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얼핏 봐도 비만으로 보이는 여성이 병원에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 내원 시에 확인한 혈압 200/100, 혈당이 400 이상이었다. 환자는 수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 수치가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관리나 치료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많이 불편하신가요?"
"별로요. 어디가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은데, 그냥 늘 피곤하고 아침에 자고 나면 몸이 붓는 느낌이 있어요."
"지금 고혈압과 당뇨 수치가 아주 심한데 어떻게 관리하셨나요?"
머뭇거리는 환자 대신 보호자가 답했다.
"와이프 집안 내력에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요. 장인, 장모님도 모두 고혈압과 당뇨로 돌아가셨죠. 두 분 모두 약을 잘 먹었는데도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와이프는 치료 하나 안 하나 똑같다며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요. 오늘 제가 간신히 설득해서 데리고 왔다니까요."
"잘 생각하셨어요. 이왕 오셨으니 몇 가지 검사를 하겠습니다."
다음날,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음, 저밀도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너무 높네요. 일단 약을 복용하면서 식이요법과 운동을 열심히 해봅시다."
환자는 예상과 달리 흔쾌히 동의하며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병원에서 그 환자를 볼 수 없었다. 대신 남편이 와서 약만 처방받아 갔다.
"부인이 식이요법을 잘 지키고, 약도 잘 복용하고 계신가요?"
"아, 그게 약을 잘 안 먹어요. 제가 신경을 쓴다고 해도 본인이 챙기지 않으니 빼먹을 때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누가 뭐 먹고 좋아졌다고 하면 그런 음식을 먹더라고요. 민간요법이라면서."
"정말 이러시면 안 돼요. 지금 이 수치가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치가 아닙니다. 자칫 합병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어요. 식사나 운동 관리가 힘들다면 일단 약이라도 정확히 꼭 복용하라고 하세요. 꼭 입니다."
그 후 남편이 몇 번 더 와서 약을 타갔고 그마저도 끊기더니, 3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다른 병증으로 내원했다.
"와이프는 지금 시각장애인이 되었어요. 아무것도 보지 못해요. 그 뒷바라지 하느라 저도 정신이 없네요."
고혈압과 당뇨로 인해서 망막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웠다.
"힘내세요. 지금이라도 제때 약을 복용하시고 식단 관리도 꼭 하도록 하세요."
힘없이 돌아섰던 그 남편을 한 1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시력을 잃게 되면서 그나마 운동도 전혀 못 하고 집에서만 지내던 부인은 시력을 잃고 1년도 채 안 돼서 저녁에 수면 중 사망했다고 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심혈관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것이다.
이 환자가 질환 초기에 적극적으로 약물치료를 하고 운동을 해서 적정 체중을 유지했다면 40대 중반이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돌아가고 나 역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었던 것은 아닐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안타까운 환자였다.
우리 몸 속 혈액 내 지질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콜레스테롤은 저밀도 콜레스테롤(LDL chole-sterol)과 고밀도 콜레스테롤(HDL cholesterol), 초저밀도, 초고밀도 콜레스테롤로 나뉜다.
이상지질혈증(Dyslidemia)은 광의적으로 지질이 정상 수치를 벗어난 경우를 의미하며 좁게는 높은 LDL 콜레스테롤, 높은 중성지방(Triglyceride=TG)과 낮은 HDL콜레스테롤을 의미한다.
이를 일반적으로 고지혈증(Hyperlipidemia)이라 부르며 정상인보다 심근경색을 포함한 허혈성 심장 질환과 뇌졸중의 발생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압과 당뇨 등의 기저 질환이 있으면, 이러한 위험도가 훨씬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혈액 내 지질의 정상범위는 상식적으로 알아두는 것이 건강관리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혈액 내 지질의 정상범위
- 총 콜레스테롤 200mg/dL이하
- LDL콜레스테롤 130mg/dL 이하
- HDL콜레스테롤 60mg/dL 이상
- 중성지방(TG) 150mg/dL 이하
젊고 건강한 사람이 건강 검진에서 우연히 이상지질혈증이 발견되었다. 이런 경우 의사가 약물치료를 권유해도 대부분 일단 거부하거나 치료를 미루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약제보다는 식이 조절과 운동요법 등 행동치료를 하고 안되면 약을 복용하겠다는 것이다. 매우 맞는 말이고 중요한 사실이다. 그래서 의사들도 고지혈증의 심각한 정도를 보고 치료를 권유한다.
보통 기저 질환이 없는 경우 LDL콜레스테롤이 160mg/dL 이상, 중성지방은 500mg/dL 이상일 때 약물치료를 권하고 그 이하는 저지방, 저칼로리식단과 유산소운동 위주의 행동요법의 변화를 먼저 권한다. 물론 위험인자(고혈압, 당뇨, 고령, 흡연자, 비만 등)가 있는 경우엔 그 이하의 수치에도 약물치료를 권유하기도 한다.
고콜레스테롤 혈증의 치료제는 스타틴계 약물로 아트로바스타틴(Atorvastatin), 로수바스타틴(Rosuvastatin), 피타바스타틴(Pitavastatin)이 많이 사용되며 에제티미브(Ezetimibe)가 단독으로 또는 스타틴과 복합제로 쓰인다. 고중성지방혈증의 경우엔 니코틴산(Nicotinic acid)과 파이브레이트(Fibrates)제제가 많이 사용된다. 최근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모두 높은 경우에 사용할 만한 스타틴과 파이브레이트 복합제가 출시되어 복용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타틴계 약물은 안전하나 간혹 간 기능 이상과 근육통을 일으킬 수 있고 드물지만 심각한 횡문근융해증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절대 의사의 처방 없이 임의 복용은 금물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저용량으로 시작하여 혈액 검사 결과 등을 확인하며 서서히 용량을 조절하는 게 안전하다. 그 외에 오메가3, 크릴오일 등이 보조적으로 사용하여 이상지질혈증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들이 있다.
고지혈증은 고혈압과 함께 증상이 없는 침묵의 질환이라 알려져 있으며, 최근 검진의 발전으로 쉽게 발견되는 질환이다. 동맥경화증으로 알려진 죽상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주원인이므로 심혈관 건강을 위해 반드시 관리해야 한다. 평상시 적정 체중 유지, 식이요법과 함께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을 권하는 바이다.
출처: 사소한 건강법칙(삼성제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