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 킬로를 넘게 달려 24일만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동안 '지평선', '광활하다'는 표현은 내게 상상 속에만 있는 추상적인 낱말이었다. 360도 지평선이 열흘넘게 이어지는 광활함은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이 말들이 시베리아를 건너며 비로소 내게 실감나는 구체적인 낱말이 되었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는 유럽 3대도시에 드는 큰 도시다. 그렇지만 도심에는 백 년이 훨씬 넘는 나즈막한 건물들이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거리를 만들고 있었고, 도로보다 넓은 공원이 도심 곳곳에 수많은 벤치와 함께 있어서 누구든 쉽게 가서 쉴 수 있었다. 그리고어디서나 현대차와 기아차가 많이 눈에 띄어 친근했다.
모스크바 시내 캠핑장에서 하루 묵은 다음 날 우리를 데리러 온 남편의 고교동문 방선배님(이하 선배님)을 만났다. 선배님께서는 모스크바 한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하는 부교수이고 200여 명의 직원을 둔 사업가이기도하다.
푸쉬킨이 자주 들렀다는 푸쉬킨 카페에서 점심을 사주셨다. 사람의 발걸음에 닳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계단, 2층의 고서적들, 우아한 실내, 전통옷을 입은 종업원들을 보고 푸쉬킨과 같은 시대에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음식 맛도 훌륭하고 분위기도 좋은 카페는 우리를 배려한 선택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모스크바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과 푸쉬긴이 살던 집, 러시아에 롹의 전성기를 연 빅토르 최의 벽이 있는 아르바트거리도 안내해주셨다.
저녁은 분위기 좋은 조지아 식당에 데려가셨다. 저녁과 보드카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선배님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정착했고 현재 마음 쓰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얘기를 들었다.
젊은 한 때 좋은 세상을 꿈꾸는 뜨거움으로 학생운동에 몸 담기도 했고, 취직이 어려워 시작했던 학원 강사가 소위 말하는 일타강사로 잘 나갔으나 마음이 편치않아 러시아를 공부하러 훌쩍 떠나왔다고 했다. 처음 뜻과 달리 러시아문학을 전공했고 공부를 마칠 즈음 한국에 마땅한 자리가 없어 러시아 대학에 남았고 또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국내 대기업과 협력하는 물류회사를 운영하는데 직원 중에 한국말을 하는 고려인 후손들이 많지만 정체성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한국식당을 열고 수익금으로 한국문화센터 운영하고 있으시다. 문화센터에서는 한국어도 가르치고 한국의 날 축제를 여는 등 여러 방법으로 직원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있다고 하셨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한 때의 뜨거움만으로 위안삼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삶 속에서 만들어내시는 것이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선배님께서 여독을 풀어야한다며 붉은 광장 가까이에 이틀이나 호텔을 잡아주신 덕에 편안히 붉은 광장과 모스크바 시내를 관광할 수 있었다. 내가 뉴스로 접한 붉은광장은 사열, 선전 선동하는 모습이었는데 내가 만난 붉은광장은 아름답고 자유롭고 한가로웠다. 여행을 통한 이런 다름은 언제나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