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나제통문을 사이에 두고 동서 지역 간에 나타나는 언어 차이.
[개설]
무주 지역의 방언은 전라북도 방언의 하위 방언이나 지리적으로 도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여타 다른 전라북도 방언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접촉 방언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간의 방언 연구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받아 왔는데, 특히 나제통문(羅濟通門)을 기준으로 한 무주의 동서 지역 간의 방언 차이가 주목할 만하다. ‘무주’라는 동일한 행정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나제통문 동편과 서편은 음운, 문법, 어휘의 측면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지리적·역사적 요인에 기인한다. 이 글에서는 두 지역 간의 차이를 일으킨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고, 두 지역 사이의 음운과 문법적 차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편의상 나제통문 서편의 방언을 무주 방언으로, 동편의 방언을 무풍 방언으로 명명하고 논의를 진행한다.
[동서 지역으로 나뉘어져]
무주는 행정 구역상 6개의 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 적상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행정 구역과 인접하고 있어 접촉 방언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동서를 가르는 두 가지 지리적 특징이 방언 차이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나제통문과 구천동 계곡(九千洞溪谷)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지리적 특징은 크게 보아 덕유산(德裕山)으로 수렴된다. 덕유산은 소백산맥의 중심이 되는 산이기 때문에 산세가 험하여 그 동서편의 왕래가 잦지 않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문화와 방언을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동서편이 서로 다른 방언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무주군 무풍면과 설천면 일부가 이 지리적 기준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사용 방언은 동남 방언, 즉 경상도 방언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그리고 무주군 무풍면을 제외한 무주읍 및 여타 면들은 서편에 위치하여 주로 서남 방언, 즉 전라북도 방언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신라와 백제의 이질적 문화를 계승하여]
나제통문을 사이에 두고 동서 지역에서 언어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동서 양편이 역사적으로 이질적인 문화를 계승한 데에서 기인한다. 무주가 지금과 같은 행정 구역을 가지게 된 것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이다. 그 이전까지는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주계현(朱溪縣)과 무풍현(茂豊縣) 두 곳이 1414년(태종 14)에 하나로 통합되었고, 그 머리글자를 따서 무주가 된 것이다. 이 주계현과 무풍현을 가르던 기준이 바로 나제통문이다. 나제통문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 지역에 있는 작은 통로인데, 이곳 서편에 위치한 주계현은 삼국 시대에 백제에 속한 지역이었으며, 동편의 무풍현은 신라에 속한 지역이었다. 이처럼 오랫동안 이질적인 문화권에 속해 있던 두 지역은 행정 구역의 통합 이후에도 각기 다른 문화, 언어, 풍습 등을 유지하여 왔다. 전통적으로 동서편 사람들은 서로 왕래도 잦지 않고 경제, 교육, 통혼권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토박이들 사이에서 서로의 뿌리가 다르다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단순 모음과 성조 차이 음운적 차이]
무주 방언과 무풍 방언은 단순 모음(單純母音) 목록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무주 방언의 단순 모음은 10개[/ㅣ/, /ㅐ/, /ㅔ/, /ㅟ/, /ㅚ/, /ㅡ/, /ㅓ/, /ㅏ/, /ㅗ/, /ㅜ/]이다. 이는 중앙어 및 전라북도 방언과 동일한 양상이다. 이와 달리 무풍 방언은 6개의 단순 모음[/ㅣ/, /E/, /Ǝ/, /ㅏ/, /ㅗ/, /ㅜ/]만이 음소로 유지되고 있다. /E/는 /ㅐ/와 /ㅔ/의 중간적 발음을 표시하기 위한 임의의 기호로, 무풍 방언에서 /ㅐ/와 /ㅔ/가 변별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Ǝ/는 /ㅡ/, /ㅓ/의 중간적 발음을 표시하기 위한 임의의 기호로, 이 방언에서 /ㅡ/, /ㅓ/가 변별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무풍 방언에서는 전설 원순 모음인 /ㅟ/, /ㅚ/가 이중 모음으로 실현된다. 무풍 방언의 단순 모음에 나타나는 이러한 양상은 동남 방언[경상도 방언]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음운적으로 무주 방언과 무풍 방언 사이의 특징적인 차이는 운소(韻素)에서도 잘 드러난다. 무주 방언에는 음장(音長)만이 운소로 기능하는 반면, 무풍 방언은 음장과 성조(聲調)를 가진다. 음장은 어두의 소리 길이에 따라 단어의 의미를 변별하게끔 하는 운소이다. 일반적으로 '말:[言]'과 '말[馬]', '눈:[雪]'과 '눈[目]' 등의 단어에서 길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음장이라고 하는데, 중앙어를 비롯한 많은 방언에서 음장이 운소로 기능하지만 젊은 층으로 내려올수록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라북도 방언의 노년층에게서 음장은 여전히 의미를 변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무주 방언도 이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성조는 음의 높낮이를 통해 단어의 의미를 변별하게끔 하는 운소이다. 주로 동남 방언과 북부 방언 등 일부 방언에서만 성조가 운소로 기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풍 방언의 성조는 고조(高調)[H]와 저조(低調)[L]의 2단 체계를 가지고 있다. 즉 이 지역 사람들은 '말[馬]'은 고조로, '말[斗]'은 저조로 발음하여 두 단어의 의미를 변별한다. 무풍 방언의 이러한 특징 또한 동남 방언의 그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두 방언 간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은 음운 현상에도 나타난다. 비모음화(鼻母音化)가 그것이다. 비모음화란 비음이 약화 또는 탈락되면서 후행하는 모음을 비모음으로 바꾸는 현상으로 주로 동남 방언에서 활발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무주 방언에서는 이러한 비모음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반면, 무풍 방언에서는 '달패이[달팽이]', '마이[많이]'와 같이 마지막 음절에 위치하는 모음 /ㅣ/를 비모음으로 발음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물론 무주 방언과 무풍 방언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는 음운적 특징도 존재하는데, 자음(子音) 목록이 그것이다. 두 방언 모두 19개의 자음[/ㅂ/, /ㅍ/, /ㅃ/, /ㄷ/, /ㅌ/, /ㄸ/, /ㄱ/, /ㅋ/, /ㄲ/, /ㅈ/, /ㅊ/, /ㅉ/, /ㅅ/, /ㅆ/, /ㅎ/, /ㅁ/, /ㄴ/, /ㅇ/, /ㄹ/]을 가지고 있다. 이는 중앙어 및 전라북도 방언과 유사한 양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무풍 방언에서도 /ㅆ/이 자음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남 방언에서 /ㅆ/이 음소로 기능하지 못하여 /ㅅ/과 변별되지 못한다는 점을 보면, 무풍 방언에서 /ㅆ/이 음소로 나타난다는 점은 특징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특징적인 것은 아니다. 무풍 지역과 인접해 있는 경상북도 김천이나 경상남도 거창 등이 동남 방언권임에도 불구하고, /ㅅ/과 /ㅆ/을 변별하는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기존 연구[천시권, 「경북 방언의 방언 구획」[1965], 김정대, 「음운 면에서 본 경남 방언의 구획」[2000]]를 참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음운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무풍 방언의 음운적 특징이 인접하고 있는 김천, 거창 등의 동남 방언과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하노와 뭐하냐의 문법적 차이]
문법적 측면에서 무주 방언과 무풍 방언의 차이는 변칙 활용(變則活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ㅂ' 변칙 활용 양상을 살펴본다. 'ㅂ' 변칙 활용은 용언(用言) 어간(語幹) 말음(末音) 'ㅂ'이 모음 어미와 만날 때 활음 /w/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무주 방언에서는 중앙어와 동일하게 '춥다, 추워서, 추우니'와 같이 변칙 활용을 하는 반면 무풍 방언에서는 '춥다, 추버서, 추부니'와 같이 정칙 활용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두 방언 간 문법적 차이는 종결 어미(終結語尾)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는 무주 지역 방언 종결 어미의 방언 분화 양상을 살핀 이윤구의 「무주 방언 종결 어미의 언어 지리학적 연구」[2001]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더만: 이와 관련된 변이형으로 '-드만, -더만, -던만/덩만, -더구만/더구마, -덩구만/덩구먼' 등이 출현하였다. 이 중 '-드만, -더만, -던만/덩만'은 전라북도 방언형이고 나머지는 동남 방언형이다. 무주 방언에서는 '-드만'이 가장 넓게 분포하며, 무풍 방언에서는 '-더구만'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예문]
무주 방언: 그 사람 노네서 일하드만.[그 사람이 논에서 일하더구먼.]
무풍 방언: 장이 파장이더구마.[장이 파장(罷場)이더구만.]
2. -냐: 중앙어의 '-냐'에 해당하는 변이형으로 '-냐, -ㄹ랴, -나, -노'가 출현하였다. 이 중 '-나, -노'는 동남 방언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의문형 어미인데, '-나'는 판정 의문문에, '-노'는 설명 의문문에 주로 사용한다. 무풍 방언에는 이러한 '-나, -노'가 활발히 쓰이는 반면, 무주 방언에서는 '-나, -노'보다는 '-냐, -ㄹ랴'가 활발하게 쓰인다.
[예문]
- 무주 방언: 자네 지비 어디짜미이냐?[자네 집이 어디쯤이냐?]
- 무풍 방언: 바깐 날씨가 춤나?[바깥 날씨가 추우냐?]
3. -다냐: '-다냐'는 전라북도 방언에서 주로 사용하는 의문형 종결 어미로, '-다고 하냐'가 줄어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변이형으로는 '-다냐, -다나, -다카나'가 출현하였다. '-다냐'는 주로 무주 방언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형태는 전라북도 장수, 진안, 충청남도 금산, 충청북도 영동 등에서도 나타난다. '-다나, 다카나'는 주로 무풍 방언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동남 방언의 특징이다.
[예문]
- 무주 방언: 애기 거름마 한다냐?[아기가 걸음마를 하느냐?]
- 무풍 방언: 머 한다카나?[뭐한다고 하니?]
4. -게: '-게'는 상대방의 의향을 물을 때 사용하는 어미인데 주로 전라북도 방언에서 많이 사용된다. 이에 해당하는 변이형으로는 '-게, -구로, -[으]ㄹ라고'가 출현하였다. 이 중 '-게'는 전라북도 방언형, '-구로'는 동남 방언형이고, '-[으]ㄹ라고'는 전국적으로 그 분포가 확인된다. '-게'는 무주 방언은 물론 무풍 방언 일부에서도 확인된다. 반면 '-구로'는 무풍 방언에서만 확인이 된다.
[예문]
- 무주 방언: 식사하시게?[식사하시려고요?]
- 무풍 방언: 머 하구로?[뭐하려고?]
5. -[으]ㄹ겨: 이 어미는 화자의 의지를 진술하거나 청자에게 의향을 물을 때 사용하는 어미이다. 전라북도 방언에서는 '-을텨, -을쳐' 등으로 나타난다. '-을텨'는 '-을 테야'의 방언형이고, '-을쳐'는 '-을텨'의 구개음화 실현형이다. 이에 대응하는 동남 방언 어미는 '-을끼라'가 있는데, 이 어미는 '-을 것이라'의 축약된 형태가 방언형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을텨'는 무주 방언은 물론 무풍 방언 일부 지역에서까지 출현하며, '-을쳐'는 무주 방언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다. 반면 '-을끼라'는 무풍 방언에 출현하며, 설천면 일부에서도 이러한 어형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문]
- 무주 방언: 여기 잇슬껴?[여기에 있을 거야?]
- 무풍 방언: 가치 안 갈끼라?[같이 안 갈 거야?]
이상으로 두 방언 간 종결 어미의 방언 분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결과를 보면, 무주 지역의 방언은 나제통문을 기준으로 한 서부 방언[무주 방언]과 동부 방언[무풍 방언]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두 방언의 중간 지점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여러 가지 개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전이 지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방언의 공존이 주는 특별함]
무주는 지리적·역사적 요인에 의해 상이한 두 방언이 하나의 행정 구역 안에 공존하는 특이한 지역이다. 나제통문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두 방언은 이제 서로 공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제3의 방언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방언 접촉 연구에 귀중한 모형이 될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여타 다른 생활 양식[의식주, 관혼상제 등]과 방언 분화의 양상이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 또한 학제 간 연구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제통문을 사이에 두고 나타나는 무주군의 언어 차이는 보다 정밀하게, 그리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사·연구되어야 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