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사탕님 '
분위기가 아련한게 뭔가 이번화랑 느낌이 비슷한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표지 보면서 부끄러워했어욬ㅋㅋㅋㅋㅋ 백현이랑 종인이가 나 쳐다보고 있어서 황급히 고개를 숙였슴당.....ㅎㅎ 뭔가 느낌이 흐릿하고 아련해서 정말 짝사랑하는 그런 슬픈 느낌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예쁜 표지 감사합니다!
' 은밍밍님 '
헐 짝조 로고ㅠㅠㅠㅠㅠ 아 진짜 너무 예뻐요ㅠㅠㅠㅠ이거 받았을 때 환호했던 기억이 나네욬ㅋㅋㅋㅋㅋㅋㅋ 당신은 금손인가요...위에 하트 표시가 진짜 떨리고...ㅎ 뭔가 그 심장박동수 맞죠? 그런 느낌이라서 표지만으로도 두근두근 거리네요ㅎㅎㅎ 예쁜 로고 감사합니다! 유용하게 쓸게요!
나인뮤지스 - 몰라몰라
달콤한 감촉이 입안 가득을 메꿨다. 잘근잘근 씹히는 마시멜로가 축 늘어진 기분을 가볍게 만들었다. 이 애잔하고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몽쉘은 제맛을 잘도 냈다. 눈물 젖은 빵. 어렸을 때부터 이 말이 그렇게나 오글거릴 수가 없었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자수성가한 사람들한테만 어울릴 법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종인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와는 절대 이루어질 수도 없다는 걸 알고, 그 사람이 너무 인기가 많다는 것도 알고, 또 정말 아무 의미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건네준 몽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게 또 울컥하는 거였다.
눈물 젖은 빵, 지금 내가 먹는 몽쉘의 맛은 딱 그랬다.
학교의 모든 일정이 끝나자마자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다짜고짜 가방부터 싸기 시작했다. 이 착잡한 기분으로 도저히 야자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의미 부여라는 걸 알면서도, 또 그게 좋다고 바보처럼 몽쉘을 받아온 나 자신이 멍청해서였다.
신경질적으로 가방 지퍼를 채우고 사물함으로 걸음을 옮기는 나였다. 알면서도 눈 감고 속아준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변백현도 문제였다. 날 놀리는 재미에 제대로 들린 놈 아니었냐, 그런데 막상 상황에 닥치니 왜 날 도와준 거냐 이 말이다.
" 어디 가냐. "
" 집 가려고. "
" 야자 안 해? "
" 야, 넌 내가 지금……."
" 뭐? "
" 아니……아니다. "
" 변백현때문에 그래? "
" 김종인때문에도 그래. "
" 왜, 무슨 일 있어? "
말하고 싶은 건 끝도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두 입술을 꽉 닫은 채 반복적으로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내 고민 상담이 그렇게나 지겹다더니, 또 표정이 안 좋으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는 보미의 행동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짝사랑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친구들의 진심조차도 의심 가기 시작했다. 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게 정말 위로해 주기 위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알고 있었다. 친구들은 매번 내 짝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처음은 즐거웠겠지만, 자기가 조언을 해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작 뭐 하나 실천도 못하고 밤새워서 울고 있는 꼴이란……답답하겠지.
못된 걸 알지만 늘 내게 믿음을 줬던 보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 힘들 때는 제일 먼저 보미를 찾게 되지만, 부정적인 말만 쏙쏙 골라대는 보미의 조언은 다 내가 실천할 수 없는 말일뿐이었다.
" 그냥 오늘 야자 할 기분 아니야. "
" 아, 너 안 하면 나도 하기 싫잖아. "
" 뭔 개소리야, 넌 그냥 해. "
" 야, 배수지 오늘만 야자 하지 말자. "
" 아, 미쳤냐고 진짜. "
" 카페에 가서 김종인 뒷담이나 까자. "
기막힌 그 말에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친구들과 같이 좋아하는 남자를 뒷담 까는 꼴이라니. 어딘가 잘못된 건 알지만, 이건 좀 신 나는 일이었다. 물론 이야기의 주제에 따라 내 기분도 들쭉날쭉이곤 했다. 눈치 없이 사람 착각하게 만드는 꼴을 욕하는 건 나 또한 흥분하면서 공감할 테지만, 나로서는 완벽한 놈의 얼굴이나 키에 관한 이야기면 어딘가 예민해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친구들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였다. 그런 한심한 놈을 좋아하는 나를 욕하는 게 아니라, 그런 잘난 놈을 좋아하는 내가 힘들겠다면서 공감해주고 나를 더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주는 것.
무려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짝사랑을 하니 나 자신에게 자신감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의미 부여야 할 수 있지, 그럴 수 있지는 어느새 또 그랬어, 또. 이런 식으로 바뀌어 갔다. 나도 안다. 내가 과장해석하고 있다는 걸. 그럼에도 김종인이 자꾸 날 착각하게 만들고, 또 희망 품게 만드는 걸 뭐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었다. 그럼 자기가 날 착각하게 만들지 말던가. 좋아하게 만든 것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것도 모두 김종인 너면서.
짝사랑의 조건 네 번째 : 가끔씩 날 너무 힘드게 만드는 그가 미워질 때가 있다.
야자를 앞둔지 10분 전이 되어서야 정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시내에 가는 거라면 적어도 수정 화장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며 난리를 쳐대는 배수지가 그 이유였다. 그에 못 이기는 척 나도 따라 비비를 꺼내긴 했지만……아, 혹시나 그런 생각하지 않느냐. 여자도 딱 세 명이고, 난 그렇지만 수지와 보미는 또 예쁜 편이니까 남자들이 번호도 따가고, 같이 놀자며 그러지는 않을……그래, 개소리다.
겨우 야자 하나 뺐을 뿐인데, 시원한 바람이 그렇게나 행복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사소한 부분에서 기쁨을 느끼는 건 늘 뜻밖에 찾아오곤 했다.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노을 진 햇빛에 자연스럽게 콧노래가 새어 나왔다. 화장도 하고, 스치는 바람도 예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좋은데, 딱 김종인에 대한 생각만 배제하면 그만이었다. 변백현이 날 싫어하든가 말든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종인이한테 날 나쁘게만 말 안 하면 그만…….
" 아, 미친! "
" 시발, 존나 깜짝 놀랐잖아! "
" 왜? "
" 변백현이 김종인한테 나 병신처럼 말하면 어떡하지? "
" ……야, 안 말해. 걔가 왜 그렇게 말해, 또 쓸데없는 걱정하네. "
" 야, 걔 완전 이상한 애라니까? 아니, 급식실에서는 어떻게든 티 내려고 하더니 아까 보면 또 아니라고. "
" 뭐가? "
" 아까 나랑 걔랑 이야기하는데 나한테 막 쌍욕을 하는 거야, 나 완전 어이없어서 뭐 하냐고 물어봤지. 그러고 나서 얘가 내 말 다 씹고 그냥 계단 위로 가는데 진짜 개빡치는 거. 근데 알고 보니까 김종인이 뒤에 오고 있었던 거야. "
" 아, 잠깐만……걔가 널 왜 도와줘? "
" 아, 내 말이……그 새끼 진짜 불안하다고,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니까. "
처음은 아니었지만, 심각해지는 내 목소리에 점차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하는 수지와 보미였다. 카페 구석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두 사람이었다. 건조한 목에 진득한 침이 넘어가니,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느껴졌다. 늘 긴장하거나 겁나는 일이 있으면 목이 건조해지곤 했었다. 아마 호흡이 가빠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손톱 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변백현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놨다. 과장도 살짝 보탰다. 원래 남 이야기할 때 저도 모르게 과장되어서 나오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 시시각각 변하는 수지와 보미의 표정에 불안한 내 마음도 점점 부피를 더해갔다. 난 변백현이 개새끼라는 걸 확정 짓고 있지만, 또 오늘만큼은 아니니 그게 또 오묘하게 신경 쓰였다.
답정너, 딱 그 경우였다. 단순히 공감해주기를 원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물론 내 멋대로 놈의 이야기를 하는 건 나쁘지만, 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냐 이거였다. 내가 종인이를 좋아하는 걸 그렇게 티 내고, 저 혼자 웃어대고, 마지막은 영문 모를 독설에 내 마음을 안 들키도록 도와주기까지. 분명 놈은 얼른 내 마음을 종인이에게 고백하기를 원했다. 그럼 그 상황에서 나를 도와줬다는 게 상대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한 거였다. 아, 이거 완전 또라이아니냐.
" 또라이네. "
" 그치, 완전 또라이지. "
" 내가 확신하는데 걔 존나 또라이야. "
" 야, 그럼 충분히 김종인한테 말할 수 있지 않아? 나 막 성격 존나 거지같고 그런식으로 말하면 어떡해? "
" 충분히 말할 수 있지. "
" 아, 말하라 그래! 까놓고 말해서 네가 잘못한 거 있냐고. "
" 없으니까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거잖아! "
" 그러니까 뭐가 걱정이냐니까? "
" 변백현이랑 김종인이랑 친하잖아! "
" 그럼 말해, 변백현 그 새끼가 거짓말친거라고. "
" 근데 또 도와준 거 보면 아주 나쁜애는 아닌 거 같지? "
" 아, 그전에 너한테 한 짓을 생각해. "
지금 그 어떤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데, 어떤 말이 귀에 들어올까 이 말이었다. 짙게 깔린 한숨에 속이 폭넓게 타들어갔다. 머리채를 다 쥐어뜯어서라도 이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해결하고 싶었다. 보미는 몰랐다. 이게 얼마나 불안한 상황인지. 내가 종인이와 단순히 친한 관계에서 좋아하는 거였다면,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그는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달랐다. 종인이가 나를 잘 모르는 상황이었고, 위험한 인물이 내가 좋아하는 상대와 가장 친한 친구라는데 무슨 생각으로 마음 편히 수다를 떨 수 있을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좋아하고 싶다. 차라리 내가 종인이를 좋아한다는 걸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면 좋겠다. 헛된 조언도, 현실적인 충고도 모두 다 필요 없이 나 혼자 착각하고, 나 혼자 슬퍼하고, 나 혼자 아파할 테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두려움은 두서없이 뛰어오는 심장으로 이어졌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어대니 얼굴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진심 어린 조언도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저 하나만 생각했다. 종인이가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고백하기도 전에 차이지 않았으면.
" 아, 시발 밖에 존나 추워. "
" 그냥 피씨방 가자고, 괜히 돈 쓰지 말고. "
" 기다려 봐, 나 모카 하나만 사고. "
" 아, 돈 존나 많다 너. 모카 하나에 5000원이야. "
" 종인아. "
" 뭐. "
" 쪽팔리니까 꺼져라, 좀. "
" 지랄. "
" 난 알바를 하잖아, 너랑 한 달에 통장에 들어오는 급이 달라. "
" 야, ○○○ 잠깐 스톱. 입 다물어 봐. "
" 왜? "
" 저기, "
" ……아, 시발. "
" 아, 쟤네 양반은 못 되겠다. "
"…… 야, 어떡해 못 들었겠지? "
한참 변백현의 또라이스러운 만행을 흉보며 투지를 불태우는데, 익숙한 음성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게 그만 험한 말까지 같이 질러버린 나였다. 그건 장난기 넘치는 당사자의 얼굴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환영이라고 생각했다. 하도 김종인하고 변백현 이야기만 해대서 다른 사람이 저렇게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빛줄기를 잡는 지푸라기 심정으로 제 팔을 들어 빠르게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래, 환영이었다. 이곳에 왔을 리가 없지 않느냐. 아니 그것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던 이야기가 문제였다. 혹시나 듣기라도 했으면 변백현이 종인이한테 말하기도 전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건데…….
꽤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실눈을 떴다. 아, 제발. 왜 사건 하나가 해결되려고 하면 또 하나가 터지고, 또 하나가 터지나요.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아, 제발요. 제가 종인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시잖아요. 특정인이 아닌 다수의 불특정인에게 반복적으로 간절한 청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면 한 분이라도 내 진심을 알아달라는 말이었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비치는 두 남자가 보였다. 한 남자는 옆에 서있는 남자에게 무어라 작게 중얼거렸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으며, 말을 건넸던 남자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자마자 이쪽으로 걸어오는……응? 걸어와?
" ○○○, 하이. "
" ……. "
" 하이? "
진정한 또라이가 나타났구나 생각했다. 이젠 친한 친구처럼 대하려는 건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저릿한 소름이 돋았다. 나한테만 나쁘게 굴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잘해주는 척하는 그런 앤가. 그럼 완전 병인데. 변백현도 변백현이었지만 그 뒤에 있는 종인이도 충분히 날 혼동되게 만들었다. 놈은 분명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그게 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왜…….
" 안녕. "
" ……아. "
" 야자 안 해? "
왜 나를 떨리게 만드는 거냐, 왜 나를 착각하게 만들고, 또 내가 너를 어쩔 수 없이 좋아하게 만드느냐. 제 주인의 마음을 몰라주고 주체 없이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귓가까지 울려 퍼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기 바빴다. 처참하게 떨려오는 입꼬리에 명암 짙은 먹구름이 온몸을 감쌌다. 혹시나 옆에 벽이라도 있다면 그대로 머리로 박고 들어가 나의 한심함을 탓하며 하루 종일 통곡하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남자는 예쁘게 웃어주는 여자한테 호감을 느낀다고. 스튜어디스 언니들한테 빙의라도 한 듯,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싶었지만 또 그건 그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하고 양쪽 볼은 변함없이, 입꼬리만 움직이는 모습이 흡사 '나 지금 띄꺼워요' 를 연상시키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태연한 척은 늘 고통스러운 일이다. 관심 없는 척, 무표정하게 있는 건 내가 그 남자를 싫어하는 거로 보일 수 있고, 부자연스러운 미소는 바보같이 보일 수 있다. 짝사랑하는 입장에서 태연한 척은 불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서 날 보고 있고, 말하고 있고, 웃고 있는데……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아, 안녕……김종인. "
" ……. "
" 변백현 안녕? 어……너 야자 뺐어? "
눈앞에 김종인을 두고도 애먼 놈에게 말을 거는 꼴이 참 애석했다. 지끈거리는 눈두덩이 부근에 농도 짙은 숨을 뱉어냈다. 더 심각한 건 종인이쪽은 쳐다도 못 보고 변백현한테만 꽂혀있는 내 시선이었다. 기가 막히지 않느냐. 내 모든 신경은 한 쪽에 쏠려있는데, 정작 밖으로는 다른 쪽으로만 티 내는 게. 코끝이 징해지는 느낌에 목울대가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새파란 멍은 더 크게 물들어갔다. 깨끗한 도화지에 검은색 크레파스가 신이 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낯간지럽게 이름을 부르는 내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건 다름 아닌 변백현이었다. 새롱거리는 말투로 날 자극하던 그 장난기 넘치는 표정이 일순간 멍해지기까지 했다. 그건 보미와 수지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영혼 없이 눈만 깜빡이며 뜬금없는 내 대사에 실없는 헛기침을 내뱉는 친구들이었다.
" 김종인이랑 나랑 원래 야자 안 해. "
" 아……그럼 어디 가는데? "
" 우리 있다가 김종대 만나서 PC방. "
" 아……야, 재밌게 놀아! "
" 야. "
" 응? "
" 왜 말은 나한테 하고 시선은 다른데로 가냐? "
" 응? "
" 아니, 왜 자꾸 나를 안 보고 이……. "
" 야, 심심한데 우리도 같이 PC방 가면 안될까! "
" ……. "
" 안될까, 변백현?"
" ……. "
" ……안 되냐니까? "
" ……아, 시발 진짜 존나 웃기네. "
여자로서의 자신감이 추락했다는 것보다 종인이에게 비칠 이미지 걱정이 더 앞섰다. 옆에 종인이가 있는데 왜 거지 같은 내 입은 자꾸 변백현 개새끼의 이름만 불러대냐 이 말이었다. 사람은 의지만으로 안 될 때가 있다던데 지금이 딱 그짝인 것 같더라. 날 놀리는 맛에 제대로 들린 변백현의 입을 막기 위해서 우선 생각나는 말부터 지껄이고 본 건데 그게 같이 PC방을 가달라, 부탁하는 말 아니겠냐. 저릿하게 찔러오는 수치심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변백현 개새끼, 변백현 개새끼, 변백현 개새끼. 같은 말이 여러 번이고 입안에 맴돌았다. 그 말밖에는 지금 이 상황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제 턱을 치켜들며 건방지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꼴이 딱 그 짝이었다.
" 미친, 난 안가. "
" 야, 보미야. "
" 아니, 변백현 이 씹……. "
" 보미야, 보미야……보미야 있잖아, 내가 아까. "
" ……아, 뭐! "
' 야, 이 개년아 한번만 눈 감아줘. 나 혼자 어떻게 가. '
숨겨왔던 찌질함이 폭발한 순간이었다. 이젠 남자한테 모자라서 하나뿐인 친구한테도 같이 가달라고 청원하는 신세가 돼버린 거였다. 그래, 그냥 희망사항이었다. 혼자만 하는 짝사랑은 없었다. 자꾸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더 의지하게 되는데 혼자 하는 짝사랑이 존재할 수가 있을까. 힘없는 약자는 오늘도 죄 없는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부탁한다. 같이 PC방 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바로 옆에서 내게 말을 걸어도, 태연한 척 하나 못하는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혼자 따라가냐 이 소리였다. 그건 불가능이다. 말하지 않았느냐. 보미나 수지는 예쁜 편이지만 나는 아니라고. 나는 그냥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하고 평범한 애.
스스로한테 자신감이 없으니 자꾸만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자격지심이 너무 심하다는걸. 수백 번도 넘게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그런 추상적인 말을 백 번 들어봤자 나아질 건 없었다. 나라고 자신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게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닌데 자꾸 강요를 할까. 벌레를 씹은 사람처럼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보미의 시선에 다시 한번 입꼬리를 아래로 쭉 내렸다.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친구의 낮게 깔린 한숨이 내 목숨을 구하는 것처럼 웅장하게 들려왔다. 애타는 마음에 반사적으로 다시금 진득한 침이 넘어갔다. 갈라진 목울대가 유난히 고통스러웠다.
하나뿐인 친구가 김종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는 보미와 수지가 세상을 다 잃은 참담한 얼굴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지금 저들의 표정이 '병신 같은 친구를 둔 내가 죄지.'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작은 좋았다. 반감 상태의 변백현과 같이 PC방에 간다는 건 심각한 리스크가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종인이와 PC방을 가게 된다는 건 나로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놈을 병신같이 따라다니기만 한 게 자그마치 8개월이다. 몇 번이고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내가 종인이와 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가 돼버리고, 그래서 놈의 옆에서 마음 편하게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어보고 싶다고. 짝사랑을 하는 내내 모든 사람은 드라마 작가가 되곤 한다. 정말 우연히 그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그와 우연히 마주치고, 그가 우연히 나한테 호감을 가지고, 그렇게 사귀게 되는 삼류 드라마.
PC방으로 걸음을 옮기기까지 수지와 보미에게 소리 없는 쌍욕을 들어야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잘생긴 뒤통수에 시무룩해지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아, 나 진짜 성덕이구나 성덕. 뒤통수도 잘생겼어. 끙끙, TV에 나오는 아이돌을 보며 끙끙 앓는 사람처럼 심장이 아픈 거였다. 매쾌한 담배 냄새가 판치는 PC방 안에 들어가자 반사적으로 갈라진 호흡에 아픈 기침이 터졌다. 무작정 따라온다고 온 건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임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 너네 게임 뭐 하냐? 서든 할 수 있냐?
" ……. "
" 피파는? "
" ……. "
" 롤은? "
" ……. "
" 아, 너네 왜 왔냐 그럼? "
서든도 못하고 피파도 못하는데 롤은 잘도 하겠다, 미친놈아.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에 애꿎은 속만 타들어갔다. 앞뒤 가리지 않고 종인이만 생각하며 따라온 건데 계획 하나 없이 말부터 내뱉고 보는 내 성격이 피를 본 느낌이었다. 낯선 공기와 낯선 분위기에 눈동자를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옮기기를 여러 번이었다. 게임은 무슨, 나 그런 거 하나도 못하는데.
" 야, 크아는 하냐? "
" 응? "
" 셋 다 크아는 하냐고. "
" 야, 당연하지. 크아 못하는 사람도 있어? "
" 됐네, 크아하자. "
" 아, 무슨 크아야. 존나 너나 해. "
" 너까지 해야 딱 삼대삼이라고, 닥치고 해 그냥. "
" 아니, 돈 내고 크아를 누가 하냐고. "
" 곧 1분 뒤에 니가. "
" 시발새끼야. "
어이없는 장난에 힘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앉으라며 고갯짓을 하는 변백현의 지시에 따라 너도 나도 옹기종기 등을 맞대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PC방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온 적이 별로 없는데……아니, 그렇지 않냐. 여자들이 주로 모여서 하는 일은 딱 한정되어있는데. 예를 들면 먹거나, 먹고 나서 카페 가거나, 먹고 나서 노래방에 가거나. 먹고 나서 PC방에 가는 코스는 딱히 겪어보지 못한 우리였다.
경쾌한 크아 비지엠이 울리자 새삼스레 맑은 미소가 지어졌다. 뜬금없는 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건 바로 이런 거였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나 즐겨 했던 게임을 잊고 지내온 순간 다시 만나는 건 뜻밖의 설렘이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면.
" 뭐야? 나 왜 로그인 안 돼? "
" 비번 틀린 거 아니야? "
" 나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이 아이디랑 이 비번인데? "
" 너무 오래돼서 캐릭터 사라진 거 아니야? "
" 미친, 나 그럼 새로 만들어야 해? 아, 존나 오래 걸리잖아! "
젠장, 하늘은 지겹게도 날 도와주는 일이 없었다. 종인이한테 할 고백을 변백현에게 한 것도 그렇더만, 이번에도 상황은 지독히도 날 따라주지 않았다. 어깨 축이 쭉 늘어졌다.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아래로 향하기를 재촉했다. 짝사랑하는 사람 마음 요만큼도 몰라주는 새끼들은 먼저 저들끼리 방을 만들어 상점을 구경하기 바빴다. 심연의 한숨을 대신해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아, 진짜 이게 뭐야. 종인이랑 게임도 못하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꼴이.
" 내꺼로 할래? "
" 응? "
" 나 어차피 한 시간 뒤에 나가야 해서 오래 못해. "
" 아……그럼 너는 어디 있어? "
" 나 옆에 앉아있을 건데? 여기 사람 없어서 뭐라 안해. "
" ……아. "
" 키보드 줘봐. "
미처 그 말꼬리를 잇기도 전에 제 허리를 펴고 내 쪽으로 다가와 몸을 숙이는 김종인이었다. 난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살짝 뒤로 빼고 있고, 놈은 허리만 구부린 채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그 거리가 그렇게나 낯설게 느껴지는 거였다. 두서없이 뛰어대는 심장 소리에 파도가 일렁였다. 백사장의 모래들은 비치는 태양이 뜨겁다고 야단이었다. 그럼에도 파도는 더 신 나서 몸을 흔들어댔다. 지금의 내가 그랬다. 온몸은 타들어갈 것 같은데, 지칠 만큼 떨리는 것.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목 부근에 힘도 줬다. 드러나는 쇄골이 지금의 내 간절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종인이가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거였다.
참 애연한 일이지만 나도 내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 거리는 내가 아니라 놈이 좋아하는 여자만이 갈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구차하게 그 거리를 따질수록 자신감은 점점 하락세를 탔다. 현실을 자각하는 일은 늘 고통스럽고, 잔인한 일이다. 용기를 내 놈을 올려다봤다. 이유 모를 벅찬 느낌에 가슴이 일렁였다. 이렇게 너와 가까이 있음에도 내 거리를 자각하고 있는 게 너무 싫다. 난 그냥 널 좋아하는 것뿐인데. 이래서 좋아하는 거였다. 이렇게 잘생기고, 이렇게 친절하고, 이렇게……날 착각하게 만들고.
" 됐다, 서버 몇이야? "
" ……. "
" 크아 하는 법 알아? 아, 존나 오래 돼서 난 기억이 안 나네. "
" ……당연히 알지, 옛날에 매일 했는데! "
" 옆에서 하는 거 보고 재밌어 보이면 나도 한 판만 하고 갈게. "
" ……. "
" 응? "
또 이렇게 날 설레게 만들고, 곤란하게 만들고, 바보처럼 고개만 끄덕이게 만들고.
" 아, 이거 존나 사기잖아! "
" 와, ○○○ 게임 진짜 못한다. "
" 아, 변백현 니가 존나 나만 죽이잖아 이 개……. "
" 뭐? "
" 아니, 개잘한다 너."
필요 없는 승부욕은 이럴 때만 나왔다. 내가 키보드에 손을 올릴 때마다 물풍선에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리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우니에게 심심한 사과라도 보내고 싶었다. 언제 그 짧은 순간에 언제 이 새끼들의 표적이 된 건가 싶지만, 같은 편인 수지와 보미마저도 죽어가는 친구의 물풍선을 구하러 오지않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난 죽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 끓어오는 승부욕에 한쪽 손을 들어 이마를 냅다 때려댔다. 병신이 따로 없었다. 제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꼴이라니.
옆에선 규칙적으로 들리는 웃음소리가 있었다. 내가 게임을 하는 내내 한쪽 손으로 제 눈을 가리며 웃음을 참아대는 김종인이었다. 그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어쩌면 종인이가 날 재미있는 애라고 생각해주기만 해도 난 참 좋을 것 같아서. 처절하게 떨리는 손끝을 다시 키보드 위로 올리고 게임을 준비했다. 꼴찌도 일등할 때가 있는 거야, 개놈들아. 혼자만의 결투를 다지고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이번에는 진짜 꼭 이…….
" 내가 해줄게, 줘. "
" ……. "
" 야, 다 이겨줄게. "
마치 어릴 적 놀이터에서만 본 적 있는 재미난 놀이를 발견한 아이처럼 격양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거는 종인이었다. 현실 자각을 못하고 바로 내 옆에 서서 구부정한 자세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놈을 말없이 응시했다. 아, 실감이 안 났다. 놈이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사실도, 같이 PC방에 왔다는 현실도, 나 대신에 게임을 해주는 김종인도.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표정을 굳히고 가만히 게임 화면만 바라봤다. 그럼에도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 흔한 추임새 하나도 꺼내지 못 했다. 그럼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그게 두려워서. 좋아하고 있는 건 죄가 아닌데 그게 나도 모르게 두려워서.
" 아, 존나 반칙아니냐? 왜 니가 대신 하냐고. "
" 아니, 알빠야? 이거 어차피 내 아이디……아! "
" 야야, 김종대 저 새끼 죽여. "
" 김종인 어딨어, 아 존나 우니가 세 명이라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
" 아, 노란색 우니 병신아. "
" 쟤네 여자애들 다 우니라고, 병신아. "
" 아, 끝에 있잖아 끝……미친, 아 김종대 뭐하는데! "
" 니새끼가 자폭하고 왜 나한테 지랄인데! "
" 아, 존나 빡쳐 진짜. "
" 아, 변백현 존나 병신같아 진짜. "
" 어, 니가 더. "
" 어. "
" 꺼져, 그냥. "
" 어. "
" 와, 김종인 개잘하네 진짜. "
" ……. "
" 뭐냐? "
" 야, 하이파이브. "
" 응? "
" 개쩔지, 하이파이브. "
" 아……어, 완전! "
쌍엄지를 치켜들며 과장된 기쁨을 표현하는 나였다. 사탕 발린 내 행동에 꽤나 기분이 좋아진 건지 머쓱하게 뒷머리를 쓸며 쨍한 미소를 짓는 놈이었다.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막무가내로 PC방까지 따라온 거지만, 나름대로 좋은 성과를 냈지 않았느냐. WIN이라는 파란색 글자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 축복했다. 쭉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친구라도 좋으니 아무렇지 않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막역한 사이라도 되어보고 싶다. 눈치 없이 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심장은 내가 어떻게든 조절해볼 테니, 이런 편한 사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참 좋겠다. 더 이상 바보처럼 숨고, 혼자 자책하며 그다음 널 언제 마주칠지 모르는 것처럼, 가망 없는 짝사랑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마주 닿은 손에 알 수 없이 부드럽게 감도는 감촉이 느껴졌다. 그건 마치 아까 전, 종인이가 내게 건네줬던 그 몽쉘과 같은 느낌이었다. 내게 있어 놈이 건넨 몽쉘은 착각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줬다는 걸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착각. 느릿하게 손가락을 구부려 둥글게 말아 쥐었다.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멀쩡히 호흡하기도 힘들었다.
" 여보세요, 효정아. "
" ……. "
" 나 지금 PC방이야, 짝조PC방. 아, 근처야? 그럼 앞으로 올래? "
가끔씩 그가 미치도록 미워질 때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날 너무 힘들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어이없다는 생각인 거 알았다. 나 혼자 좋아하는 거면서, 무슨 주제로 미워하는 거냐고 말하겠지만……사실 그 본진은 열등감에서 시작된다. 그가 밉다는데 딱히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 짝사랑을 하는 내내 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만 느끼는 건 아니다. 죽을 만큼 미운 감정, 또 그럼에도 보고 싶은 것. 날 착각하게 만드는 그 못난 행동이 밉지만 저도 모르게 자꾸만 생각나고. 분명 그가 밉고, 짜증나지만 내 좋아하는 감정이 자꾸만 그걸 합리화하려고 했다.
이상한 공식이었다. 미움과 마음이 공존하는 공식. 난 그걸 짝사랑이라고 불렀다. 제 전화를 끊자마자 먼저 간다며 반복적으로 손인사를 건네는 종인이었다.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나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속에선 같은 말이 여러 번 들끓었다.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엉뚱한 작별 인사였지만.
내 앞에서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또 혼자만의 지겨운 싸움이 된다는 것. 반복적인 공식은 오늘도 풀이 방법 하나 없이 문제를 해결하라 재촉했다.
" 밥 먹으러 가실분! 선착순 두명, 윤보미 ○○○ 당첨! "
" ……아, 씹지랄. "
" 아, 왜. 안 배고파? 먹으러 가자, 응? 너네는 안 배고파? 김종대 너네도 같이 갈래? "
" 난 상관없어, 변백현 너 갈거냐. "
" 응, 가던가. "
" 야, 저기 앞에 치킨 집 존나 맛있는 곳……. "
" 나 먼저 갈게. "
" ……아, 뭐야 ○○○. 가자아. "
" 으, 담배 냄새 너무 오랫동안 맡았더니 매쓱거려. 집 가야할 거 같아. "
" 아, 그래도……. "
" ○○○ 가, 쉬어라. 내일 보자. "
구차한 설명 하나 없어도 내 기분을 누구보다 빨리 눈치챈 보미였다. 샐쭉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아, 표정 관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오죽 티 나면 김종인이라는 이름 석자 하나 안 들어도 저렇게 빨리 눈치를 챌까. 내가 담배를 핀 것도 아닌데 횡격막 가운데에 탄 재 가루가 쌓이고 있었다. 머릿속은 오직 다른 방향으로만 향해 있었다. 지금 종인이가 그 여자랑 무엇을 할까. 사귀는 거 아니겠지. 만약 사귀게 되면 난 어떡해야 하는 거지. 규칙적으로, 그러나 잘게 조각난 심장이 뛰었다. 낮은 부분에서 쿵쿵 울려댔다. 무심코 맞닿았던 손의 감각이 점차 무던해지고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쉬움은 빨리 왔다.
" 야, 얘기 좀 하자. "
" 응? 밥먹으러 간다며? "
" 아니, 아까 타이밍을 놓쳐서 말 못했는데 내가 아까 너한테 욕했던 거 있잖아. "
" 알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
" 뭐야, 알아? "
" 너 내가 웃기냐 진짜? 티낼 거 다 내고 도와주는 건 또 뭔데. "
" 도와주는 거 아닌데. "
" 뭐? "
" 욕 연습한 건데, 그거. "
" 하, 시발……말을 말자. "
구경거리가 되는 건 지금으로도 족했다. 그보다 더한 놀림거리는 죽어도 상상하기 싫었다. 내가 뭘 잘못했길래 저 새끼의 놀림감이 되어야 하느냐 이 말이었다. 지금도 충분했다. 종인이의 말투나 행동 하나에 시시각각으로 표정이나 기분이 변하는 것도 충분히 짝사랑의 놀림감이었다. 웃겨죽겠다는 표정으로 큭큭 웃음을 참아내는 개새끼의 면상에 당장이라도 죽빵이 시급해 보였다. 마치 중학교 시절, 제 본능에 못 이겨 선빵부터 날리고 보는 중2병 남자아이들의 심정이 이해될 지경이었다. 타들어가는 속을 애써 눌러 담았다. 개새끼랑 이야기하는 건 나만 손해다. 나만 손해야. 내가 반응을 해주는 게 신 나서 저러는 거야. 아까전 호의는 그냥 우연의 일치다, 우연의 일치.
시니컬하게 등을 돌리고 묵묵히 걸음을 내디뎠다. 뒤에선 내 신경을 콕콕 찔러대는 변백현의 얄궃은 톤이 들려왔지만, 들리는 대로 흘려버리는 고급 아이템을 장착한 나였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백사장의 모래알은 이번에 고통스럽게 제 몸을 감추고 살기에 급급했다. 잔잔하게 출렁이고 있는 파도 위로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졌다. 내가 감당하기에 넘칠 만큼. 몇 걸음을 앞두고 내 팔을 잡아버리는 변백현의 악력에 무참하게 멈춰버린 힘없는 내 몸뚱어리가 죽을 만큼 미웠다. 아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넌 지금 내 생각 죽어도 못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의 전화에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달려가는데, 너 같으면 내가 지금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할 수 있겠냐.
아까와는 상반된 표정의 놈이 무어라 말도 없이 가만히 나를 내려봤다. 죽어도 남자 앞에서는 이런 추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놈에게는 벌써 두 번째였다. 시들시들하게 약해진 난, 힘 하나 없는 목소리로 잇새를 열었다.
" 아, 좀 놓……. "
" 잠깐만, 입 다물어 봐. "
" ……. "
" ……. "
그제야 놈의 시선이 내가 아닌 다른 쪽으로 향해 있다는 걸 직시할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 시선의 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초라함에 쳐진 두 눈은 점차 위아래 양쪽으로 사정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에 황급히 두 손을 들어 입을 막아도 봤다. 뒤에선 변백현의 짧은 숨소리도 들렸다. 일순간 모든 게 정지되었다. 나와 같은 곳을 힐끔거리며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의 얼굴도 그랬고, 뒤에서 낮은 비속어를 터뜨리는 변백현도 그랬으며, 초라한 내 상황도 그랬다.
" ……. "
" ……. "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이유 모를 서러움의 눈물을 토해내고 있는 김종인을 빼면, 모든 게 다 그랬다.
짝사랑의 조건 네 번째 : 지금 난 지치고 힘들어도, 그가 기분이 좋다면 애써 밝은 척하며 그의 기분에 맞춘다.
개인적으로 미움과 마음이 공존하는 게 짝사랑이라는 말은 꼭 또 말하고 싶어요.
보미 사진 출처 - 꾸룩이님
누구야 우리 종인이 누가 울렸어
설마 효정이가 울렸나여
헐 종이니 차인거야?ㅠㅠㅠㅠㅠㅠㅠㅍ
차였니..?니니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5 20:57
차엿어...
ㅠㅠ종인이차였어ㅠㅠ푸ㅠㅠ
누가우리조니니울렷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효정이니ㅜㅜㅜㅠㅠㅠ
헐 .. 종인아 ...
뭐야 종인 ...ㅠ
왜울어 니니야 ㅠㅠ
아니 ㅠㅠㅠ종인아ㅠㅠㅠㅠ차인거야?ㅠㅠㅠㅠ 여주도 마음아프겠....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16 01:11
종인아 왜우니ㅠㅠㅠㅠㅠ맴찢ㅠㅠㅠㅠ
아니 뭐야ㅠㅠㅜㅜ여주도 마음에서 비오고 종인이도 울고 나도 울고싶다ㅠㅠㅜㅜ
리덕님 말대로 짝사랑이랑건 사랑과 미움의 공존하는것 같아요...랑상 읽을 때마다 공감하며 읽습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11.04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