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는 계속 비가 오겠다더니 비는 오지 않아 큰 다행이다.
일토장정의 2번째 시간. 인변은 독일에서 너무 오랜만에 나오신 이모님을 모시고 고향 방문중이라 참석을 내일로 미루고
중하를 도착지 남동공단에서 만나 내 차를 타고 영종대교 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으로 올라가 아침으로 커피와 특이한 주머니 샌드위치를 먹었다.
1년 후에 편지를 보내 준다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느린 우체통”에 우리 둘은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1년 후 각자의 집으로 배달되어 지금의 심정을 어떻게 옮겨 줄까? 많은 기대가 된다.
또 한 통 더 오늘 이 자리에 없는 인변에게도 한 장의 봉함엽서에 나와 중하가 절반씩 글을 남겼다.
1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이 편지를 받게 될까?
이제 또 출발이다.
출발은 지난번과 비슷한 쌩쌩 도로를 한참 지난 후 서부 산업단지로 들어서니 조금은 편해졌다.
하지만 곧 청라지구 공사 현장을 통과하게 되니 역시 마찬가지다. 7~8킬로미터를 그렇게 걸어서 대단한 청라지구의 위용을
느끼며 이런 말 저런 말 속에 길가의 포장마차에 들러 맥주 한 잔과 계란 부침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오늘은 좀 많이 걷자는 공통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제철까지 쉼 없이 걸었다.
물론 도로의 상황이 볼 것도 말 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현동으로 걸어 들어오면서 인천의 속살을 만지기 시작한다.
곧 동인천역 뒤편이 나오고 굴다리를 지나 지하상가를 건너니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계단 밑으로 축대 밑으로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집들이 오밀조밀 살고 있다.
대학교 초년생 때 이 길을 대학 동기들과 인천에 살고 있는 선배와 같이 오른 적이 있다.
지금은 잘 연락이 되지는 않고 있는 선배인데 아니 내가 연락을 안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선배가 무던히 우리에게 잘 해주었는데 그 날도 돈도 몇 푼 없이 몰려 온 후배들을 자유공원을 구경시켜주고
술도 많이 사주었던 것이 기역난다.
또 언젠가 천안의 지하주점에서 그 선배가 말했던 “멋있는 사람, 맛있는 사람”에 대한 기역도 생생하다.
이 말을“멋도 있고 맛도 있는 사람이 되자”라며 지금도 내가 잘 써먹고 있는데 그렇게 평생을 같이 할 것 같던
선배와 안 본지도 10년은 되는 것 같다.
오래된 내 생각 같은 담쟁이 넝쿨이 온 몸을 휘감고 있는 홍예문이 나온다.
일본군 공병대에 의해 1908년에 완공된 홍예문은 100년이 넘게 이 자리에 이렇게 서있다.
문을 들어가 우측으로 방향을 돌려 악간 오르막을 오르니 자유공원이다.
바로 정면에 인천 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이 나온다.
6.26 전쟁 시에 인천지역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학생 신분으로 참전하신
2,000여명과 그 전쟁에서 어린 나이에 산화하신 50여 분의 위령제가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마침 어제 학도병에 대한 영화“포화 속으로”를 본 후여선지 더욱 숙연한 마음이 든다.
탑 뒤로 돌아가니 자유공원의 상징이라 할 수있는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 동상이 나온다.
또 앞으로 나오니 배 모양을 형상화 한 전망대가 인천항을 조망하고 있다.
전망대 밑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와 제물포 구락부를 들러 내려오니 인천 중구청 근처로 나오고
바로 옆이 일본식 건물들이 쭉 늘어서있다. 오래된 것도 있어 보이지만 요즘에 새로 만들어 복원한 길이다.
일본의 조차지역을 복원 한듯하다. 다시 우측으로 약간 고갯길을 오르니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이 나온다.
지금부터는 또 모든 건물이 중국풍이다. 1883년 설정된 일본의 조계지와 1884년 설정된 청나라 조계지의 경계를
계단으로 만들고 그 계단은 만국공원 지금의 자유공원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지금부터는 일명 차이나타운이다.
인천의 유명한 차이나타운이 청나라의 조계지가 근거가 된다는 걸 지금 알았다.
어려서 먹었던 공갈빵과 월병을 하나 씩 사서 먹어보고 양 옆에 상점과 중국식당을 끼고
최초로 자장면을 만들었다는 중국집 공화춘으로 갔다.
지금의 공화춘은 예전의 공화춘은 아니고 그 맛과 명성을 이어 받았다고 하니 원조 자장면으로 인정하고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 맛있게 맛을 보았다.
중국 사람인지 조선족 동포인지 종업원 아주머니들의 별로 친절하지 않은 도움을 받았지만
더위에 놀라고 허기에 지친 덕인지 맛은 참 좋다. 중하는“그래도 난 짬뽕”하며 맛있게 먹는다.
인천역 앞으로 나와 다시 길을 걷는다. 인천아트 플렛폼을 지나고
지어진지 100년이 넘는 중동우체국(구 인천우체국)도 지나며 자유공원과 일본 조계지, 차이나타운, 신포동으로 이어지는,
인천시도 공을 들여 복원 및 조성을 해놓아서 그런지 이곳의 100여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1875년 운요호 사건, 그 이듬해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을 1876년, 원산을 1880년, 인천을 1883년 활짝 열어주게 된다.
1853년 미국에 의해 개항했던 일본은 그 배운 방법을 그대로 조선에 20여년 후에 써먹는다.
어찌 보면 한 단계 더 진화하였는지 모른다.
그 다음해 청나라도 조계지를 만들고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영국도 구미 열강들이 들어오고
일본의 확고한 전략에 의해 1910년 경술국치로 한 동안 나라를 잃게 되는 그리고 해방, 또 이어진 전쟁,
상륙작전 그 순간 순간의 사건과 진실이 자유공원을 종심으로... 한국의 근대사가 이곳에 다 있다.
이제 15Km를 넘어선 것 같다. 다리가 점점 내 다리가 아니다.
인천여상 뒷길로 오니 중국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국제여객터미널 근처인지
중국으로 보내는 물품을 처리하는 조금한 회사들이 주택가 안에도 꽉 차있다.
계속해서 경인고속도로 입구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엘로우 하우스가 나온다.
아직도 성업중인지 건물마다 가게마다 커다란 숫자로 자기 집을 알리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가니 제1경인 고속도로 입구다.
육교위에서 인천항과 바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보고 내려와 뒷골목을 어슬렁거린다.
넓은 인도로 갈 수 있지만 자동차의 소음에 이젠 지친것 같다. 아님 뒷골목이 더 편안한 건지도.... 아님 말고.
뒷골목이 끝나는 곳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으로 목을 적시고 육교를 건너 해안 쪽으로 진출했다.
이제는 앞 쪽이 매립이 되고 공단과 인천항의 배후시설이 들어서서 흡사 조금 큰 개천 같지만
이곳이 인천상륙작의 상륙지점이라는 것을 알리려고 초라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60년 전 6월 25일 물밀듯이 밀려 내려온 북쪽은 2달이 채 되기도 전에 낙동강까지 내려갔다.
전쟁은 이렇게 북쪽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9월 15일 새벽 맥아더 장군은 Green Beach 월미도에 선발대를 상륙시켰고
오후 만조시간에 Red Beach (지금의 대한제분)와 이곳 Blue Beach (연수동)에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을 상륙시켰다.
이 상륙작전이 전세의 역전을 가져왔고 9월 27일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다.
6.25 전쟁 60주년이 된 지금 어떤 이들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은 인정하지만
그 이후에 맥아더가 행한 핵무기 사용 건의 등으로 동상을 세워두는 것은 미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사대이니
당장 철거해야한다고 하고
그 반대는 김일성에 의해 통일된 이 땅에서 살아 갈 것을 구한 은인한테 그럴 수는 없다며 모두 빨갱이라고 한다.
60년이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아직 북쪽과 대립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직 역사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짧지 않을까?
다만 이렇게 흑백만을 요구하고 조금만 붉으면 빨간색으로 굳게 칠해버리고 그
렇지 않으면 또 푸른색으로 모두 발라버리는 우리민족이 아쉽고 안타깝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외세도 고작 할아버지 때부터 반짝 잘 살기 시작하여 우리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건데
역사의 길이로 보면 이들은 우리에게 게임도 안 되는데.....
모든 건 역사에게 나중에 묻고 역사에 부끄럼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정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난 회색인인가?.....
길은 해안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다.
송도를 매립하여 신도시를 만들면서 아직 조금씩 미진한 구석이 남아있지만
인천광역시가 제정적자에 시달릴수 밖에는 없을 정도로 해안도로와 인도, 산책길 자전거길이 잘 정비가 되어 있다.
내가 본 자전거 도로 중에서 이곳이 최고다. 상륙지점 기념비에서 갯골유수지 수문까지는
라버콘과 보도브록으로 약 2km가 가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수문에서부터 해안도로 끝까지 거의 직선으로 약 8km는 보도부록을 이용하여 인도를 조성하고
인도와 자전거 길을 철제로 명확히 구분 짓고 자전거 길은 아스콘 포장 후 붉은색 도색을 하여 중앙선까지 그려 놓았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송도 쪽도 이와 다르지 않을것 같다.
그 길을 감탄하며 걷다가 남동공단 유수지가 나와서 길을 건너 걸었다.
이곳은 예전에 설치한 보도부록 그대로 였다. 이제 이 유수지만 지나면 오늘의 장정이 끝나는 지점이다.
갑자기 몇 방울의 비가 떨어지며 우리의 도착을 축하해 준다.
첫댓글 나두 저 우체통에 나에게 보내는 글 좀 보내야겠구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