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 탐방/ 우리시동인/ 주변인과문학/ 2014

2014년 여름호 《주변인과문학》 원고  우리시동인서연정(시인, 광주광역시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 1. 동인이 맺어지는 과정은 동인마다 다를 것이다. 처음부터 의기투합하여 동인을 맺는 경우, 이름을 짓고 인원을 조정하고 회합을 가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볼 때 필자가 기억하는 한 〈우리시동인〉의 결성 과정은 지난하다면 지난하고 묵묵하다면 묵묵한 시간들이었다. 개개인의 독특하고 강한 개성은, 밖에서 보면 무리를 빛나게 하는 색깔이지만 자칫 모래알처럼 제각각 흩어지게 하는 악조건이기도 하다. 자신을 내세우기 전에 타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구성원들은 오래토록, 더불어 걷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다. 〈우리시동인〉은 어느 날 묶인 동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 광주의 모 대학에 부임해 온 이지엽 시인은, 문학적 열정을 가득 품었으되 문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를 바 없는 이들을 ‘동인’이라는 이름으로 묶기 위하여 힘을 기울였다. 건강한 발걸음으로 이제, 한국 시조단에서 일정량의 무게를 확보하고 있는 〈우리시동인〉이 어떻게 결성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2. 광주에서 발간되던 문화월간지 《금호문화》 ‘생활시조’ 난은 독자들에게 시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993년 10월, 제1회 ‘생활시조상’ 수상자를 낸 이후 이 제도는 ‘금호시조상’이라고 이름을 바꾸며 몇 회를 더 계속하였다. 전국의 예비 시조시인들이 유심히 읽고, 참여하였다. 이 잡지에 이름을 보인 이들은 후에 시조시인으로 정식 등단하는 예가 많았다.1996년 1월 15일 오후 여섯 시, ‘생활시조상’이 위상을 갖추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지엽 시인을 중심으로 광주 동명동에 있는 ‘황톳길’이라는 음식점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김진웅, 김활란, 김희경, 서연정, 이현기 등, 《금호문화》 시조상을 수상하였지만 아직 정식으로 등단하지는 않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이날 논의에서, 매월 1회 모임 - 두 번째 월요일, 오후 6시, 황톳길 - 을 계속할 것과 초대 임원진 - 이현기 회장과 서연정 총무 - 이 결정되었다. 모임에 참석할 수는 없지만 시조를 더욱 공부하자는 의지를 불태우며 타지의 수상자들 - 신양란, 이복순, 전성훈 - 도 우편으로 작품을 보내왔다. 광주에서 모임 후 논의 작품을 보내면 파주에서 경주에서 또 어딘가에서 작품을 읽은 소감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보내는 식으로 이 모임은 한동안 진행되었다. 결국 원거리라는 한계와 생활 환경의 변동 등을 극복하기 어려워 점차 타지와의 교분은 끊기지만, 공부는 계속되었다. ‘아무개동인’ 식의 이름은 없지만 환골탈태를 거듭하는 과정이었다.1996년 12월까지 강은정, 김보영, 박성미, 이송희 등 풋풋한 신입회원이 들어온다. 젊은 기운을 받아들이며 시조 공부가 더욱 치열해지던 1997년 2월 1일, 광주에서 시조전문지 《열린시조》가 창간되었다. 시조전문지가 창간되자 우리는 더욱 고무되었다. 그해 5월 15일 이지엽 시인 댁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하였고, 8월에는 강경화, 김경심, 김윤묵, 김희경, 박미라, 서연정, 우봉석, 윤재웅, 윤정선, 이송희, 이현기, 임성규, 최양숙, 하종기 등 동인 결성에 뜻을 둔 이들이 모여 담양군 월산면 용흥사 계곡을 찾아 기세를 높였다. 백홍림, 정문효, 오숙현, 이문형, 정혜정, 박성미, 장수현 등, 그 자리에 오기로 하였다가 사정상 불참한 이들도 꽤 되었다. 생활시조상 수상자 모임, 미리내 동인, 광주대 문창과, 광주여대 문창과 등, 다양한 모태에서 공부하고 있던 이들이 시조를 써보자는 열정 하나로 뭉쳐 첫 야유회를 가졌던 것이다. 실질적으로 〈우리시동인〉 구성원은 이 날 이후 만들어졌다. 동인의 이름도 이즈음에 지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시동인〉이라는 이름은 더욱 단단하게 따뜻하게 서로를 결속시켰다. 1997년 12월 18일 목요일 저녁 〈우리시동인〉 송년의 밤은 대단했다. 동인들은 광주의 젖줄 광주천을 노래하며 건너갔다. 구동체육관 - 현재의 빛고을시민문화관 - 앞 포장마차에서 아쉬움을 안은 채 헤어질 때, 여명이 터오고 있었다. 동인의 앞날을 축복하듯 하루가 맑게 열리는 새벽이었다.필자는 동인중의 첫 등단이라는 긍지 속에 시인으로서의 통과의례 - 1997년 중앙일보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를 거쳤다. 연이어, 김강호(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수현(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구학(2000년 《열린시학》 당선), 임성규(《금호문화》 시조상 당선), 강경화(2002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 이수윤(2002년 《열린시조》 신인상 당선), 선안영(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이송희(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정혜숙(200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당선) 등이, 각종 신문과 문예지의 지면을 장식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예비시인들의 습작기에 〈우리시동인〉은 “피나는 노력을 견인하는 서원”이었고 쇳조각을 호미나 낫으로 만들어준 “예술의 대장간”이었다. 개인의 창작력을 더욱 담금질해준 동인이 있었기에, 사적 체험의 영역을 공적인 장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힘을 비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어떤 동인이 성숙해가는 도정을 일별할 수 있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동인지를 살피는 일이다. 〈우리시동인〉은 1999년, 드디어 첫 동인지를 냈다. 1997년 결성된 동인의 얼굴을 비로소 세상에 드러낸 셈이다. 1집 / 하늘, 그 푸른 빈자리 / 1999년 11월 / 태학사초대시 : 송선영, 김영재, 이지엽, 박정호, 박현덕동인시 : 강경화, 김강호, 김동찬, 김부식, 김윤묵, 김희경, 박성애, 서연정, 안미숙, 엄수경, 윤재웅, 윤정선, 이송희, 이수윤, 임성규, 임성화, 장수현, 정문효, 정영애, 정혜정, 최양숙. 2집 / 사람이 사람을 견디게 한다 / 2002년 3월 / 태학사초대시 : 윤금초, 이우걸, 유재영, 이지엽, 홍성란동인시 : 강경화, 김강호, 김보영, 박성애, 박현덕, 박형민, 서연정, 선안영, 엄수경, 윤재웅, 이구학, 이송희, 이수윤, 이해완, 임성규, 임성화, 장수현, 정문규, 정혜정, 최양숙. 3집 / 마음이 깊으면 하늘에도 길을 낸다 / 2004년 7월 / 도서출판고요아침초대시 : 박기섭, 박시교, 유재영, 윤금초, 이우걸, 이지엽동인시 : 강경화, 김강호, 박성애, 박성자, 서연정, 선안영, 엄수경, 윤정선, 이송희, 이수윤, 임성규, 정문규, 정민규, 정혜숙, 최양숙. 4집 / 꽃 문 속에 너가 있다 / 2006년 1월 / 도서출판고요아침초대시 : 송선영, 윤금초, 정수자, 최한선, 이지엽, 김동찬동인시 : 강경화, 김강호, 김승만, 박성애, 서연정, 선안영, 윤재웅, 이송희, 이수윤, 임성규, 정문규, 정영애, 정혜숙. 5집 / 그 환한 둘레 / 2006년 12월 / 도서출판고요아침초대시 : 윤금초, 이우걸, 정수자, 이지엽동인시 : 강경화, 김강호, 박성애, 서연정, 선안영, 이송희, 임성규, 정문규, 정혜숙. 6집 / 나무의 문장 / 2008년 12월 / 도서출판고요아침초대시 : 민병도, 박기섭, 윤금초, 이승은, 이우걸, 이지엽, 이한성, 정수자동인시 : 강경화, 김강호, 박성애, 서연정, 선안영, 이송희, 임성규, 정문규, 정혜숙. 살핀 대로 〈우리시동인〉이 지금까지 발간한 동인지는 모두 여섯 권이다. 창간호에는 동인 21명이 작품을 실었는데, 제6집에는 9명의 동인만이 작품을 수록하였다. 이는 문학을 향한 열정이나 생활면에서 모두 변동이 생기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시동인〉은 2008년 동인지 6집 발간 이후에도 만남은 계속하고 있지만 발간 상황은 휴화산이다. 이들의 멈춤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문학동인이, 멀리 둘러쳐진 울타리 정도의 연대의식, 위로와 축하 등의 모습을 띠며 보통의 삶의 행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이도 있고 문학을 향한 열정을 되찾기 위하여 ‘창작은 골방 속에서 혼자 하는 것’이라며 자신만의 동굴로 회귀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동인은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기기를 반복한다. 이 순환 고리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삶의 생태를 투영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유한하지만 그 유한함은 새로운 모습을 잉태하기 위함”일 것이다. 지금 어느 자리에 있든, 치열한 동인 활동 중에 시인이 되었고 첫 시집을 상재하였으니 어찌 그 시절을 지울까. 그러므로 동인의 울타리를 벗어났든 아니든 〈우리시동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변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4.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우리시동인〉으로 활동한 시인 가운데 몇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겠다.  그리움 문턱쯤에고개를내밀고서 뒤척이는 나를 보자흠칫 놀라돌아서네 눈물을 다 쏟아 내고눈썹만 남은내 사랑- 김강호, 「초생달」 전문.  날 비린내 달라붙는 남광주 재래시장멱살잡이 싸움 판 한쪽에서 졸고 있던벙어리 할머니가 파는묵 한 모 사왔다 벗겨지고, 깨어지고, 팔팔 끓여져, 굳어진정지된 시간인 듯 나란히 누운 침묵그 침묵 완성되기까지꽉 눌려 생략된 말…… 모서리 날선 각이 부드럽게 뭉개지고이빨과 잇몸까지 받아들인 물렁함에내 안의 사나운 아우성묵 앞에서 침묵한다- 선안영, 「적막을 사온 저녁」 전문.  오랜 기억 놓칠세라 부르고 부른 이름 십년이 몇 번 지나 현이 연으로, 다시 여로 온 동네 아이들까지 봉여이 봉여이 할 때 눈앞에 딱 나타난 봉현 씨는 호호영감 한사코 외면하는 할멈, 야속한 할멈 봉여이, 그 봉여이를 어디 가서 데려오나- 이수윤, 「현과 여의 거리를 60년이라 말하는 노부부 이야기」 전문.  복수초 필 무렵엔 신바람 절로 나서 쑥 따라 냉이 따라 매운 눈을 부비며 가난도 기죽지 않고 퍼렇게 살아온다 출생이 빚인 것을 목숨으로 갚고 살자 고지 먹는 봄에도 눈부신 금빛 태양 희망은 죽을 줄 몰라 그 둘레에 싹튼다- 서연정, 「고지 먹는 봄」 전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