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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이제 본격적 가을로 접어들면서 온산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울긋 불긋 색의 향연이 시작되며, 산정의 날씨는 초겨울을 연상시킨다. 1주일전부터 기상여건과 일기를 유심히 봐왔는지라 큰 문제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출발전날에 일정과 기상여건에 대비한 보온에 대해 문자를 일괄적으로 발송하고, 예보대로 되기만을 빌었다.
10시경부터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이미 구름을 타고 지리산 산정에서 노니는 상상만 되풀이 하다 결국 출발 직전까지 티비로 시간을 보낸다. 좀 이른시간에 시청으로 향한다.평소 산행보다 준비할 것이 많은관계로 보따리가 하나더 생겨서 거추장 스럽다.
버스에서 벗들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누구한명이라도 시간약속을 못지키면 모든 일정이 공염불이 되기때문에 혼자서 노심초사..다행히 한명도 늦지 않고 제시간에 버스가 출발한다. 일정을 정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나와 다수와의 약속이기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약속이 어긋 날 수도 있다. 일정대로 시간사용계획이 진행되서 참으로 다행이다.
성삼재에 도착하자 1070미터의 위엄이 서있는 바람이 거세다.간단한 준비운동과 생리현상을 해소하고 본격적 산행이 시작 된다. 시간은 정확히 05시1분이다. 어느 한곳에서라도 시간이 삐긋거리면 장시간산행이기에 모든 일정이 헛된 약속으로 전락해버린다.그러기에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달간의 준비기간이라서 번개산행보다는 더 철저히 시간관리와 약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고리봉에서 바라본정령치의 고요한 아침 풍경)
작은 고리봉을 지나기도 전에 거친숨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리딩과 선두조는 이미 시야를 벗어나버리고 저 멀리서 간간히 풀숲사이로 반짝이는 헤드랜턴 불빛만 거리를 짐작케 한다. 시작이 좋으니 반은 성공한셈이다. 그렇다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회원모두가 마음처럼... 산만 오르면 물만난 고기처럼 펄떡 거리진 않는다. 체력이 약한사람도 있고 경험이 전혀 없는사람도 있고, 고달픈 삶에 무게를 잔뜩 짊어지고 온 사람도 있고, 그 어떤 장애물이라도 거뜬히 뚫고 지나갈 줄 아는 패기 넘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두가 다 같이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 같은 길이라도 천차만별.
뒤처지는 사람들의 의문점은 앞서있는 사람에게 왜 빨리가냐고 급한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빨리 가서 도대체 뭐할 것인지를...그러나 산은 빠름도 느림도 함께 공존한다. 빠른만큼 여유롭고, 많이 누리는 것은 두말 할 것이 없다.느린만큼 얻는것도 적지 않다. 느리다는 것은 가슴과 머리로 가는 것이고, 빠르다는 것은 민첩함과 지혜로 가는 것이다. 두 부분이 적절히 조화가 된다면 더 아름다운 길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큰 고리봉에서 바라본 반야봉과 주 능선들)
시작전에 걱정섞인 조언을 많이 들었던 터라서 더 철저하게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한때 한물간놈이라는 닉네임을 쓸때 쯤 이곳을 왕복 해본적이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그때의 감개무량은 말로 표현이 안되는 것이고, 값진 경험이었기에 그 경험의 일부라도 공감해 보고 싶은 심정 뿐이다. 중간에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던 심정은 지금생각해도 간절하기만 하다. 오늘 처음 도전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그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뒤에서 채찍을 들고 마음에도 없는 독설과 핀잔을 내뱃어야만 한다. 앞선 사람들도 뒤처진 사람들도 다 벗인데 진행자의 입장에서 어느 누구한명을 위한 산행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짜증도 내보고 푸념도 늘어 놓았다.
정령치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동안 산행중 처음 전체회원을 보게된다. 다행히 다들 밝은 표정이다.날씨가 추울거라고,손이 시러울 정도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 했는데도 보온장비에 신경을 안쓴 사람들이 있다.그분들은 이제 다음엔 이런 경험이 재산이 되어 다시 돌아 올것이다.경험은 그냥 줍는 것이 아니다. 시간상으로 30분정도 뒤처졌지만 다행히 제 시간보다 30분이 단축되어서 남은 구간 여유로운 산행이 예감된다. 전체 구간중 두번의 고비(만복대,세걸산)가 예상된다고 얘기 했지만 그걸 모르는 초심자에겐 소귀에 경읽기. 세걸산은 오르락내리락 길도 좁고 지금도 뻑뻑한 산임에는 변함이 없다.
참고로 고어텍스는 보온의류가 아니다.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비싼 비옷일 뿐이다. 보온의류란 폴라텍계열과 천연 울소재, 인슐레이션계열,그리고 우모계열 등이 있다. 가을엔 가볍고 속건기능이 좋은 폴라텍 계열이 각광을 받고 있다. 보온 의류란 고어류의 하드쉘 자켓이 아니라 소프트 하지만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옷을 말한다.산정에서 가장 체력소모가 심한것은 바로 추위이다.추위에 노출이 되면 시간당 소모하는 칼로리의 약 1.3배 이상의 에너지가 손실 된다.가만히 서있어도 손실 되는 에너지 임으로 주의가 꼭 필요하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우리가 지나온 큰 고리봉과 서북의 능선들)
이제 어느덧 세걸산을 지난다.중간지점을 통과한 셈이다. 한고비 넘겼으니 이제 마음좀 놓을 찰나 ...후미에서 부상자가 발생한다. 다행히 세동치삼거리가 가까우니 그곳에서 비법정탐방로로 부운마을까지 갈 수 있을것이다. 부운마을까지 가는 길은 경험상 풀이 우거져서 쉽지 않은 길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 길로 하산 시켜서 더이상의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이미 스스로 자가 치료를 한상태라서 내가 손 쓸 여유는 없다. 그러나 자가진단과 치료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부상도 오히려 크게 키울 우려도 있고,잘못된 투약으로 악화되기도 한다. 가급적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경험자란 ....그런 산에서 수도 없이 같은 증상을 겪어보고 미리 경험해 본 사람을 말한다.산에서의 크고작은 부상을 안당해본 사람은 없다. 무릎과 발목,허벅지,허리통증,옆구리 결림어깨결림과 통증, 발바닥부상, 근육경련....이런 증상은 산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원인까지도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조언을 구해서 휴식을 취하고 가벼운 마사지 만으로도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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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한후에는 후미에 뒤처진 회원들도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밥이 들어가니 기운이 좀 나는가 싶다.선두와의 거리는 약 3.5Km 시간상으로는 딱 두시간이다..이들의 보폭 기준으로.바람불고 추울때는 목마름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몸이 굳어 있어서 부상자가 발생하기 쉽다. 아직 초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의 온도는 대략 19도이며 바람은 4~5M/Sec이므로 체감온도는 14도 정도이다. 지금까지의 기온보다는 확실히 낮은 기온임은 확실하다. 부상자가 부운마을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길을 나선다.남은 회원들의 일정이 있기에 동행해 주지 못하고 미안한 마음만 안고 발길을 재촉한다.
(세걸산 정상에서의 이정표와 주능선의 조망)
이제 조금만 가면 팔랑치에 도착한다. 팔랑치를 가기전에 언덕이 나오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이곳을 나 혼자이름을 붙여서 "바람의언덕"이라고 한다.우거진 가시숲과 철쭉군락 사이에서 유독 바람심한 둔덕인데 거기에 잠깐 서있으면 산정에서의 고독함과 다가올 희열을 준비하는 묘한 감정이 드는 공간이기에 그리 붙여본 곳이다. 우여곡절 끝에 팔랑치에서 바래봉을 올려다 본다..후미조의 희미한 실루엣이 멀리서도 우리팀인것이 짐작이 된다. 그러나 시간상 감상에 빠질 여건이 못되서 물한방울 뜨는것도 허락치 않고 바로 발길을 옮긴다. 무작정 뒤만 따라서는 걸음을 재촉하지 못할 듯 싶어서 멀찌감치 앞서간다...잠깐 걸었는데도 100여미터가 차이가 난다...선두는 이미 월평마을 부근을 지나친다는 교신이 왔다.
아직 배래봉도 오르지 못했는데 마음만 서두른다..바래봉에서 목적지까지 서두르면 1시간반 거리인데 뒤에분들은 아예 수다까지 떨고있다. 고통을 참으려니 어쩔 수 없으리라 지켜보기만 한다. 멀리서 지켜보니 아예 마주서서 수다에 집중하는 분위기..이건 뭐지? 큰 소리로 간격을 좁히라고 다그쳐도 보았지만.....마음처럼 움직여 지지 않은 그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래도 여기까지 와준 것이 얼마나 대견 스러운가....고통은 있을망정 그들의 얼굴은 아직도 천진 난만한 어린이처럼 맑기만 하다. 그래..끝까지 동행하자..죽이되든 밥이되든 밤이 되서라도 이들을 완주 시켜야겠다 다짐해본다. 그래 내가 너무 서둘렀던 것은 아닌지...너무 내 기준에 얽매여 있었던 것은 아닌지...바래봉을 올라서 주능선을 바라보면서 또다시 작아지는 느낌은 어쩔 수 가 없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능선과 능선 사이로 우뚝 솓아있는 영봉들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위압감은 다리에 힘이 풀릴만큼 강하고 아찔하다. 이것이 산이다.바로 눈앞에 펼처진 가슴뭉클하도록 아름답고 장엄한 이것이 진정 지리산이다.
(용산리와 덕산리가 내려다 보이는 팔랑치의 언덕)
덕두봉을 지나서 조금 가다가 뒤처진 일행과 만난다..한사람의 부상으로 걸음이 뒤처진 것이다. 나머지 분들은 내가 당도하자 언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앞서 나가고 또 한 사람을 추가한다.ㅠㅠ 부상정도로 보아 신발에 문제가 있는 듯 보인다. 신발이 종주하기엔 어설픈 신발이여서 발바닥과 발가락에 힘을 과도하게 주다보니 허벅지 뒤퇴부 인대에 무리가 있는성 싶다.가볍게 마사지를 해주고 걸어보라고 하니 한결 수월하다고 한다. 조금 더 걷다가 바위가 나오자 엎드리게 하고 본격적으로 마사지를 해준다..이렇게 해야 더 큰 부상을 막을 것이다. 하고 나니 걸음이 몰라보게 빨라졌다..힘은 들었지만 한명 한명 동기를 만들어 주고 추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니 새삼 힘이 솓는다..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비가 내린다. 예보대로라면 오후6시 이후여야 맞는데 산정의 날씨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옷이 젖지 않을 정도이니 서두르면 30분 내로 목적지에 도착 할 듯 싶다..(내기준)
(바래봉 정상)
(바래봉정상과 지리산 주능선)
이렇게 마음으로 서두른 대가가 눈앞에 펼쳐진다. 부상자 1명을 제외한 전원이 완주하게된다. 비록 예정시간에서 30분을 넘겼지만 구간에 비해 많이 늦어진 것은 아니기에 감개가 무량한것이 이길을 두번 왕복한것보다 더 진하다. 그들이 종주를 한다고 해서 내가 득볼 것 하나도 없는데, 어설프고 안될 것이라는 핀잔에도 불구하고 내 능력 밖의 또다른 자신을 발견한 회원들을 보니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럽다. 먼저 도착한 벗들이 환영을 해주고 힘을 실어주니 이또한 고맙고 감사하다.
어느덧 빗방울이 굵어진다. 4시 29분에 전원 도작하여 장장 11시간반동안의 사투를 벌인 회원들에게 진정어린 축하와 박수를 보내고싶다. 이 작은 시작이 우리가 살아가는 믿걸음이 되고 삶의 동기가 되고,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고 자신감을 충전할 에너지원이 된다면 그것보다 좋은일이 어디 있을까. 경험자에겐 그냥 산일지 모르지만 산이 낮선 사람에게는 죽을때까지 자신만이 갖는 뿌듯함을 훈장처럼 새기고 다닐 것이기에 이번의 서북능선 종주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3걸음에 한번의 휴식..나의 리듬은 완전히 붕괴되고 남은 구간을 오로지 인내만으로 버텨야 하기에 내 스스로에게도 커다란 교훈이 되고 경험이 된 산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사람의 능력을 자신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놓고 산다.그 한계를 벗어나서 한걸음 더 나가다 보면 분명 내가 쳐놓은 울타리같은 방어막이 보일 것이다. 그 울타리를 자신이 보았을 때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것 없음을 보는 순간 알아 차린다. 우리는 또 한번의 작은 울타리를 벗어난 것이다. 수많은 울타리중 이제 하나를 겨우 보게된 셈이다.다음의 울타리를 넘기 위해서 또 한번의 고통과 인내를 감수해야만 가능하다..오늘보다 더 강한 .....
동참해주신 벗들에게 감사 드리며, 믿고 동행한 회원님들에게 다시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언제나처럼 함께한 산행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첫댓글 잊지못할 서북능선종주~
새삼스레 즐거운 기억이 납니다~
항상 뒤에서 챙겨주시는.하이든오빠
같이해서 감사하고 든든합니다~^^
그러게 ..작년 산행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산행이라면 당연 설악산과 지리산서북능선,
함께한 사람들과 땀방울처럼 스며드는 산정의 추억들...
@하이든 당근이죠~^^
아침 시작부터 하산까지
아직생생하네요~
올해도 이만큼 좋은추억또 만들게 해주삼요~^^
11시간 산행 그 힘듬 고통 뇌리에 가득
완주의 기쁨
올해도 갈수 있을려나
담배랑헤어지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