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선사와 법륜 스님
우리 불교의 특징은 참선과 보살입니다.
물론 처음 불교가 들어와 그렇게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참선은 삼국 말에 한반도에 들어와 고려 조 보국국사 지눌 선사 시대 이후 한반도 주류 불교가 되지요.
그에 반해 대승불교의 핵심인 중생구제라는 보살행은 왕권 국가에서 불교가 주체로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개인적인 보살행만 있을 뿐이죠.
그러다 조선조에서는 완전히 소극적인 개념으로 변하니..
재가자들은 보살님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자들이 되고.. 그것을 기복이요 더 나아가 미신 불교라 부르고 있어요.
보살불교의 참 의미는 사홍서원에 처음에 나오듯 모든 생명을 구하겠다는 것으로..
그런 행동을 관세음보살님에게 맡기는 게 아닌 우리 스스로 보살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있나요!
이와 같은 보살의 참 의미를 살피고 재가자가 보살행에 앞서야 한다는 의식은 경허 스님 이후 생기기 시작해
광복 이후 조금씩 조금씩 세상에 보이기 시작하는 데..
그때 한반도의 이남은 개신교로 덮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지요.^^
천주교도 그렇지만 특히 개신교는 겉보기엔 보살행 실천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 끝까지 내[야훼] 말을 전하라'는 기독교는 말을 전하는 수단으로 보살행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왜 한반도에서 불교는 이리 초라해졌는지 알기 위해 주변국을 슬쩍 보면..
일본은 임진왜란이 이후 들어선 막부 정권이 서양 종교에 대항하는 장치로 불교를 이용했기에
일본인은 가난했지만 절은 재산이 있었고..
미국을 위시한 서양 문물이 들어올 때 절은 일본 문화를 지킬 수 있었고..
대중 교육이 시작될 때 절이 앞장을 서게 됩니다.
즉 절이 국민 교육의 주체가 된 것이죠.
일본에서 여전히 기독교가 소수 종교인 이유입니다.
중국은?.
아시다시피 공산당이 권력을 잡으면서 불교를 포함한 일체 종교를 아편 취급했으니..
불교 기독교 구별할 필요 없이 종교는 모두 힘을 잃는 가운데..
공산당이 불교를 자기 정치에 이용하니.. 소림사를 앞세운 중국 불교는 그 도움을 알차게 받아들입니다.^^.
한반도..
이북은 공산 사회주의 국가 체제이니 종교를 더 이상 논할 형편이 안되고..
이남은?.
광복이 이후 미국의 민주체제를 헌법으로 정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니..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가 미 군정의 힘을 바탕으로 삽시간에 전국에 퍼집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세계 종교 학자들이 한국에서 기독교가 그리 빨리 주류 종교가 된 이유를 알아봐야 한다며 연구할 정도였습니다.
K-문화가 세계 문화가 될 수 있는 바탕에는
6.25 이후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수입된 서양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만큼 2천 년 또는 5천 년 역사를 갖고 있는 한반도의 찬란한 문화를 빨리 잊어버린 나라가 된 것이죠.
자료는 구하지 못했지만..
우리 조상과 우리 선배님들의 얼은 이남 보다 이북에 더 진하게 남아있을 겁니다.
현실은 현실입니다.
이런 마당에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정말 좋은 것을 추려 동서 가리지 말고 우리 것으로 만들고 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가운데 불교에서 우리가 취하고 세우고 전하고 일상화해야 하는 게 바로
보살행입니다.
경허 선사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수행을 바르게 세워 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지만..
보살행에 대해서는 꽝.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안이 있고, 법안이 있고, 혜안과 법안이 있다고 합니다.
이효리의 섹시함에 떼지 못하는 눈을 육안이라 하고,
효리의 아흔 살 모습을 보며 덤덤하게 보는 눈을 혜안,
서른의 효리와 아흔의 효리를 보며 유혹됨 없이 섹시하다^^ 고 보는 눈을 법안이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 눈이라 하여 불안이 있는데.. 그 상태는 어떻다고 말하기가 참 거시 합니다. ㅎㅎㅎ^^
그런 눈이 있다고만 하겠습니다.
경허 선사는 혜안, 법안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출가자들에게 바르게 수행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즉문즉답으로 유명하신 법륜 스님은 경허 선사 길과는 다른 용성 선사의 길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용성 스님은 선농일치라 하여 참선 수행과 생산적인 일을 함께 닦을 것을 권하고.. 수행자와 더불어 사회와 재가불자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재가자를 위한 한글 역경 사업도 스님에게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것을 우리는 보살도라 하는 거지요.
법륜 스님은 법정 스님보다 더 한발 나가 재가자 수행과 보살행을 강조하면서 보살행을 더욱 중시하는 길을 걷고 계시는 스님이지요. 법륜 스님은 최초로(?^^) 세계를 무대로 이타행 중심의 보살불교를 펼치신 스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 보살불교의 역사는 어린 만큼 더욱 성숙해야만 합니다.
보살행 운용은 간단하지요.
나 보다 남을 우선하는 선행입니다.().
근본불교는 나에게서 나가 없는 자리[무아]로 향하는 불교입니다.
대승불교는 나 없음을 알지만.. 지금 여기서는 철저히 나를 세워 남을 우선하는 이타행의 삶을 사는 불교입니다.
법륜스님이 성철선사보다 더 인기가 많은 것은 여기서 살고 있는 그들이 바로 실천하면 좋을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가 나온 이유도 그것이구요.
그와 같은 대승불교.. 보살행은 개인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 그룹이 되어 실천하는 모임이 많아져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절에서는 법륜스님을 모델로 삼아 그것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보살을 키우는 일이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야만 하는데..
현실은 어떤가요?.
여전히 방향을 못 정하고 갈팡질팡하면서 어그적 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조계종 총무원이 한다는 일이.. 권력자 눈치를 보는 조선조 불교를 계승하고 있는 게 아닌지요.
부처님 오신 달인 5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불교는 오고감이 없다고 하지요. 불래불거
5월은 가지만 보살행은 오고감이 없듯이.. 지금 여기서 생생하게 실천되고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보살 불교를 향한 진일보된 마음이 나설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