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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조시
1. 민조시란 무엇인가?
민조시(民調詩)는 한국문학의 정체성입니다. 한국문학의 존재 본질을 명확히 제시한 시문학(詩文學)입니다.
먼저 한국문학의 정체성부터 찾아볼까요. 문학의 정체성은 우선 문학사상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상과 감정이 글로 표현되는 언어예술이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문학의 정체성 역시 한국인의 뿌리사상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문학의 뿌리사상은 무엇입니까. 서구에서 유입된 문예사조에 한국사상이 있겠습니까. 고전주위-낭만주위-사실주의-자연주의, 또는 최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서 한국문학의 뿌리사상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한말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학, 그리고 남북 분단기의 이데올로기 문학, 현대의 민중적 리얼리즘 문학을 관통하는 한국문학사조가 있습니까. 여타 현대문학 사조가 정의하는 뿌리사상이 무엇입니까. 한국문학 정체성을 한마디로 대별할 수 있는 현대문학의 뿌리사상은 과연 무엇입니까. 한국문학이 자문자답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문학사상사의 문제는 이시대 한국문학의 거대 담론의 문제입니다. 한국인의 한국어로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정립해야 할 절대 과제입니다. 한국문학을 존재하게 하는 본질적 가치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곧 한국문학의 정체성 찾기입니다.
그러한 시점에 ‘民調詩’가 태동했습니다. 단기 ‘4333년’-서기 ‘2000’년 ‘6’월에 이 땅에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民調詩’- 왜 한국문학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할까요. 왜 한국문학의 거대 담론으로 말하고 있는 걸까요.
한국문학의 ‘새정형시’란 이유는 차치하고......, ‘民調詩’는 한국문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기 때문입니다. ‘民調詩’는 한국문학의 정체성을 명확히 적시했기 때문입니다. ‘民調詩’는 다음의 한국문학 뿌리사상을 확고히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새정형시인 民調詩의 사상적 배경은 한민족 고유의 정신 문화 유산인 ‘ᄒᆞᆫ’사 상에 그밑바탕을 펼쳐두고 있으며,.....’
<-‘새정형시 民調詩(3·4·5·6調) 개척 선언문’ 中에서->
‘ᄒᆞᆫ’사상입니다.
‘ᄒᆞᆫ’사상의 ‘ᄒᆞᆫ’은 ‘한국’-‘한겨레’-‘하늘’-‘한얼’-‘하나’-‘한없다’-‘하느님’ ‘아리’ 등의 대한민족 국가, 사상, 생활 전반의 한국인 정체성을 특별히 규정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 ᄒᆞᆫ사상은 ‘환한빛’의 광명사상입니다. 上古 ‘환인국’의 ‘환한나라’에서 기인합니다. ‘환웅국’ 역시 ‘밝달-배달’의 ‘밝은나라’입니다. 그 ᄒᆞᆫ사상을 계승한 ‘단군조선’도 ‘아사달-해돋는 아침땅’의 ‘ᄒᆞᆫ’사상이 그 정체성입니다.
작금에도 서울 ‘광화문(光化門)’ 현판에 내걸어놓은 ᄒᆞᆫ사상입니다. 오로지 ‘빛(光)이 되라(化)’는 유훈-‘ᄒᆞᆫ’의 ᄒᆞᆫ민족 뿌리사상입니다. 서울 ‘한강’의 ‘ᄒᆞᆫ’이 되며, ‘아리랑’의 ‘아리’ 또한 ‘ᄒᆞᆫ’의 다른 표기가 됩니다.
문화적 민족주의 문학이 아닙니다. 계몽문학, 생명문학, 순수, 참여문학 등의 시대 문학사조가 아닙니다.
오로지 ᄒᆞᆫ민족 유구한 뿌리사상을 총합한 ‘ᄒᆞᆫ’문학입니다. ‘나(ᄒᆞᆫ알)’와 ‘너(ᄒᆞᆫ얼)’와 ‘우리(ᄒᆞᆫ울)’를 밝히는 한국문학의 정체성입니다. ᄒᆞᆫ류로 나아가는 인류문학사조입니다.
‘民調詩’ 문학사조입니다.
2. 나는 민조시를 이렇게 쓴다.
그렇기에 나는 民調詩를 ᄒᆞᆫ사상 묵정밭갈이 글씨올 가꾸기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언급한 바와 같이, ᄒᆞᆫ사상은 고조선 한민족 뿌리사상입니다. 환인과 환웅과 왕검의 상고조 개천 개국 이념입니다. 여기 나를 있게 하고 오늘 ᄒᆞᆫ민족을 존재하게 하는 대한국의 뿌리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그 ᄒᆞᆫ철학이 ᄒᆞᆫ류로 깨어나야 하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잃어버린 뿌리 역사와 함께 정맥을 되찾아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 몸부림으로 나의 民調詩 붓율은 생명력을 얻고자 합니다. 그 주체 혈맥인 이 시대 대한민국이 그 ᄒᆞᆫ혼을 낯설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낯설기가 바로 나의 民調詩 창작 의지가 됩니다.
民調詩의 사상적 배경이 ᄒᆞᆫ혼이거니, 이 의지는 민조시인의 시대 사명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 문예운동이 民調詩 개척의 대의명분일 것입니다. 하여, 나의 붓길에 내려준 ᄒᆞᆫ-天符의 소명이 내 민조시 글밭갈이 되새김질 필혼입니다.
ᄒᆞᆫ사상의 장구한 정맥에는 <복본-複本>의 유훈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뿌리 근본을 회복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인류가 잃어버린 天符-하늘뜻을 되찾아, 우리의 ‘서낭당’-혹은 ‘소도’-‘부도’의 밝달터로 반드시 되돌아가라는 <원시반본-元始反本>의 ᄒᆞᆫ사상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民調詩 글밭갈이는 그 複本의 꿈을 믿고 따릅니다. 그 묵정밭은 1만년도 넘는 시공의 거리입니다. 그 시공의 거리에는 나의 민조시를 기다리는 숱한 ᄒᆞᆫ의 정녕들이 내 붓끝을 여미게 할 것입니다. 나의 붓빛으로 깨어나야 할 억겁의 생령들이 ᄒᆞᆫ춤의 ᄒᆞᆫ바탕 신명거리 제전을 부정거리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내 이번 생도 턱없이 모자랄 유장한 붓길판일 것입니다. 허나 나의 필력이 다하는 그날까지, 나는 民調詩와 더불어 ᄒᆞᆫ의 天符를 쫒아 신명을 다할 요량입니다. 나와 民調詩가 짊어진 업보라 여기고서.
문학에 ‘人’을 앞서 쓰면 ‘인문학’이 됩니다. 인간을 근본하는 ᄒᆞᆫ사상과 같은 뜻의 인문학입니다. 홍익이요, 인내천의 인본학이 그것입니다.
그 인문학의 주체가 문학이며, 문학의 주체가 시문학이고. 나는 시문학의 주체가 곧 民調詩(한국문학의 새정형시)로 불리어지기를 꿈꿉니다.
그날까지......,! 하여, 나의 民調詩 쓰기는 ᄒᆞᆫ사상의 複本을 끝내 꿈꿀 것입니다.
3. 民調詩와 자유시의 차이점은?
극명한 차이점은 시형식입니다. 이를테면, 民調詩는 정형시이고 자유시는 정형시가 아니라는 명백한 차이입니다.
본시 자유시는 정형시의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쓰는 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시는 정형시를 근거한 상대적 의미의 시가 됩니다. 즉, 전통시의 운율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정형시의 일정한 틀을 해체해버리고 쓰는 자유로운 형식의 시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民調詩는 엄정한 형식을 정확히 지켜야만 하는 정형시란 얘기입니다. 어쩌면 현대시조보다 그 형식이 더욱 엄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시조의 음수율은 종장 첫 구만 3자 고정입니다. 나머지는 약간의 음수율을 변용하는 여지가 다소 있습니다. 그러나 민조시는 3,4,5,6조의 형식을 그 음수율 차례대로 엄정하게 고수해야 합니다. 현대시조보다 음수율의 자율성이 없다하니, 아마 퍽이나 의외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현대시조의 진화를 들먹일 수 있는 새정형시라고 번듯하게 내세울 수 있겠냐는 생각이 우선할 것입니다. 현대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구태의 율격인가, 자유분방한 사조를 수용하지 못해 외면당한다는 현대시조의 한계를 어찌 극복하겠는가, 하는 여러 의문이 쉽게 대두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민조시는 현대시조의 45자 형식에서 우선 자유롭습니다. 3,4,5,6조의 단 18자로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민조시인이 시조의 45자를 민조시의 18자로 함축할 수만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빼어난 시가 될 것입니다. 이는 현대인의 긴장성과 감성의 빠른 속도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새정형시가 될 것입니다.
민조시는 또한 현대의 다양한 문명 언어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습니다. 음수율을 거듭 장단 추임새 할 수 있는 자유 형식의 음수율이 장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시어의 필요 배열에 따라, 3,4,5,5,6조, 혹은 3,3,4,4,5,5,6조로의 여러 변용이 가능한 자율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이 둘의 ‘테제’가 민조시의 특성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율격을 확립함으로서, 이제 민조시는 한국문학의 삼각체제를 구현하는 제3의 시문학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민조시는 전통의 시조에서 정형율을 계승하고 현대의 자유시에서 무한의 표현 자율을 획득함으로서, 새로운 정형을 갖춘 한국적 자유시가 될 것입니다. 즉, 전통의 시조와 현대의 자유시를 아우르는 한국적 형태의 ‘융합문학’으로도 새롭게 조명될 것입니다. 더욱 확립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여타의 문제 제기는 차후로 미루고 말입니다.
민조시 역시 시조와 같이 여러 형태로 분류됩니다. 따라서 연민조시나 장민조시 등은 마치 자유시처럼 써지고 읽혀집니다. 여러 행으로 쓴 민조시를 읽다보면 자유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엄밀히 다릅니다.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민조시는 3,4,5,6조의 정형율을 한 음수도 벗어나서는 정형시가 안 됩니다. 가령 3,5,4,6이라든지, 3,4,3,4 등의 자율적 음수 운용을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맨 마지막 결구의 끝 調는 반드시 ‘6조’이어야 합니다. 이 역시 民調詩만의 엄정한 정형율입니다. 이러한 정형 율격을 정확히 지켜야만 민조시라 할 수 있습니다.
정형시든, 자유시든, 민조시든 시인이 작품으로 문학의 최고 가치를 구현하는 시를 써내는 일이 절대 우선이겠습니다. 어떤 형식을 取寫할 것인가는 앞으로 한국문학의 몫이 될 것입니다.
다만, 현재 한국문림의 보편화된 ‘자유시’가 ‘민조시’를 ‘시조’와 함께 한국 새정형시로 확립할 수 있도록 반갑게 손잡아 격려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4. 民調詩와 시조의 관계?
民調詩와 시조는 한국 정형시입니다. 民調詩는 최근에 개척된 새로운 현대 정형시이고, 시조는 대략 7백여 년 이상의 뿌리를 내려온 우리 민족 고대 정형시가 되겠습니다.
따라서 시조는 民調詩의 모태가 틀림없습니다. 시조 3장의 3,5,4,3은 民調詩 3,4,5,6(3+3)을 태동시킨 근원이 분명합니다.
다만, 民調詩가 시정신의 바탕을 ‘ᄒᆞᆫ사상’으로 명확히 규정한 반면, 시조시는 그 ‘ᄒᆞᆫ사상’을 딱 잘라 우리의 시정신으로 체화시키지 못한 차이가 있겠습니다.
특히 시조시 창작 지점인 고려 말부터, 조선의 사대와 일제의 식민과 남북의 분단까지 우리의 ‘ᄒᆞᆫ사상’은 그 정체성을 온전히 상실하였으니. 시조 7백년 시절의 민족 문학도 결국 우리의 ‘ᄒᆞᆫ사상’을 구현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시대가 우리의 ‘ᄒᆞᆫ’을 ‘恨’으로 오인하는 얼빠짐으로 전락하였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런 중에 民調詩는 ‘ᄒᆞᆫ사상’ 문학의 구현을 선언하였습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뿌리 얼을 되찾는 민족문학 정신을 명확히 선언한 것입니다. ᄒᆞᆫ사상이 체화된 민족문학 구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조’와 ‘민조시’는 민족문학이 담아내려는 각각의 내용 바탕과 역할 작용이 달랐을 뿐입니다.
특히 ‘민조시’ 개척은 ‘시조’가 못 다한 한국 정형시의 역할 사명을 이제 보다 크고 넓게 발전시키겠다는데, 한국 새정형시 창작의 대의명분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시조’의 전통을 계승하여 한국문학의 세계문학으로 ‘법고창신法古創新’하려는 개척 의지가 바로 한국문림의 자생 신단수神檀樹-‘民調詩’라고 봅니다.
민족문학의 그릇에 담긴 내용(정신)의 차이가 다른 점이 있듯이,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형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형시 歌形의 5조와 6조의 차이입니다. 즉, 시조가 3,5,4,3이라는 음수율로 5조 중심의 형식을 취한 반면, 民調詩는 3,4,5,6이라는 음수률로 6조 중심의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이는 한국 문학사조의 분수령이 될 거라고 봅니다. 시의 본향이 정형시이고, 우리 정형시의 두 갈래 형식이 5조와 6조로 구분되는 민족문학사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민조시의 ‘6’조 선언의 의미와 그 원리 근거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실로 엄청난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우주 변화의 원리에 상응하는 문학사조와 원리 근거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ᄒᆞᆫ의 세 마치 3수는 천지인 바탕입니다. 그 3수에 天1이 용변하여(3+1)= 4수가 되고, 地1이 용변하여(3+1)= 5수가 되는 이치가 됩니다. 거기에서 3=4=5의 음수율이 설정된 것인데, 그 율려로 노래 호흡이 되고, 장단 가락 걸음보가 되었던 것입니다.
즉, 3,4,5의 한국 시조 바탕의 음수율이 되었고, 중국 한시의 7언시(3+4)와 5언시가 되었으며, 일본 ‘와카’와 ‘하이쿠’의 5,7,5=7,5,5조 노래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3才 바탕에 天1과(4조) 地1의(5조) 음수율로만 가형을 이루었으니, 그것은 곧 천지(3+4+5)의 율려만 찬양한 결과의 노래시가 되었던 것이며, 天地人 3才 용변의 주체인 人1의(6조) 음수율은 제외된 공각의 율려였던 것입니다.
즉, 天地가 주체가 되는 율려 陰陽歌만 불렀지, 人이 주체가 되는 율려 三神歌를 부르지 못했다는 근거가 됩니다.
3조 바탕에 天地(4,5조)가 주인이 되는 율려수 3,5,4,3조를 근본하는 시절가는 ‘時調’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주 율려의 시절을 대변하는 노래였으니, 마땅히 때의 ‘時’에 노래의 ‘調’로서, 그중에서도 5조(地) 중심의 가형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천지 주체의 ‘時調詩’가 한국 정형시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그와 달리, 人(6조)이 주체가 되는 율려수 3,4,5,6조를 근본하는 民本歌는 ‘民調詩’가 되는 것입니다. 우주 율려의 人本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니, 마땅히 ‘民’에 노래의 ‘調’로서, 그중에서도 6조(人) 중심의 歌形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중심의 인본율 3,4,5,6조 ‘民調詩’가 한국 정형시의 새주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분수령이 되는 것입니다.
ᄒᆞᆫ의 민본 예악 民調詩와 ᄒᆞᆫ의 천지 율려 時調는 21세기 한국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가는 관계일 것입니다. ᄒᆞᆫ의 두 정형시가 세계인의 노래로 꽃피고 열매 맺는 그날까지 말입니다.
5. 民調詩와 하이쿠와의 관계?
하이쿠는 일본 정형시입니다. 5.7.5조 또는 7.5.5조의 음수 정형율로 시가를 이룬 일본 시문학입니다.
주지하다시피 民調詩는 3.4.5.6조의 음수율 18자인 한국 정형시입니다. 하이쿠는 민조시보다 한 음수 부족한 17자인 일본 정형시입니다. 그 하이쿠 음수율 7.5.5조(5.7.5조)에서 7조는 3.4조=(7조)의 변형과 같으니, 결국 하이쿠도 3.4.5.5조의 가형으로서, 3,4,5,6조의 民調詩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일본 정형시인 셈입니다.
즉, 民調詩는 한국인의 호흡을 3.4.5.6조의 18번으로 노래한 민족문학으로 규정한 반면, 하이쿠는 일본인의 호흡을 3.4(7).5.5조의 17번으로 노래한 민족문학으로 규정한 간명한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하이쿠는 우리의 시조 3,4,5(5)조의 가형과 같은 맥락의 정형률인데, 거기서 한 음수율 더 장단 마치를 두드린 ‘6조’를 발견하여, 3,4,5,6조의 새로운 한민족문학을 선언한 우리민족 새정형시가 民調詩입니다.
여기 民調詩와 하이쿠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제가 밝히고자 하는 중요한 논거는 조금 특별한 맥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목합니다.
일본의 세계문학 하이쿠의 뿌리는 일본 고시가 ‘와카’에 있습니다. 그 ‘와카’는 고대 일본 천황가의 역사와 ‘祭神歌’를 노래 전승한 고시가 ‘만엽집’에서 기인합니다.
이의 ‘만엽집’은 공히, 일본 최초의 ‘와카’로 <난파진가-難波津歌>를 확언하고 있습니다. 혹은 <매화송-梅花頌>으로도 불리는 일본 최초의 ‘와카’를 말합니다.
이는 ‘홍윤기’ 박사의 논고 ‘일본 詩歌의 7.5조는 한국의 律調이다.’(民調詩學 제5호 재록)에서 소상히 밝힌 바 있습니다. 논문 주제는 일본 정형 고시가 ‘와카’인 <난파진가>의 효시가 누구인가를 밝힌 내용입니다. 언제 누가 ‘와카’를 창시하여 일본 정형시가의 뿌리 문학으로 계승하였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즉, 일본 정형시 ‘와카’와 ‘하이쿠’의 효시 <난파진가>를 과연 누가 썼느냐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바로 백제인 ‘박사 왕인’의 창작 시가라는 중요한 사실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처음 전해주고, 황태자를 가르친 천황가의 스승이며, 일본 문화의 태사부로 존엄한 ‘왕인 박사’를 말합니다.
‘와카’의 효시인 <난파진가>가 바로 백제인의 호흡인 5,7,5,5,5조 음수율로 처음 쓰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하이쿠’ 역시 그 장단 호흡 음수율에서 5,7,5조/7,5,5조로 일본 정형시의 가형이 되었으니, 백제인의 후손인 우리와 일본인의 장단 호흡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한국 근대시가 일본에서 계승되었다기보다는, 고대 백제 문학이 일본으로 전승되었음을 규정한 것입니다. 일본문화사에서 한.일 문학사의 뿌리 갈래를 분명하게 정립한 ‘홍윤기’ 박사의논지입니다.
이처럼 한.일 문학사의 뿌리를 정립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 <난파진가>에는 한.일 고대사가 밝혀내야 할 숨겨진 秘史의 중요한 단초도 새겨져 있습니다.
‘홍윤기’ 박사는 이 <난파진가>를 천황가의 역사를 노래한 시라고 밝혔습니다. 4세기 말 일본 천황의 등극을 권유한 역사 찬시로 논지를 펼친 바 있습니다. 3년간 공석이었던 천황의 자리에 등극을 권유하면서 ‘박사 왕인’이 찬하여 읊은 ‘매화송’이 바로 <난파진가>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난파진가>에는 놀랄만한 백제의 숨겨진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사 왕인’을 초청한 일본 천황은 저 유명한 ‘日本武尊-야마타다케루’입니다. 일본 교토 히라노 신사에 모셔진 ‘제1 今木神’입니다. 그 ‘왜건명-倭建命’이 다름 아닌 백제대왕 ‘근초고대왕’이라는 역사적 진실입니다. 바로 ‘日本武尊-근초고대왕’이 태자 ‘근구수황자’를 가르치는 태사부로서 ‘박사 왕인’을 초청한 것입니다.
‘근구수왕자’는 일본의 저 유명한 ‘응신천황’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역사의 ‘아이부인’이요, 한.일 역사 왜곡의 주인공인 임나일본부설의 ‘신공황후’는 ‘근구수대왕비’가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태어난 왕태자가 바로 태중 삼한왕으로 지목된 원자 ‘침류왕’입니다. 저 유명한 칠지도의 주인공 ‘침류대왕’을 말합니다.
‘홍윤기’ 박사가 지적한 ‘왕인’의 <난파진가>가 창작된 시점은 언제일까요. 고금 ‘와카집’의 해설은 황태자 ‘우지노와키이라츠크’와 손위 형인 ‘오오사사키노미코토’가 서로 왕위를 양보하면서 자리를 비워둔 채 3년을 지내게 된 시점이라고 발표합니다. ‘홍윤기’ 박사는 대략 405년으로 추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히라노 신사의 제2 구도신 ‘근구수대왕-응신천황’이 서거한 394년부터 396년까지 3년간 천황 자리가 공석이었으니, 그때 ‘침류대왕’과 그의 이복형인 ‘인덕천황’이 왜왕의 천황 자리를 서로 양보하면서 3년간 등극을 미루게 되는 시점으로 봅니다.
근초고왕과 근구수대왕의 대륙 백제를 회복하고자 했던 ‘침류대왕-우치천황’이 선왕 ‘응신천황-근구수대왕’의 장자인 ‘인덕천황-닌도쿠덴노’를 왜왕으로 권유하지만 쉽게 등극을 승낙 받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선왕의 스승이요, 황실의 정무장관격이었던 ‘박사 왕인’이 바로 <난파진가>를 찬시하여, ‘인덕천황’의 천황 등극을 권면하는 노래가 바로 ‘와카’의 효시 <매화송>이었던 것입니다.
이의 중차대한 <난파진가>의 발표 시기와 역사 비화는 다시 밝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한.일 고대사 전반의 <난파진가>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다만, 백제 태사부의 율려시가 오늘날 일본 문학의 ‘와카’가 되었고, 그 장단 호흡이 세계 속의 일본 문학 ‘하이쿠’(17자)가 된 것도 중요한 사실이지만, 일본 정형문학의 효시 <난파진가>에는 이러한 한,일 역사의 秘意까지 담겨 있다는 사실은 더욱 중요합니다.
거기서 한 수(18자) 더 나아간 대한국의 율려시가 ‘民調詩’입니다. 나는 이 한 수가, 필시 일본 문학 ‘하이쿠’(17자)보다 한 수 앞선 ‘韓神의 한 수’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누가 무어라하든,....!
6. 民調詩의 전망에 대하여
民調詩는 ᄒᆞᆫ류의 ᄒᆞᆫ문학이 될 것입니다. 인류에게 ᄒᆞᆫ문학의 존재 가치를 일깨우게 될 것입니다. 종내 만국인에게 또 하나의 ᄒᆞᆫ아리랑이 되리라 전망합니다.
民調詩에는 천부 율려의 하늘 노래 숨결이 담겨있습니다. 우리의 천부경天符經 율려 숨결입니다.
民調詩의 ‘3=4=5=6’조는 하늘 율려 “0=1=3=6”조의 천부경 음수율입니다. 바로 “0=1=3=6”의 천부경 이치가 ‘3=4=5=6’의 民調詩 율려를 탄주하게 한 것입니다.
‘0’은 하늘입니다. 동양의 무극無極입니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을 뜻하기도 합니다.
‘1’은 존재 근원입니다. 동양의 태극太極입니다. ‘천부경’의 ‘석삼극무진본-析三極無盡本’에 해당합니다.
‘3’은 ‘천인지’의 3위1체입니다. 동양의 삼재三才입니다. ‘천부경’의 ‘일적십거무궤화삼-一積十巨無櫃化三’의 해석입니다.
‘6’은 생명 근원(여섯)의 율수律數입니다. 동양의 성태극成太極이요, 6기六氣입니다. 천부경의 ‘대삼합육-大三合六’을 뜻합니다.
혹여, 일본의 ‘와카’ 5,7,5,7,7조의 후반 7,7조를 떼어내고 5,7,5조의 ‘하이쿠’를 개척한 일본의 모방과는 엄정한 차별이 있습니다. 민조시의 6조는 분명 단견의 눈으로 폄훼할 수 없는 우리의 ᄒᆞᆫ사상 원리에 근거한 정형 율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6은 ‘0’의 ‘像’이 발현된 것이며, ‘1’의 ‘体’가 드러난 것이고, ‘3’의 ‘用’이 작용한 율수입니다. 바로 우주변화 원리가 반영된 ᄒᆞᆫ사상의 핵입니다. 그 ‘6’수를 民調詩가 발견하여 새로운 歌形의 한국 정형시를 발표한 것입니다.
이처럼 ‘0’=‘1’=‘3’=‘6’은 ᄒᆞᆫ사상의 천부天符 원리입니다. ᄒᆞᆫ의 천부경天符經 율수律數 원리입니다. 그 율조 원리가 반영된 ‘3=4=5=6’조가 바로 民調詩입니다.
그 천부 율려가 인류의 가슴을 깨어나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류가 ᄒᆞᆫ의 홍익 상생으로 ‘하나(0-1-3-6)’되게 할 것입니다.
ᄒᆞᆫ사상의 핵심은 인본의 ‘성통광명-性通光明’에 있습니다. 조화경 천부경의 ‘본심본태양앙명-本心本太陽昻明’일 것입니다. 교화경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성통공완=性通功完’의 유훈일 것입니다.
그 도덕군자행은 율려-律呂요, 예악=藝樂에 있다 하였습니다. 하여, 民調詩는 도행道行의 천지 율려로 ‘0’=‘1’=‘3’=‘6’의 하늘 숨결을 깨닫는 천부경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民調詩는 또 덕행德行의 풍류 예악으로 ‘3=4=5=6’의 천부 율려가 만방에 울려퍼지는 ᄒᆞᆫ사상의 노래가 될 것입니다. ᄒᆞᆫ류의 율려-예악으로서 ᄒᆞᆫ사상 ‘성통광명=性通光明’의 노래시가 될 것입니다.
民調詩-언젠가는 꼭 ᄒᆞᆫ아리랑일 것입니다.
<甲午 東學 2回甲年 立冬에-鷄龍山 한시밝마루’에서>
[출처] 나의 문학, 나의 민조시 3,4,5,6調|작성자 한나해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