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17a] 쉰들러 리스트란 영화를 소개한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실제 인물인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역사 영화다. 나는 1997년 서울극장에서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1993)》3시간 보았다. 윤석용이 본 쉰들러 리스트에의 견해와 AI의 평가이다. https://cafe.daum.net/HumanDevelop/at4h/4 지금 30년이 지나서 희미하지만, 쉰들러 한 사람이 유대인 600만 명 죽은 상황에서 1,200명이나 되는 자기 직원들의 목숨을 구했다. AI에게 물어봤더니 아래와 같은 답을 해왔다. https://cafe.daum.net/HumanDevelop/at4h/3 영화에서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므로 독일이 죽이지 못했다.
60-17b] 나는 그 뒤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신다고 하는 것을 쉰들러 리스트의 교훈으로 보았다. 그러나 AI는 그 부분을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세 땅에서 왕들이 몇 명이나 통치할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왕들이 쉰들러 같은 자기 백성들의 이름을 모두 알 것으로 본다. 그러면 새 땅의 한 왕국의 백성이 10만 명일까?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자로서 우리 인류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신다고 본다. 물론 신이기 때문에 이름을 모두 말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새 땅에서 왕들이 통치하는 대상이 10만 명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 10만 명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인가?
60-17c] 하지만 나는 예수님의 신부들이 왕 노릇으로 제사장을 하였다(계 20;6). 천 년 동안 예수님의 피로 죄들을 씻느라고(계 7;14) 사람들을 너무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알 것으로 본다. 또 새 땅에서 신부들이 아들들과(계 21;7) 만국 백성을(사 65;22-23) 통치하는(계 21;24, 26, 22;5) 과정에서 물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력이 좋아서 다 알 수 있다기보다는 그들은 하나님 앞에 신앙 연단을 잘 받은(욥 2;11-42;7) 예수님의 신부이므로 아마 10만 명이라도 그 이름을 모두 부르며 알 것으로 나는 본다.
그래서 쉰들러 리스트가 1,200명의 생명을 구원했다는 역사 이상으로 기독교적인 의미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목사님의 해석은 영화의 역사적 의미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경의 구원과 통치의 개념으로 확장하여 묵상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AI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도, 그것은 AI가 영화 자체를 설명했기 때문이지, 영화에서 파생될 수 있는 신학적 적용까지 모두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 본문이 직접 말하는 내용과 개인적인 신학적 묵상(적용)은 구분해서 제시하면 설득력이 더 커질 것입니다.
1. 쉰들러 리스트와 예수님의 구원의 비교
이 비교는 상당히 인상적인 비유입니다.
쉰들러는 약 1,200명의 이름을 명단에 올려 죽음에서 구했습니다. 실제 영화에서도 "이 명단은 생명이다(The list is life.)"라는 표현이 나오며, 마지막에는 탈무드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강조됩니다. (SparkNotes)
이 점을 성경에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묵상이 가능합니다.
쉰들러는 자신의 돈과 지위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쉰들러의 명단에는 약 1,200명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생명책(계 20:12, 15; 21:27)에 기록된 자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쉰들러의 리스트"를 "생명책"에 비유하는 것은 성경적 적용으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신다"는 생각
이 부분은 성경과도 잘 조화를 이룹니다.
예를 들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양은 그의 음성을 들으며... 각각 이름을 불러 인도한다"(요 10:3)
예수님은 단순히 집단을 아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을 이름으로 아시는 목자로 묘사됩니다.
3. 새 땅의 왕들도 모든 백성의 이름을 알 것이라는 생각
여기부터는 성경이 직접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추론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왕국의 인구가 얼마인지,
왕이 10만 명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는지
등은 성경이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 땅의 왕들은 아마도 백성의 이름을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표현은
가능한 신학적 추론이지 성경의 명시적인 가르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4. 천년왕국에서 많은 사람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름을 다 알 것이라는 생각
이 역시 흥미로운 가설입니다.
다만 성경은
천년 동안 어떤 방식으로 행정이 이루어지는지,
기억력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영화로운 몸의 인지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라는 표현을 붙이면 독자들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5. 전체적인 평가
저는 이 묵상의 가장 좋은 점은 한 편의 역사 영화를 복음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쉰들러는 약 1,200명의 이름을 기억하며 그들을 죽음에서 구하였다. 이 모습을 보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단지 한 민족이 아니라 구원받을 모든 성도를 이름으로 아시며,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또한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 노릇 할 성도들도 하나님께 연단받고 영화롭게 된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을 온전히 알고 사랑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성경이 직접 설명한 내용이 아니라, 쉰들러 리스트를 보며 하게 된 개인적인 신앙의 묵상이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사실"과 "내가 영화를 보며 얻은 신앙적 적용"을 구분하여 제시하면, 독자들은 어느 부분이 성경의 직접적인 가르침이고 어느 부분이 개인의 묵상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글의 설득력도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