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0일
아침에 일어난 후 텐트 안에서 한장.......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4시 30분에 기상을 했다. 산행을 할 때는 보통 4시에 일어나 6시에는 출발을 한다. 그런데 첫날의 피곤함이 있었는지 30분 정도 더 잔 것 같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좀 추운감이 들었다.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산행할 때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꼭 쌀을 가지고 다니며 밥을 많이 해먹는다는 점이다. 장기 산행의 경우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라면이나 누룽지 혹은 물만 부어서 먹는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좀 무겁더라도 쌀을 넉넉히 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기압이 낮은 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압력밥솥을 사용한다. 등산용 압력밥솥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미국에 와서 산악회 산행 때 압력밥솥을 가지고 갔었다. 그리고 밥을 직접 해서 대접했더니 다들 놀라며 이렇게 좋은 것이 있었냐며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느냐며 끝없이 물었다. 후에 산악회에서 해외 원정을 갈 때 압력 밥솥을 가져가서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압력 밥솥이기에 가스 사용량도 극히 작아 사용해 보면 그 유용성을 알게 된다.
압력 밥솥으로 밥을 했다.
JMT와 같은 장기산행인 경우 배낭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음식을 부실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먹는 것을 중요시 한다. 왜냐하면 먹는 것을 잘 먹어야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침에 밥을 할 때 점심까지 먹을 수 있는 양을 충분히 준비한다. 시간도 아끼고 가스도 아끼기 위해서이다. 아침을 먹고 난 후 나머지를 비닐 팩에 넣고 남은 반찬들과 함께 도시락을 만든다. 그리고 점심때 따로 음식을 하지 않고 이것으로 간단히 끝낸다. 여러 면에서 간편하고 간단해서 좋은 점이 많다. 그리고 저녁에는 국을 잘 끓여서 충분히 잘 먹는 방식으로 식단을 운영한다. 오랜 동안의 산행 경험을 통해서 구축한 나만의 노하우라고나 할까? 암튼 자기만의 방식들이 다 있는 듯하다.
어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잤기 때문인지 일찍부터 식기가 찾아온다. 미역국과 집사람이 만들어준 소고기 고추장볶음을 준비했다. 그리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를 대비해서 가져온 햄버거 패티 5개 중 하나를 후라이펜에 올렸다. 꽁꽁 얼려서 수병 스펀지에 담아 배낭 깊숙이 넣고 와서 그런지 아직도 냉기가 배여 있었다. 이 정도로 보관된다면 3-4일은 고기 맛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5시 20분이 되었다. 배낭을 다시 꾸리고 텐트를 정리했다. 이웃집 사람들도 일어나 저마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가 Tuolumne 쪽으로 진행 하는 것 같다. 수병에 물을 정수하여 채웠다. 출발 준비가 되었다. 등산화를 여미고 스틱을 드니 6시 40분이었다.
오늘의 또 다름이 시작된다. 처음 계곡을 건너 30분 동안 계속 오르막길을 올랐다. 숲과 함께 오르는데 갑자기 벗어졌다. 그리고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다. ‘아! 이렇게 아름다울 것 같았으면 어제 30분만 더 올라올걸!’ 마음에 후회가 밀려왔다. 호숫가에 텐트를 친 지긋한 나이의 백인 부부가 아침을 맞고 있다. 차분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부인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너무나 부러웠다. 와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내와 함께 여기 한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봉우리 너머로 비추어지는 아침 태양과 호수에서 올라오는 약간의 물안개 그리고 서늘하면서도 잔잔한 바람이 만들어 내는 풍광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행복했다. 그냥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좋은 표현이 될 것 같다.
호수를 지나며 오르막을 계속 올랐다. 호수를 안고 있는 산의 옆구리를 오른쪽으로 돌아 왼쪽 고개를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 정상부에는 눈이 가득 쌓여 있다. 언덕을 오르는 중간 중간에도 눈이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Donohue Pass, 높이가 11056ft, 3000m 이상이다 보니 7월을 지나 8월인데도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1시간 20여분을 계속 오르막을 오르다보니 눈이 많이 쌓여 있는 곳이 나타났다. JMT에 들어서고 처음 눈과 마추졌다. 한국에서와는 좀 달랐다. 내린 눈이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겨울동안 쌓였던 눈이 얼다 녹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두께가 거대했다. 하지만 표면은 햇빛을 받아 약간 녹아 있었다. 오히려 걷기가 편했다. 눈밭을 지나며 올려다보니 pass가 가까이 있다. 도나휴 패스 직전이었다. 힘들지는 않는데 고도가 높아서인지 고소가 조금 오는 듯 했다. 속도가 나지를 않는다. 쉬엄쉬엄 천천히 진행을 했다. 여기를 넘어서면 고소 적응이 좀 될 것 같다. 이미 Mt. Baldy(3000m 이상)의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기에 고소가 없을 줄 알았다.
JMT에 들어서서 처음 3,000m급 pass에 올라서는 것이기에 약간의 고소를 느끼게 된 것 같다. 왠지 좀 무력감이 드는 순간 머릿속에 한 단어가 또 떠오른다. “왜 왔을까?” 사람은 본 것은, 안 것은 하게 된다. 본 만큼 안 만큼 생각한 만큼 하게 된다. 산을 알았고 JMT를 보았고 그리고 그 길을 걷는 것을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를 걷고 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다. 내일의 계획은 어떨까? 본 만큼, 안 만큼, 생각한 만큼 준비된다. 아직 현실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다만 계획일 뿐이다. 그러나 보고, 알고, 생각한 만큼 준비되는 것이 계획이지만 계획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 길을 걸어야한다. JMT를 걷고 있듯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이룰 수 있다. 미국에 와서 이루고자 한 계획들, 그리고 이후로 또 이루고자 하는 인생의 계획들을 생각해 본다. 묵묵히 걸어야겠다. 천천히 걷더라도 멈추지 말아야겠다. 도나휴 패스가 왠지 모르게 정겨워진다.
8시 35분, 2시간 만에 도나휴 패스에 올라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올라온 길이 아득하다. 아래에서는 언제 올라가나 생각했는데 걸으니 올라서게 된 것이다. 걸으면 가게 된다. 멈추지만 않으면 가게 된다. 중요한 것은 걷는 것이다. 늦더라도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이다. 잠시 쉼은 있을지라도 계속 가야한다. 우리는 그렇게 걸어서 패스를 넘고 넘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인생이다.
갑자기 곰에 대한 생각이 밀려온다. 이렇게 걷다가 곰을 만나면 어쩌지? 그런데 곰을 만나도 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저는 제길 가고 나는 내 길 가면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도망도 못 갈 것이고 싸우지도 못할 것이고 그냥 각자의 길을 가면 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하늘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곰 무서워할 것 없다며 일러주고 날아가는 듯하다. 그래 가자. 저 앞으로...
8시 45분 잠시 고봉들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14,000ft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하다. 나무도 없고 흙도 없다. 모두 화강암 덩어리들이다. 그래서 오를 수가 없는 산처럼 보인다. 등산로도 없는 듯, 그냥 트래일을 지나며 바라만 볼 수 있는 그런 산이다. 그러나 눈이 있는 곳은 사람이 오를 수도 있다. 겨우내 지독한 추위 속에서 내린 눈이 쌓이고 쌓이면 그리고 녹았다 얼었다를 계속하면 눈이 딱딱해 진다. 한국에서는 4발 혹은 싣는 아이젠을 주로 사용한다. 미끄럼을 방지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날도 크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는 크램폰이라고 하는 날카롭고 큰 12발짜리 날을 가진 어마무시한 것을 사용한다. 등산화 바닥 전체에 날이 들어가게 되고 앞면에는 두발 짜기 큰 날이 장착된다. 이 앞 날개로 눈을 찍어 차면 직벽에 가까운 산을 오를 수 있게 된다. Mt. Baldy에서 설암 산악회 회원들과 수차례 훈련도하고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눈 쌓인 고봉들이 왠지 반갑게 느껴진다. 지독한 추위와 쌓이고 쌓인 눈은 갈 수 없는, 오를 수 없는 산에 새로운 길을 만들어 준다. 지독한 추위가 있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눈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오히려 길이 된다. 추위와 눈과 같은 삶의 고통과 질고, 어려움과 두려움이 인생의 길을 막아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길이 될 수도 있다. 어렵고 힘들다는 그 곳에서 새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 인생의 다른 면모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지독한 고난 가운데도 반드시 길은 있다.
9시, 도나휴 패스를 벗어났다. 10,000ft 이상의 높이에 있는 눈을 한줌 집어 먹어본다. 처음 해보는 일이다. 마음이 새롭다. 10,000ft 이상에 있는 눈을 먹어본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괜한 생각에 웃음이 찾아온다. 9시 25분, 패스를 완전히 벗어났다. 이제 또다른 새로운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계속 전진하여 4마일 정도를 더 진행하니 Island pass에 다르게 되었다. 시간을 보니 11시 40분, 패스를 넘기 전에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Thousand Island Lake 까지 가려면 1.5마일 정도는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낙지 덮밥 소스에 자반 그리고 아침에 싸온 밤을 잘 섞어 먹었다. 맛은 모르겠다. 패스를 넘고 고소도 약간 있어서인지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지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먹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보게 된다. 어찌되었든 잘 먹은 것 같다. 피곤함도 사리지고 차분함도 마음 한편에 찾아온다. 산행 초반에 먹으려고 가져온 델몬트 과일 팩을 열어보니 향부터 맛있게 느껴진다. 물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냈더니 시원함까지 있어 더 좋았다. 밥을 먹고 나나 새로운 힘이 쏫아 나는 듯하다. 젖어 있는 텐트를 꺼내 말렸다. 면도기와 칫솔을 꺼내 용모도 단정히 했다. 나는 산에 가면 꼭 면도를 한다. 수염이 많아지면 멋이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왠지 단정한 용모가 더 좋다. 그래서 매일 면도를 한다. 아침에 하지 못했던 면도를 하게되니 기분이 더욱 좋아진다. 동행하는 이가 없으니 입에서 말이 사라져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마음 안에서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나 자신과만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배낭을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한다. 그리고 곧장 앞으로 진행하였다. 10,260ft의 Island Pass를 가볍게 올라섰다. 그리고 곧장 Thousand Island Lake로 향한다. JMT 호수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호수이다. 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Thousand Island Lake라고 한다고 한다. 몇몇 트래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좀 시간을 갖고 호수를 바라보며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진행했다.
내리막을 걸으며 호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호수 끝 지점에서 삼거리를 만났다. 직진으로 가는 길에는 나무다리가 있었다. 호수 저편으로 가보기 위한 길 같았다. 그래서 왼쪽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이다. 나무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JMT를 걷게 된다. 왼쪽으로 빠지면 PCT 길로 들어서게 된다. 지도를 살펴보지 않고 그냥 생각만으로 직진하면 호수 반대편으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 잘 못이다. 물론 몇 사람들이 호수 반대편에 있었다. 그래서 착각했던 것 같다. 다리를 지나 직진을 하며 아래로 내래서며 Garnet Lake으로 곧장 진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 길은 보이지 않았고 호수 옆으로 가는 길만 보였다. 그래서 착각했던 것 같다. 한참을 진행하다 두 명의 트래커를 만났다. 어디에서 왔는가 물어보았다. Agnew에서 왔다고 답을 한다. 지도를 보면 Agnew Meadows를 지나면 JMT와 만나게 되어 있다. 지도 중간에 PCT라는 표시도 있고 River Trail 표시도 있다. 그러나 사실 난 PCT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Thousand Island Lake 쪽에서 직진으로 내려오는 길에도 JMT라는 표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행히 계속 가다보면 JMT를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 너무 많이 내려와 버렸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가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계속 직진하여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길을 계속 걷다가 다시 삼거리를 만났다. 왼쪽으로 가면 계속 PCT길을 걷게되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River Trail을 밟고 Agnew 쪽으로 내려가 JMT를 만나게 된다. 중간에 빠지는 길이 하나 더 있었다. 0.6마일만 옆으로 진행하면 JMT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트래일 v시가 있었다. 그런데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1-2시간이면 올라갈 수 있겠다 싶어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캠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오늘은 여기에서 자고 내일 오던 길을 따라 River Trail을 밟고 내려가서 JMT와 만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곰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혼자 텐트를 치는 것보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머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은 트래커들의 텐트와는 좀 다른 모습의 텐트였다. 글래핑처럼 조성되어 있는 곳 같았다. 퀴리라는 백인 여성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고 혹 옆에 텐트를 쳐도 되겠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흔쾌히 괜찮다며 텐트 옆쪽의 빈 공간을 내 주었다. 그런데 Muir 트레일을 운영하는 Owner가 오더니 자신들이 비싸게 대여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설 시설이라며 올라가던지 내려가던지 하라며 이곳에 텐트를 칠 수 없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JMT길로 들어서기 위해 옆길로 빠져 JMT를 바로 만날 수 있는 길로 진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사도가 0.6마일인데 590m였다. 경사도가 엄청난 곳이지만 거리가 짧으니 한번 시도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입구로 진입하기 위해 계곡을 건너려는데 한인 아주머니 한분이 건너오시는 것이었다. 길의 형편이 어떠한지 물었더니 너무 험하고 숲이 우거져서 올라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날도 저물고 있으니 그냥 River Trail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실수로 이 길을 들어섰는데 너무 험해서 힘들게 왔다고 했다. 자신은 River Trail을 타고 Agnew까지 좀 늦더라도 간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가 다 되었다. 5마일을 걸어서 Agnew까지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지만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 나타난 아주머니는 당당하게 길을 재촉하며 사라졌다.
나도 계획을 바꾸어 River Trail을 밟고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고 걷기 시작했다. 내려가다가 캠프를 꾸민 사람들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고 함께 머물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힘들었다. 여기까지 14마일을 걸었고 Pass를 두 개나 넘었기에 빨리 잘 곳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렇다고 해서 텐트를 무작정 만들 수는 없었다. 곰 때문이었다. 곰이 위험하지는 않다고 하지만 트레일 상에서 아직 곰을 만나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위험을 한 일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2마일 정도를 더 내려오니 캠핑하는 가족을 하나 만날 수 있었다.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머물러도 좋다고 한다. 개도 두 마리나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 개가 있으니 곰이 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했다. 지도를 자세히 보고 길을 제대로 들어섰더라면 Garnet 호수에 이미 다다라 좀 여유를 갖고 쉬고 있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텐트를 치고 난 후 생식 한 봉지에 미숫가루와 꿀 가루를 부어 먹으며 누룽지를 조금 끓였다. 밥을 해서 먹기 보다는 오늘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일찍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따뜻한 물이 몸을 녹이며 피곤을 풀어준다. 많이 지쳐서 그런지 속에서 누룽지를 받지를 않는다.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그냥 잠에 들었다. 개가 있으니 안전하리라는 생각에 그냥 대충 정리하고 잠을 청해 버렸다. 또한 자리를 내준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이들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어서 그냥 일찍 잠을 청했다.
좀 더 지도를 자세히 봐야겠다. 처음 걷는 길이기 때문에 절대로 생각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지도를 읽고 길을 찾아야 한다. 이정표와 지도만 정확히 보면 길을 잘 못 들어설 이유가 없다. 세계 3대 트레일 중에 하나인 JMT는 레인저(한국으로 말하면 관리 공단 사람들)들이 항상 보수하며 점검하기 때문이다. 길은 준비되어 있는데 그 길을 걷는 내가 생각만으로 쉽게 판단해버려서 이런 아쉬움이 생긴 것 같다. 좀 더 정확한 정보와 판단력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내일 6마일 정도를 가면 Agnew를 지나 JMT를 다시 만날 수 있다. 피곤함에 오늘도 별을 보지 못했다. 초보 산꾼 같은 하루였다. 그러나 또 다른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된다. 피곤한 몸에 잠에 스르르 다가온다. 오늘이 감사할 따름이다. 길을 잘 못 들어섰어도 사고가 없었으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은 좀 더 침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