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3월 정기산행을
다음과 같이 공지합니다.
☆ 산행출발일시 : 2009년 3월 22일(일요일) 의병광장 아침 7시
☆ 산행지 : 전라남도 강진.장흥 수인산(修仁山) (561m)
☆ 준비물 : 스틱, 방한복, 시원한 물, 따뜻한 물, 비옷, 안면마스크, 고글, 맛난점심.
☆ 정기산행회비 : 20,000원(입금계좌 : 농협 803067-51-005871 정호규)
2009년부터는 산행비 선입금예약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3월산행 예약은 산행비 입금 순으로 하며 예약인원이 초과 될 경우 선입금순으로 산행명단을 확정하겠습니다.
보험가입관계로 목요일인 3월19일 접수 마감 을 하겠습니다.
즐거운 산행을 위하여 많은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버스좌석예약제를 시범실시합니다.
산행비 선입금 예약 후 산행예약방을 이용하여 희망하는 좌석을 신청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볼 산을 미리 머리속으로 그려봅니다.
☆ 산행코스
(거리는 약11km, 산행시간은 6시간입니다.)
출발 - 지로리 등산안내판 - 481봉 - 남문 - 서문(병풍바위) - 북문(홈골재) - 수인산 - 홈골재 - 수리봉 - 계관암 - 자미마을 - 하산완료
수인산(修仁山)
561m
수인산은 장흥읍 북서 6.5km지점에 있으며
호남정맥의 지맥상에 있는 월출산에 닿기 직전
불티재에서 남동쪽으로 가지친 엽맥에서 솟구친 산이다.
자그마한 산이지만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룬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고려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인산성이 있고,
의병장 심남일과 장흥 출신 이교민이 의병 700명을 이끌고(1907년)
왜병에 항거하여 치열하게 싸운 곳이기도 하다.
이 산의 제일 명소 병풍바위는
조선조 병영성의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절도사 등의 이름이 음각 되어 있다.
옛날 봉수대였던 정상 노적봉의 펑퍼짐한 봉우리 동편은 깎아지른 벼랑이고,
홈골재 동남쪽 넓은 골(谷)은 억새 밭이 장관이다.
산행 출발지점
북문 가는 길에서 바라본 정상
정상표지석
하멜기념관
하멜은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Hamel hendrik ?~1692)은 선원 33명과 함께 효종 7년(1656)에 이곳 병영마을로 압송된다. 현종 4년(1663)까지 있었으니 8년 정도 병영마을에 머물렀던 셈이다. 몇몇은 결혼해 살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잡역을 하거나 나막신을 만들어 팔고 춤판을 벌여 삯을 얹기도 했다. 마을 중앙에는 800년 묵은 거대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 385호)가 있는데 하멜 일행은 은행나무 아래에서 수인산성을 바라 보며 고향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멜이 여수로 떠날 당시 22명이 생존 했으니 나머지 11명은 이곳 병영땅에 뼈를 묻었다고 할 수 있다. 후에 돌아가 쓴 ‘하멜표류기’에는 이곳 병영에서의 생활과 여수 종포에서 생활 상당 부분 기록되어 있다. 여수 종포에 하멜등대와 강진 병영면에 하멜기념관이 있다
하멜 (네덜란드 선원) [Hamel, Hendrik] ( ?~1692 ) |
한국에 관한 서양인 최초의 저술인 〈하멜 표류기〉(일명 〈蘭船濟州島難破記〉)의 저자이다. 1653년(효종 4) 1월 배를 타고 네덜란드를 출발하여 바다비아를 거쳐 타이완에 도착했다. 그해 7월 64명의 선원과 함께 무역선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향해 가던 도중 폭풍을 만나 8월 제주도 부근에서 배가 난파되어 일행 36명이 제주도 산방산(山房山) 앞바다에 표착(漂着)했다.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의 심문을 받은 후 이듬해 5월 서울로 호송되어 훈련도감에 편입되었다. 그뒤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현종 4)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되어 잡역에 종사했다. 1666년 9월 7명의 동료와 함께 탈출,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1668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후 13년간의 한국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멜 표류기〉를 저술했다. 이것은 한국을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책으로 당시 유럽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1980년 한국과 네덜란드의 공동출연으로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해안에 하멜 기념비가 세워졌다
제주 산방산 해안의 하멜 동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