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조석영 회장님!
안녕 하셨습니까!
나의 일반 카톡방에 항상 조형의 얼굴이 항상 떠 있는것을 보면서도 한줄의 안부도 못 올렸네요!😅...
변함 없이 온가족 무탈하죠.
세월이 한 순간에 쏜살 같아! 내일의 앞날 보다 지난날들의 아름다운 추억들만 뇌리에 떠오름니다!
지난 4월중순 KBS 출신 이후재 아나가 뉴욕을 방문하여 전반적인 아나운서클럽 소식도 들었죠.
서로가 만난지도 지난 2005년 정도 였고,내가 미국 부동산 부로커로 사무실을 차려 사업을 할때 찿아온 후배죠!
그래도 지난 MBC시절 우리가 한가족 처럼 지낼때가 제일 꿈도 많았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석영 아나님의 지금도 부지런한 모습을 기억하며 항상 건강 하시길 바라며,
요즘 101세 시대니 만큼 또 봐야지요.
우리가 한국에서 만났을때 서로의 지날날 추억 빼고,나의 지나온 미국 도전기를 얘기하지 안은것 같아 일부 보내드려도 될런지요!
언어가 통하지 않던 초창기 처음에 뉴욕시 맨하탄 다운 타운 “그리위치 빌리지“에서 60년 전통의 아태리인의 구두수선점을 인수하여 내손 바닥이 곰발이 되도록 20년간 생계를 누리며,한편으로는 이곳 뉴욕에서도 하나 둘 방송사들이 생겨, 이곳에서 방송을 다시 시작해 내 나이 62살까지 동포 사회의 뉴스의 산증인이 되다 싶이 되었죠!
한국에서, MBC 서울의 젊은 아나운서가 뉴욕의 낮선땅에서 손바닥에 검은색 구두 약칠을 하면서 생계를 이루는 모습이 서울 주부생할 미주판과 뉴욕 한국일보,건강 잡지등에 소개 되면서 ...
주부는 봉제공장에서 재봉틀을 굴리면서, 한때 넥타이신사였던 남편들은 물론,
갖 이민 온 많은 젊은이들도 그들로 하여금 힘든 야채 가게며 봉재공장등 일터로 나갈 때였죠. 😰!!!
1979년,구두수선공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부츠 스트렛처(구두 늘리는 기구)를 창안,특허를 받아 3000대 이상을 미전역에 보급,독일 박람회 까지도 도매상의 권유로 진출 했습나다.
손 재주와 말재주 있는 사람은 금전 운이 없다고 들 하는데요! 그래도 미국에서의 생활은 보편적으로 가정의 행복을 가져 왔습니다.
방송인으로서도 한국에서는 피워보지 못한 꿈도 이곳에서 이룬것 같습니다!
1994.6.월 미국 94 월드컵 축구 중계 방송(11게임)특히 독일과 한국과의 실황 중계도 용케도 하였습니다.
그때 MBC 정영환 아나에게 중계 테입을 공부삼아 부탁한 일도 있는것 같아요!
2002년 뉴욕의 KTV&Radio NewYork 방송을 끝으로,... 62살의 나이에, 미국 부동산 면허를 획득하여 사무실을 차리고,또 뉴욕 부동산 협회 사무국장으로 일 하면서, 한인들의 부동산 자격증 취득에 도움도 드렸 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짧은 나의 미국 도전기를 ....
다음에는 조석영 아나의 지난날들의 추억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건행!!!
5.01.2023.
뉴욕에서 양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