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 김밥, 짜장면을 먹어왔다.
나는 허름한 식당에 친밀감을 느낀다.
가게 이름이 촌스럽고 간판이 오래돼서 너덜거리고, 입구가 냄새에 찌들어 있는 식당의 음식은 대체로 먹을 만하다.
이런 느낌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어긋나지 않는다.
낯선 소도시에 가서도 나는 간판의 느낌으로 밥 먹을 식당을 골라낸다.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라면의 탄생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허기를 달래준, 식량사의 전환으로 꼽힌다.
소설가 이문열은 그의 소설 『변경』에서 60년대 초의 라면 맛에 다음과 같이 경의를 표하고 있다.
'노랗고 자잘한 기름기로 덮인 국물에 곱슬곱슬한 면발이 담겨 있었는데, 그 가운데 깨어 넣은 생계란이 또 예사아닌 영양과 품위를 보증하였다.(..)
철은 갑작스레 살아나는 식욕으로, 그러나 아주 공손하게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듯했다.'
- 이문열 <변경> 7권, 문학과 지성사, 1998.177쪽
등장인물이 생애의 첫 라면을 '공손하게' 먹었다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그 때 라면 맛은 그 후에 닥쳐올 산업화시대 전체 삶의 맛이었다.
사람들이 결국 그 맛에 인이 박이고 거기에 주눅들려 살아가게 되리라는 예감을 그 '공손하게' 라는 네 글자는 함축하고 있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먹을 것이 넘쳐나지만 라면시장은 위축되지 않는다.
라면은 한국인의 정서적 토양의 기층에 착근되었다. 외환위기와 대량해고, 청년고용 절벽, 내수침체의 시절에도 국내 라면시장은 더욱 번창했고 2013년에는 매출액 2조를 넘어섰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협회의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평균 한국인은 1년에 라면 74.1개를 먹는다.
전체 한국인은 1년에 라면 36억 개를 먹는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1960년대 이후 한국라면시장의 팽창은 그 무렵부터 구조적으로 전개된 빈부의 양극화, 인구의 대량 소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라면을 조리할 때 대파를 기본으로 삼고, 분말스프를 보조로 삼는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그 다음에는 달걀을 넣는다.
불을 끄고, 끓기가 잦아들고 난 뒤에 달걀을 넣어야 한다.
끓을 때 달걀을 넣으면 달걀이 굳어져서 국물과 섞이지 않고 겉돈다.
달걀을 넣은 다음에 젓가락으로 저으면 달걀이 반쯤 익은 상태에서 국물 속으로 스민다.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달 만한 음식이 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스승 없이 혼자서, 수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웠다.
앞으로도 새롭게 열어나가야 할, 전인미답의 경지가 보이기는 하지만 라면 조리법 개발은 이제 그만하려 한다.
나는 라면을 먹을 때 내가 가진 그릇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도자기 그릇에 담아서, 깨끗하고 날씬한 일회용 나무 젓가락으로 먹는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미군에게 얻어먹던 내 유년의 레이션 맛과 초콜릿의 맛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계장의 닭들과 사지를 결박당한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들과 양식장에서 들끓는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36억 개의 라면의 그 분말수프의 맛을 생각한다.
파와 계란의 힘으로, 조금은 순해진 내 라면 국물의 맛을 36억 개 라면에게 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눈을 팔다가 라면이 끓어 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면의 길은 아직도 멀다.
- 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
김훈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를 읽는다.
간만에 자연암장 바위앞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는다.
배가 고픈데 글을 읽다보니 행동식보다는 라면생각이 나서 물을 끓인다.
나는 김훈처럼 대파도 없고 달걀도 없다.
내가 스스로 터득한 물의 양과 불의 세기만으로 라면을 끓인다.
김치도 없고 비싼 도자기 그릇도없지만 그의 글이 좋은 반찬이고 술이고 안주다.
김훈의 글은 중독성이 있다. 내게는 그렇다.
이 책은 그의 명문장들로 가득했던 산문 '자전거 여행'에 필적할 만한 문장들로 가득 찬 책이다.
글을 읽으며 흥분된다.
무협지도 아닌데 말이다.
알다시피 김훈은 기자로 활동하다 50대에 소설가로 늦깍이 데뷔를 했다.
그는 기자시절 전두환을 미화하는 내용의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일명 ‘용비어천가’사건으로 본인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더러운 일인데 강요되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 그냥 내가 했다.”하고 했다.
자랑할 만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총칼을 앞세운 당시 독재정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던 일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위험에서 버틴 자들도 있었지만.
시사저널 편집장 시절 인터뷰에서 남성우월주의자 논란 및 페미니즘을 못된 사조로 여긴다든가, 가부장적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 시사저널 기자들의 반발을 사 편집장을 사임하게 된다.
당시 그의 표현대로 쌀독에 쌀이 떨어질만큼 궁핍하던 시절, ‘칼의 노래’를 집필하고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떨어진 축복’이라는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받고 2001년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다.
노무현대통령이 탄핵되고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던 시절, 칼의 노래를 읽으며 지냈다는 말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그 책은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서 그의 책 ‘칼의 노래’ 서문을 보면, 당시 그의 이러한 심정과 상황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초야의 저녁들은 헐거웠다.
내 적막은 아주 못견딜 만 하지는 않았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의 길들은 끊어졌고 인기척이 없었다.
얼어붙은 세상의 빙판 위로 똥차들이 마구 달렸다.
나는 무서워서 겨우 내 대문 밖을 나가지 못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모든 연민을 버리기로 했다.
연민을 버려야만 세상은 보일 듯 싶었다.
연민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자주 아팠다.'
...
책을 읽을 당시에는 몰랐지만 김훈의 과거 모습을 알고 다시 읽으니 서문에 쓴 그의 글들이 다시 다가온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한다.
김훈은 어느 강연에서 책의 첫 문장을 '꽃은 피었다' 로 적었다가 며칠 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로 바꾸었다고 했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라면서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로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자신의 문학과 소설은 몽매해진단다. (아리송...)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거기보면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인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문장입니다. 군더더기가 없고,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사태를 정리해 버리듯이 한 번으로 끝내 버리는 문장을 이순신은 쓰고 있더군요. 그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문장입니다. 아무런 수사적 장치가 없는 문장. 그러나 나한테 그것은 놀라운 문장이었습니다.
암담한 패전 소식이 육지로부터 전해 오는 날, 이순신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라고 씁니다. 아, 좋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은 죽이는 문장입니다.
슬프고 비통하고 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고불고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죠. 거기에 무슨 형용사와 수사학을 동원해서 수다를 떨어 본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를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혀 수사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주어와 동사의 세계죠. 내가 사랑하는 주어와 동사의 세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사실에 입각해 있습니다."
이렇듯 김훈이 만드는 책의 문장들은 '군인'의 문장이고 건조한 남성적 문장들로 가득 차있다.
예전 박완서 선생이 그의 책 '남한산성'을 읽고 책의 역사적 배경과 그의 무미건조한 문장들 때문에 심한 감기에 걸렸다는 일화가 있다.
난 그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평소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었다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김훈은 첫 단편소설 ‘화장’으로 2004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언니의 폐경’으로 2005년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 많은 작가’로 통한다.
독서 에세이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장편 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변경’ 등 중독성강한 글과 명문장들로 수많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다.
진보와 보수 이런 것들을 떠나 문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이 있다.
최인호, 박완서, 이문열, 이외수, 도종환, 김훈, 박범신 …
라면을 먹으며 라면생각을 하니 예전에 잠깐 함께 등반을 다니던 후배들이 생각이 난다.
대부분 초보자들이어서 루트에 줄도 걸어주고 멀티피치 등반을 좋아해서 함께 다니곤 했다.
한 번은 야영 중에 내가 라면을 너무 좋아하고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을 이야기하자 한 여자후배가 정색을 하며 자신은 절대 라면을 안 먹는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다름아닌 몸에 해로운 인스턴트 음식이라는 게 주된 이유다.
그 녀에게 이 글을 권해주고 싶다.
라면을 안 먹는다고 해서, 다름아닌 몸에 해로운 인스턴트 식품이라는게 싫어하는 이유라고 해서 정말 멋없고 매력없어 보이던 그 녀.
내겐 라면을 맛나게 끓일 줄 알고 뜨거운 면을 소리내서 후루룩 먹고, 뜨거운 국물을 호호 후후 불며 마실 줄 아는 여자가 소탈하고 정겨워서 예쁘고 좋다.
변진섭의 ‘희망사항’에서 말한 가사내용에 이 내용을 더 넣고 싶다.
그리고 그 녀가 즐겨 피우는 담배가 더 해롭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광화문에 나가서 집회하는 걸 자랑 삼아 말하는 것보다 아무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그 모습이 더욱 더 해롭고 사람들에게 공감받지 못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도 내일부터 라면 끓이는 법을 다시 공부하고 노하우를 터득해야겠다.
아니지 요즘엔 유튜브에 집밥 백선생이 올린 동영상이 엄청 많으니 …^^
암튼 김훈의 문장들이 라면국물처럼 내 안으로 스민다.
감칠맛 난다.
오랫 만에 찾은 선운산 속살바위 ‘새내기’루트 앞 너럭바위 위에 앉아 라면을 먹는다.
저 멀리 투구바위에서 ‘코리안 강’ 루트 프로젝트 중인 팔봉이가 넘어와 “형, 원두커피 드세요!”라고 손짓하며 부른다.
그가 나를 부르는 ‘어딘가 너머 무지개’ 루트 앞 공터에는 동칠형, 재철이, 소희 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정겨운 풍경이다.
이호석
이소희
김팔봉
김동칠
신재영
도솔재의 가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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