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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김기곤목사 07 신학여행 사도행전3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그 영원한 말씀을 저희들이 맛보고 감동을 받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주님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하셨사오니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들을 변화시키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희들뿐만 아니라 저희들의 가족, 저희들의 교회 그리고 저희들의 이웃, 그리고 이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아름다운 말씀을 저희들이 전할 수도 있게 능력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빕니다.
아멘
지금 우리는 신약 성경 27권을 차례차례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신약 성경 27권은 이 책을 중심으로 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 신약의 배경이라는 책은 제가 쓴 신약에 대한 책 중에서 18번째 책입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신약성경 27권에 대해서 설명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중심으로 해서 쭉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도행전의 구조를 공부를 했습니다.
간단히 복습하고 우리 또 다음으로 나가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 사도행전의 주제절이 되는 말씀 에 근거해서 세 부분으로 갈라져 있다고 우리 공부를 했습니다.
제 일부는 1장에서부터 7장까지인데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1장은 성령을 받기 위해서 준비하고 2장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3장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이고, 4장부터는 이제 예루살렘의 핍박이 시작되죠.
아름다운 이 초기 교회에 사단이 핍박을 가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투옥을 당합니다.
그다음에 5장은 교회의 탐욕을 일으켜서 또 교회를 화해시키려고 사단이 공격을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일어나고, 6장은 교회의 또 불화를 사단이 일으키죠.
그러나 그 불화 때문에 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일곱 집사가 선정되고 교회가 더 크게 부응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단이 아무리 공격을 하고 교회를 없애려고 노력을 해도 하나님의 교회는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절대로 지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더 아름답게 이 세상에 우뚝 설 것입니다. 제 7장은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이 순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 단계마다 한 사람의 순교자가 나온다고 그랬죠.
첫 번째 단계에서는 스데반이 순교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야고보가 순교하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게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제2부는
유대와 복음이 이제 예루살렘을 넘어서 예루살렘이라는 한 시티 한 도시를 넘어서 팔레스타인 전체로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것이 8장부터 12장까지 기록돼 있습니다. 8장은 복음이 사마리아에서 전파되는 것이 나와 있고 그래서 이것은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에 대한 편견을 깨버리는 준비를 하게 되죠.
2장은 제2부는 3부를 위한 준비라고 했습니다.
8장은 이방인을 향한 편견을 깨는 준비를 하게 되고요.
9장에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를 한 임무를 하나님께서 준비하십니다.
사도바울의 회심이죠. 제10장에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의 편견을 깨는 준비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 집에 가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을 보고 크게 느끼고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침례를 베풉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다른 지도자들도 다 마음을 열었죠.
그래서 지도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킵니다.
제11장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본부 안디옥 교회가 설립하게 됩니다.
제 12장에서는 드디어 12 제자 중에 처음으로 순교자가 나옵니다.
헤로아그리파 1세가 야고보를 잡아서 죽이죠. 첫 번째 순교자가 사도 중에서 첫 번째 순교자가 나오게 됩니다.
제3부는 드디어 이제 복음이 팔레스타인을 넘어서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입니다.
전파되는 것들이 기록돼 있죠. 이 3부의 주인공은 사도 바울입니다.
13장 14장 2장에 걸쳐서 2년 동안의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 있습니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을 2년 동안 마친 후에 이방인 교회 사이에 문제들이 생겨서 할례 문제, 율법 문제가 생겨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첫 번째 기독교회 총회 즉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됩니다.
16장 18장 3장에 걸쳐서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3년 걸렸습니다. 2차 전도여행
19장 2부터 21장까지 석장에 걸쳐서 역시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3차 전도여행은 5년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1차가 2년, 2차가 3년, 3차가 5년 걸렸기 때문에 10년 동안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21장 마지막에서 예루살렘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왔는데 그때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을 만큼 돌에 맞습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겨우 다윗을 구합니다. 그래서 비투성이가 된 제22장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22장부터 26장까지는 바울의 유명한 다섯 번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고 2년 동안에 가이샤라 감옥 생활이 바울에게 있게 됩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기다려도 석방될 희망이 없자 바울은 드디어 로마 시민의 최후 권리를 사용해서 로마 황제 네로에게 호소하고 그래서 27장 28장 2장에 걸쳐서 바울이 276명의 죄수, 또 로마 군인들 선원들과 함께 로마로 향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행전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7장까지 했기 때문에 이 시간에는 제2부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는가를 공부하겠습니다.
제2부 8장부터 우리가 공부하겠습니다. 8장은 드디어 예루살렘의 대규모의 핍박 때문에 복음이 예루살렘을 떠나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가는 장면입니다.
8장 말씀을 좀 읽겠습니다. 8장 1절 그날의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랬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고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 사방으로 가게 됐습니다.
4절에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세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믿었더라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랬습니다.
팔장은 드디어 사마리아의 복음이 전파됩니다. 사마리아가 어떤 곳입니까?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멸시하고 싫어하듯 상종하기도 피하고 지나가기도 꺼리던 그런 곳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에 드디어 집사 필립이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굉장한 발전이죠. 그래서 사람들이 일심으로 빌립이 하는 말을 듣고 또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랬습니다.
심지어는 마술사 시몬까지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이 사마리아에 파견해서 그들에게 침례도 주고 사마리아 교회를 굳게 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전도는 사실은 빌립이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벌써 사마리아로 통행하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우물가에서 한 불쌍한 여인을 만나시고 전도하시고 그다음에 그 마을에 들어가셔서 이틀이나 유하시면서 사마리아에 전도를 하셔서 사마리아 모든 사람들이 수다하게 믿고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 씨가 지금 이제 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8장 26절서부터는 에티오피아의 재무장관인 구스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다시 고향인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병거에서 마차에서 이사야 53장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로 모르는 것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집사 빌립을 그 황량한 곳까지 보내셔서 구스 네시아에게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드디어 복음이 아프리카까지 전하게 된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이방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장면이 우리 8장에서 나옵니다.
우리 구스네시가 빌립을 만나는 장면에서 우리는 몇 가지 좋은 교훈들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빌립의 열정입니다. 8장 26절서부터 보면 빌립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달려가서 그다음에 그 구스네시한테 가까이 다가가서 그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서
침례를 주었다 그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전도자의 열성 있는 모습이 집사 빌립의 모습을 통해서 8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일어나는 것이 여러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안하고 안락한 삶 속에서 한 영혼을 불쌍히 여겨 일어나서 그다음에 그 열정 때문에 달려가고 그다음에 가까이 접근하고 그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구원을 가르치고 그래서 침례받게 하는 그 장면이 참으로 인상 깊게 발상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말씀과 구원과 복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때 일어나기가 쉽지 않죠 그러나 이 집 집사 빌립의 모습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서 일어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제가 한번 신문을 보니까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을 하던 대학생들이 자일이 서로 엉켜서 일곱 명이 내려오지 못하고 밤을 거기서 세워서 얼어죽게 되었습니다.
근데 그 밤중에 서로 비상 연락망을 통해서
그 등산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는데, 새벽 3시에 그 연락을 받은 또 다른 대학생 2명이 따뜻한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자위를 가지고 등산 구조 장비를 챙겨가지고, 그 캄캄한 방에 밤에 인수봉이 올라가서 그 자일이 엉켜서 꼼짝 못하는 일곱 명 가까이 가서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그래서 그날 밤 드디어 4명을 구조해서 얼어죽지 않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정신, 따뜻하고 안락한 데서 일어난 이런 정신이 우리 영혼을 사랑하는 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있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됩니다.
우리가 또 구스넷에서 또 배울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씁쓸한 광야를 사막길을 지나가는 구스 내시에게 천사를 보내서 전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서 천사를 사람의 모습으로 해서 보내셨으면 문제는 간단하죠.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분주하게 바쁜
빌립을 일부러 거기까지 보내셔서 구순의 씨를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전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연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감격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고 다른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계시록 14장에 세천사의 기별이 나오는데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공중에 강력하게 날면서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새천사 그게 천사라고 생각하고 천사를 기다리면 여러분은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십니다.
그 공중을 날면서 강력한 마지막 호소, 마지막 기별을 외치는 새 천사는 여러분 천사가 아니라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바로 새 천사입니다. 우리가 바로 구스네 씨를 찾아가는 집사 필립이죠.
이 마지막 세상 재림 직전에 우리가 영원한 복음을 마지막 호소로 세상에 전하면서 세상의 운명은 끝나게 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얻을 교훈이 있습니다. 구수의 신은 에티오피아의 지성인이고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진리에 대해서 알고 싶고 영원한 것을 갈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막길을 가면서도 성경을 읽었어요.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 땅의 지성인들이 이 영원한 진리, 이 세상에 세속적인 것을 떠나서 헛된 것을 떠나서 영원한 가치 있는 것을 찾고 싶은 이 땅의 지성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갈증을 채워줄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 이것 말고는 그들의 갈증을 채워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도 역시 집사 빌립처럼 일어나서 달려가서 가까이 접근해서 가르치고 이 땅의 지성인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또 구원 구원받도록 해야 할 그런 엄숙한 책임이 우리한테 있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우리가 8장에서 구스네시를 통해서 배울 것들입니다.
9장으로 가보겠습니다. 9장은 무엇의 준비입니까?
여러분
우리 구조에서 하나님께서 한 인물을 준비하셨죠?
구장어를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9장 1절에서 5절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해서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미색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윗에게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음의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내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내가 박해하는 예수라.
9장에서는 바울이 바울이라는 인물이 드디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주인공이 다메에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드디어 결정적으로 회심합니다.
이 바울이라는 한 사람의 회심은 한 사람의 회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의 회심 때문에 세상의 역사가 바뀝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바뀌죠.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있어서 한 사람은 이만큼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저와 여러분의 참된 회심은 역사적인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큰 사건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나 한 사람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높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대하시고 그만큼 우리를 믿어주시죠.
사사기 6장에 보면 굴 속에 숨어 있는 한 비겁한 젊은이를 찾아가셔서 하나님께서 큰 용사라고 불러주십니다.
하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는 기동훈이라는 한 젊은이, 미리안에게 대항할 용기도 내지 못하고 굴 속에 숨어 있는 한 젊은이를 큰 용서라고 불러주시고 믿어주시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그를 만드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복음의 일꾼으로 복음의 영웅으로 저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켜주시고 또 바꿔주실 하나님이 계심을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바울의 회심에서 여러 가지 것들이 배울 게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 없는 열심, 그릇된 열심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게 신앙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건 더 무서운 것이죠.
진리를 떠나서 그릇된 것을 믿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정말 무서운 일들을 저지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흠이 없다고 빌립보서 3장 6절에 자랑할 만큼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그리스도 없이 열성을 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내가 정말 이렇게 강력하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참된 진리인지를 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의 사업을 해칠 수도 있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 다메색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몇 백 리가 떨어져 있죠. 이 예루살렘의 큰 핍박이 난 다음에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이 많은, 즉 자기들 친척들도 있고 유대인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는데 다메색에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어요.
시리아의 서울이 있죠. 그래서 다메색으로 수백 리를 도망쳐서 다메색에 갔고, 약 1200l를 또 올라가서 약 500km 떨어져 있는 북쪽에 안디오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이 피난했습니다.
그래서 일단의 무리들이 상당히 많은 수가 다메색으로 갔는데 그 다메색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잡아오기 위해서 사내드린이 바울을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바울같이 이렇게 합리적인 사람이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그리스도인들을 몰라보고 핍박했는가 바울한테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열성적인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죠.
몇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온갖 고난 중에서도 유대인이 살아남고 믿음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메시아가 언젠가는 꼭 오신다는 그런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 보면 그 나라에 오면 사막이 백과 밭처럼 피어 노래하며 그날이 오면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누우며 이 모든 그날이 오면에 대한 그 간절한 소망은 메시아가 오면입니다.
메시아가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이 우리를 압박하던 로마도 물러갈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시온은 온상에 우뚝 서서 하나님의 영광은 온상에 드러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고난은 끝이 날 것이다. 전 세상에서 디아스포라들이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시온으로 시온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게 유대인들의 간절한 희망인데 그래서 메시아만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인데 그리스도인들이 메시아가 이미 세상에 오셨다.
그렇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같은 열성적인 그리스 유대인들은 거기에 대해서 아주 큰 혼란을 가지게 됐어요.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야 되는데 메시아가 오셨는데 왜 세상은 똑같으냐
근데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는 십자가에 너희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했다.
그런데 그분은 부활하셨다. 그분이 어디 계시냐 그랬더니 그분은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러나 우리 곁에 계신다. 동시에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래서 바울을 비롯한 유대의 지도자들은 열성적인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의 이 간절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무너뜨리고 메시아가 이미 오셨는데도 세상은 똑같다고 똑같은 이런 거짓을 가르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멸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소망을 위해서. 그러다가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3년 기도하고 그의 모든 신념이 그가 믿던 것들이 다 무너진 다음에 다미에게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가 마침내 찾아낸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메시아의 날 그날이 오면 이루어지리라고 우리가 기대하던 고대하던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다 이루어졌다. 우리가 얻고 싶은 게 뭐냐 영생, 영생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다 이미 물이 받았다고 우리가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다 되었다.
그래서 바울이 그렇게 무서운 고민을 겪은 다음에 깨닫고 외친 것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얼마나 참 기쁜지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9장을 넘어가기 전에 바울의 일생을 좀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바울은 34년 스데반을 죽일 때 앞장섰는데요. 그때 30살이 넘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스테반을 죽인 공로로 그가 산에 들이는 회원이 되었는데 산에 들이는 회원이 되려면 30살이 넘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때 우리가 30살이라고 생각하면 30살에
사내들은 회원이 되고 31살에 다메에 가는 길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즉각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3년 동안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있다가 돌아오게 되죠.
그러니까 31살부터 34살까지는 아라비아 광야에서 기도하고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환영하지 않고 다시 고향 다소로 보내버립니다.
그래서 그가 고향 다소에서 6년을 기다립니다. 40살까지 34살부터 40살까지 여러분 남자 일생에서 34살부터 40살까지는 정말 귀중한 기간인데 아무도 바울을 불러주지 않았어요.
바울같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격을 갖춘 사람이 누굽니까?
성경을 통달하는 박사죠. 전 이스라엘에서 그만큼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죠. 엘 가말리엘 문화에서 공부했죠.
정말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의 어부들,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베드로를 비롯한 갈릴리 어부들하고는 상대가 안 될 만큼 자격을 갖춘 사람이죠.
그러나 교회가 그를 알아주지 않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에 대해서 쓰라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 때문에 고초를 겪었죠. 그래서 그를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은 고향 다소에 쓸쓸히 물러가서 1년을 기다리고 2년을 기다렸습니다.
곧 불러준다고 했는데 3년이 가고 4년이 가고, 그는 6년을 기다렸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지도하다가 바울을 찾으러 다소로 올 때까지 그때까지 6년을 아마 바나바가 다소를 오지 않았더라면 바울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더 세월이 갔을 거예요.
그러나 바울은 한 번 더 예루살렘 교회를 원망하거나 제자들에 대해서 도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바울이 섭섭함을 못 이겨서
예루살렘을 지도하고 있는 정말 자기보다 못한 갈릴리 어부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더라면 아마 사도행전이 어떻게 됐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참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울하면 성질이 급하고 그다음에 원칙에 철저하고 약간 엄격한 사람으로 늘 알고 있지만, 바울은 이렇게 겸손하고 눈물을 많이 흘릴 줄도 알고 참고 그런 겸비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이 그의 설교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 6년의 외로운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그가 1차 여행, 2차 전도여행, 3차 전대행을 떠날 때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서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은 것은 그가 만사가 잘된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수많은 고난을 간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말씀과 그의 설교가 힘이 있었죠.
그의 삶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6년 동안 40살까지 고향에서 기다리다가 드디어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그를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2년 동안 열심히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42살까지요. 그다음에 그가 마
1살에 41살에 41살부터 그다음에 54살까지 그러니까 54살에 3차 여행까지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오니까 약 10년 넘도록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갔다 오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54살부터 그가 뭐 오랜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왔지만 환영을 받기는 커녕 감옥에 들어가서 2년 동안 가이사의 감옥에 있다가 다시 2년 동안은 로마의 감옥에 있다가 석방 되었습니다.
그가 60 63살 때 석방이 되었다가 4년 동안 다시 열심히 전도를 하다가 67살에 네로 황자가 그를 강제로 납치하여 로마로 소환해서 그리스도인의 지도자로서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서 순교하게 그래서 67살로 그의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이게 바울의 일생입니다마는 우리는 바울의 일생을 통해서 아주 깊은 감동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얼마나 귀하게 쓰셨는가를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제 우리 9장에서 우리가 배울 것들입니다.
10장을 보겠습니다.
10장은 고넬루 사건입니다. 1절서부터 보면 가이사라의 고넬로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탈리아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 10장은 고넬료 이야기인데요.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가이샤라 가이사라는 예루살렘에서 좀 떨어진 지중해 해변가에 있는 도시입니다.
헤롯이 건설했죠. 로마 황제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입니다.
항구도시입니다. 여기에 총독이 살고 있었습니다.
총독이 예루살렘에 살면 문제가 많으니까 좀 골치아픈 예루살렘을 떠나서 또 로마와 교통이 편리한 가이샤라의 총독부가 있었는데, 그 총독의 친위대 총독을 보호하는 부대를 이탈리아 부대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마 그 당시 식민지에 있는 로마 군인들은 다 이탈리아에서 온 로마에서 온 군인들이 아닙니다.
로마 출신의 군인들은 모자라기 때문에 현지에서 군인들을 많이 모집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주면서
여러 가지 이점들을 연금도 주고 가면서 현지에서 로마 군인들을 모집했는데, 그러나 이 군인들은 유사시에 어떤 일이 생길지 혹시 모르기 때문에 총독을 지키는 치니데만은 이탈리아에서 직접 온 군인들로 아마 구성을 했고, 그래서 그 부대 이름도 이탈리아 부대라고 했을 겁니다.
말하자면 로마에 충성을 다하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그런 군인 정신이 충실한 정통 로마 출신 이탈리아 출신 젊은이들로 이 이탈리아 부대가 구성이 됐습니다.
그래야 총독이 안심할 수 있죠. 이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이니까 얼마나 굉장한 사람이겠습니까?
아마 로마 귀족 출신의 군인정신이 아주 충일한 그건 정통 로마 군인이었을 겁니다.
이 고넬 그러면서도 이 고넬론은 자기가 다스리는 식민지 백성이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열심히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제를 베풀고 하는 참으로 그 겸손하고 인격이 갖추어진 그런 젊은 로마 군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부장을 고넬론을 사랑하셨죠. 그래서 어느 날
고넬루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베드로를 청하게 하시고, 그래서 고넬루는 온 집안 식구들을 다 자기 집에 모아놓고 베드로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가 자기 집에 오자 그 앞에 엎드려서라고 베드로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처럼 듣고 마침내 고넬로 집에 모인 온 가족들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침례를 받습니다.
이게 10장과 11장에 걸쳐서 나오는 고넬로 사건인데 왜 한 백부장의 이야기가 이렇게 성경에 중요하게 나오는가 이것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준비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그렇게도 피하고 싶어 하던 이방인들에 대해서 로마의 백부장이면 정말 이방인 중에 이방인이죠.
이방인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침내도 베풀고 베드로가 그렇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이방인들에게 성령 충만함이 임하는 것을 본 다음에 내가 무엇인데 하나님께서 구원하고 싶어 하는 이방인들을 내가 무엇인데
피하겠느냐 그래서 침내까지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의 마음이 이방인들을 향해서 활짝 열리게 되었죠.
그렇기 때문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바울을 지원하고 바울이 하는 일을 다 예루살렘 교회가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10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다음에 우리 11장으로 넘어가 봅시다.
11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 설립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11장 21절에 보면
19절 한번부터 볼까요? 그때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란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오까지 올라가서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중에 구부로와 구현의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에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랬습니다.
26절에 보면 25절서부터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11장에서 안디옥 교회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의 본부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근데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여러분 지난 시간에 지도에서 봤지만 예루살렘에서 500kg 약 1200l 이상 떨어진 북쪽의 도시입니다.
소아시아의 도시죠. 안디옥은 굉장한 도시입니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도시고 굉장한 무역도시고 군사도시입니다.
로마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죠. 그래서 아주 세속적인 도시고 화려한 도시고 길은 전부 대리석 아니면 색깔이 있는 아름다운 돌로 포장이 돼 있고 질서정연하게 도시 계획이 되어 있는 안티오크스 황제의 이름을 딴 도시죠.
거대한 체육관과 목욕탕이 있는 전형적인 로마 도시입니다.
사람들은 대리석 집에 살았습니다. 부가 넘치는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세계 3대 도시가 있었는데 제일 큰 도시가 로마고 그다음에 아프리카에 있는 알렉산드리아고, 세 번째가 바로 안디옥입니다.
그래서 안디옥은 동양의 진주, 동양의 보석이라고 불리운 굉장히 큰 도시 인구 50만의 대도시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뭐 5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화려한 도시죠.
이 도시에 예루살렘에서 1200리를 피난 온 피난민들이 일단의 피난민들이 피난민 그리스도인들이 이 거대한 도시에 흘러들어왔어요.
여러분
이 피난민들은 여기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피난민들이 무슨 대리석 집을 건축하고 거기에 삽니까?
오늘날 성지 탐사단이 안디옥에 가서 안디옥 교회를 보여달라고 안디옥교회의 사람들이 산 집을 보여달라고 하면 실비우스 산에 있는 동굴로 데리고 갑니다.
그들은 거기서 살았어요. 언제 떠나야 될지 모르기 때문에 언제 잡힐지 모르기 때문에 대리석 집을 짓고 거기에 안주할 수가 없어서 동굴 속에 살면서 안디옥 교회도 여러분 동굴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이 세속적인 헬라 사람들 전형적인 로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 보면 수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피난민들이 대리석 집에 사는 그 교양 있는 화려한 사람들을 전도해서 하나님을 믿게 하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래서 이 안디옥 교회의 세속적인 사람들은
이 동굴 속에 사는 피난민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건 절대 조롱하는 말이 아닙니다. 조롱하는 말이라면 수다한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겠습니까?
그건 감탄하는 말이에요. 부러워하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대리석 집에 살아도 사는 것이 늘 허전하고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들은 동굴 속에 사는 피난민이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사느냐 무엇이 있길래 그리스도가 있구나.
그래서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준 것입니다.
그래서 수다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보고 감동을 받고 주께 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 옆집 사람도 우리를 저 사람을 저 사람이 사는 것을 보니까 예수님이 계신 것이 하나님이 계신 것이 너무 분명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동굴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 살기에도 힘들 텐데 그들의 꿈은 세계를 땅 끝까지 가서 세계를 복음하는 것이 이 안디옥 교회 동굴교회의 꿈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안수하고 1차 여행, 2차 여행, 3차 여행 계속 보낸 교회가 안디옥 교회입니다.
그들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들이 돈을 모아서 바울 일행의 경비를 대면서 세 번 땅끝까지를 향해서 파견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파견한 다음에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했겠습니까? 안디옥 교회는 그래서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입니까? 우리 기도할 제목이 지금 교회에 많아야 되겠어요 그러려면 우리가 전도를 시작해야 기도할 제목이 많습니다.
제가 어떤 개척교회에 한번 설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아직 목사님이 부임 못하시고 평신도들이 한 30~40명 모여서 지금 처음으로 개척을 하는 교회인데 제가 설교하러 갔더니 그날 안식일 학교 시간부터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느냐면 아직 목사님도 안 계신 이 작은 개척 교회가 벌써 자기들 중에서 한 부부를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하고 자기들이 파견한 이 선교사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더라고요.
기도가 안 나오겠습니까? 자기들이 생활비를 대서 보내는데 그래서 제가 거기서 설교하면서 이 교회 참 감동을 제가 많이 받았어요.
이렇게 기도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응할 것이다 그랬더니 몇 년 안 가서 교회를 크게 짓고 지금은 그때 30~40명이 200명도 넘는 큰 교회가 되었죠.
기도하는 교회는 이렇게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 하는 그런 교회가 됩니다.
안디옥 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우리가 안디옥 교회에서 배울 교훈들이 이런 데 있는 것입니다.
12장으로 가봅시다. 12장은 두 번째 부분의 마지막 장이죠.
안디 야고보 제자 야고보가 이 마지막 장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12장 1절에 그때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헤아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제자 사도 야고보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때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음에 오게 가두어 군인 내식인 네페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6절에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메어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나타남에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여기 12장에서 야고보를 순교하게 한 헤롯은 예수님 탄생 때 있었던 헤롯 대왕이 아닙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죠. 여기 나오는 헤롯은 헤롯 아그리파 1세로서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이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참 불행한 왕자였는데, 로마의 볼모로 잡혀가서 있는 동안에 자기 할머니와 자기 할머니 그 마리암네 1세와 또 자기 아버지 알렉산더가 자기 할아버지 헤롯 대왕한테 죽임을 당했어요.
로마로 무서워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로마 황제들하고 친해가지고 자기 할아버지가 죽고 세월이 많이 지난 다음에 로마 황제의 호의를 입어서 이스라엘에 와서 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통일해가지고 할아버지처럼
로마 총독도 다시 보내버리고 전 이스라엘을 통일해서 다스렸습니다.
막강한 황제죠. 그렇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신임이 없었습니다.
이방인이고 에돔 사람이고 로마의 힘으로 자기들의 왕이 됐기 때문에 전혀 신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헤롯 아그리파 일대는 그 열등감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유대인들의 신임을 좀 관심을 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을 야고보를 잡아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좋아하자 베드로도 잡아서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명절이니까 명절이 지난 다음에 죽이기로 하고 드디어 내일 베드로가 죽는 날입니다.
그날 밤 베드로가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물론 16명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왜 이렇게 군인들이 많이 지키겠습니까?
베드로를 베드로는 탈옥 전과가 있습니다. 천사가 탈옥시켜줬기 때문에
사도행전 5장에서 탈옥시켜주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천사라 하더라도 베드로를 탈옥 못 시키도록 16명이 지키고 군사 2명이 베드로와 손을 묶고 양 옆에서 같이 잤습니다.
정말 누구도 베드로를 탈락 못 시키게 해놨습니다.
근데 뭐 그것 때문이 아니라 이미 얼마 전에 누가 죽었느냐 하면 야고보가 순교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베드로도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야고보처럼 순교하지. 그래서 그날 밤 다락방에 모인 모든 그리스도인,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잠을 안 자고 철야 기도하면서 금식하고 간절히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했죠.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베드로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망적이었죠. 그런데 내일 죽을 베드로가 그날 밤에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천사가 와서 그냥 깨워서는 안 일어나서 역부리를 쳐서 깨울 만큼 베드로는 깊은 잠을 자고 있어.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 죽을 사람이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온 성도들은 잠을 못 자고 기도하고 있는데, 매일 죽을 사람은 깊은 잠을 자고 있어요.
여러분 참 이게 이게 믿음이고 이게 신앙이고 이게 신뢰입니다.
죽는 것까지도 아예 맡겨버린 사람만 그날 밤에 잘 수 있죠.
사실 복음서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은 비겁하기도 하고 너무 약하죠.
개센만의 동산에서 베드로는 깨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듣고도 잡니다.
예수님께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고 오셔서 베드로에게 오셔서 베드로가 자는 것을 보시고, 너무 섭섭해서 마가복음에 보면 시모나 자느냐 그러셨어요.
잠시 동안도 그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러셨습니다.
얼마나 섭섭하셨겠어 개센만의 동산에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을 따라가기는 따라갔지만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기는 싫었어요.
그게 복음서의 모습. 복음서에 나타난 베드로의 모습이라면, 사도행전 12장에 나타난 베드로의 모습은 이제 무엇인가 크게 깨달은 모습입니다.
죽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버린다. 아버지의 손에 아버지께서 보시는데, 아버지의 손에서 나는 죽어도 좋다.
그러면 이게 절대 신앙입니다.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그런 신앙이죠.
여러분 이런 절대 신앙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승리가 있죠. 그래야 우리에게 믿는 우리에게 믿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야 구원의 감사가 있고 그래야 우리 기도도 쉬워집니다.
죽는 것까지도 맡겨버리는데 기도가 뭐가 어렵겠습니까?
늘 감사와 기쁨이 이 절대 신앙을 가진 사람한테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베드로의 절대 신앙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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