잘도 붙여 준 이름이란 걸 말이다.
요즈음 商街들의 경기에 따른 生成과 消滅.
본인의 젊을적 실패담까지 겸한 현재의 시장경기를 너무나 실감 나도록 적라라하게 그려 낸 엣세이ㅡ.
오늘날 우리 소상공인들의 생활상. 아니 애환이랄까!.
내가 늘 지나다니는 우리 마을의 상가들을 보면, 금방 달아 놓은 것 같은 商號인데도, 다른 업자가 들면서 또 다른 이름으로 갈아 붙이곤 하는 것을 나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주 보아 왔었다. 물론 틈새 상업으로 好期를 맞는 인테리어 업자들도 있기는 하겠지만ㅡ.
그런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그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作家의 표현력과 내 능력과는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는 건가!
윤상홍 작가의 엣세이. 잘 읽어 보았다.
계속 정진하시길ㅡ.
-22.5.17.임연식-
○ 소호의 수필집
상호경연장!
너그럽고 구수한 모습과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탁월한 식견으로 보석같은 수필을 한데 모은 책입니다.
일찌기 30대 초반에 전국 교사 대상 교안(학습지도안) 겨루기 대상을 차지한 기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수필만이 아니라 서예와 사진까지 경지에 이른 윤상홍!
코로나 사태도 풀리고 있으니 출판기념회를
열어드리고 싶습니다.
-권한결-
○윤 회장님 명 에세이란 이런 것임을 배웠습니다. 많이 느끼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고맙고 또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동후드림
○ 윤상홍 선생님 보내주신
책 상호 경연장 잘 받았습니다. 책머리에 한 꼭지라도 의미 있다고 느낀 독자가 있다면 행운이라는 말씀에 저도 모르게 숙연해 집니다.
선생님 존함을 글을 통해
알고 있는데 이렇게 겸손 하시다니~
선생님 말씀 떠올리며
낮은 자세로 읽고 공부하겠습니다
출판을 축하드리며
건강하시길 빕니다
-서울에서 강병숙 드림
(아버지의 유산, 아름다운 몸부림 저자)-
○ 소호 윤상홍 님의 수필집 상호경연장 이제 막 다 읽었습니다.
농익은 문장력, 탄탄한 구성, 소재의 다양성은 수필의 정석을 보는듯 하였습니다. 능청스럽게 끌어다가 적재적소에 갖다 붙이는 기상천외의 비유는 읽는 내내 무릎을 치게 하였습니다.
대가의 반열에 올려도 조금도 손색없다는 자신감에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소호 만세! 윤상홍 만만세 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교훈을 삶으로 보여주신 사모님 그간 수고많았습니다.
두 분 과로사 걱정일랑 잊으시고 버켓리스트 모두 이루시길 발원합니다.
2022. 5. 21.
-청안 합장(하재웅)-
○ 소호 윤 방장의 상호경연장의
에세이를 읽고 ---
어릴적의 추억, 외숙모에 대한
사랑, 부모님에 대한 회고,
삶의 길목마다 꾸밈 없이 표현하는 문장력이 수필가로서 대작입니다.
작가의 일생을 그린 자서전
입니다 .
앞으로도 증진하시고 ~~~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
2022. 5 .24 .
-송일(이동복) 드림-
일송을 송일로 개명 했어요.
○ 윤상홍 교장님
산영회 김옥진입니다.
우선 수필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귀한 수필집
'상호경연장'을. 받았어요. 받고서 그 자리에서 몇 편을 단숨에 읽었어요.
글에서 풍기는 고향 냄새 어머님에 대한 효성
가족의 애틋함
외숙모 사랑 조사에서
느껴졌어요.
훌륭하십니다.
감사드리며 거듭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문운이 왕성하시길 빕니다.
김옥진 올림
○ 고맙습니다. 주옥같은 영근 글들이 평범한 뒤안길을 가치롭게 해주는 그런 맛이 있군요.
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김봉환(10회)-
○ 윤상홍 회장님
회장님의 에세이 (상호경연장)을 감사히 받았습니다. 감탄사가 이어지는 좋은 글들을 보며 회장님의 만능의 재능에 경의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귀댁에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조기현 드림- *사진동아리 회원. 大師'62졸
○ 감사합니다. 아내에게 드리는 글에 회장님 마음에 정감이.공감이 가는 글을 읽고 54년간 살면서 부족했던 자신을 늦게나마 반성케 해주십니다. 감사합니다. *미상
○ 소호 윤상홍님의 수필집은 에세이 21, 청람수필집,12사우 카폐에 게재되었던 작품으로 수시로 읽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소감을 뭉뚱그려 말하지는 않았지만 청안정사 하재웅 님의 압축된 소감이 명작 수필의 정곡을 정확히게 짚었네 그려!
특히 능청스럽게 끌어다가 적재적소에 갖다 붙이는 기상천외의 비유가 무릎을 치게 하였디는 표현은 또 한번 무릎을 치게 하는 소감이어서 명작과 쌍벽을 이루는 명소감이라 사료되어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힌 마디 올립니다.
-권재기-
○ 보내준 책 잘 읽고 있네
그렇게 좋은 글재주(등단작가)가 있는 줄 몰랐군!
정말 축하하네.
또 사진에 까지 조예가 깊으니 금상첨화로군.
좋은 재주와 좋은 취미를
함께 가졌으니 자네는
참 복받은 사람이야!
(사진은 집사람이 한사협회원이라 귀동냥은 하는편 이라네)
자주 연락하세나^^^^
-이석호(중학교 동창.전 포항등기소장)-
○ 담백한 문체가 좋고 소재가 다양해 더 좋습니다.
-강철수(슈필가)-
○ 윤상홍 문우님의 과찬의 말씀에 감사를 드리며
하루 속히 산영회 에서 뵈올 날을 기다려 봅니다
저 또한 수필가로서 부족함이 많은 탓인지
선생님의 글 중에선 칼럼과 "바치는 글" 이 마음에 더 많이 와 닿아 곁에 두고
오래도록 두고두고 읽으렴니다.
코로나 잘 이겨 내시고
건승건필 하시길 기원 드림니다.
-22. 9. 5. 강인철 드림-
○ 윤 교장 선생님
오늘은 제가 청도 별장에서 고요히
상호경연장 수필집을 완독했어요.
저 역시 국어를 전공하고, 문학을
즐기며, 많은 수필과 시를 썼기에
많은 공감과 감동, 그리고 인생을 더욱 알차게 살아야겠다는 값진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6.25 전쟁과 궁핍한 가난속에서
도 사범대학(사범헉교 지칭)에 진학하여 꿈을 펼친
고단한 인생역정이 제 몸을 전율케
했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이승에
태어난 고마움, 세상에 잠시 소풍
온 짧은 삶이 그래도 즐거웠노라
책 한권으로 징표를 삼으시고ᆢ
버킷리스트 1호, 청화산을 보며 키운 청운의 꿈, 늦게 사진 촬영을 배우며 출사를 겸한 사모님과의 여행, 한정된 여생을 하루라도 헛
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백수과로사,
텃밭의 애환, 문중과 자손된 도리,
은사님과 선현들의 상선약수 처세
술을 실천해오신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2001. 3. 1. 하양초에 발령받아
교장선생님을 처음 뵈었지요.
30대 중반에 연구부장, 교무부장
을 하며 제가 벌써 경력 4.02년의
교장을 하고 있으니 세월이 쏜살
같이 빠름을 실감합니다. 그때 하양초에서 만난 교장선생님과 교감, 여러 선후배들이 저에게 많은 가르침과 성원을 해 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 퇴직을 하든, 언제 생을 마감
하든 한 점 후회없을 만큼ᆢ 제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하면서 거침없이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꿈이 많고 열정 가득하기에
교장선생님의 수필을 읽으면서
저의 버킷리스트를 수정하고 우선
순위를 조정하여 지구에서의 아름
다운 소풍 여정이 끝날 수 있도록
각오를 새롭게 해 봅니다.
-박광일 올림- *경산 부림초 교장
<출판 축하 전화>
윤종락 윤한기 김순환 한실이 윤호기 윤기옥
윤용희교수 박동욱 윤을희 김장길 윤재인 남홍명
최병찬 윤용희 •윤해진 •윤상화 •장건진 •이현식
•윤상렬 •윤창식 •김우홍 •윤오식 •김명자 •윤우진
•류상희 •심애자 노옥임 강정훈 제씨 등
■新作
*2023년 에세이21 발표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한 수
윤 상 홍
삶의 저물녁에 앨범을 펼쳐 본다. 나와 인연된 이들의 자취들이 두툼한 앨범 속에서 묵상에 들어 있다. 젊은 시절에 앨범을 펼쳐 보는 감회와 만년에 들여다보는 느낌이 왜 이리 다를까. 인생의 여름에는 활기찬 사진으로 보였다면 생의 끝자락에 와서 보는 느낌은 맥이 한풀 꺾인 모습으로 비친다. 자식 손으로 유품을 처리하도록 놔두기 전에 내 손으로 정리하고 가는 게 피차가 개운할 것 같다. 사진을 찍어 이미지 파일로 저장 장치(usb)에 넣어 두면 훗날 저들에게는 효율성과 보전성에 유리하겠다 싶다.
사진첩에서 한 장 한 장 꺼내어 폰카메라에 담는다. 문갑 안에 말없이 도열해 있는 기념패, 감사패, 훈장패가 한때 빛났던 영광이 세월의 무상함에 바래어져 가고 있어 이 또한 저장장치 안으로 들여야 겠다.
사진을 찍다가 어머니의 아주 드문 컬러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머문다. 우람한 바위를 배경으로 우리 모자와 당신의 손녀 둘을 앞세워 찍은 정경이다. 가족 소풍 사진에 으레 함께 있어야 할 며느리와 손자의 모습이 빠져 있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수술을 받고 몸져 눕는 바람에 못 간 건 알겠지만 손자가 동행하지 못한 까닭은 흑백 필름을 되뇌어 봐도 모르겠다. 아내의 와병 사실을 당시 통신 사정으로는 미리 알려 드릴 수 없어 빚어진 일이었다. 우리 사정을 어머니가 미리 아셨다면 이 사진은 아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오셨지만 우리는 모처럼의 기회라 놓칠 수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청송 주왕산으로 가족 소풍을 서둘렀다. 사정을 모르고 오신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농삿일의 번거로움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가 어려운 걸 흙을 묻혀 보아서 잘 안다. 날씨를 요량해야 하고 돌아서면 금세 쑥쑥 자라는 잡초와의 전쟁에 편할 날이 없는 까닭이다. 조촐한 나들이이지만 농삿일의 고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드리고 싶었기에 참 좋았다.
흰 한복 차림의 어머니의 모습은 고스란히 당신 삶의 원형으로 비치었다. 늘 담담한 성품에 자애로움이 넘치는 표상이시다. 고약한 탈항증으로 갖은 고생을 안겨 드렸던 나는 큰 빚쟁이라는 생각이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침마다 뒷간을 따라 다니며 망칙함을 감내하셨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뿐이 아니었다. 인삼 넣은 닭과 곰탕을 삘 새 없이 끓여 대어 원기를 돋우려는 처절한 모정을 내 어찌 잊겠는가. 세상에 그 무엇으로 보상이 되겠으랴.
한번은 우리 내외가 깊은 잠에 빠진 한밤중에 방문을 열어 보시곤하여 아내는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 정신이 혼미하셨던 때 불현듯 아들이 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릴 때부터 잔병 치레를 달고 살았던 자식이 오매불망 걱정을 못 놓으시고 궁금해서 그러신 것 같아 더욱 짠하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하다 해도 똥오줌을 사랑으로 버무리며 키운 정을 어찌 넘어설 수 있을까.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키우시며 빈농의 주부로서 궁핍의 밑바탕을 떠받치는 처지라 영양실조로 사 십대 때부터 시낭고낭 앓으셨다. 치아마저 일찍 망가져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첫 월급을 받자마자 한의원으로 달려가서 약 한 재를 지어 드렸다. 워낙 기가 다한 터라 기대와는 달리 효험은 미미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음식을 온전히 드실 수 있게 틀니를 맞추어 드려 보았다.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내가 받은 사랑에 비기겠는가.
중학 시절을 외할머니 슬하에서 보낸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여느 동네 노인과는 달리 글 읽기를 즐겨 하셨다. 불교 경전이나 전래 소설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닮아서인지 책 읽기와 이웃 혼사에 사돈지와 혼서지를 써주시곤 하셨다.
사진을 보다가 사십여 년 전,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며느리로부터 편지를 받고 쓰신 유일한 친필 답서를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현부살피라/ 너을(를)보낸후궁거워하든(궁금하던)차너의만지정찰을바드니(받으니)우리 고부마주안자(앉아)담화하는듯줄(즐)겁기그지업구나(없구나)......'
편지지에 흘림체로 정갈하게 써 내려간 붓글씨였다. 시어머니의 자애가 스며 있다.
어머니가 남 험담을 하거나 누구와 다투시는 모습을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남들이 다투면 으레 하는 말씀이 있다. '왜 다투느냐. 그까짓 개 궁둥이에 절 한 번 하면 누가 잡아가나. 물러서고 져주면 되는 것을...'
어쩌다가 우리 아파트 경로당 일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좀처럼 자기 주장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경향을 본다.
남을 폄훼하는 말 한마디로 걸린 가시가 해를 묵히더니 드디어 폭발했다. 죽어도 절대 물러설 수 없다며 삿대질을 하더니 고소로 끌고 가려 한다. 삿대질만 했을 뿐인데 폭행이네아니네 하며 A씨는 Ɓ씨를 상대로 상해진단서를 끊어서 압박에 나선다. B씨는 손가락 끝이 겉옷에 살짝 스쳤을 뿐인데 엄살을 부린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팔을 걷었다. 먼저 시비를 걸었던 A씨 모자를 마주했다. 아들은 고소장까지 보이며 법정에 끌고 가겠단다. 친구끼리의 다툼을 송사로 끌고 가서야 어머니의 체면에 노인정에 어찌 나오실 수 있겠느냐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노인회장이 그쪽 편들어 협박하면 나도 그만 있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젊은이의 당돌함에 순간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알만한 사람이 어른들의 일을 이렇게 끌고 가는 게 말이 되느냐?" 고 호통을 쳤다. 난감해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손목을 끌고 나갔다. 돌아가서 아들을 나무랐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몇 일 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보낸 사과글이라며 카톡에 실어 보내왔다. 옳거니! 됐다 싶었다. 두 어르신이 화해하시면 아드님에게 가졌던 섭섭함은 대수가 아니라고 응수했다. 그날 이전에 몇번 양측을 번갈아 가며 꺼내 든 화두는 어머니의 '개 궁둥이' 론(論)이었다. 가장 중요한 화해의 힘은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정말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하면 만사 해결된다는 훈수도 곁들였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 발짝만 물러서면 모든 미운 정이 봄눈 녹듯 일거에 사라지더라는 경험담도 보탰다. 갈등을 안고 있으면 결국 자기를 찌르는 흉기로 변질되고 죽음까지 가져가면 영혼인들 어찌 편하겠느냐? 임종을 앞둔 이에게 생시의 구업(口業)을 씻어드리면 편안히 영면에 들 수 있다는 어느 선사의 말씀도 동원했다.
몇 일이 지났다. 드디어 두 어른은 손을 맞잡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여럿 앞에서 화해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그날 이후 노인정에 드리워져 있던 먹구름은 서서히 걷히어 갔다. 경로당 문지방을 넘나드는 내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어머니의 한 수를 시험해 보았습니다."
*2022년 에세이21 발표
떠날 때는
윤 상 홍
서둘러 등산 배낭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오늘은 그 선배를 뵐 수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k 선배는 같은 직장에서, 동문 산행클럽에서 함께 했던 분이다. 내일모레면 아흔 줄에 들어설 그는 이십 년이 넘도록 등산 모임엔 거의 빠진 일이 없었다. 한데 두어 달 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동이 몹시 불편하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묻어왔다.
선배와 나는 30대 후반 J초등학교 근무 시절부터 같은 부부 친목계원으로 정분을 쌓아오던 사이였다. 큰 형님 뻘 되는 선배는 나를 뭉근히 사랑해 주셨다. 팔구년 아래라 막내 동생 쯤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그는 늘 배려와 온정을 잊지 않으셨다. 거기다가 심지가 꼿꼿하신 분이어서 옛 선비의 인상으로 와닿았다. 서로 만나면 으레 서로의 안 사람의 안부까지 묻곤 했다. 꼭 동기간처럼.
산행 클럽에서는 연초에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낸다. 우리 시산제始山祭의 축문은 줄곧 그 선배가 도맡아 왔다. 그는 컴퓨터를 제쳐두고 굳이 펜글씨를 고집하여 한 획 흐트러짐 없이 정갈하게 쓰셨다. 예법이나 몸가짐 또한 늘 정갈하신 분이라 축관은 그의 몫이었다.
근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에 언뜻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조급한 마음에 무례를 무릅쓰고 전골 한 사발을 사들고 거처를 찾았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지만 혈행이 원활하지 못하여 영양부족에다 기력이 떨어져 운신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근육은 빠지는데 먹어도 영양 섭취가 안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팔뚝 여기저기에 검푸른 멍이 번져 있다. 마른 갈대 같이 야위어서 훅 불면 날아갈 듯 했다. 부작용이 우려되어 영양제 주사마저 포기한 체 별다른 치료를 못하고 세월을 삭이는 중이었다. 노환이라고 여겨 체념하신 것 같다. 왕성했던 지난날의 기개는 어디로 가고, 생의 끝자락에 다달아 이렇게 스러지는구나하는 허망함에 빠진다. 너무 애틋해 보여 울대가 메어 올랐다.
첫방문 때 사 드린 전골을 드시고 기운이 돌아와 '나한테는 보약이었다‘며 극구 치하를 하셨다. 그 말씀이 짠하여 또 한 번 사서 현관 앞에 몰래 두고 왔다.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형수님 역시 문밖 출입이 여의치 못하니 입맛 당기는 음식을 제대로 대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옛 어른들은 집 밖에서 삶을 마치는 것을 불길하다고 여겼다. 요즘은 의료체계와 요양 시설이 잘 갖추어져 굳이 집에서 최후를 맞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늙고 병들면 요양시설을 반드시 거치는 것은 통과의례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 이 시설은 가족을 대신하여 간병해 주는 이점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생명의 존엄성이나 우러나는 정나미가 휘발된 극히 사무적이고 메마른 돌봄이 있어 보여 문제다.
내 어머니는 k선배와 흡사한 증세를 앓으시다가 집에서 조용히 운명하셨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어찌 파고가 없을 수야 있겠냐만 생전의 성품대로 수월하게 떠나신 정황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
최근 일본인들은 살던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기 위하여 방문 요양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생을 마감하면 영혼도 안락하고 행복하게 마무리될 것 같다. 장수한 이들이 요양원을 거부한 체 마지막을 그렇게 끝내는 예가 더러 있는 것 같다.
빛과 그늘이 혼재된 요양원 환자의 서글픈 사연이 SNS에 떠돈다.
'나의 의지가 아닌 댁들의 의지대로 먹고,
온 몸에 멍이 들어도 아픔을 삭혀야 했던
제가 누구인지 말하겠습니다....'
옛말에도 장병長病에 효자 없다 하지 않는가. 간병이 감당 안 되어 지친을 극단으로 내모는 비극이 벌어지곤 한다. 인내의 한계는 그 어떤 종교적 신념으로도 극복하기 힘들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숨을 거두는 사람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애면글면 가족의 병수발을 감내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서 세상을 버리는 노인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나 역시 그 영역에 진입했다는 신호랄까 어떻게 끝마무리를 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얼마 전 우리 아파트 전 노인회장은 구순에 세상을 뜨셨다. 참전 용사임을 인증이라도 했는지 6.25 날 승천하시어 우연치고는 너무 신령스러웠다. 평소 아픈 데가 없어 무심했는데 어느 날 속이 불편해서 병원엘 갔더니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더라는 것이다. 그 후 일주일이 채 안 되어서 세상을 등지셨으니 유족의 상심이 너무 컸던 것도 알만했다. 오랜 고통 없이 떠나시어 고종명하신 복 받으신 분이라고 위로하였지만 갑작스레 닥친 슬픔을 달래기엔 턱없었다.
k 선배도 회춘해서 천수를 마치실 때는 가을 잎새가 단아하게 낙하하듯 편안하게 고종명을 맞이하셨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2011. 에세이21.수필 등단, 에세이집 『상호경연장』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