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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천부경 하나부터 열까지" (이현숙 지음)에서 발췌
녹도문(鹿圖文) 천부경
천부경(天符經)은 한 민족 최고(最古)의 나라로 알려진 환국(桓國)에서 비롯되어 구전되어 오던 중 환웅(桓雄)의 명을 따라 신지(新誌) 혁덕(赫德)에 의해 최초로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 때가 BC389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전이다.
(신)영변지(1948년 판)에 소개된 신지필적이 천부경 원본이므로 이를 가지고 설명한다.
설명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서 천부경의 실체에서 환국(桓國)이 동북아시아 문화의 중심인 실질적인 중국(中國)이며, 그 문화가 현재의 중국(지나)으로 전해졌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글에 있는 글자가 중국(지나)에는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 흔적은 남아있다고 보아야 한다. 농은유집에 전하는 천부경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녹도문(鹿圖文)은 표음문자가 아니라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라는 것이다. 소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한자와 같이 뜻을 나타냈다는 말이다. 그 한자한자가 소리를 표현했다면 ‘ㅅ’에 해당하는 기호가 중복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녹도문(鹿圖文)이 정말 사슴 발자국을 보고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천부경에 나오는 문자가우리들이 그림책에서나 보는 진짜 그림 같은 문자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은허시대의 원시 갑골문에서는 그 그림을 보면 무엇을 나타낸 것인지 알 수 있는 문자들이 다수인데 비해서 녹도문(鹿圖文)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원시 그림 문자를 탈피해서 상당히 진화되고 정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문자로 정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녹도문(鹿圖文)으로 작성된 천부경을 보아야 참뜻을 알 수 있다.
녹도문 천부경은 우리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16자를 기록한 것이다. 한자 천부경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어야 녹도문으로 쓰여진 천부경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제부터 한 자씩 살펴보기로 한다.
하나
‘하’자라고 하지만 원래는 ‘한’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하나’의 원래 이름은 ‘한나’였을 수도 있다. 이는 땅에서 씨앗이 발아하여 싹이 터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식물은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로 분류하지만 떡잎이 세 개인 식물은 없다. 이는 ‘한’이라는 글자가 우주(현 세상)의 씨앗(시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이라는 우주의 씨앗에는 천(天一), 지(地一), 인(人一)의 세 가지 기운이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자로 쓰여진 일석삼극(一析三極, ‘한’을 삼극으로 나누는 것으로 그 삼극은 천일, 지일, 인일이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녹도문 ‘하(한)’자도 현재의 한자에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싹 날 철(屮)’이다. 한자의 부수로 사용되지만 넓은 땅 위에서 초목의 싹이 움터 나오는 모양을 본 뜬 것이다. 현재는 ‘왼손 좌(屮)’의 의미만 남았다. 녹도문 ‘하’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자에서는 거의 대부분 손(手)을 의미한다. 녹도문이 생겨날 당시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글자를 보여주면서 ‘땅에서 싹이 나오는 모습이다’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수긍하겠지만 이게 손을 의미한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관념적으로 손가락은 다섯 개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삼의 민족이라 ‘셋(삼)’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손(手)에도 손가락을 3개만 그려 넣었다. ‘싹 날 철(屮)’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을 아래에 나타내었다. 처음에 나오는 글자가 녹도문 ‘하’와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다.
싹이 튼다는 것은 시작을 의미한다. 따라서, 녹도문 ‘하’는 시작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현재는 ‘싹 날 철(屮)’과 ‘왼손 좌(屮)’가 같은 글자로 취급되고 있으므로 ‘왼손 좌(屮)’의 전자체(왼 쪽 두 자)와 금문(오른 쪽)의 형태를 아래에 나타내었다.
S00277 | L26989 | B00684 |
이와 유사한 한자를 또 찾아보면 ‘있을 유(有)’자가 있다. 아래 그림에서 왼 쪽은 전자체(篆字體)이며, 오른 쪽은 갑골문(甲骨文)이다. 유(有)자의 전자체(篆字體)가 녹도문 ‘하’와 매우 닮았다.
L35247 | J16477 |
따라서 녹도문 ‘하(한)’라는 글자는 ‘시작’과 ‘있다’를 동시에 의미하는 글자라고 볼 수 있다.
천부경의 첫 구절인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을 한 자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이것보다 더 명쾌한 글자는 없을 것이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란 “한의 시작은 시작됨이 없이 원래부터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나’자는 누가 보아도 논에 모를 심거나 땅에서 싹이 세 개 올라온 모양이다. ‘나’는 낳는 것,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자 ‘날 생(生)’의 어원이다. 글자의 모양은 하늘에서 내려온 세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양이니 ‘셋이 모여 하나’가 되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앞의 ‘하(한)’와 연결해 보면, ‘한’에는 천지인이라는 세 개의 씨앗이 들어 있으니 집일함삼(執一含三,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됨)이요, ‘나’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회삼귀일은 천(天一), 지(地一), 인(人一)의 세 가지 기운이 모이면 외관상 하나가 되지만 이것은 천지인이 내포된 삼태극(三太極)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은 천부경에서 비롯된 말이다.
‘나’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하(한)’는 천지인의 기운이 내포된 우주의 씨앗이며, 하나는 그 중에 포함된 천(天一)을 상징하기도 한다. 천(天一)은 하늘의 속성으로 낳은 것,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녹도문 ‘나’의 형태도 풀이 솟아나는 모양이니 분명히 낳는 것과 연관된 글자일 것이다.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동일한 글자는 없지만 비슷한 형태는 남아있다. 그것이 ‘낳다’를 의미하는 ‘날 생(生)’이다.
아래는 ‘날 생(生)’자의 갑골문(甲骨文)으로 오른 쪽의 두 글자가 녹도문 ‘나’와 닮았다.
J15323 | J15324 | J15325 | J15326 | J15327 | J15328 | J15329 |
글자(그림)의 의미상으로도 땅에서 싹이 터는 것을 나타낸다. 글이라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올라가라는 의미인데 누군 가에게는 내려가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그건 글이 아닐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았을 때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문자로서 의미를 갖는다 할 것이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녹도문 ‘나’에서도 우리 문화와 지나(중국)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개인적인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녹도문 ‘나’를 보면서 바로 연상된 것이 논에 모를 심은 것이었다. ‘날 생(生)’자의 갑골문 형태는 일반 초목이 땅에서 싹이 나와 가지를 친 모습이다. 문자의 형태상으로 볼 때 환국(桓國)의 농경 문화가 훨씬 발달했으며, 이로 미루어 볼 때 문자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도 상당한 격차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녹도문 ‘나’와 ‘날 생(生)’이 동일한 농경 문화를 의미한다고 해도 글자의 어원으로 볼 때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녹도문 ‘나’가 모를 심은 것이라면 우리 역사서에 나오듯이 물을 다스리는 능력, 치수(治水) 또는 관개(灌漑-논에 물을 댐) 능력이 매우 발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자(漢子)인 ‘날 생(生)’은 그냥 씨를 뿌려서 키웠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녹도문 천부경을 해석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녹도문이 갑골문이나 금문의 뿌리 글이며, 우리의 문화가 지나(중국)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뿌리 글이라고 하면 더 원시적이어야 하는데 녹도문이 오히려 보다 진화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특이하다.
충북 청원군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1만5천년 전의 볍씨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근거로는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일대에서 1997년 실시한 대대적인 발굴조사 결과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구석기 유적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으며, 지하 1.3m의 토탄층에서는 20여알의 볍씨가 출토되었는데 이 볍씨의 탄소 연대측정결과가 1만 3천년~1만7천년전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로 기록된다. 중국 양자강 유역의 하모도(河姆渡)유적 볍씨는 7천년전이고 회하(淮河)의 볍씨는 8천5백년 정도밖에 안 된다. 이 볍씨가 재배 벼인지, 야생 벼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이중 일부는 재배 벼의 흔적이 있으며, DNA 분석결과 현재의 재배 벼와 약 40%정도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웅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0전이며, 그 이전의 한인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 조상들은 그 이전부터 벼를 재배해 왔다는 것이다.
다음은 녹도문 ‘하나’를 읽는 방법이다. 우리말이 중국(지나)으로 전해졌으므로 대개는 우리의 발음이 그대로 전해졌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글자의 의미가 변해가듯이 발음도 변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에서 설명한 한자어대로 ‘하나’를 ‘철생’으로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두식 발음으로 보면 ‘한낳’이며, 이것이 ‘한나’, ‘하나’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녹도문 ‘하’는 시작을 뜻하며, 우리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라고 하면 ‘처음(시작)부터 끝까지’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를 숫자 ‘하나’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이는 시작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말 숫자 하나도 숫자의 시작이다.
녹도문 ‘한’은 우주(현 세계)의 씨앗이며, 나는 ‘낳다’를 의미한다. ‘한’에는 천지인이라는 세 개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그 중에서 하나는 좁은 의미로 천(天一)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늘의 속성으로 ‘낳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천지만물이 생성, 창조되는 것이란 뜻이다. 한자 천부경 해석에서도 “하나는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하는 우주의 본질이며, 삼극(三極)으로 나누었을 때 천일(天一)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본성은 낳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녹도문 ‘하나’는 ‘시작’과 ‘있다’라는 의미의 ‘하(한)’자와 ‘낳다’라는 의미의 ‘나’자가 합쳐진 것이다. 형태상으로는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의미한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하나’의 의미를 두 글자로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말시대의 서예 대가 김규진이 지은 ‘서법진결’에 수록된 녹도문자 11자이다. 여기서는 천부경에 나오지 않는 글자도 몇 보이는데 글자의 형태도 보다 세련되어 보인다. 천부경이 나온 이 후 보다 진화해 온 형태의 문자로 보인다.
여기서는 녹도문 ‘나’라는 글자가 아래와 같이 쓰여있다. 이것은 순수한 우리글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 많이 낳고, 기르고, 받들고, ○, 모두 번영하고, 모든 것이 시작되고, ○” 등의 단어로 볼 때 축원문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둘
‘둘’은 둘러싸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즉. 둘러싸서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둘은 ‘한’에 내포된 천지인 중에서 지일(地一)을 의미한다. 원래 땅(대지)은 모든 것을 품어서 키운다. 천부경에서 하나(천일, 天一)는 낳은 것이며, 둘(지일, 地一)은 키워서(자라서) 번식하는 것이다.
‘둘’이라는 글자는 한자에 없지만 현재의 한자 속에 그 흔적은 남아있다. 녹도문 ‘둘’자와 동일한 형태의 한자는 없지만 모양으로 보아 가장 가까운 것이 ‘질그릇 거(𠄎)’, ‘이에 내(乃)’, 활을 뜻하는 궁(弓)자 정도이다. 녹도문 ‘둘’은 ‘ㄱ’ 두 개를 연결한 ‘𠄎’인데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없어진 글자다. 이 중에서 녹도문 ‘둘’은 ‘거(𠄎)’와 내(乃)자의 어원이다. ‘거(𠄎)’자의 뜻인 질그릇이란 것도 무언가를 담는 용도이며, 그것은 무언가를 ‘둘러싸다’, ‘두르다’는 의미이다. 한자 내(乃)자를 보면 ‘𠄎’안에 ‘丿’을 품고 있는 글자이다. ‘丿’을 사람으로 보면 내(乃)자는 사람을 품어서 기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진 글자이지만 ‘𠄎’자의 형태도 분명히 무언가를 둘러싸거나 품는 뜻이 있는 글자라고 생각된다. 달리 해석해 보면 내가 품어서 길러 낸 것이 너(乃)라는 의미에서 ‘내(乃)’자가 ‘너’를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현재 남아있는 내(乃)자도 기본적으로는 무언가를 감싸거나 기른다는 의미가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는 ‘곧’, ‘너(you)’ 등을 뜻하며, 노를 저으며 내는 소리 ‘애(乃)’라고도 한다. 이는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사라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와 연관시켜 보면 ‘아이 밸 잉(孕)’자는 분명히 ‘기르다’라는 의미가 확연히 드러나는 글자이다. 잉(孕)자는 엄마의 자궁 속에 들어 있는 아기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우리 글인 ‘둘(𠄎)’에서 파생된 것이다.
아래는 ‘아이 밸 잉(孕)’자의 전자체(篆字體)이다.
L37177 | L24449 | L24450 |
이러한 의미에서 녹도문 ‘둘’은 한자의 ‘질그릇 거(𠄎)’에서 보듯이 질그릇을 뜻하기도 한다. 당시의 그릇이란 흙을 빚어서 구워낸 토기(土器)가 기본으로 이는 흙, 즉 땅(地)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그릇의 기본적인 기능은 밥이나 국을 담는 용기이며, 사람은 이를 먹고 자라니 ‘기르다’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글자가 ‘찰 영(盈)’이며, 뜻은 ‘차다’, ‘가득차서 넘치다’라는 뜻이다. 이는 그릇이 넘치는 것으로 녹도문 ‘둘’이 그릇을 의미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찰 영(盈)’의 아래에 있는 ‘기명 또는 그릇 명(皿)’은 그릇이나 그릇의 덮개를 의미한다. 녹도문 ‘둘’이 그릇을 의미한다고 보면 ‘그릇 명(皿)’은 손잡이가 달린 뚜껑을 상징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전통적인 가마솥 뚜껑처럼 뒤집어서 그릇처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의미가 약하다. ‘찰 영(盈)’은 그릇이 가득 차서 뚜껑이 아래로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녹도문 ‘둘’이라는 글자는 ‘둘러싸다’, ‘두르다’라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부경에서는 지일(地一)을 뜻하며, 그 본성은 ‘기르다’를 뜻한다.
셋
‘셋’은 ‘세우다’라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한자 ‘세상 세(世)’의 어원이다. ‘셋’이라는 글자는 다음에 나올 여섯의 ‘여’자와 닮은 꼴이지만 ‘여’자가 둥글둥글한데 비해 ‘셋’은 각이 서 있다. 녹도문 ‘셋’이라는 글자도 세 개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인(人)’자의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을 찾아보면 비슷하게 생긴 글자는 있지만 견(ㄑ)자 왼 쪽에 붙어 있는 팔의 방향이 모두 아래 쪽을 향하고 있으며, 녹도문 ‘셋’처럼 위를 향한 것은 없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말로 ‘사람이 세운 것’을 의미한다.
천부경에 나오는 녹도문 ‘셋’이란 글자는 순수한 우리 글로 금문이나 갑골문에도 없다. 녹도문 ‘셋’이 ‘사람이 세운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현재 한자로는 ‘인간 세(世)’자이다. 즉 녹도문 ‘셋’은 ‘세상 세(世)’의 어원이다. 본래 세(世)자는 인간을 의미한다. 알기 쉬운 ‘사람 인(人)’자를 제쳐두고 ‘세(世)’자를 적은 것은 우리말 셋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글자에 숨어 있는 의미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셋’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일(人一)을 뜻하므로 사람 인(人)을 쓰지 않은 것이다.
셋의 본성은 ‘다스리다, 수양하다’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닦아서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되게 하라는 것이니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수양의 목적이 개인의 깨우침일 수도 있지만 바른 세상을 만들거나 적어도 그러한 일에 이바지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세(世)자는 사람이라는 좁은 의미보다는 본래 넓은 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세상 사람’, ‘인류 사회’라는 의미가 더 적절하다. 한 개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 또는 그러한 집단이나 사회를 의미한다. 세(世)자를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서는 한 왕조의 재위 기간을 나타내기도 하며, ○○씨 몇 세손처럼 서열이나 차례를 나타내기도 하고, 중세(中世)처럼 어떤 시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세(世)자는 본래의 사람을 뜻하는 의미가 변화되어 이 후에는 사람과 연관된 세상사를 총칭하는 의미로 쓰이게 된다.
현재의 금문에 나타난 세(世)의 글자체로서는 맨 오른 쪽에 있는 것이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B02948 | B02949 | B02950 | B02951 | B02952 | B02953 | B02954 |
참고로 녹도문 ‘셋’과 유사한 ‘인(人)’자의 갑골문(甲骨文)을 보면 다음과 같다.
J18647 | J18655 | J18686 | J18758 | J18647 | J18752 | J18680 |
‘셋’은 ‘한’ 속에 포함된 천지인 중에서 ‘인일(人一)’을 의미하며, 그 의미는 ‘세우다’이며, 본성은 다스리는 것, 수양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 재세이화(在世理化)하는 것이다. 바로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기도 하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 재세이화(在世理化,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려 교화시킨다), 이도여치(以道與治, 도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광명이세(光明理世,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것이다. BC2333년에 개국한 고조선의 건국이념이 이토록 고상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현재 세계의 어떤 나라도 이렇게 고귀하고 철학적인 건국이념을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넷
‘넷’은 네 가지 기운이 조화를 이룬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의미는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우리글 ‘ㅅ’은 ‘셋’의 의미로 ‘세우다’, ‘생겨나다’라는 것을 뜻한다.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난다는 의미에서 ‘넷’이다. 녹도문 ‘넷’은 한자 ‘기운 기(氣)’자의 어원이다.
한자 천부경의 운삼사성(運三四成)은 삼극(三極)인 천일(天一), 지일(地一), 인일(人一) 셋이 움직여서 ‘넷’을 만든다는 뜻이다. 여기서 ‘넷’은 네 가지 기운으로 토(土, 흙), 수(水, 물), 화(火, 불), 풍(風, 바람) 또는 기(氣)를 의미한다. 이 네 가지를 합쳐서 그냥 기(氣)라고 하면 바람(風)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해석되어 전체 문맥이 맞지 않고 숫자 넷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토(土), 수(水), 화(火), 풍(風) 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기(氣)라는 것이다.
※ 네 가지 기운을 과학적으로 풀어보면 토(土)는 물질을 의미한다. 여기서 토(土)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속과 비금속뿐만 아니라 액체와 기체도 포함하는 것이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항성과 행성에서부터 바위, 조약돌, 모래알까지 모두 토(土)에 해당하는 것이다. 수(水), 화(火), 풍(風)은 생물(생명체)에게 필요한 요소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물이 없으면 생물은 존재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가 화(火)이다.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생명은 살아갈 수 없다. 비록 물질(土), 물(水), 에너지(火)가 갖추어져 있더라도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데 그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風) 또는 기(氣)인 것이다.
※ 불교에서는 ‘넷’을 구성하는 토(土, 지[地]라고도 표현한다), 수(水), 화(火), 풍(風) 네 가지 요소가 모여서 우주의 삼라만상을 이루었다고 하는 이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적취설(積聚說)이다. 세계를 이루는 근본요소에 대해 이 네 가지가 인연에 따라 뭉쳐서 나타나며, 인연이 다하면 본래의 모습인 사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불교의 인연법이다. 불교에서 지(地)는 단단하므로 모든 물질을 의미하고, 수(水)는 습기로서 물질 속의 생명의 기운을 말하고, 화(火)는 열기로서 만물을 숙성시키는 기운이며, 풍(風)은 움직이며 살아 있는 힘을 의미한다. 불교의 이러한 이론 또한 천부경에서 유래한 사상이다.
※ 천부경의 이러한 사상은 유럽에도 전해져서 성경의 창세기편으로 편집되고, 2,000년 동안 서구 과학 사상의 주류가 되었던 4원소설의 기초가 되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에서는 “너희들의 땅이 스스로 크다고 하나 (우주에서는) 한 알의 구슬과 같다. 그 속에 있는 불(용암[鎔岩])이 흔들리고 움직여서, 바다가 변하고, 육지(陸地)가 움직여서 너희가 보는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신(神)이 기운을 불어 넣어 밑바닥을 감싸면서 햇빛과 열로 따뜻하게 하여 걷고, 날고, 허물 벗고, 헤엄치고, 흙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이 번성(繁盛)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밑바닥(흙[土]와 물[水])을 감싸고. 햇빛(火)을 비추며, 숨(氣)을 내뿜어(風) 모든 생명을 창조하여 번식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성경에서도 인간의 창조에 대해 “하나님이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숨을 불어 넣어…” 라고 적고 있는데 이것을 해석하면 흙(土)에 물(水)을 섞어 반죽을 만들었으며, 형상을 빚었다는 것은 그 때 열(火)이 가해졌다는 것이며, 숨을 불었다는 것은 기(氣)를 더했다는 것이다. 성경 내용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데 아마도 성경 내용이 과학적인 내용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했던지 현재 성경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로 되어 있으며, 잠든 아담에게서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없어졌다.
(구)영변지(1942년 최초 발간)에서는 ‘넷’이 아래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어떤 글자가 알아 보기 쉬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뒤에 예를 든 것이 천부경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나을 것 같다. 위쪽 두 개의 점이 불(火)과 바람(風)을 상징한다면 아래의 두 점은 흙(土)과 물(水)을 상징하며, 이들이 태극 문양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앞서 나온 녹도문 ‘넷’이란 글자는 한자인 기(氣)자에 더 가까운 형태이다. 녹도문 ‘넷’도 현재는 없어진 글자이다. 기(氣)자의 전자(篆字)는 아래와 같다. 맨 오른 쪽 글자는 토(土), 수(水), 화(火)의 문자가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조화를 이룬 것이 기(氣)자임을 보여준다.
L35852 | L35853 | L35854 | L20134 | L20136 | L20137 | L19773 |
기(氣)자의 어원을 가장 비슷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래의 그림이다. 공중에 뭉게뭉게 떠 오르는 수증기 모양을 본 따서 만든 ‘구름의 기운’을 뜻한 글자라 하여 아래 그림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걸 보고 삼(三)자를 기(氣)로 표현하는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금문이나 갑골문은 서로 닮았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최초의 그림을 보고 기(氣)자를 상상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토(土), 수(水), 화(火), 풍(風)의 숨은 뜻을 찾아 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말‘넷’이란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난 것을 의미한다.
다섯
‘다’는 땅 위에 나무가 많이 서 있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로는 ‘많을 다(多)’자의 어원이다. 글자의 형태는 땅에서 나온 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다. 우리말 ‘다’는 ‘모두’를 의미하며, ‘모두 다’라고 하면 전부 또는 전체를 가리킨다. 즉, ‘다’라고 하는 것은 ‘많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우리말 다섯은 ‘땅에 만물이 생겨나다’의 뜻이다. 한글의 ‘ㄷ’은 땅을 의미하며, ‘셋’은 ‘세우다, 생겨나다’를 의미하므로 다섯은 ‘땅에 만물이 생겨나다’란 뜻이다. 즉, 땅에 산과 들, 바다와 강과 호수가 생겨나며, 온갖 식물과 동물이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녹도문 ‘다’라는 글자에서 가로로 길게 그은 선은 땅(지, 地)을 상징하며, 그 위에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땅은 모든 것을 품어서 키운다. 땅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한자에는 없지만 가장 유사한 한자는 𠀤(大大)이다. 글자의 뜻은 규모가 크거나 정도가 심한 것을 의미하니 녹도문 ‘다’자가 변한 글자임에 틀림이 없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아래에 ‘많을 다(多)’자의 여러 가지 전서체(篆書體)를 나타내었다. 왼 쪽 두 개의 글씨 체를 보면 녹도문 ‘다’자와 서로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동일한 형태는 아니지만 상당히 비슷하다. 녹도문은 환국(桓國)의 문자이며, 이것이 현재의 중국(지나)으로 전해진 것이다. 천부경에 나타난 녹도문이 갑골문의 원형이다. 녹도문도 시대가 변하면서 그 형태가 조금씩 변해간 것을 유추해 보면 녹도문에서 갑골문과 전서체가 나왔음은 자명한 일이다. 바로 앞에 나온 녹도문 ‘넷’이라는 글자에서 유래된 기(氣)자도 천부경의 뜻을 알고 보면 녹도문 ‘넷’이 기(氣)자의 본래 뜻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며, 다섯에서 나오는 녹도문 ‘다’라는 글자 역시 천부경의 내용과 결부시켜 보면 녹도문의 ‘다’자가 본래의 의미에 더욱 충실해 보인다.
녹도문 ‘다’라는 글자는 ‘땅 위의 많은 것’, 확대 해석하면 ‘땅 위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많을 다(多)’자의 여러 가지 전서체(篆書體)
L08443 | L32372 | L08441 | L32373 | L32374 | L32375 | L08439 |
‘섯’은 모든 생명의 탄생을 형상화한 것으로 ‘쌀 미(米)’자의 어원이다. 녹도문 ‘다’가 땅(지구=물질)의 모든 것이라고 하면 ‘섯’은 모든 생물의 탄생을 나타낸다. 땅 위와 하늘 위의 생물과 땅 속, 바다 속의 모든 생물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물 중에는 사람도 포함된다.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흙에서 자라는 식물, 물에서 헤엄치는 생물, 날아다니는 생물, 걸어 다니는 생물 등 모든 생명체가 태어나서 번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녹도문 ‘섯’은 가로로 그은 막대기 아래위로 점이 세 개씩 있다. 셋은 많다는 뜻이다. 간혹 농담으로 원시인들은 수를 셀 때 ‘하나, 둘, 많다’라고 했다면서 수를 잘 못 세는 후배들을 놀리기도 했는데 이게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고 현재도 통상 그렇게 표현한다. 현재에도 하나, 둘, 등등 해서 셋을 말하지 않고 많다라는 의미를 사용하고 있다. 학술적으로도 세 개 이상이면 많은 것이다. 예를 들면, 화학식에서도 하나(mono-), 둘(di-), 셋 이상이면 폴리(poly-)로 표현한다. 숫자 셋이 갖는 의미는 많다는 것이다.
녹도문 ‘섯’자에서 가로로 그은 막대기를 기준하면 위에도 많고 아래에도 많다는 것이다. 천부경과 결부시켜서 생각해 보면 “땅 위의 하늘에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고, 하늘 아래인 땅에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였다”라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삼의 민족이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늘에 구름과 비와 바람을 생겨나게 하고, 땅에 육지와 바다와 모든 생명이 생겨나게 하였다”라는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늘에 생겨난다고 해서 해와 달과 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여섯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녹도문 ‘섯’은 쌀 미(米)자의 어원이다. 녹도문 ‘섯’에 ‘쌀 미(米)’를 선택한 것에도 많은 뜻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주식이다. 우리말 다섯은 땅 위에 모든 것이 생겨난다는 의미인데, 그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또, 사람(우리 민족)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식량이 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섯의 ‘섯’에 쌀 미(米)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섯’에 미(米)자를 선택한 이유 중에는 미(米)자가 벼에서 탈곡하여 낱알을 하얗게 정미한 쌀을 의미하지만 그 글자의 형태가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구분하여 설명하기 좋은 형태인 것도 포함되며, 이를 가마니에 담으면 ‘섬’ 단위로 세기도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곡물인 쌀 또한 식물이자 하나의 생명체다. 쌀알만큼 많은(모든) 생물(생명체)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녹도문 ‘섯’에 해당하는 글자를 ‘쌀 미(米)’를 선택한 것이라 생각된다.
아래는 ‘쌀 미(米)’자의 여러 갑골문(甲骨文) 형태이다.
J17350 | J17351 | J17352 | J17353 | J17354 | J17355 | J17356 |
한자의 변천 과정을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다섯은 땅 위에 만물을 생겨나게 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만물은 산과 바다 같은 물질만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 같은 생물을 포함하며,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도 포함된다.
여섯
‘여’는 하늘에 생겨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하늘에 구름이 생겨난 것이다. 한자 ‘이를 운(云)’과 ‘구름 운(雲)’의 어원이다. 앞서 나온 녹도문‘셋’자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셋은 각이 져 있지만 ‘여’자는 각이 지지 않고 둥그스름한 모양을 하고 있다. 녹도문 ‘셋’이 ‘사람이 세운 것’을 의미한다면 녹도문 ‘여’는 ‘둥그스름한 반원(하늘)이 세운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 여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나다’라는 뜻이다. 녹도문 ‘여’자도 우리 고유의 문자로 오늘날의 한자에는 없다. 금문(金文)이나 갑골문(甲骨文)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글은 없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여섯의 뜻을 가지면서 녹도문 ‘여’자의 형태에 가장 근접한 글자는 ‘이를 운(云)’자이다. 현재는 ‘말하다’라는 뜻이며, 어조사로 쓰이는 정도다. 어조사란 기타 등등과 같이 ‘천부경 운운하며∙∙∙’라고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돌아가다’란 의미도 있으며, 무언가가 흥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일컫기도 하며, 구름이란 뜻도 있다. 녹도문 ‘여’가 ‘하늘에 융성하게 일어나다’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 ‘이를 운(云)’자이며, 의미상으로는 구름 운(雲)자에 해당된다. 녹도문 ‘여’자는 원래 구름을 뜻했으며, 이것이 중국(지나)에 가서 ‘구름 운(雲)’자와 ‘이를 운(云)’자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체(篆字體)에서 이 두 개가 같은 글자로 나타나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이를 운(云)자의 맨 위에 있는 가로 막대(一)를 없애면 녹도문 ‘여’자가 된다.
녹도문 ‘여’자는 ‘이를 운(云)’자를 뜻하며, ‘운(云)’자가 의미하는 것은 구름이 융성하게 일어나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을 의미한다. 우리말 여섯의 뜻에 맞추어 확대 해석하면 “구름이 융성하게 피어올라 하늘을 가득 메운 것처럼 은하수처럼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녹도문 ‘여’는 하늘을 가득 채운 것을 의미한다.
한자 천부경의 대삼합육(大三合六)은 큰 셋을 합하니 여섯이란 의미이다. 한자 천부경을 풀이할 때 이 여섯은 (셋이 모여서 하나로 돌아간) 하나가 아니라 여섯이란 사실을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하나가 아니라 셋이 모여있는 것이며, 이 삼태극의 작용으로 일곱, 여덟, 아홉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은 셋이 모여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셋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외관상으로는 하나처럼 보인다. 그래서 회삼귀일(會三歸一)이란 말이 나왔다. 운(云)자에 ‘돌아가다’는 뜻이 있으니 이것을 회삼귀일(會三歸一)과 연관시켜 보면 녹도문 ‘여’란 글자는 대삼합육(大三合六)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자인 ‘이를 운(云)’은 ‘말하다’의 뜻인데, 여기에 전혀 상관 없는 ‘구름’, ‘융성하게 피어나다’, ‘돌아가다’란 뜻이 있다는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녹도문 ‘여’자의 뜻이 남아있는 것이다.
참고로 운(云)자와 운(雲)자의 전자체(篆字體)는 아래와 같다. ‘운(云)’자의 맨 위에 있는 가로 막대(一)가 없었다면 녹도문 ‘여’자와 같이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운(云)’의 전자체(篆字體)
S08529 |
‘구름 운(雲)’의 전자체(篆字體)
L04958 | L04959 | L04960 | L04961 | L04962 | L04944 | L04945 |
다섯의 ‘섯’이 땅에 모든 생물이 생겨난 것을 의미하는데 비해, 여섯의 ‘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난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 ‘바 소(所)’의 어원이다. 글자의 형태는 두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뜻하는 글자는 아니다. 다섯의 ‘다’와 마찬가지로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여섯의 ‘여’는 ‘하늘에 생겨나다’라는 뜻이고, ‘섯’은 ‘모두’를 의미하므로 우리말 여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나다’라는 뜻이다. 우리민족은 삼의 민족이므로 굳이 셋으로 표현하자면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이 생겨난 것을 의미하지만 실제로 여섯이 의미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완성이다. 즉, 네 가지 기운이 생겨나(넷), 땅에 만물이 생성되고, 생명이 탄생하며(다섯), 하늘에 해와 달, 별들이 생겨나서(여섯)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여섯은 현재 실존하는 우주 전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한다. 이렇게 완성된 세계에는 3개의 섭리가 있으니 그것이 일곱, 여덟, 아홉인 것이다.
녹도문 ‘섯’은 현재 한자로 ‘바 소(所)’자를 나타낸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장소, 경우, 도리, 얼마쯤, 있다, 거처하다, 만일 등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앞에서도 그런 예가 있었지만 한자는 시대에 따라서 그 뜻이 변해가기 때문에 녹도문이 쓰여질 당시의 뜻을 알아야 해석할 수 있다. 녹도문 ‘섯’은 ‘바 소(所)’의 ‘있다(有)’를 의미하며, 정확하게는 소유(所有)를 나타낸다. 소유(所有)란 모든 것, 전체를 의미한다. 녹도문 ‘섯’은 ‘(하늘에) 모두가 있다(생겨나다)’라는 뜻이다.
‘바 소(所)’자의 여러 전자체(篆字體)를 보면 다음과 같다. 왼쪽 두 번째가 유사한 형태이다.
S10652 | L14861 | L14863 | L34457 | L34458 | L14844 | L14852 |
우리말 여섯은 ‘하늘에 모든 것이 생겨나다’라는 의미이다. 넷, 다섯과 이어져 현재 세상이 완성되는 것이다.
일곱
‘일’은 나무에 잎이나 꽃망울이 ‘일어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 ‘꽃부리 영(榮)’자의 어원이다. 글자의 형태로 보면 줄기나 가지가 뻗어 있고 그 위에 꽃이 피거나 다른 가지가 갈라지는 형상이다. 우리말 일곱은 ‘일어나서 자라고 소멸한다’는 뜻이다. 녹도문 ‘일’자는 나서 자라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말 ‘일굽’은 ‘일어나서 굽는다’는 것이며, 이는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다’는 것이다. 모든 생물(생명체)은 나서, 자라고, 번식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녹도문 ‘일’은 ‘일어나다, 태어나다’를 뜻하는 글자이다. 일곱의 의미로 볼 때 우리말 일곱은 원래 ‘일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녹도문 ‘일’과 유사한 한자가 ‘꽃부리 영(榮)’이다. ‘꽃 영(榮)’이라고도 하며, ‘꽃, 싱싱하게 우거지다, 기운이 일어나다, 광명’ 등을 의미한다. 일곱의 ‘일어나다’를 뜻하는 글자이다.
‘꽃부리 영(榮)’자의 금문(金文)을 살펴보면 녹도문 ‘일’의 변형임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다.
B08609 | B08602 | B08605 | B08608 | B08613 | B08616 | B08618 |
다른 의미에서 풀 초(草)자를 연상할 수도 있는데 이는 거리가 멀다. 참고로 풀 초(草)의 전자체(篆字體)를 아래에 나타낸다.
L34911 | L34912 | L16855 | L16857 | L16858 | L16859 |
‘곱(굽)’은 사람이 죽어서 땅에 묻힌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자 ‘주검 시(屍)’자의 어원이다. 일곱을 지방에 따라서는 아직도 ‘일굽’으로 발음하고 있으며, 이는 원래의 일곱이 갖는 의미가 남아 있는 것이다. ‘굽는다’는 것은 기운이 꺾여서 쇠한다는 의미이며,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녹도문 ‘곱’자의 형태를 보고 유추되는 것은 환웅 시설의 장례문화이다.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선조들은 장례를 어떻게 치렀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상당히 일정한 규칙이 그 때도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녹도문 ‘곱’자는 어딘지 모르게 고인돌을 연상시킨다. 돌을 세워 놓은 것은 선돌이고 다른 돌로 고여 놓은 것은 고인돌이다. 북방식과 남방식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기본 원리는 같은 것이다. 녹도문 ‘곱’자의 형태로 보아서는 다리가 기니 북방식일 것이며, 이는 환웅 시절의 영역을 고려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북방식이든 남방식이든 최초의 고인돌은 밀폐되지 않고 열려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 안에 시체를 담은 항아리를 묻는 것이다.
먼저 ‘주검 시(尸)’자의 변형을 살펴본다. 주검 시(尸)자는 사람이 죽어서 곧게 누워있는 앙상한 모양을 본떠서 주검을 뜻하는 부수글자가 되었다고 하며, 아래와 같이 변천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 있는 글자는 녹도문 ‘곱’자 위에 그려진 것과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
다음은 그 안에 있는 반원형의 글자이다. 이는 ‘덮을 멱(冖)’자의 옛날 표기이며, 흔히 민갓머리라고도 한다. 민갓처럼 보자기로 물건을 밋밋하게 덮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덮다’를 뜻하는 부수글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변천 과정을 아래와 같으며, 가운데 있는 글자가 녹도문 ‘곱’자의 아래에 있는 모양과 닮았다. 녹도문 ‘곱’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무덤 시(屍)’자와 같은 의미이다.
녹도문 일곱은 말 그대로 ‘일어나서 굽는다(죽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곱의 참뜻을 두 글자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곱이란 ‘하늘의 기운(天一)을 받아서 생성된 세상 만물은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이다. 별(星)도 탄생하여 자라다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는 것이니 세상 만물은 구름과 같이 생겼다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상(無常)이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하늘의 진리(天二)이자 섭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