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교회 최성훈 목사 회고사
최경천 목사
먼저 이 뜻깊은 자리에 저의 선친이신 최성훈 목사를 대신해서 회고(懷古)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아버님을 대신해서 회고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닙니다. 퇴계원교회가 시작되던 때는 제가 태어나기 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했던 선친과의 추억을 기초로 초기 퇴계원교회가 어떠했을 지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제 선친은 6.25 동란이 가져온 이산(離散)의 아픔을 안고 평생을 사셨던 분입니다. 38선이 그어진 후에 마음은 언제나 외로움과 아픔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1982년)에 경남 진주교회에서 청년들이 지리산(智異山)으로 산상기도회(山上 祈禱會)를 떠났는데, 제 극성에 70세의 나이로 천왕봉(天王峯)에 올랐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자, 아버지는 그 산 한 귀퉁이에서 “경애야, 경애야!”라고 목 놓아 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북녁에 두고 온 큰 딸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니 퇴계원교회가 시작되던 1953년은 선친이 41세의 나이였는데, 그의 목회에 대한 소명(召命)과 열성은 복음사업의 신속한 완성으로 남북이 통일되고, 가족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개인적인 절박함에서 더욱 강렬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퇴계원교회에서의 사역이었지만, 퇴계원교회에 대한 선친의 애정은 지극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종을 통해 부흥을 주셨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교회가 부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목회자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친은 27세의 나이에 재림교회 진리를 받아들인 이후, 한 번도 쉬지 않고 새벽기도회를 하셨던 분이십니다. 종종 저희에게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내 소원은 기도하다 가는 것이고, 설교하다 가는 것이고, 복음 전하다 가는 것이다.” 선친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염두에 두고 목회를 하셨습니다.
선친이 한센 형제들과 함께 지내기로 선택할 때에도 이런 결심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이미 나도 한센씨 병에 걸린 셈 치고, 이미 죽은 셈 치고.”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 육신적 차원의 계산을 내려놓으시고, 바보처럼 사셨습니다. 분명 퇴계원교회는 이런 영적인 반석 위에서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 영적 가치를 높이는 정신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열성적이고, 가장 큰 축복을 받은 교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퇴계원교회는 선친께서 남한에서 시작한 첫 번째 공식 사역이었고, 첫사랑이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섬겼는지는 일기(日記)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퇴계원교회를 비롯해 선친이 섬기셨던 교회와 성도들을 잊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또렷한 기억력으로 누군가를 회상하면 그 이름을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새벽의 기도 시간은 2 시간도 족히 넘었는데, 그 기도는 선친이 섬겼던 모든 성도들의 가정을 기도로 방문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기도 시간은 인생의 연륜이 길어지면서 함께 길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서울에 있게 되면서부터 아버님은 저를 보러 서울에 오셨다가 고향에 내려가시기 전에 반드시 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삼안리, 퇴계원, 사로리교회 등을 둘러보고 가시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아버님께 하나의 의식(儀式) 같은 것이었습니다. 퇴계원교회가 이 자리에 신축되고 있던 해(1997년, 85세였음)에도 아버님은 저와 함께 이곳을 방문하셨습니다. 건축 자재들이 교회 계단에 위험하게 늘어져 있는데도, 굳이 교회 안에 들어가 보셔야 한다고 고집하셨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건축되는지, 이곳저곳을 다 살펴보시고, 본당이 있는 자리에 한참이나 앉아 기도하시고 떠나셨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이제는 잊어버린 존재이심에도 불구하고, 퇴계원교회는 선친께 결코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었습니다. 퇴계원교회에서 나눴던 성도의 사랑은 너무나 지극하고 커서, 일평생 한센씨병 가족들을 위한 봉사를 하는 동안에도 눈 감으면 절로 따스함과 감사함과 그리움이 솟아나도록 하는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서실 수 있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이토록 축복하셔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찬양과 예배를 보면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통하여 이루신 큰 일”로 인해 솟구치는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퇴계원교회 설립 60주년을 기념하면서 선친을 대신해서 기도합니다. 퇴계원교회가 시작될 때 이 교회의 기초가 되었던 믿음과 사랑의 뜨거움이 다시 한 번 불붙어서, 주님의 사랑과 섬김과 나눔의 정신이 이 교회를 통하여 이 지역사회는 물론 한국과 세계교회에 전해지고,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주님의 품에 안기는 놀라운 역사가 가득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선친(先親)을 대신하여 이 귀한 자리에 서게 해 주신 하나님과 교회에 감사를 드리고, 주님의 크신 축복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하시는 사업마다 크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11.08 최성훈의 둘째 아들 최경천
찾지 않으면 잊혀지는 역사를
이토록 부지런히 그리고 정확히 찾아내셔서
과거의 정신을 다시 그려내신 장로님의 지혜와 수고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기억될 만한 헌신적인 선친의 삶도
때로 사람들에게는 잊혀지기 쉬운데,
그분을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저희 가문의 기쁨과 영광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퇴계원교회의 부흥을 빕니다.
졸필이라 어디 올리기가 부끄럽지만,
뜻하시는 일에 조금이라도 쓰여 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보내 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