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한밭춘추)
유진택추천 0조회 023.06.08 19:03댓글 0북마크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고향집 툇마루에 앉아 소쩍새 소리를 듣는다. 소쩍새는 뒷산 어둠속에 들어앉아 달빛을 끌어당기며 운다. 고향을 뜬지 몇 해만이다. 간간히 고향땅을 밟았지만 오늘따라 소쩍새 소리 더 유별나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울음 속에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고향 뒷산에 남아 울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일치감치 농촌을 떠난 제비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제 고향에서 제비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초가집 처마에 흙집을 짓고 부지런히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던 정겨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래서 더 기다려진다. 미물도 이럴 진데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농촌 사람들이 떠나간 것도 이때다. 한창 이농 바람이 불 때였다. 먹고 살 것이 없어 더는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너도나도 짐을 꾸렸다. 빈 몸으로 야반도주하듯 낯선 도회로 떠났다. 주인이 떠난 집은 졸지에 폐가가 되고 말았다.
맨드라미가 빈집을 지키고 있다/독 오른 장닭의 벼슬처럼/맨드라미의 성난 얼굴에 울컥 핏물이 솟는다/아무런 이유 없이 떠난 사람들,/돌밭을 일구던 뚝심만을 믿고/도시로 몰려간 사람들의 소문이 /차디찬 북서풍에 젖는다/농사꾼이란 얼마나 빛나는 훈장인가/일벌레는 일만 해야 되는 법인데/세상은 그리 따스하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바람이 더욱 세차다
-유진택-폐가
몇 해가 지나도 이농한 사람들에게 희소식은 날아오지 않았다. 도회의 뒷구석에서 뼈저리게 고생만 한다는 소문만 떠돌았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는 다고, 배운 게 농사뿐인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려고 하니 농사꾼이란 직업이 ‘빛나는 훈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농촌이 아직 문화, 여가, 의료 같은 인프라 측면에서 도시보다 열악하지만 귀농, 귀촌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작년 기준으로 50여만 명 정도가 도시에서 짐을 쌌다는 통계가 나왔다. 농촌은 이제 그 옛날의 농촌이 아니다. 살만해졌고 여유도 생겨났다. 전깃줄에 앉아 여자아이들처럼 수다를 떠는 제비가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