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하고 우격다짐식의 질투가 필요한가?
이 영화는 하필 제목이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과 같다. 그래서 약간은 호기심에, 혹은 사업적 이윤추구에 도움이 되는가 하는 몇가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았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평범하나 비범하다. 비범하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이 영화가 2002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아시아 신인작가상을 수상하였으며 금년에는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객관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에서 그 일상적인 평범함을 찾아보고자 한다.
영화는 박찬옥 감독의 작품으로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애인을 빼앗기는 한 청년의 애매모호한 감성과 불안한 심리적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한 젊은 남자가 자기 애인으로부터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우연히 그 문제의 유부남을 만나게 된 후 묘한 충동심과 호기심으로 그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잡지사에 입사해 연적을 탐색해 간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난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잡지사에서 아마추어 여성 사진작가를 만난 주인공은 그녀의 자유분방한 매력에 호감을 느낀다. 동시에, 로맨스만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그의 연적인 편집장도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이러한 과정에 처한 주인공인 이원상의 심리는 묘하다. 처음에는 상대방 남자에 대한 질투심과 분노가 행동의 동인으로 작용하나 나중에는 상대방에 대한 동경과 선망의 감정이 이를 대치한다. 왜냐하면 그의 질투심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한 상대방에 대한 동경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청년기의 불안정한 내면 심리, 즉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청년기의 감수성과 아직 자신을 인정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청년기의 불안과 설레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인 '질투는 나의 힘'이 뜻하듯 박찬옥 감독은 청년기 행동의 역동력을 질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타난 주인공 이원상의 행동을 보면 전적으로 그렇지도 않다. 그의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질투라는 기본적인 감성과 아울러 자신의 결핍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과 자기정체성에 대한 불안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감정이 잘 드러난 부분이 아마 내 생각에는 카피로 사용된,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한 남자에게 두 번씩이나 애인을 빼앗기는 이런 난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면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질투는 나의 힘'은 다른 영화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관을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혹자는 때로는 소박하고, 순진하고, 근본적으로 선량한 , 그래서 왜곡된 자의식에 빠져 있는 주인공을 대적하지 말고 위축되어 매몰당하는 우리 모두의 결핍된 청년기의 한 모습으로 보자고 한다. 이 결핍은 비극적인 결말을 낳기 쉬운 아슬아슬한 감정이자,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노정하는 과정이다. 즉 조금은 복잡하지만 관대함으로 이 영화가 암시하는 현대인의 인간관계와 사랑을 들여다보자고 한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죽도록 사랑해 보아라. 그렇다면 그의 주위를 서성거리는 모든 잠재적인 요소들은 나의 강력한 적이 될 것이고 , 제거해야 할 방해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연인을 빼앗기지 않을까, 혹은 마음을 잃을지 않을까 노심초사 가슴을 조릴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몰입하고 헌신하기를 원할 것이다.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연적에게 질투이외의 감정인, 선망과 양보와 타협이 있을 수 있는가? 더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물불가리지 않고 순수와 열정의 바다에 뛰어드는 청년기의 한 사내가 아닌가?
영화가 나타낸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나는 요즈음의 세태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아니, 이러한 생각을 하게끔 한 영화가 그 나름의 시사를 관객에게 주었다고 본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쉽게 흔들리고 춤추고 있는 이 시대의 가벼운 사랑을 따르지 말고 우직할 정도로 우격다짐하며 한 사람에 대해 치열한 질투의 힘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 질투가 남들이 보아 치졸하고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일지라도 말이다.
기형도의 시가 생각난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