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28일에 고창군 고창읍 뒷산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당시 고창읍교회(지금의 고창중앙교회)에 임종헌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셨습니다.
임 목사님은 충남 부여군 양화면 수원리에서 태어나 군산 영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조선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시어 1944년에 충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임 목사님은 익산 황등면 용산교회와 신태인읍 화호교회에서 시무 하시다가 고창읍교회에 부임하게 되었고 6.25전쟁을 맞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피난을 가는데 임 목사님은 ‘목자가 양들을 버리고 교회를 떠날 수 없다’고 하시며 교회당의 지하에 땅굴을 파고 기도하며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당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임 목사님의 경력이 뛰어나고 훌륭한 인품을 보아서 공산주의자로 전향시키기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여 갖은 방법으로 설득시키려했습니다.
그러나 임 목사님의 신앙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마디만 하면 가족과 함께 모두를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으나 목사님은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임 목사님은 고창읍 뒷산에 끌려가서 나무에 묶이게 되었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 목사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주여! 이 종은 주님을 부인할 수 없어 이제 주님께 갑니다.
이 민족의 죄를 이들 청년들에게 돌리지 마시고 용서하소서’라는 말씀을 하시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고 기쁨이 가득 찬 얼굴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임 목사님이 1절을 부르는 동안 목사님의 가슴을 겨누고 있던 총구에서 3발의 총알이 불길과 함께 발사되어 목사님의 가슴을 뚫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피를 흘리시면서 기쁨과 희열 속에 2,3절을 마저 부르시고 조용히 운명하셨습니다.
이 때 임 목사님의 나이는 44세. 한참 일할 젊은 나이에 주님께 한 신앙고백을 지키기 위하여 장열하게 순교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