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 마십시오
저는 1951년생으로 전남 보성군 벌교읍 추동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마을에서 2km정도 떨어진 낙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에서 제일중학교, 서울에서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뜻한바 있어 초창기의 단국대 특수교육과에 1회로 입학하여 우리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교육 소양을 4년동안 나름 열심히 익혔습니다. 이후 평생을 우리 보물들과 생활하다 2013년 8월 말에 정년퇴임하고, 다음다음날 즉각 고향인 보성으로 귀향하여 여여당(如如堂)에서 여여(如如)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평소 퇴임하면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에서 살겠다고 내자와 늘 이야기 하였고, 어머니께서도 동네 분들에게 우리 막내가 은퇴하면 내려와 나하고 함께 산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하셨지만 은퇴하기 8개월 전에 90세로 소천하셨습니다. 지금도 단 1년이라도 어머님을 모시고 살았었다면 하는 아쉬움에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누구나 고향을 떠나 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한가득 있겠지만 특히 저는 방학 때마다 고향 땅을 밟아야만 온몸에 활력소가 충만해지곤 했습니다.
현재 내가 사랑하는 고향 보성에 내려와 친구와 선배, 후배들과 교류하면서 푸성귀도 가꾸고, 요가도 배우고, 소리 공부도 하고, 마을회관에서 당구도 치고, 책도 읽고, 바다낚시도 가고, 와각(瓦刻)도 하고, 등산도 하고, 닭도 길러 싱싱한 달걀도 먹고, 각종 과실수도 길러 제철 과일을 풍족하게 먹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넉넉하게 주고 있는 산도 깊고, 들도 넓고, 바다도 가까이 있어 산물이 넘쳐나는 이 천혜의 보배로운 내 고향 보성을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기본적인 배경
백제 근초고왕 때 복흘이라 불렀고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16년(757년) 처음으로 보성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벌교는 2천년이 넘게 낙안고을과 한 울타리 속에서 흥망성쇠를 함께 해왔으나 1908년 일제 통감부가 낙안군을 강제로 없애버리면서 반은 보성군에, 반은 순천군에 편입시켜 현재 벌교는 보성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행정구역은 2읍(보성읍과 벌교읍) 10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약 4만명 가량이 살고 있습니다.
2. 지리적 특성
보성군은 북쪽을 정점으로 하고 있는 삼각형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삼각형의 정점에서 보면 강원도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소백산맥의 두 지맥이 팔자 모양으로 팔을 벌리고, 그 팔 안에 보성군이 자리하는 형상을 띄고 있습니다. 산 뿐만 아니라 강이 차지하는 면적이 꽤 넓습니다. 보성강의 유역은 보성군 전체면적의 59%정도로서 보성군의 삶에 풍요와 멋을 더해주는 보성의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내 고향 보성은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보성군의 해양 수산물 자원은 100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수심이 깊지 않은 각종 조개류가 양식 또는 자연 서식하고 있습니다.
3. 문화적 특성
우리 보성군은 의향(義鄕)과 예향(禮鄕), 다향(茶鄕)의 3가지 특성을 가진 고장입니다. 먼저 의향(義鄕)입니다. 예로부터 나라가 어지러울 때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 바치신 충의 역사를 가진 고장으로 가의 의향(義鄕)으로 불릴만 합니다.
또한 보성은 남도의 대표적인 예향(禮鄕)입니다. 보성의 자랑인 서편제 비조 박유전 선생님과 보성소리의 창제자인 정응민 선생의 예술혼과 채동선 선생님의 민족음악 등이 살아 숨 쉬는 고장입니다.
다향(茶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보성의 특산물인 차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서기 5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우리나라 최대의 차 주산지이자 차 문화의 본고장으로서 자리매김을 한 보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생산되는 녹차는 그 맛과 향과 색이 뛰어나 전국에서 제일가는 양질의 녹차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4. 인물
보성이 배출한 대표적 인물로는 민족종교인 대종교의 중광자인 나철이 있습니다. 나철은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10여개소의 학교를 세워 민족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독립운동에 힘쓰신 분입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중 운동가인 서재필도 우리 고향사람입니다. 판소리 서편제의 비조인 박유전도 보성 사람입니다. 선거의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번 기회에 소개드립니다. 그는 이순신장군의 벗으로 여러 전투에 참전하셨습니다. 당대 최고의 명필로 유명한 전서의 대가 허소님도 있습니다. 그 외 여러 위인과 선각자들이 고향을 빛내었습니다.
5. 보성의 볼거리
요즈음 우리나라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그 지역의 대표적인 축제를 열어 전통적인 지역문화와 특화된 생산품을 알리고 있습니다. 보성에도 여러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 보성 다향 대축제
우리 보성에는 보성 다향 대축제가 매년 5월경 보성차밭 일원에서 펼쳐집니다. 전국 학생 차 예절 경연대회, 한국 명차 선정대회와 차 만들기 체험, 찻잎 따기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차 문화 축제입니다.
*서편제 보성소리 축제
근대 판소리 성지인 보성의 위상을 국내외에 선양하고 판소리 문화의 계승 발전과 판소리 저변 확대를 위해 개최하는 소리 축제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행사가 매년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향제와 더불어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서 진한 녹차 향기 속에서 판소리의 진소를 감상할 수 있으며 관광객 참여마당으로 소리난장이 열리기도 한답니다.
*벌교 꼬막축제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자 근대 음악이 탄생한 벌교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벌교의 대표적 특산품인 꼬막을 활용한 향토 문화 축제입니다. 벌교읍민 전체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꼬막 까기, 뻘배 타기, 갯벌 체험, 꼬막 시식 등 꼬막 관련 행사 외에도 소설 「태백산맥」 속의 현장을 체험하며 채동선 선생 추모 음악회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벌교만의 향토색 짙은 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관광명소 및 특산물
보성에 오셔서 한번 휘익 둘러볼 관광명소로는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루어진 150만평 규모의 보성 차밭을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보성 차밭과 인접한 ‘한국차 박물관’은 차에 대한 풍부한 컨텐츠를 담은 차 전문 박물관으로 우리 차 문화의 올바른 정립 및 연구와 보급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태백산맥 문화관’은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문학세계를 알려줍니다.
율포해수욕장과 비봉공룡공원, 제암산 자연휴양림, 봉황이 깃든 천년고찰 대원사, 서재필 기념관등을 둘러보시고 보성의 대표 향토음식인 벌교 꼬막이나 녹차 정식, 전어회, 짱뚱어탕을 드시면 피로가 싸악 가십니다.
7. 벌교주먹을 아십니까?
전남 동부권에서 전해오는 옛말 중에 “벌교 가서 주먹자랑 하지 말고, 여수 가서 돈 자랑 하지 말고, 순천 가서 인물자랑 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중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뜻은 벌교 지역이 터가 세고 거칠어서 이른바 어깨들이 많이 배출되어 타 지역 사람들이 함부로 주먹자랑을 하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전해진 이야기입니다.
벌교 사람들은 원래 자존감이 높고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불같은 열정을 지녀 특히 벌교를 의의 고장으로 불렸습니다.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뜻은 항일의 소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안대장’으로 불리던 젊은 장사가 벌교 장터에서 말을 탄 일본 헌병을 맨주먹으로 때려 죽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벌교를 폭도의 소굴로 규정, 1908년 10월 15일자로 낙안군을 폐군하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사람들에게 서릿발 같은 위세를 부렸던 일본 헌병대, 그것도 무장한 헌병요원을 ‘조센징’ 민간인이 백주 대낮 장터에서 한주먹에 때려죽인 벌교장터 사건은 그때부터 유명해졌고,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된 일제에 철저하게 냉담했던 벌교 사람들에 대해 일제는 치를 떨며 벌교인의 기세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벌교 사람들의 항일 의식은 그 후 크게 고조되어 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식민지 포구의 강한 저항 성향과 항일의 행동양식은 해방 후에도 벌교의 지역적 특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예로 나타난 것이 ‘벌교 주먹’의 전통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 세력을 대상으로 휘둘렀던 지난날의 주먹과 달리, 이제는 지역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의의 불법 세력이나 부녀자 및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불량세력을 응징하는 벌교 사람들의 주먹이 전통으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벌교 주먹의 시조격인 ‘안대장’에 대한 구술 증언을 소개합니다.
“그 때는 안씨가 머슴살이를 했던 모양이여, 장날이면 나무를 해다가 지고 와서 장에 내다 팔고 그랬는디, 마침 장터에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헌병들이 조선사람 장사꾼들을 발로 걷어차고 말이여, 짐짝들을 막 집어 던져 불고 그랬다는디...
이걸 보고 못 참은 안대장이 지겟짐을 떡 받혀놓고 쫓아와서 그대로 주먹으로 대그빡 헐 것 없이 몇 대 치다 본께, 그냥 헌병새끼가 쫙 뻗어 불드라여...”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보성이 아름다운 곳이군요
조성 어디를 지나다보니 문익점 선생 사당이 잇던데 혹시 문익점 선생과 연관된거는 아닌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는 보성군 복내라는 곳이 고향인 친구가 있는데 더없이 말이 없고 순후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