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7. 31
- 들어온 현금 움켜쥐는 고령층… 소득 지원 늘린다고 소비할까
- 세금 혜택 줘도 해고 어려우면 기업들 일자리 늘리지 않을 것
지난 2004년, 취임 2년 차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전년도 경제 성적표를 받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취업자 수(2213만명)가 1년 전보다 3만명이나 줄었기 때문이다. 취업자 수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매년 30만~70만명씩 늘어왔다. 다만 외환 위기 이듬해인 1998년 성장률이 추락(마이너스 5.5%)하면서 127만명이나 준 적이 있다. 그러나 2003년에는 '신용카드 대란'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2.9%)했다. 경제 규모가 커졌는데 어떻게 취업자가 감소할 수 있나. 정치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노 대통령은 '고용 없는 성장'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경제 정책의 중심을 복지·분배에서 일자리·고성장으로 바꾼다. 고용을 최고의 복지 정책이요 성장 잠재력도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간주한다. 또 성장하면 일자리를 늘릴 여력도 커지기 때문에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저소득층 소득 지원을 통한 양극화 해소, 대기업·중소기업 동반 성장도 이때 본격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며 제시한 경제 정책 방향(J노믹스)의 핵심 개념은 모두 문 대통령이 노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던 시절에 완성됐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 이 '한 많은' 경제 철학과 비전을 지금 '친한 친구'가 다시 집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J노믹스는 '소득 주도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요약된다. 핵심은 4가지다. ①정부가 소득을 지원해 소비를 촉진한다. ②중소기업에 세금 혜택을 주면서 고용을 늘린다. ③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해 동반 성장을 하도록 한다. ④전 세계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중소기업 성장 동력으로 활용한다. 말만 들으면 통장 잔액이 쑥쑥 늘어나고 아이 키울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실업자와 '갑질'이 격감하고 경제도 성장하는 '멋진 신세계'가 5년간 펼쳐질 듯하다. J노믹스는 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산이 높고 골은 깊으며 함정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일자리 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먼저, 국민 세금으로 가계에 지원하는 소득이 생산적 소비와 성장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 시절에도 복지비 확대 등을 통해 소득을 늘려줬지만 경제성장에 괄목할 만한 선순환 효과를 가져왔다는 통계는 찾기 어렵다. 더구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주머니에 들어온 현금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현금이 아니라 상품권으로 지급했더니 현금으로 바꿔 장롱에 넣었다.
둘째, 정리해고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세금 혜택보다 임금 부담이 더 큰데, 세금 혜택 준다고 중소기업들이 일자리를 늘릴까. 노동 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려던 노 대통령의 시도는 노조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일본의 경우 기업들이 일자리 나누기로 취업자를 늘렸으나 초과 근무를 줄이면서 근로자 총소득은 그대로였다.
셋째, 공정위가 '대기업 갑질'을 없애면 투자·고용 의욕이 살아날까. 오히려 청와대의 '호프 미팅' 분위기가 공정위의 칼춤 공연에 싸늘해지지 않을까.
넷째,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신설한다고 중소기업이 성장하고 고용이 늘어날까. 4차 산업혁명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초우량 대기업들의 격전장이다. 또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될수록, 더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부담이 커질수록 로봇·인공지능으로 인력을 대체하려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장기적으로 유지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J노믹스의 '소득 지원→고용→성장→고용' 선순환은 근사하게 들리지만 실현은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은 정부 주도로 5년간 매년 5%씩 성장해 총 2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려 했으나 실패했다. 예산 지원으로 새로 생긴 일자리는 질이 낮았고, 창업은 영세 자영업에 집중됐다. 지금처럼 경제팀에 기업·금융 현장 경험자도 없었다. 정책이 허공에서 맴돌면 '남 탓'하기 일쑤였다. J노믹스는 노 대통령의 실패를 넘어설 수 있을까.
김기훈 / 위비경영연구소장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