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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철학(지속하는 삶을 위한 성격의 힘)
-제임스 힐먼
심리학자이자 세게적으로 이름난 강연자. 융학파 정신분석가이자 스위스 융 연구소 학과장으로서 '원형 심리학'으로 대표되는 후기 융 학파의 기수 역할을 했고 미국에서는 예일대, 시라큐스대, 시카고대학 강단에 섰으며 댈러스대 인문문화연구소 설립에 참여. 유럽에서 30년을 거주한 후 코네티컷에서 여생을 보내고 2011년에 타계.
-이세진 옮김
서강대 철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 현재 전문 번역가.
나는 조만간 60이 된다. 그러나, 나이들어감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후회보다는, 미래에 나에게 펼쳐질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살고 있다. 앞으로 해야할 것들을 준비하기에 바쁘고, 그 일로 인해 내가 경험할 것들을 은근히 기대하는 와중에 독서모임 스터디도서로 만났다.
서양의 역사와 예술, 그리고 서양인들의 문화와 생활속의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전문번역가의 글이지만 멋진 의미의 글이기보다는 글자들의 나열로만 보여, 300쪽이 넘는 책을 읽는 동안, 언제 감동할까, 무엇에 촛점을 두어야할지 이렇게 고민하면서 읽은 책도 드물다. 그러나, 문맥보다는 몇줄의 글에서 나이듦에 대한 공감내용이 있다.
이 책은
1부 지속(오래 산다는 것/마지막 시간/오래됨)
2부 떠나감(지속에서 떠나감으로/반복/중력의 늘어짐/한밤중에 자다 깨는 습관/혼란스러운 동요/말라감/기억력의 문제-단기적 손실, 장기적 이득/성마름/이별/노년의 성애/무감각증/심부전증/회귀
(막간 이야기) 얼굴의 힘
3부 떠나버림/남음(떠나감에서 떠나버림/남음, 철학이 살펴본 성격학/미덕의 성격, 혹은 교화된 성격/이미지화된 성격/조부모세대의 양육/꾸지람하는 노인/성격의 미덕/끝내기)
*클리세(진부한 말과 생각), 프시케(생각)
-독자에게-
나이듦은 우영니 아니다. 나이듦은 인간으로 사는 한 필연이요, 영혼이 의도하는 바다. 나이듦을 영예롭게 여기고 노년을 그에 합당한 지성으로 다루는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 독자는 이 책에서 바로 그러한 시각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통찰들로 가득하다.
41쪽. 철학자들은 동일성과 차이라는 플라톤의 원형적 관념들을 적용한다. 양말은 닳고 해진 모직 원단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소재가 달라졌지만, 그 모양은 동일성을 유지한다....사람의 몸도 양말같아서 세포가 떨어져나가고, ,체액이 바뀌고 신선한 박테리아 조직이 배양되어가는 동안 다른 조직들은 죽어버린다. 나를 이루는 물질이 변하거나 교체되더라고 나는 여전히 나다.
50쪽.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이가 들면 정신적 역량과 신체적 활력이 떨어지고 운신이 어려워지지만 성격은 형상이 좀더 실현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에너지를 드러낼 수 있다.
51쪽. 철학자들이 양말을 지속성의 비유로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지속과 버텨내다 라는 뜻을 지닌 last가 발과 양말을 가리키는 고대 스칸디나비아 말 '레이스트르leistr에서 왔다. 신발을 만들거나 수리할 때 쓰는 구두골, 즉 발 모양의 목재 또는 금속 덩어리가 'last'다. 성격대로 산다는 것은 구두골을 고수한다는 것. 구두를 만들 때에는 구두골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last의 또 다른 의미는 '오래 산다는 것',. 선박이 실어 나를 수 있는 중량, 배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last. 말하자면 이것은 짐이고 부담이다.
53쪽. 나이든 여성들도 오래 살면서 힘을 얻는다. 다양한 지역의 민족학적 보고서들은 여성의 역할이 노년에 확대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나이 든 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마을 전체 차원에서도 어른으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나이든 여성은 성격이 훌륭하기만 해도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된다.
59쪽. 인생의 말년은 더없이 가치 있는 시간이다. 살라온 날들을 돌아보고, 바로 잡아야할 것을 바로잡고, 우주론적 사색에 잠기고, 기억을 이야기로 엮어내고, 세상의 이미지를 감각으로 향유하며, 유령이나 조상과 연결될 수 있는 귀한 시간.
61쪽.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에서는 "노인들은 뚱하고, 불만이 많고, 조바심을 자 ㄹ내며, 비위 맞추기가 힘들다... 그중 일부는 지독한 구두쇠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성격의 문제이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생겼다는 것은 이미 있던 것, 똑같은 것이 심히 늘언ㄴ 데 지나지 않는다.
66쪽. 로마황제의 시신을 화장할 때에는 황제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독수리를 장작더미옆에서 날려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오직 독수리만이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태양으로 곧장 날아감으로써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독수리는 기질이 "극도로 뜨겁고 건조하며" 식욕은 게걸스럽다. 독수리는 성스러운 상황속에서 성장. 독수리는 가장 고매한 영혼, 가장 멀리 미치는 야심의 매개체.
73쪽. 나이가 들면 굳이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특이한 삶의 확장이 일어난다. 쉰살이 넘어가면 우리의 생각, 감정, 기억이 자녀보다는 부모의 편에 더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70살이 넘어가면 우리는 살아있는 손자들보다 진즉에 저세상으로 떠난 조부모들과 더 가까워진다. 어쩌다 가끔 들르는 손자들은 우주선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처럼 낯설기만 하다. 나이 든 이들은 영혼을 자기 안으로 거둬들임으로써 더욱더 크게 키우는 것 같다. 내면성이 확장되면 노년의 작은 방으로 좀 더 기꺼이 들어가고 세상에서 자리를 덜 차지하게 된다.
76쪽. 역사속으로 후진하고, 우리 다음에 올 것과 우리보다 낮은 것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고, 우리가 아닌 것을 향하여 밖으로 뻗어가라. 그럴수록 삶은 확장될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삶은 타임캡슐에서 풀려날 것이다. 이것이 진짜 오래 지속되는 삶. 멈출 곳이 없기에 영원히 지속되는 삶이다.
80쪽. 노년은 T.S. 엘리엇이 말하는 "사진첩과 함께 보내는 저녁시간"을 갖기에 좋을 때다.
87쪽. 노인학이라는 용어는 노년에 대한 젊은 심리학자들의 연구가 아니라, 우리가 이 나이든 눈을로 하는 연구를 지칭해야 하지 않을까?
89쪽. 문화는 노인들에 의해 보전된다. 이 생각은 으레 노인이 구식, 옛 지식, 옛이야기를 수호한다는 의미로, 노인은 지혜롭고 신중한 조언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노인이 특이한 것을 좋아하고 타인들의 특이한 점을 연구하고, 개별적 현상의 특이함에서 성격의 본질을 찾아내기 때문에 문화를 보전한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은 틀에 맞지 않는 자기네들의 특이성을 동일하게 고수함으로써 문화를 보전하는 것이다.
91쪽.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내가 이 나이에 느끼는 바다. 그렇지만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주 많다. 식물, 동물, 구름, 낮과 밤, 그리고 인간속에 있는 영원한 것 등. 나 자신에 대한 느낌이 불확실할수록, 내 안에서 온작 사물과의 친밀감은 그만큼 높아진다. 실로,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세계와 갈라놓았던 저 생소함이 나의 내면세게로 옮겨 와 나 자신에 대한 예기치못한 낯섦을 보여주는 것 같다.
96쪽. 오래됨.
오래됨을 뜻하는 old는 그 자체가 아주 오래된 단어인데, 아마도 '자양분을 주다'라는 뜻의 인도,유럽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영어에서 이 단어의 흔적을 살펴보면, '오래된'것은 자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은 것, 성장한 것, 성숙한 것을 가리킨다. 나이를 물어볼 때, "How old is she?" "She is 4 years old."라고 한다. 우리는 연령에 상관없이 언젠 '오래됨'의 소유자이자, 오래된 존재로서 우리 자신을 오래됨의 특정한 양과 동일시한다.
97쪽. 고대 영어 필사본은 'eald(old)'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eald는 중세의 법전, 의학 종겨 전서, 문학적 텍스트와 그 밖의 문서들에 가장 자주 나오는 50개 던어중 하나. 이 단어는 주로 긍정적인 의미들을 담고 있다. 이 단어를 포함한 복합어 49개 중에서 완전히 부정적인 말은 8개뿐. 보통 'eald'가 붙으면 일반적으로 더 좋은 뜻이 된다. 신뢰성, 유서깊음, 유명한, 가치
그러나, 이것은 곧 new, fresh, young, of the future와 상투적으로 대조됨으로써 고통을 겪는다. 이 단어의 의미는 퀴퀴하고 낡고 죽어가고 이미 지난 것으로 좁혀졌다....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이후로 늘 '새로운 것'과 자신을 동일시해왔던 이 문화속에서 old는 언제나 나쁜 쪽을 떠맡게 되고 오래됨을 안일하고 단순한 관습적 지혜와 관련없는 현상으로 생각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99쪽. world라는 단어의 옛 형태는 wereald, weorold였다. 세계는 자양분을 제공하는 이곳, eald가 충만한 곳이다.
101쪽. 오래된 것들은 오래 써서 이가 빠지고 나달나달해지고 뭉툭해졌을 지언정 성격을 획득했다. 이 성격은 익숙함이나 쓸모, 때때로 광택, 고색, 디자인의 아름다움에서 온다. 혹은 그저 오래됐기 때문에 오래된 존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성격을 획득한다. 우리가 오래됨을 아름다움과 쓸모를 넘어선 존재 상태ㅐ로 느끼지 못한다면 노년으로 넘어가기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104쪽. TS엘리엇의 말대로 "노인은 탐험가가 되어야 한다면" 그 탐엄은 오래됨/늙음 그 자체의 탐험, 즉 그 지형을 둘러보고 지도를 작성하며 그 왕국으로 들어가는 활동일 것이다.
106쪽. 우리가 나날이 힘써야 할 과제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성격을 알아내는 일이다. 온전하게 늙고, 우리 존재에 충실하고, 우리의 진중함과 괴팍함으로 쓸모있는 존재가 된다면, 공공선에 간접적으로 이바지하고 그로써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수고로운 일이요, 이 일에는 은퇴가 없다.
*sebah: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아주 정정한, 행복한 노년의 뜻.
balah: 낡은 옷가지처럼 닳아빠진, 서들픈 노년.
115쪽. 체중계, 다이어트, 거울, 변기는 내가 집착하는 익숙한 벗이 된다.
117쪽. 젊을 때는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지만, 나이 들어서는 무엇을 어떻게 성취했는가를 돌아봄이 더욱 마땅하다.
120쪽. 내가 너무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나? 나는 무엇을 지고 있는가? 거대한 책임. 무거운 감정, 너무 많은 것이 담긴 가방/ 어저면 나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쌓기만 하고 더는 아무것도 올려놓을 수 없는 수준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짊어진 것을 살펴보는 건지도 몰라..... 아직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가령, 도움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협업, 속도조절, 시기선택, 기운낵,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 새로운 노력은 접고 과거의 성취를 즐기기 등등.
128쪽. 반복은 노년의 주특기.......사실만을 듣고자 한다면 본복되는 이야기는 지루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숨겨진 위험, 가정수호, 식구들의 협동, 그리고 긴급 상황에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튀어나오는 각각의 '캐릭터들'의 성격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바가 있다... 이 기능이 가족이나 마을의 참사 혹은 경사를, 일상적 사건들의 패턴없는 흐름에 배경과 기반을 부여하는 주춧돌로 만든다. 프시케는 반복을 통해 일상적인 것에서 의미를 이루어낸다. 마치 영혼이 무엇이 오래 남게 될지 알기 위해 똑같은 이야기를 갈구하는 것 같다.
142쪽. 노인들의 24시간 내 소변량은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밤에 염분과 수분을 잡아두는 기능은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기 때문에 자주 소변을 통해야 배출해야 한다.
158쪽. 대뇌피질에서 고도의 지적 활동을 관장하는 부분은 뇌세포감소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 않다... 심지어 뉴런의 수는 줄었어도 활동은 증가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연구들은 일부 대뇌피질 누런들은 성년 이후에 더 풍부해진다는 관찰 결과를 보여주었다...건강한 노인의 경우, 상당수 뉴런들에서 뻗어나오는 섬유(수상돌기)가 계속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신경학자들은 사실상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지헤의 근거를 발견한 셈이다.
159쪽.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의 의미... 창고에서 새로 들어온 것을 신속히 없애야만 그동안 줄독 있었던 것을 찬찬히 살펴볼 정서적 공간이 보존된다. 오늘 아침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쪽 훨씬 더 오랫동안 저장한 기록들을 한데 모아둘 선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170쪽. 왜 과거의 어두운 날들이 노년의 회상속에서 밝아지고 가벼워지는가/ 영혼이 지고 있던 무게를 놓아버리고 높이 날아갈 준비를 한다는 미묘한 암시런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의 전조이런가? 용서하지 못하고 떠날 일이 없게끔, 그 행복한 분위기가 이제 치악의 경험들조차 감싸는 것인가?
184쪽. 몸이 말을 안듣고, 주저앉고, 큰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신체으ㅢ 부분들이 우리가 키우는 식물이나 동물처럼 자지가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해줘야 자기에게 최고로 잘해주는 건지 알려준다. 이것이 떠나는 노인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지혜다.
219쪽. 최근의 통계 조사에서 믹구 성인 남성의 1/3과 성인 여성의 1/4은 영원히 15-19세 시절에 머물고 싶어한다. 그야말로 고교 종신형이다. 영혼은 풋풋한 시절의 아름다움의 고뇌를 갈망한다.
221쪽. 영원회귀의 신화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전제는, 시간이 순환적이는 것. 지금 일어나는 일은 상세한 부분까지 똑같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수준에서는 전에도 일어났고 나중에도 일어날 일이다. 이 순환적 반복은 우주의 영원한 시간을 반영한다. 안정적이고 신성한 패턴 혹은 원형적 힘이 세상의 변화하는 삶을 지배한다. 세상의 삶은 으레 이 신화적 패턴을 반복할 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세속의 시간속에서 앞으로 나간다. 우리는 새로운 것이 되돌아온 옛것이고, 그러므로 새것을 이해하려면 엣것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235쪽. 힘이 들면 얼굴에 힘이 들어간다.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히고, 눈살이 삐푸려지며, 입술이 오르마진다. 집중, 몰두, 노력. 엤날에는 가족사진이나 단체 초상화에서 다들 극도로 무게를 잡았다.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워버리라고 했다. 그러다 코닥사가 등장하고 사진이 대중화되면서부터 웃는 표정이 대세가 되엇다. 얼굴도 미소를 더 좋아한다. 인상을 쓰고 우거지상을 하려면 근육에 힘이 더 들어간다.
236쪽. 안면근육조직이 발달한 이유는 , 인간의 주요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더 큰 이유는 문명에 따른 섬세한 감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